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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71화 (770/1,000)

1671화. 시작

천도봉, 표묘각.

악광명이 대전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러다 곽공의 안색을 보고는 조용히 다가와 서탁에 두루마리를 내려놓았다.

“감찰 인원이 또다시 혐의자 11명을 찾아냈습니다. 인원을 파견해 그들을 잡아들여 조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 청합니다.”

곽공은 그대로 서탁 위 물건들을 확 쓸어 버렸다. 위에 있던 물건들은 서로 뒤엉키며 와장창 떨어져 내렸다.

“분명 누군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 말해봐라, 내가 조사하는 게 맞느냐?”

분노한 얼굴로 벌떡 일어난 곽공이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가리켰다.

악광명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그도 곽공의 어려움을 알았다. 성경에선 그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내부를 깨끗이 하라고 했었다. 그렇게 교차로 표묘각 내부의 인원을 모두 확인했건만, 계속해서 내통자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럼 내통자보고 내통자를 조사하라 시키기라도 하란 말인가? 그런다 한들 그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있을까.

정말 각 문파의 감찰 인원들이 알아낸 문제를 먼저 해결한다면, 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내통자 문제를 어느 세월에 다 해결한단 말인가.

악순환이다, 실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니면 성존께 보고를 올리고, 각 감찰 인원에게 감찰을 멈추라고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악광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라고 말이냐?”

잠시 주변을 서성이던 곽공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너는 지금까지 받은 보고를 하나로 만들어라. 그리고 직접 성경에 가서 성존께 보고를 드리고, 명을 받아와라!”

* * *

남주, 밀실 내부.

운희가 다시 표묘각 내통자와 관련된 단서를 가져왔다.

“성경 안팎의 소식이 모두 도착했어. 각 지점 모두 준비됐고.”

의자에 늘어져 있던 우유도가 서신을 대충 훑어보고 내려놓았다.

“이제 이런건 저나 누님이나 지겹게 봤으니 앞으론 홍랑에게 처리하게 하지요. 우리는 먼저 접몽환계의 일을 처리합시다. 제가 계획한 시간과 절차에 따라 움직이라고 연락을 취해주세요, 시작합시다!”

“여무쌍 쪽에서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

“어쩔 수 없지요.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요. 그렇지 않고 구성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성나찰도 위험해질 수 있어요. 줄일 수 있으면 최대한 줄여야지요. 이번엔 제가 은아, 그 먹보에게 못 할 짓을 하는 것이군요. 무사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네가 하기로 한 일에, 지금처럼 망설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어째 이번에는 마음이 약해진 것으로 보이네. 그 정도 신경 쓰이는 거야?”

우유도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계산은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한 가지 알아야 할 게 있지요. 구성 중 일부가 그 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그러니까 먼저 들어간 구성이 안에서 죽어버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면, 그대로 나머지 구성도 다시 한번 그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만약 들어간 구성이 살아 돌아올 정도라면, 우리의 이번 계획은 이미 실패한 것이지요. 그런 상황이라면, 일부가 들어간 것과 전부가 한꺼번에 들어간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한꺼번에 들어간다면, 성나찰이 죽을 확률만 올라갈 뿐이지요. 제 말을 이해할 수 있나요?”

운희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는 확실히 우유도가 뛰어났다. 계획은 아주 주도면밀하게 세우고 있지 않은가.

간단히 말해, 성나찰이 구성 일부를 이길 수 있다면 나머지 일부와 싸워도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일부와 싸워도 이길 수 없는데 전부와 싸워 이길 생각을 하는 것은 언어도단 아니겠는가.

일단 그렇게 구성을 분산시켜야 성나찰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다. 동시에 성나찰의 안전을 최대할 지킬 방법이기도 했다.

간단한 이치였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누구나 그 간단한 이치를 운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의 차이였다.

운희는 비로소 우유도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구성 일부를 다른 곳에 보내려는 이유를 깨달았다.

점점 더 운희 자신과 우유도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우유도를 따르는 이유일 터였다.

은아, 그 먹보에게 구성과 싸우게 하는 일이었다. 우유도는 이번 일이 은아를 죽음으로 몰 수도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은아를 통해 시험을 해보는 건 호족의 노족장 은희가 했던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성나찰이 있었다면, 구성이 지금처럼 세력을 일으킬 순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건 은희가 성나찰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운희도 성나찰과 손속을 겨루어 보았고, 절대 성나찰을 이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은희는 과거라면 성나찰이 구성이 세력을 일으키는 걸 막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 은아는 수백 년간 봉인 당했고, 구성의 실력이 도대체 어느 경지에 도달했는지는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성나찰조차 위험할 소지가 컸다. 우유도의 마음도 무거웠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내 등받이에 기댄 우유도는 무력하고 초췌해진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진행하세요. 그리고 겸사겸사 지금 맡은 일을 홍랑에게 인계하세요.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지요.”

운희는 우유도의 안색이 돌연 극도로 피로해진 걸 보고 부드럽게 물었다.

“어딜 가는데?”

“접몽환계요.”

운희가 깜짝 놀랐다.

“우리도 가는 거야?”

우유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을 접몽환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 몇 명이나 끌어들일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어요. 일단 접몽환계 안에서 손을 쓴다면, 외부인이 내부 상황을 알긴 몹시 어렵지요. 만수문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면,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일이 많아요. 그러니 우리가 직접 가야 합니다.”

“알았어!”

운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일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 * *

망망대해 위,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도 뒤에 이름 없는 육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무량원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뒤쫓는 인원들이 그 육지에 내려와 수색을 시작했다.

