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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79화 (778/1,000)

1679화. 치료

조금 전, 궁 밖 교전이 벌어진 곳에 아직 죽지 않고 땅에서 발버둥 치는 접나찰이 있었다. 그 접나찰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접나찰이 일일이 붙잡고 날아올랐다. 죽은 접나찰 역시 잊지 않고 따로 챙겼다.

그야말로 천지를 뒤흔드는 전투였다. 체감은 매우 긴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사실은 아주 찰나의 시간만 흘렀다. 그만큼 오성의 실력이 너무 강했다. 그로 인해 오성의 손에 죽거나 다친 접나찰들은 만 단위의 숫자였다.

그렇게 수많은 접나찰이 이동해 궁 바깥 가장 높은 산 위에 내려섰다.

우유도가 운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보죠. 저기까지 땅굴을 파고 가서 한번 살펴봐야겠어요.”

운희는 우유도가 성나찰의 생사를 신경 쓰고 있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데리고 둔지술로 이동했다.

* * *

조용히 땅속에서 살짝 눈만 내밀어 주위를 관찰하기를 몇 번, 그렇게 간편히 성나찰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성나찰 주위에 있는 접나찰은 대부분 혈나찰이라 성나찰이 있는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관찰할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은 후, 한 언덕 안에 몸을 숨겼다. 세 사람은 다시금 조심스레 돌과 돌 사이 흙을 털어내고 바깥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성나찰은 여전히 혈나찰의 품에 안겨 있었고, 다른 혈나찰들은 하늘 높이 자란 거대한 나무 기둥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파내고 있었다. 나무는 족히 수십 명은 필요할 듯한 두께였다.

뭘 하려는 것인지 모르니 우유도는 일단 상황을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나무 기둥에서 대문의 절반 정도 되어 보이는 구멍이 생기자, 혈나찰 몇몇이 성나찰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마치 세워진 관에 시신을 넣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구멍에 들어간 성나찰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운희가 뒤돌아 우유도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과연, 우유도의 눈은 가늘어지고 입술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 후에 신기한 장면이 나타났다. 일단의 혈나찰이 날아올라 성나찰이 들어간 나무 기둥에 들러붙었다. 그 안으로 요력을 쏟아붓고 있는 것 같았다.

곧이어 나무 기둥을 갈라 만들어낸 구멍에서 빛을 내는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끈적거리며 빛을 발하는 액체는 갈수록 많아졌고, 흘러나온 액체는 천천히 성나찰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잠시 후, 성나찰을 둘러싼 액체의 빛이 번쩍였다. 마치 숨결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길 반복했다. 그 사이, 액체 안의 성나찰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또 잠깐 시간이 흐른 뒤, 우유도 일행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빛을 내던 나뭇잎이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곳을 돌아보니, 다른 접나찰들도 다른 나무에서 똑같이 다친 접나찰을 나무 기둥에 집어넣고 있었다. 단, 성나찰만 유일하게 혈나찰로만 이뤄진 집단이 이 일을 행하고 있었다.

이를 보고, 세 사람도 비로소 성나찰이 부상을 입었을 뿐 죽은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접나찰 일족의 치료 방법인 것 같았다.

나뭇잎의 빛이 모두 사라지자, 성나찰을 둘러싸고 있던 액체도 서서히 그 빛을 잃었다. 그러자 혈나찰들은 나무 기둥 속 끈적거리는 액체 안에서 성나찰을 끄집어내더니, 다시 다른 나무 앞으로 가서 구멍을 내고 성나찰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또 같은 방식의 요력 주입이 시작되었다.

빛을 잃어버린 나무 기둥엔 또 일단의 접나찰이 달려들어 수많은 구멍을 뚫었다. 그건 누가 봐도 이미 죽은 접나찰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기저기 잘린 사지를 모아놓은 것이라 해야 했다. 접나찰은 그런 것들을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매장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우유도는 비로소 이 세계의 생명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깨달았다. 고민도 시작됐다. 어쩌면 전에 자신이 말했듯 이 세계야말로 은아의 세계가 아닐까.

* * *

운희는 우유도가 성나찰의 상황을 궁금해한다는 걸 알고, 다시 두 사람을 이끌고 성나찰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동굴 안에 있는 성나찰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다른 곳을 보니, 다친 접나찰은 일반적으로 한 나무의 빛이 어두워지면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어 나왔다.

세 사람은 그야말로 안계를 넓혔다. 이런 신기한 치유 방식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우유도의 안색은 어두웠다.

성나찰은 연속으로 10그루도 넘게 나무를 바꿨다. 나무도 하나하나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 많은 빛을 빨아들이고도 성나찰은 깨어나지 않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부상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다.

“심각한 부상인가 보군. 장손미는 죽었어, 나머지 넷은 어떤지도 모르고.”

서해당이 탄식했다. 성존이 죽는 걸 직접 목격하다니,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성은 이제 팔성이 되었다. 성경과 표묘각에 거대한 변화가 생길 것은 불문가지였다. 앞으로의 천하 정세도 불투명했다.

이내 운희가 우유도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머지 넷이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이처럼 대량의 접나찰이 도와주지 않는 이상 성나찰은 구성의 적수가 아닐 거란 거야.”

이들이 직접 목도한 사실이었다. 우유도도 운희의 의중을 이해했다. 성나찰을 이용한 이번 시도는, 어찌 보면 실패라 할 수 있었다. 접몽환계를 벗어난 성나찰이 구성과 싸우게 되면 매우 위험해질 건 자명했다.

