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8화. 섭정왕
침궁 대전 입구.
보심은 홀로 서서 멀어지는 세 장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보심의 안색이 참으로 복잡해 보였다.
호운도의 일은 그가 가장 잘 알았다. 일전에 안팎으로 압박을 받아 2번 쓰러졌을 때도 호운도는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3대 문파의 사람들이 몸을 살핀 적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운도는 하루가 멀다고 침궁에 여인을 들이며 자신이 여전히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 호운도는 황궁 내부에서, 그것도 너무 눈에 띄는 곳에서 쓰러졌다. 이에 따라 당연하게도 3대 문파의 장문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심은 세 장문인이 다급히 떠나는 모습을 보며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교사대 인원을 불렀다.
“사람을 시켜 세 장문인을 감시하고, 모든 상황을 즉각 보고해라…….”
* * *
옥왕부.
3대 문파 장문인이 갑작스럽게 방문했다. 옥왕 호홍은 의외라고 여기며, 빠르게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세 장문인은 별말 하지 않고, 반란군의 내용이 적힌 보고서를 호홍에게 건네며 어찌할 것인지 물었다.
고원달이 반역을? 내용을 살핀 호홍이 대경실색했다. 또 한편으론 세 장문인이 자신에게 찾아와 해결방안을 묻는 것이 의외이기도 했다.
하지만 곧 황궁에서 전해온 밀서가 떠올랐다. 오늘 부황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었다. 호홍은 곧 뭔가를 깨닫고는 내심 크게 흥분했으나 겉으론 어떠한 빌미도 주지 않고 잠시 고민한 후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호홍은 듣기에 번지르르한 말을 줄줄이 내뱉었다. 경험 많은 조정 대신들을 속이는 건 몰라도 3대 문파 장문인을 속여 넘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3대 문파 장문인은 대책을 듣고도 호불호를 표하지 않았다.
대신 우문연은 다른 것을 물어왔다.
“이쪽에서 병력을 동원하면, 전방의 호연무한이 이견이 있지 않겠나?”
호홍은 순간 엄숙한 얼굴로 힘차고 신랄하게 말했다.
“반란을 제압하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 장문인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상장군과 인척입니다. 암중에 교류가 있었으니, 상장군께서 이견이 있더라도, 본왕이 직접 그를 다독인다면,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세 장문인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두말하지 않고, 지금 즉시 조정의 문무백관을 옥왕부로 불러 반란을 평정하는 일에 대해 회의를 진행하게 했다. 3대 문파 장문인은 직접 현장에서 호홍의 뒷배가 돼주었다.
* * *
아직 날이 밝기 전. 실내에서 소유아와 같이 숙면 중이던 영왕 호진이 깜짝 놀라 깨어났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부부는 연이어 고개를 들었다.
“누구냐?”
호진의 외침에, 밖에서 차불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야, 일어나십시오. 급한 일입니다!”
창밖엔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이런 시각에 깨운 것이라면, 필시 큰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호진은 즉시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외투를 걸치고 방을 나갔다.
* * *
문을 나서자, 대구문의 차불지, 천화교의 고점후, 현병종의 사용비가 모두 모여있었다. 다들 얼굴도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내 세 사람은 예를 차리지도 않고 그대로 호진을 한쪽으로 데려갔다.
먼저 차불지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야, 큰일 났습니다. 3대 문파에서 옥왕 호홍을 옹립하기로 했습니다!”
서서히 호진의 눈이 커졌다.
그때, 왕부 밖이 소란해지더니 수호 법사들이 빠르게 들어와 고했다.
“왕야, 밖에 일단의 병력이 왕부를 포위했습니다!”
포위?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호진과 차불지 등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그 즉시 대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사방에서 화광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일단의 병력은 왕부를 다 포위했다. 복장을 보니, 경기호위대군(京畿護衛大軍)이었다.
호진은 어깨에 걸친 외투를 양손으로 당기며 계단을 내려갔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호진의 호통에 이어, 한 장수가 앞으로 나와 예를 올렸다.
“영왕 전하, 최근 경성에 진국의 밀정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왕야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섭정왕의 명을 받아 소장이 병력을 이끌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왕야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섭정왕? 섭정왕이라니! 비켜라, 궁에 들어가 폐하를 봬야겠다!”
호진이 더 크게 분노하며 호통쳤다.
그때, 한 현병종의 수행자가 나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야, 자중하십시오. 안에 들어가 쉬시면 폐하의 어명이 있을 겁니다.”
사용비가 앞으로 나와 호진을 붙잡고는 뒤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차불지와 고점후도 즉시 앞으로 나와 호진의 양팔을 붙잡았다.
“왕야, 충동적으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차불지가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한 후, 고점후와 함께 거의 호진을 끌다시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용비는 남아 현병종의 수행자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사형, 잠시 둘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 * *
병사들과 멀어진 한적한 곳에서 사용비가 조용히 물었다.
“사형,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현병종의 수행자도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낮췄다.
“사제, 제국의 하늘이 바뀌었어. 자네는 이번 일에 간섭하지 말게. 종문의 뜻이야. 3대 문파의 뜻이기도 하고. 나도 장문인의 명을 따르는 걸세…….”
* * *
잠시 후, 왕부로 돌아간 사용비는 호위에게 대문을 닫으라 명했다. 그런 뒤 빠르게 본채에 있는 호진을 찾아갔다.
