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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77화 (776/1,000)

1677화. 나찰광조(羅刹狂潮)

아직 몸을 주체하지도 못했을 때, 검은 안개 사이에서 지팡이 한 자루가 벼락같이 튀어나왔다.

쾅!

다시 얻어맞은 성나찰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그렇게 허공에서 이리저리 뒤집히며 날아가던 중, 양팔을 활짝 펼쳤다.

온몸에 눈부신 은색 광휘가 어리며, 성나찰을 멈춰 세웠다. 성나찰은 그 즉시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격을 먹인 설파파가 웃음을 흘렸다.

“흐흐, 대단하군! 그 몸과 뼈가 정말 단단한 모양이야. 아직도 안 죽다니.”

창백한 얼굴이 다시 서서히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원색도 유쾌하게 웃으며 천천히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때, 목연택이 다시 나타났다. 수십의 법상 역시 동시에 나타났다. 지금까지 일을 다시 재연하며, 서서히 성나찰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등 뒤에 축 늘어진 날개를 두고, 성나찰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도 이 끝없는 안개를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살기 가득한 요안(妖眼)은 여전히 태산 같은 오상의 법상을 노려보았다. 오상은 계속 그 거대한 천신의 모습으로 합장을 하며 마치 중생들의 놀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오상은 공격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법력으로 ‘무변마역(無邊魔域)’을 조종해야 했다. 성나찰을 이곳에 묶어놓기만 해도 충분했다. 지금 오상의 법력으로는 마역을 조종하면서 마역 안에서 마음대로 공격할 수는 없었다.

다시 눈앞에 목연택이 접근해 오는 것을 보고, 성나찰이 양팔을 벌렸다. 그리곤 갑자기 하늘을 보고 괴상한 소리를 길게 내뱉었다.

“아아!!!”

* * *

반쯤 무너진 궁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우유도 일행에게는 그저 허공이 꿈틀거리는 것만 보였다. 가끔 그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만 철렁할 뿐 도대체 어찌 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때, 우유도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상이 성나찰을 저기로 끌어들였지, 성나찰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어.”

서해당은 우유도가 어째서 성나찰의 생사를 신경 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운희는 우유도와 성나찰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었다.

운희가 위로를 건넸다.

“오상이 술법을 거둬들이지 않은 걸 보면 성나찰은 아직 살아 있는 거야.”

그 순간, 검은 구름 속에서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음이 들렸다.

“아아!!!”

우유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듣는 즉시 성나찰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들어 본 적 있는 소리였다.

“주위를 보게!”

서해당이 갑자기 놀라서 외쳤다.

우유도와 운희는 즉각 기와 사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 멀리 기환숲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빛줄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붉은빛, 푸른빛, 흰빛, 정말 셀 수 없도록 많은 빛이 분분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백광은 날갯짓하며 다가오는 백나찰이었고, 푸른 빛 역시 날갯짓하는 남나찰이었다. 특히 저 붉은빛은 성나찰 아래 가장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바로 그 혈나찰이었다.

눈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수록 많은 백나찰, 남나찰, 혈나찰이 날아올랐다.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접나찰들이 사방팔방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세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뒤덮은 접나찰들은 흡사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그들 위를 스쳐 갔다. 그 기세만으로 지붕을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늘에 가득 찬 접나찰들은 곧 빠르게 검은 구름을 향해 몰려들었다. 접나찰들은 그대로 끊임없이 안을 향해 파고들었다.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접나찰의 진영은, 수시로 접몽환계에 들어오는 만수문 장문인 서해당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나찰조’보다 훨씬 장관이었다. 특히 수많은 혈나찰을 보고는 세 사람 모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우유도는 깨달았다. 성나찰이 방금 내지른 울음소리는 접나찰을 불러들이는 것임이 분명했다. 동시에 성나찰이 동족을 불러들인다는 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했다는 말과 다름이 없어서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 * *

“나찰조다, 조심!”

검은 구름 사이로 오상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굉음이 울리며, 검은 구름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원색과 설파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연신 손을 쓰며, 마치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접나찰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 접나찰은 미쳐버린 것 마냥, 목숨도 도외시하고 달려들었다. 한 움큼 죽이면, 빈틈은 순식간에 다른 접나찰로 매워졌다. 그야말로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굴레가 반복되고 있었다.

특히 그중 혈나찰의 끊임없는 공격은 그들에게도 부담이 될 정도였다.

“동생, 빨리 마역 술법으로 나찰조를 막아!”

원색이 소리쳤다.

오상은 그를 노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이가 없었다. 저 빌어먹을 뚱땡이가 머리에 물이라도 찼단 말인가.

그의 법력이 동시에 이 많은 접나찰을 억제할 정도로 강했다면, 성나찰 한 마리를 제압하는데 이렇게 힘들일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랬다면 성나찰은 말할 것도 없고, 저들 여덟 늙은이도 같이 해결해 버리지 않았겠는가!

한마디로 이 많은 접나찰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억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처럼 대규모의 나찰조가 쏟아져 들어오면 마역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의 마역은 경지로 그저 작은 정역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많은 접나찰을 수용할 수는 없었다.

혹시 그에게 끝없는 법력이 있었다면, 마역으로 접몽환계 전체를 집어 삼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무변마역’은 법력의 힘을 빌려 사람을 묶어두는 진법일 뿐이었다. 일정 경지 이상에 오른 사람에게는 살상력도 없었다.

누군가를 가두고 싶다면 오상도 계속 법력으로 통제해야 했다. 그 예로, 이는 다른 구성들에게는 소용없는 술법이었다. 그들을 죽일 수 없으니, 이렇게 계속 가둬두고 법력을 허비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계속 진법을 통제하려 할 경우, 다른 사람이 법력을 모두 소모해 쓰러지기 전에 그 자신이 먼저 쓰러질 수 있었다. 그러니 그럴 수 있었다면 오상은 진즉에 나머지 구성을 모두 처리해 버렸을 것이었다.