“지금 보니 성나찰은 중상만 입은 듯하군. 구성이 한꺼번에 오지 않아 다행이야. 처음부터 구성이 모였다면, 성나찰은 아주 위험했겠지. 이 성나찰도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나찰광조를 불러올 수 있으면, 처음부터 불러오면 됐을 것을……. 홀로 다섯과 힘든 싸움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군.”

운희는 서해당이 상황을 다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그에게 말했다.

“구성이 다 같이 오지 않은 건 우연이 아니에요. 같이 들어 오지 않은 건 혹시 위험할까 도야가 나머지 넷을 다른 곳으로 떼어놓았기 때문이지요.”

운희는 가끔 자신도 모르게 우유도를 도야라 칭하곤 했다. 관방의가 부르는 호칭에 익숙해 있기도 했고, 은연중에 다른 여러 측면에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떼어놓다니?”

서해당이 경악했다. 우유도에게 네 성존을 다른 곳으로 때어놓을 능력이 있다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에 우유도는 싸늘한 눈으로 운희를 흘겨보며 말했다.

“알고 있는 게 참 많습니다. 홍랑이랑 다니다 보니,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배우는 것 같군요. 제가 너무 만만하지요?”

다소 과한 질책이었다. 사실 우유도는 원래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그의 반응을 보고, 운희도 그제야 자신이 실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서해당이 적들의 손에 떨어져 이번 일이 탄로 나게 되면, 또 나머지 네 성존이 우유도에 의해 움직였다는 걸 깨닫는다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호족, 원강, 오풍, 남명과 이쪽의 관계가 다 들통나고, 수많은 일이 연이어 들통날 것이다. 이 한마디로, 정말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우유도의 질책을 듣고, 운희도 민망해졌다. 그녀도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일에 너무 많은 사람이 얽혀 있었다.

“무슨 뜻인가?”

서해당도 두 사람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게 없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만약 이쪽까지 피해가 온다면, 우유도는 서해당을 살인 멸구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는 원강이 아니었다. 우유도는 그런 상황 앞에 절대로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서해당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자신들이 한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확실하지 않은 일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운희가 자신의 한마디 때문에 상황이 다소 고약해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지금 다른 네 사람 상황은 모르는 상태고, 오늘 들어 오지 않은 네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들어올 수도 있지. 만약 저들이 다시 들어온다면, 성나찰의 상황이 아주 위험해질 수 있어.”

“지금 접나찰의 상황을 본다면, 나머지 네 사람이 들어올 때쯤엔 성나찰도 회복돼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접나찰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나머지 네 사람도 성나찰을 죽이긴 쉽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오상을 포함한 저들 넷이 살아서 여기를 빠져나갔는지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지요.”

“그럼 어서 돌아가세! 입구에 가서 물어보면 누가 살아서 떠났는지 알 수 있잖은가. 또 나도 만수문을 너무 오랫동안 비우면 핑계도 궁해져.”

그 순간, 밖을 관찰하는 구멍 밖으로 뭔가 스쳐 지나갔다.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이곳을 살피는 두 눈동자를 발견했다. 아마 대화를 나누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세 사람은 큰일이 났음을 직감했다.

펑!

역시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손톱이 땅을 파고들어 왔다.

“빨리!”

운희가 소리쳤다.

일행이 숨은 곳에 팔을 집어넣은 혈나찰은 서해당의 반격에 멀리 날아갔다. 그 틈을 타, 세 사람은 빠르게 둔지를 이용해 땅속을 파고 들어갔다.

소란에 깜짝 놀란 접나찰은 다시 또 수없이 모여들어 땅을 파기 시작했다.

* * *

황택사지, 작은 산 정상.

“나와라! 얼른 튀어나와! 감히 그 낯짝을 들이밀지 못하는 것이냐?”

만나기로 약속한 이곳에, 나추가 법력을 머금고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족히 만 하루를 기다렸으나 은희는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은희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만나고 싶은 건 딸이지 나추가 아니었다. 혹은 나추가 살수를 쓸까 나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추는 은희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나 사랑하던 여인이었다. 그녀 때문에, 오상이 구성에 합류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 결말이 어땠는가! 그 여자는 오랫동안 그를 속였다. 그걸 알았을 때 나추의 심정이란…….

나추는 지금도 오래도록 혼자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약속한 이곳에선 누구도 찾을 수 없었고,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 * *

나추가 있던 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산속에, 흑운이 나타났다. 운무가 깔린 절벽 위로 올라간 흑운은 그렇게 은희의 곁에 섰다.

“노족장님, 나추가 떠났습니다.”

은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이 다소 침울해 보였다.

나추는 무정하고 냉혹하게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딸로 그녀를 협박하던 그 순간을, 그녀는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 * *

해안가.

해상의 육지는 결코 그리 작지 않은 면적이었다. 이 땅에 독무허가 뒷짐을 진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직접 주위를 살펴보았다. 현장의 흔적을 통해 보고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확실히 원영기 수행자가 손을 쓴 흔적이었다.

엽념과 오풍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량과를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 독무허는 줄곧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날아와 포권을 하고, 두 손으로 서신을 건넸다.

“성지에서 온 급보입니다!”

독무허가 뒤돌아 수하가 든 서신을 한참 노려보더니, 천천히 서신을 펼쳐 내용을 살폈다. 곧 그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성나찰!”

수하가 고개를 들었을 때, 독무허는 이미 저 하늘 너머로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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