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5화. 이해하다
남주, 흔들리는 마차 안.
화봉황 섭운상은 자신과 같이 마차를 타고 있는 관방의를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홍랑, 지금 저희는 어딜 가는 건가요?”
관방의는 그저 조용히 그의 손을 잡고 툭툭 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도착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 * *
성문을 나선 마차는 외진 곳에 있는 한 농가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마차에서 내려 농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농가 마당에 둘을 기다리고 있던 운희가 보였다.
서로 고개를 끄덕여 가볍게 인사한 후, 운희가 방을 가리켰다. 이에 관방의도 멈춰선 화봉황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화봉황은 일단 이동하긴 했지만, 몹시 의아한 얼굴로 한번 걸을 때마다 족히 3번은 돌아보았다. 그래도 결국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긴 했다.
내부에는 한 남자가 그녀를 등지고 서 있었다.
방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화봉황은 한 방에 남자와 홀로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그러자 관방의가 웃는 얼굴로 다시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화봉황이 재차 앞을 보니, 방에 있던 남자도 이미 뒤돌아 서 있었다. 그는 곧 천천히 얼굴의 가면을 벗으며 진짜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제야 그가 누군지 확인한 화봉황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도야!”
우유도가 미소를 지었다.
“들어와 문을 닫으시오.”
화봉황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선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가, 우유도의 말을 듣고 다급히 문을 닫았다.
* * *
그제야 우유도에게 가까이 다가온 화봉황은 그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도야, 도야는……. 그……, 이미 돌아가시지…….”
“걱정하지 마시오. 나 안 죽었소. 곤림수도 잘 살아 있고. 전에 그대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은 건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소. 최근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다고 들었소. 그러면서 우리의 말이 그저 당신을 위로하기 위한 거라 생각한다고 했지. 그대를 오래도록 슬프게 한 건 다 내 잘못이오.”
화봉황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다른 것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우유도의 두 손을 붙잡고 묻고 싶었다.
“도야, 사형은 지금 어디 있나요?”
“아직 성경에 있소. 이번에 그대를 부른 것은 당신을 데리고 성경에 들어가 곤림수와 만나게 해주기 위해서요. 나를 따라가겠소?”
화봉황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들어가나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알아서 하겠소.”
정말 그랬다. 우유도는 이미 그녀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다만 지금은 성경 출입구가 엄격히 통제되고 있어, 과거처럼 성경에 드나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에 사여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두 사람을 목연택과 장손미의 표묘각 적통 인원으로 변장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표묘각 범인을 압송한다는 핑계로 성경에 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사실 사여래는 우유도가 성경에 들어오는 것을 별로 추천하지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전서를 보내면 될 것 아닌가? 심지어 지금은 소식을 주고받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밀서의 암호를 기억했다가 안에 들어와 그대로 옮겨적는 방식으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유도는 중요한 일이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사여래도 어쩔 수 없이 방법을 마련한 것이다.
이것도 전에 성경 출입구의 인원 조정이 있을 당시, 전서를 좀 더 쉽게 주고받기 위해 사여래가 자신의 사람을 심어 놓았기에 순조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나가는 건 외부에 있는 우유도의 사람이 협조해 주어야 했다.
한 감찰 인원에게 대나성지의 누군가와 관련된 단서를 전해주어, 사여래가 나추에게 명령을 받고 성경을 떠나게 해야 엄격한 수색을 피할 수 있고, 우유도도 순조롭게 데리고 나갈 수 있었다.
* * *
화봉황은 드디어 성경에 입성했다. 들어갈 때 화봉황은 그야말로 크게 긴장했다. 그녀는 평생 처음으로 성경에 발을 디뎠다. 애초에 화봉황이 생각하는 성경이란, 손닿을 수도 없는 저 높은 곳이었다.
