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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81화 (780/1,000)

1681화. 우연을 기다리는 자

또 꺼림칙한 부분도 있었다. 원색은 나오자마자 떠났다. 반면 오상은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때문에 만수문 사람들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기만동은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는 원색이 오상 때문에 성나찰과 가장 먼저 싸웠고, 목연택이 오상 때문에 성나찰에게 제물로 바쳐졌으며, 설파파가 오상의 암수에 당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 장손미가 이미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오상이 여기서 설파파와 목연택을 끝장낼 우연한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건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오상은 목연택은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런 상황에서 발목이 잡혔으니, 도망치기 어려울 게 자명하지 않은가. 목연택이 성나찰을 죽이지 않는 이상 나찰조 안에서 목숨을 구하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설파파가 목연택을 구하리라고도 생각지 않았다. 차라리 죽으라고 떠밀면 모를까. 그럴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봐야 했다.

오상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기만동은 한쪽으로 물러나 한 제자에게 뭐라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제자가 어디선가 의자를 하나 구해왔다.

기만동이 직접 의자를 오상 옆에 놓았다. 하지만 기만동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 의자를 힐끗 바라본 오상이 그대로 허공을 격하고 손을 내저었다.

쾅!

한순간 의자는 가루가 되었다.

오상은 원래부터 앉거나 눕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제 육신을 좀 가혹하리만큼 대하는 사람이었다.

이내 기만동의 안색이 급변했다. 자신이 뭔가 잘못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외에 오상이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조용히 한쪽으로 물러났다.

결국 올 것은 오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또다시 누군가 접몽환계에서 빠져나왔다.

한 만수문 제자가 어찌 된 일인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멈춰 섰을 때야 자신의 외투를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에선 머리를 산발한 설파파가 천천히 땅에 내려서고 있었다. 만수문 제자의 옷은 바로 그녀가 입고 있었다.

“오상!”

오상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친 설파파는 두말하지 않고, 지팡이를 벼락과 같이 휘두르며 오상에게 쏘아져 나갔다.

오상도 일장을 마주 뻗었다. 장력과 지팡이가 서로 부딪쳤고, 그 위력이 주위 하늘과 산천을 뒤흔들었다.

만수문 제자들은 모두 경악했다. 구성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실로 생생하게 체감 중이었다. 강풍이 사방으로 몰아치고, 만수문에서 경지가 낮은 제자들은 제자리에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오상은 비틀거리며 두 걸음 물러났다. 진정한 법력과 경지를 논하자면, 오상은 아직 설파파보다 한 수 아래였다.

“흥! 이 원한은 추후에 네놈과 셈하겠다!”

일격을 교환한 후, 설파파가 냉소를 지으며 그대로 몸을 날렸다.

오상은 침묵했다. 멀어지는 설파파를 보면서도 다른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 일격을 교환하고 나서, 설파파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싸워봐야 설파파를 죽일 수 없음을 깨닫고 더는 손을 쓰지 않은 것이다.

만수문 제자들은 철렁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시각, 하늘에 떠 있는 설파파는 코웃음을 치더니 입에서 푸른 피를 토해냈다. 그녀는 다급히 입술에 묻은 혈흔을 닦아 내고는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런 뒤, 빠르게 땅으로 내려와 숲속으로 사라졌다.

일순 접몽환계 출구를 지키고 있던 오상이 설파파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보았다. 두 눈이 번득였다. 자신이 요괴 할멈의 꾀에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요괴 할멈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놓쳤을 수도 있었다.

서서히 오상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제 와 의심해도 소용이 없었다. 설파파는 이미 도망쳤고, 시도해볼 기회도 사라졌다. 요괴 할멈의 능력을 생각하면 일단 눈 밖으로 벗어난 후엔 다시 찾을 기회가 없다고 봐야 했다.

오상의 눈빛도, 얼굴도 식어갔지만, 딱히 다른 변화는 없었다.