아직도 접나찰이 사방팔방에서 끝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원색과 설파파는 정면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그들을 습격하는 접나찰을 방어해야 했다.

성나찰을 협공하던 목연택의 법상도 이젠 개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법상은 이미 쏟아져 들어오는 접나찰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여기서 또 같은 술법을 펼친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더 이상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 불과했다. 이제는 빠르게 접나찰을 뚫고 나가야만 했다.

꿈틀거리는 검은 구름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오상의 거대한 법상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무변마역은 이렇게 많은 것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쏟아지는 용량이 무변마역의 범위를 넘어섰으니, 무변마역도 이미 터질 지경이었다.

이들은 이미 연달아 살수를 펼치고 접나찰을 죽여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끝도 없이 나타나는 접나찰 때문에 더는 법상으로 숨어있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 거대한 법상이 사라졌다. 꿈틀거리는 검은 구름도 빠르게 그의 체내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안개가 걷힌 순간, 변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위기를 벗어난 성나찰은 강대한 요력으로 허공을 날아올랐다. 입가에 핏줄기를 달고 있는 성나찰은 냉담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무참히 도살당하고 있는 동족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더 흉악해졌고, 송곳니는 더 길어졌다.

“성나찰이 이미 중상을 입었으니, 일단 같이 성나찰을 죽여야지. 여기에 헛걸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원색이 다시 소리쳤다.

그 목소리를 들은 성나찰이 일단 몸을 돌려 그에게 달려들었다.

원색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역시 말이 많은 사람은 재수가 없다고 했던가!

그는 다급히 배산도해같은 장력을 쐈지만, 집단을 이룬 접나찰에게 뚫렸다. 그 앞을 가로막은 수많은 접나찰이 죽고 다치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심지어는 산산조각이 나는 접나찰도 있었다.

그때, 날카로운 은색 손이 산산이 조각난 혈육 사이로 원색의 손목을 붙잡았다. 원색은 순식간에 성나찰과 근거리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성나찰은 원색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었다. 원색은 두렵고 분한 마음에 성나찰에게 장력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성나찰의 몸에서 은빛이 터져 나왔다. 마치 목숨을 건 것 같았다. 성나찰은 원색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원색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려 휘둘렀다.

한번 원색과 겨루었다가 손해를 본 성나찰은 이젠 원색의 지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곧바로 얼굴을 향해 손을 썼다. 얼굴에 있는 두 눈을 찌른 것이었다.

원색은 대경실색하며, 다급히 얼굴을 틀었다.

성나찰은 그대로 손을 뒤틀어 할퀴었다.

원색의 한쪽 눈이 흐릿해지며 격통이 찾아왔다.

쾅!

성나찰은 근거리에서 원색의 일장을 맞고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원색의 눈을 파고든 날카로운 손톱도 끝내 그 안의 눈동자를 움켜쥐진 못했다.

비록 그렇다 한들, 공격은 성공했다.

“악!!!”

원색은 이미 비명을 지르며 한쪽 눈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사이 수많은 접나찰이 원색에게 달려들어 할퀴고 물어뜯으며 그를 두껍게 둘러쌌다. 하지만 아무리 할퀴고 물어뜯어도, 원색의 피부와 살에 있는 괴상한 법력이 그를 보호하고 있어 그저 계속 미끄러지기만 했다.

“악!”

분노한 원색은 한쪽 눈에 피가 흐르고, 뜰 수 있는 건 한쪽 눈뿐일지라도, 양팔을 활짝 펼친 채, 온 힘을 다해 법력을 터트려 자신을 둘러싼 접나찰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들을 옭아매는 접나찰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다. 이미 주위 상황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때, 오상, 설파파, 목연택은 방해물을 치우며 다가왔다. 원색의 말대로 일단 성나찰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장애물을 치우고 다가온 끝에, 세 사람은 한쪽 눈을 잃은 원색을 발견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본디 구성에겐 각자 장기가 있었다. 이들 모두 과거 한 번씩은 원색과 겨뤄본 적이 있었다. 보통은 원색의 체형이 뚱뚱한 것만 보고 오해하겠지만, 원색은 때려도, 때려도 죽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몸을 둘러싼 지방은 내구성이 매우 뛰어나 팔성이 연합해도 그를 어쩌지 못했다.

그런 원색이 한쪽 눈을 잃었다. 놀란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윽고 주위에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들을 모두 쓸어낸 원색은 하나 남은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셋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원한이 가득했다.

곧이어 그가 위쪽에 있는 접나찰을 밀어내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그렇게 그를 어쩌지 못하는 몸을 믿고서,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지금 원색은 이미 만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현재 그에게 가장 위험한 건 접나찰이 아니라 그와 같이 온 동료들이었다.

나머지 셋은 계속 주위로 몰려드는 접나찰을 죽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이미 성나찰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눈앞의 나찰광조가 일어난 상황에서 다시 성나찰을 찾는 건 어려워 보였다.

또 원색이 이미 이곳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을 보고, 남은 세 사람은 더는 의논조차 하지 않고, 동시에 똑같은 선택을 했다. 분분히 맹렬한 공격을 하며, 이곳을 벗어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수많은 접나찰이 밀집한 가운데 성나찰이 홀연히 튀어나왔다. 그녀는 곧 목연택을 가로막고,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소란을 들은 오상과 설파파는 즉시 혈로를 만들며 돌아왔다. 이번 기회에 같이 성나찰을 처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한창 교전을 벌이던 성나찰은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그대로 물러나 다시 밀물처럼 밀고 들어오는 접나찰 사이로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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