우유도와 화봉황은 순조롭게 그곳을 벗어나, 지정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호족 인원이 그들을 마중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날짐승도 과거 우유도가 그들에게 남겨준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순조롭게 황택사지에 도착해, 호족의 지궁 한 곳에 들어섰다.
* * *
소식을 듣고, 은희와 흑운이 우유도를 마중 나왔다. 서로 만나 안부를 묻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 우유도가 한 낯선 여인을 데려온 것을 보고, 흑운이 화봉황을 살짝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누구요?”
우유도가 웃으며 답했다.
“곤림수의 부인이요. 아마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야 할 것 같소. 그러고 보니, 곤림수를 불러 줄 수 있겠소?”
흑운은 은희를 돌아보았지만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을 보고, 곧 옆에 있는 장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봉황은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곧 남편을 본다고 하니, 안에선 격동이 휘몰아쳤다.
우유도는 그 모습을 보고 말없이 미소 지었다. 화봉황에게 은희와 흑운을 따로 소개하는 일도 없었다. 앞으로 화봉황이 천천히 알아갈 일이었다.
이윽고 곤림수가 빠르게 달려왔다. 화봉황이 왔다는 소식에 지궁 깊은 곳에서부터 달려 나온 것이다.
“사매!”
곤림수가 화봉황을 보자마자 크게 외쳤다.
“사형!”
화봉황도 크게 기뻐하며 날듯이 날려가 그 품에 안겼다.
은희는 이런 장면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있었다.
그때, 우유도가 기침으로 은희의 주의를 끌고는 말했다.
“참으로 입을 열기 어려운 말입니다만, 사실은 노족장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은희가 의아한 얼굴로 답했다.
“호족의 손에 있는 과실이 하나 더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 제가 온 것은 노족장님에게 그 과실을 받아 가기 위해서입니다.”
은희가 미소 지었다.
“편히 가져가게. 애초 자네를 위해 남겨 둔 것이니.”
우유도가 포권을 했다.
“노족장님의 호의에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일단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지요. 은접아가 이미 구성과 손속을 겨뤘습니다…….”
우유도가 접몽환계 내부에 발생한 일을 설명해 주었다.
장손미와 목연택이 죽었다는 소식에, 한편에서 상봉의 정을 나누던 부부도 깜짝 놀라 뒤를 돌았다. 특히 곤림수는 거의 경악한 얼굴이었다.
화봉황 역시 이성의 죽음은 알고 있었지만, 그 내막은 알지 못했다. 진정한 내막을 알게 된 지금, 그녀 또한 적지 않게 놀랐다.
반면, 호족의 흑운과 장로들은 이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
“잘 죽었다!”
흑운은 감탄을 토해냈다.
“은접아도 구성의 상대가 안 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은희는 기뻐하면서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흑운처럼 입이 거칠지 않아서, 구성을 개자식이라고 부르는 일도 없었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실력이 구성보다 약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임기응변에서 손해를 봤습니다. 지금 그 상태에선 우리조차 그녀와 소통하기 쉽지 않습니다. 환계 내부에 접나찰이 무수히 많아 그나마 대응할 수 있었지만, 일단 환계를 나오면 아마 구성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이번 일이 있고나서, 아마 나머지 칠성은 다시 접몽환계에 들어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은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의아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것이 자네가 과실을 원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일전에 노족장님 말씀을 듣고, 저는 은접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실을 보면 구성의 실력은 우리의 예측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들을 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일부 수작질로는 저들을 넘어뜨리기 쉽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계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노족장님, 수작이 통하지 않으면 실력으로 맞상대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네 말은 저들과 상대할 원영기 수행자가 더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원래 한 명 정도는 대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난다는 건 승산도 그만큼 올라간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우유도가 갑자기 옆에 있는 곤림수를 바라보았다.
“만약 네가 원영기에 오른다면, 구성과 싸울 생각이 있느냐?”
곤림수는 어이가 없었다. 방금 과실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과 무량과를 연결 지어 생각하지는 못했다.