그러던 그때, 오상이 갑자기 일장을 쏘아 보냈다.

쾅!

한 만수문 제자가 오상의 장력을 맞고 사분오열로 터져나갔다.

만수문 제자들은 대경실색하며 멀찍이 물러났다. 그 누구도 더는 오상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도망치는 사람은 없었다. 가슴속에 공포가 가득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들이 감히 반항할 수 없는 존재였다. 만수문 제자들은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상은 그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다른 사람들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다들 말뚝처럼 박혀 그곳에 조용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 * *

저녁이 되었다. 다시 한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나추였다.

나추는 현장을 살펴봤지만 어째서 오상이 여기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대나성지로 돌아간 후, 성나찰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즉시 이곳으로 달려왔다.

기만동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곧 빠르게 나서서 예를 올렸다.

“성존을 뵙습니다!”

기만동의 말에, 다른 만수문 제자들도 구성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예를 올렸다.

“성존을 뵙습니다!”

나추가 오상에게 물었다.

“여기서 뭐 하나?”

오상이 담담히 대답했다.

“네가 여기 온 이유가, 바로 내가 여기 온 이유지.”

상황이 이상했다. 나추가 기만동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기만동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오상 앞에서 자신이 본 것을 어찌 이야기하겠는가! 기만동의 침묵에 나추의 얼굴도 굳어졌다.

“내가 지금 묻고 있지 않으냐. 들리지 않는 것이냐?”

기만동은 난감한 얼굴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성존이시여, 저도 어찌 된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뒤돌아 오상을 계속 힐끗 쳐다보았다. 이는 나추에게 눈짓을 보낸 것이었다. 평소라면 이처럼 무례하게 굴지 않았을 테지만 눈앞에 떡하니 있는 압박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오상이 방금 만수문 제자 하나를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지금 그 누구도 감히 그 제자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추도 그 눈짓을 알아보고는, 더는 기만동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고 오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찌 된 일이냐?”

오상은 뒤를 힐끔 봤지만,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날아올라 떠나버렸다.

나추가 왔다면 여기 남아 목연택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목연택이 살아나올 가능성도 적다고 여기던 차였다. 지금까지 목연택이 나오지 않은 것이 그 증거였다.

그렇다면 이 자리는 그냥 나추에게 주어도 무방했다. 오상은 나추가 목연택을 죽일 기회가 온다면, 분명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구성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서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허공에 한 사람이 나타나 오상과 스쳐 지났다. 그는 잠시 멈칫하곤 떠나가는 오상을 한번, 접곡 입구를 한번 번갈아 보다 나추 곁에 내려섰다.

“성존을 뵙습니다!”

기만동이 또다시 예를 올렸고, 제자들도 다시금 그를 따라 예를 올렸다.

도착한 이는 독무허였다. 그는 나추에게 다가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찌 된 일인가?”

“나도 방금 도착해서 상황을 알아보던 참이다.”

독무허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성경을 나설 때 입구를 지키는 자들에게 알아보았다. 이미 몇 명이, 언제 나갔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었다.

문지기는 성존들이 나간 상황을 보고했고, 그래서 독무허도 나추가 자신보다 아주 조금 일찍 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나추가 다시 뒤돌아 기만동에게 물었다.

“내 너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다. 네가 이런 나의 호의를 안다면, 이제는 자초지종을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 오상도 떠나고 없는데.”

담담한 말투였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오늘 아침 몇몇 성존께서 갑자기 찾아오시어……”

기만동은 원색이 나찰조를 몰고 온 처음부터 오상과 설파파의 다툼, 설파파가 떠난 후 오상이 만수문 제자 한 명을 죽인 일까지, 빠짐없이 고했다.

“그리고 방금 두 분 성존께서 여기 도착하셨습니다. 일은 이러합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추와 독무허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나추는 곧 기만동에게 물러가라 손짓했다. 구성 사이의 일을 외부인이 너무 많이 알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문이 번지면 구성의 위엄에 손상을 입을 수 있었다. 그건 자신의 위엄이 손상되는 것과 같았다.