호진은 사용비에게 상황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은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간단하다면 간단했다. 쇠약해진 호운도를 보고 3대 문파는 그가 더는 안팎의 정세를 통제하지 못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3대 문파는 호운도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할 것을 염려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후계자들의 다툼으로 혼란스러워질 수 있으니 벼락같은 기세로 내부 상황을 안정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옥왕 호홍은 3대 문파의 지지 속에 옹립됐고, 호운도의 건강 상태로 인해 조정 문무백관도 이미 호홍에게 마음이 기울었다고 한다. 이미 반대하는 자는 모두 잡혀들어가는 실정이었다.
다만 호운도가 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아. 호홍이 황위에 오르지는 못하고 일단 섭정왕에 올랐다고 했다.
호홍은 다른 형제들의 난을 저어하며 경기호위대군을 움직여 각 왕부를 포위했다. 거기에 각 왕들 중 누구 하나라도 독단적으로 왕부를 떠난다면, 즉시 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경기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장수들은 모두 호운도에게 충성하는 장수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모두 3대 문파에게 제압당한 상황이라, 호홍이 순조로이 경기호위대군을 동원할 수 있었다.
심지어 황궁의 금군 중 일부 호운도에 충성하는 통령들은 이미 숙청당하기까지 했으나 호홍은 그대로 황궁에 들어가 섭정왕의 지위에 올랐다.
“이건 찬탈이다!”
호진이 탁자를 후려쳤다. 한스러웠다. 승복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은인자중했다. 하지만 이 갑작스러운 일에 그야말로 조금의 준비도 할 수 없었다.
차불지, 고점후, 사용비 또한 침울하고 가슴 아팠다. 종문의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사전에 어떠한 징조도 없었다. 그들은 쟁취할 기회마저 없었다.
이들과 호진은 흥하면 같이 흥하고, 망하면 같이 망하는 관계였다. 그로 인해 평상시에도 이들은 종문에서 암중에 호진을 위해 인심을 사고 있었다.
하지만 종문에서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데, 그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항명이라도 하란 말인가?
“3대 문파가 아무 이유 없이 옥왕을 택한 것은 아닙니다. 옥왕의 뒤에는 병권을 쥐고 있는 호연무한이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3대 문파는 호연무한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고점후가 하늘을 보고 장탄식을 내뱉었다.
아무튼 그들은 3대 문파의 제자였다. 그나마 퇴로가 있었다.
하지만 호진에겐 퇴로가 없었다. 생사는 모두 호홍에게 달려 있었다. 추후에 호홍이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확신도 없었다.
하늘은 천천히 밝아오고 있지만, 영왕부에 드리운 그늘은 가실 줄 몰랐다.
그때, 씻고 단장을 한 소유아가 나타났다. 그녀 또한 이미 밖의 상황을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는 본채에 들어서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왕야. 무슨 일인가요?”
* * *
호연부 밖.
“섭정왕? 무슨 섭정왕?”
이곳도 마찬가지로 대량의 병력에 포위돼 있었다. 군대에서 퇴역한 가문의 하인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칼과 창을 든 채 대군과 대치 중이었다.
분명 호연부를 포위하고 있는 병력이 더 많았지만, 눈앞에 늙고, 약하고, 장애가 있는 하인들 앞에 다들 당당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만삭인 호청청은 이미 칼을 들고, 입구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비켜라, 부황을 뵈어야겠다!”
하지만 대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분노한 호청청이 보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비켜!”
선두에 선 장수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님, 저희를 곤란하게 하지 마십시오. 만약 여기서 더 소란을 피우신다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 순간, 손가락이 몇 개 없는 하인이 크게 분노해 칼을 들었다.
“이놈 방야야! 네놈이 노부의 말을 끌 때, 네놈을 섭섭하게 대한 적 있더냐? 오늘 네놈이 감히 작은 주모님을 털끝 하나 건드린다면, 네놈의 껍질을 벗겨버리겠다!”
선두로 나선 장수는 얼굴을 씰룩거렸다. 눈앞에 자신들과 대치하고 있는 노약자와 장애 있는 하인들을 보고 머리가 아파졌다.
정말 저들을 함부로 대한다면, 아마 그는 앞으로 군중에서 모든 인심을 잃어버릴 것이고, 더는 제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었다.
그때,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호연위가 뛰어와 그대로 장수를 걷어찼다.
“가만히 안 있어? 개자식, 감히 우리 집 앞에서 소란을 피워!”
퍽!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장수는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았다.
곧이어 수행자 몇 명이 호연위를 가로막으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연위, 무례를 범하지 마시오!”
호연위가 분노해 고함을 질렀다.
“어디 한번 재주가 있으면 나를 죽여 보아라. 만약 그럴 재주가 없다면, 오늘 네놈들에게 무례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마!”
수행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 이런 시기에 감히 누가 호연무한의 아들을 죽일 수 있을까. 감히 누가 저자를 건드릴 수 있기는 할까? 정말 호연위를 건드린다면, 종문에서도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터였다.
이윽고 선두에 있던 장수가 허리를 펴고 배를 쓰다듬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는 수행자들에게 물러나라고 손짓하곤 호연위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소장군, 우리 아랫것들의 어려움을 알아주십시오.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소장군은 잠시 후 아랫것들에게 장을 봐오라고 시키십시오. 그리고 몰래 상장군께 금시를 날리시지요. 그럼 저희도 꼼꼼히 검사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상황은 상장군의 명령이 필요합니다. 소장군께서 이런 식으로 3대 문파와 드잡이질하는 건 쓸데없는 짓입니다. 지금은 오직 상장군만이 악적을 위협할 수 있고 오직 상장군의 일언(一言)만 건곤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호연위의 두 눈이 번득였다.
바로 그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호청청이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는 배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입가에서도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를 본 모두가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혼란한 제경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