“보고드립니다. 전방에 불을 피운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최근에 생긴 흔적입니다.”

수색 인원들은 즉시 그곳으로 가 흔적을 찾았다. 그 근처에 있는 족적(足跡)을 따라 주위 숲으로 들어가 수색을 진행했다.

이윽고 일단의 사람들이 산 중에 있는 한 동굴 밖을 포위했다. 선두에 있는 사람의 손짓 하에, 5명이 삼각진형을 만들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쾅쾅-

동굴 안에서 웬 소리와 함께 몇몇 사람의 비명이 들렸다. 동시에 안에서 시신 2구가 날아왔고, 그 뒤를 이어 동굴 안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와 오연한 모습으로 우뚝 섰다.

그때, 동굴 입구를 둘러싼 10여 명 중 누군가 그를 알아보았다.

“오풍!”

틀림없었다. 동굴에서 나타난 사람은 오풍이었다.

오풍은 차가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오풍의 공격에 표묘각 인원들은 마치 호박이 썰리는 것처럼 손쉽게 목숨을 잃어버렸다.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거의 모두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황급히 몸을 날려 도망을 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풍의 적수가 아니었다.

오풍은 또 그대로 몸을 날려 허공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추살했다.

결국 겨우 두 사람만이 살아, 망망대해로 도망칠 수 있었다.

파도치는 바위 위에 내려앉은 오풍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는 도망친 두 사람을 끝까지 쫓지 않았다. 고의로 그들을 풀어준 것이었다. 도망자는 그도 아는 사람이었다. 일부러 무허성지의 사람을 풀어준 것이었다.

이건 우유도의 명령이었다. 또한 반드시 우유도가 지시한 시간에 맞춰 계획을 진행해야 했다.

오풍은 우유도가 이 일을 시킨 연유도 몰랐지만, 명에 따랐다. 딱히 치명적으로 위험한 일만 아니면 지금 와서 우유도의 명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경지가 아무리 높다 한들 항명한다면 황택사지에 더는 그가 숨을 곳은 없을 터였다. 황택사지에는 그보다 강한 호족의 노족장이 있었다. 당연히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량과 12개 중 오풍의 것은 단 하나였다. 그것으로 지금의 오풍이 있을 수 있었다. 오풍은 지금 우유도의 손에 더 강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오풍은 이미 우유도 편에 섰다.

* * *

태도(泰度), 그는 오래된 대나성지의 사람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가 말해주듯, 그는 더 이상 푸른 청년이 아니었다.

지금 그는 두 수행원을 데리고 한 곳을 순찰한 뒤, 날짐승을 타고 성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땅에서 날아오더니 곧 날짐승을 따라잡고 나란히 날았다. 아름다운 은빛 옷자락을 휘날리는 여인이었다. 용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얼굴엔 서글픔이 조금 서려 있었다.

두 수행원은 대경실색했다. 여인의 용모가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이 높은 곳에 날짐승과 같은 속도로 날고 있었다. 감히 그 경지를 짐작할 수도 없었다. 수행원들은 구성 중에서도 이런 인물은 본 적이 없었다.

반면 태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야말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부……, 부인!”

바로 호족 노족장 은희였다.

곧 은희의 아름다운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태도야, 오랜만이구나.”

“정말 부인이십니까?”

태도는 자꾸만 바짝 입이 타들어갔다.

“이걸 그이에게 전해줘!”

은희가 서신을 한 장 꺼내 태도에게 날려 보냈다.

서신을 받아든 태도가 잠시 살펴본 후 다시 상대방을 보았다. 하지만 은희는 이미 방향을 바꿔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은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라졌을 때, 태도는 다시 손에든 서신을 바라보았다. 은희가 말한 그이가 누군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집사님, 저 여인은 누구입니까? 아시는 분입니까?”

한 수행원이 물었다.

태도는 복잡한 얼굴로 대답했다.

“생각지도 못했군.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아직 살아 있다니. 너희, 그 입 잘 간수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아무것도 못 본 게야.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너희 목숨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대나성지에서 지낸 경험으로, 저 여인을 보고 살아 있는 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두 수행원을 돌아보며 주의를 시켰다.

“알겠습니다!”

두 수행원은 여전히 의문이 남았지만, 물음은 그저 마음속에 묻어두고 포권하며 대답했다.

이윽고 그들은 속도를 높였다.

* * *

대나성지에 도착한 후, 태도는 상부에 보고하러 가지 않고 두 수행원을 거느린 채 대나성전으로 직행했다.

그는 두 사람을 자신의 시선 안에 두었다. 두 사람이 누구와 대화하거나 접촉하는 것도 용납지 않고 그대로 대나성전으로 데려갔다.

태도(泰度)는 오랫동안 대나성지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뭘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그는 당연히 먼저 시위를 통해 연통을 넣었다. 시위도 태도가 직접 성존에게 뵙기를 청한다는 게 의외인 듯했다.

태도는 아주 강경한 태도였다.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성존을 만나야만 말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시위도 급한 일일 거라 생각이 들어, 빠르게 연통을 넣었다.

잠시 후, 시위가 나와 손을 흔들었다.

“성존께서 들어오라 하십니다.”

태도(泰度)가 고개를 끄덕인 후, 뒤돌아 두 수행원에게 말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려라.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성존의 명 없인 입도 뻥끗하지 말아라.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눠선 안 된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두 수행원이 포권을 하며 명을 받았다.

그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 신분의 사람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 성존의 윤허가 있어야 한다니.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이내 태도(泰度)는 잠시 하늘을 보며 정신을 다듬은 후, 성전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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