“인제 보니 성나찰과 이미 손속을 겨룬 모양이군, 원색과 요괴 할멈은 십중팔구 부상을 입었을 것이고.”

독무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이 여기서 기다린 걸 보면, 성나찰이 그리 위험한 건 아니란 거지.”

나추가 환계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목연택과 장손미 모두 아주 곤란한 상황일 거야. 생사를 짐작하기 어려워!”

독무허가 코웃음을 쳤다.

“오상이 여길 지키고 있었던 건, 아마 목연택과 장손미를 ‘마중’하려는 것이었겠지. 하지만 우리가 오자 도망친 것이다.”

구성은 서로의 관계를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일어난 일을 쭉 들으니, 대략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어떡할 것인가, 한번 들어가 볼까?”

나추가 물었다.

“다섯이 들어가서 셋만 나왔다. 우리 둘만 들어가는 것이 과연 안전할까?”

나추는 다시금 독무허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럼 기다리나?”

“잠시 기다려 보지.”

오상의 추측이 맞았다. 둘은 과연 이곳에서 오상처럼 자리를 지켰다.

* * *

대략 두 시진이 지난 후, 또 누군가 도착했다. 남도림이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어찌 된 일인지 물었고, 나추와 독무허가 대략적인 상황을 알려주었다. 곧 남도림도 기다림의 대열에 합류했다.

한밤중, 여무쌍도 도착했다. 줄곧 상황을 몰랐다가 성경 입구에 도착한 후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아 입구에서 내내 그녀를 기다리던 제자와 마주쳤다.

여무쌍은 그제야 성나찰이 나타났다는 것을 전해 들었고, 나머지 성존들도 모두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즉각 여기로 달려온 것이었다.

아직 접몽환계에 들어가지 않은 사성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모두 입구에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들어갈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날이 다 저물도록 목연택과 장손미는 끝끝내 나오지 않았다.

* * *

한 계곡 내부 동굴.

만수문 제자 몇 명이 밖으로 기어 나왔다. 며칠 숨어 있다가 다시 서해당과 합류한 인원이었다.

“가자!”

서해당이 말했다.

그때, 제자들은 서해당 뒤에 만수문 옷을 입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누군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만수문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해당과 이런 비밀스러운 일을 하러 온 제자들은 다들 알면 안 되는 일은 묻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내 협곡을 빠져나가던 제자들이 기겁하며 다시 빠르게 안으로 숨었다.

“어찌 된 일이냐?”

서해당이 제자들에게 물었다.

방금 출구 부근에서 대량의 접나찰을 발견했다. 거기에 출구를 지키는 만수문 제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이들이 본 접나찰은 그나마 시간이 흘러 줄어든 것임을 모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 접나찰 대부분은 이미 흩어진 상태였다.

한 제자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장문인의 명령을 받고 동굴 입구를 막고 숨어 있었습니다. 외부 상황을 알지 못합니다.”

순간 서해당이 뒤를 돌았다. 역용한 우유도가 서해당의 등을 살짝 찌르고 눈짓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계곡 한 편으로 자리를 옮겼고, 운희도 둘을 따라 움직였다.

우유도가 한곳에 모인 만수문 제자들을 한번 보고 서해당에게 말했다.

“물어볼 필요 없습니다. 성나찰이 싸운 소란으로 일어난 일일 겁니다.”

“나도 그러리라 생각했네, 지금 문제는 어떻게 나가냐는 것이지.”

“우리가 실력을 발휘한다면, 이 정도 접나찰쯤은 뚫고 나갈 겁니다.”

“그럼 내 제자들은 어찌하는가? 저들이 우리가 손쓰는 것을 보게 된다면, 경지를 들킬 수도 있어.”

“일단 저들에게 계속 이곳에 숨어 있으라고 하십시오. 저희는 우선 나가서, 오상 등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서해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 심복들을 여기서 모두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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