“도야, 제가 어떻게 원영기에 들 수 있겠습니까?”
“네게 무량과를 하나 주겠다!”
우유도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
곤림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여기에 무량과가 있다고?
화봉황은 긴장했다. 무량과를 얻는 건 좋은 일이나 사형이 구성과 싸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곤림수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두려우냐?”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 실력이 부족할까 걱정일 뿐입니다!”
“내 주위에 쓸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내가 왜 호족에게 하나 남은 무량과를 얻어 네게 주려는지 아느냐?”
곤림수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네가 천화교 역대 제자 중 유일하게 ‘천화무극술’을 연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공대법과 경지가 어우러진다면, 한 사람 몫은 하겠지.
오상을 아느냐? 그는 원영기에 오른 후 나머지 팔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너도 시도해 보고 싶지 않으냐? 너도 혈기(血氣)가 있는 사람이다. 설마 구성과 싸워보고 싶지 않은 것이냐?”
화봉황은 우유도가 사형을 도발하고 있음을 알고 즉각 끼어들었다.
“도야, 사형은 도야조차 이기지 못하는데 어찌 구성의 상대가 되겠어요?”
“화봉황, 내 그대의 남편을 고른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오. 사실대로 말하지. 금단의 경지에서, 실력으로 치면 온 천하에 내 적수가 없다고 할 수 있소. 그러니 나와 일전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금단방 절정의 고수라 할 수 있소.
그대의 남편을 얕잡아 보지 마시오. 곤림수가 산을 나선 후 다시 내게 패한 건 그저 도전할 상대를 잘못 골랐기 때문이오.
확실히 말하지, 오늘날 금단방 최고 고수인 안보여도 곤림수의 상대가 못 될 거요. 난 안보여와 손속을 겨뤄봐서 잘 아오. 그녀도 내게 패했었지. 만약 저 밖이었다면 당신 남편은 금단방 최고수에도 도전할 수 있는 고수요!”
한편에서 은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우유도가 허풍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상찬의 제자다. 그는 당연히 곤림수가 도전할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말할 자격이 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녀도 우유도와 일격 정도는 교환한 적이 있었다. 우유도는 그녀의 일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니, 금단기 내엔 적수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우유도는 당연한 사실을 말했을 뿐 조금도 과장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은희가 다소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네는 얼마가 지나야 원영기에 오를 수 있는가?”
“아마 2년은 넘지 않을 겁니다.”
은희는 더욱 의아함이 가시질 않았다.
“자네 실력이면, 원영기에 오르기만 하면 오상이 처음 원영기에 올랐을 때보다 약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네. 지금 칠성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구성이 다 있었다 한들, 자네를 어쩌지도 못할 거야. 2년이라면 별로 긴 시간도 아닌데 어째서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리지 않는 것인가?”
“제가 죽은 척한 게 바로 은인자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다른 것들은 만약을 대비한 것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지금 무량과수에 꽃이 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늘의 안배가 사람의 안배와 반하니, 제 계획도 철저하게 뒤틀렸습니다.
지금 제가 수행계에서 일으키는 사건들은 모두 칠성의 움직임을 늦추려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칠성은 과연 오랜 시간 비바람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그저 제가 일으킨 일들을 좌시하면서,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계획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일이 진행된다면, 2년? 아마 그것도 기다리기 어려울 겁니다. 저 혼자라면 상관없지요. 충분한 수련자원을 가지고 2년간 아무 곳에나 숨어들어 간다면, 아마 저들도 절대 저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찌합니까? 제 곁에 너무 많은 사람이 이 일에 연루돼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연루된 사람들로 시산혈해를 이룰 것입니다.
노족장님,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제가 어찌 그 모든 사람의 생사를 도외시하고 홀로 살아남겠습니까? 그러니 반드시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겨도 담담해질 수 있게요. 그렇지 않습니까?”
은희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이제는 우유도의 의중을 이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