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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90화 (789/1,000)

1690화. 비애

황후는 그대로 궁을 나서 호연가로 향했다. 명목상으로는 출산한 딸을 만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호연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들 호홍의 뜻이었다. 어머니가 직접 호연가에 손을 써주길 바라고 있었다. 결국 남편을 설득하지 못해서, 황후는 그대로 사위에게 달려갔다.

가족의 정을 생각해, 호연무한을 설득할 서신을 보내 달라고 간청할 생각이었다. 설령 설득이 안 된다고 해도, 호연무한이 함부로 움직이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은 그 무엇보다 호연무한이 제일 중요했다.

* * *

경성에 계엄령이 떨어졌다. 그로 인해 경성의 인심도 흉흉해졌다.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온 격변이었다. 사전에 어떠한 징조도 없었다.

무심은 자신의 거처 마당에서 조용히 보고를 듣다가 질문을 던졌다.

“영왕부도 포위당했다고?”

곽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위당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큰일은 없지요. 다만 왕부 안에 연금당해 있을 뿐입니다.”

무심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잘 감시해, 혹시 뭔가 이상을 발견하면 바로 알려주고.”

한쪽에 있던 안보여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권력투쟁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군요. 어제까지만 해도 저 높은 곳에서 생사 대권을 손에 쥐고 있던 황제도, 한순간에 그 처지가 뒤바뀌었어요. 인생의 기복이란 어차피 그러한 것이군요.”

* * *

중군 군막 내부.

호연무한은 서탁에 앉아 섭정왕의 서신을 읽고 있었다. 호랑이처럼 위엄이 서린 눈에 조금씩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

호연무한에게도 세월은 공평하게 흔적을 새긴듯했다. 머리는 이미 반백이 되어있었고, 얼굴도 많이 늙어 보였다. 불리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노심초사하다 보니, 결국 외모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선 3대 문파 장로들이 다들 전전긍긍하며 호연무한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서신을 모두 읽고, 호연무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본 장군이 경성을 떠나니, 경성이 아주 시끌벅적한 것 같습니다. 아주 온갖 기이한 일들이 다 일어나는군요. 이것들을 직접 보지 못하다니, 참으로 여한이 큽니다! 섭정왕이라. 하하, 섭정왕이라니!”

쾅!

호연무한이 돌연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3대 문파 장로들은 떨어질 뻔한 심장을 부여잡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런 경험은 종문의 의사대전에서도 자주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이토록 크나큰 분노에 두려움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지금 호연무한의 몸에서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오는 분노는 모든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피가 강처럼 흐를 정도의 분노, 수행자에겐 보기 힘든 철혈의 기세였다.

현병종의 장로가 헛기침을 한번하고 말했다.

“무슨 일이기에 상장군께서 그리 진노하시는 것이오?”

호연무한이 호랑이 눈으로 세 사람을 쳐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단지 서신 한 장에 불과하건만, 세 분께서는 어찌 다 같이 찾아오셔서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오? 설마 지금 이 내용을 모른다고 하실 건 아니시지요? 만약 세 분께서 절 멍청이로 만들고 싶으시다면, 더는 할 말도 없습니다. 이건 그저 평범한 서신에 불과하니, 세 분께서는 이만 돌아가시지요!”

세 사람이 다 멋쩍어지는 말이었다. 아직 호연무한의 반응도 보지 못했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인가.

천화교의 장로가 잠시 망설이더니, 결국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제 와 더 숨길 것도 없겠지. 상장군, 옥왕의 서신을 받아 보셨을 것이오. 상황이 이리됐소. 상장군께서 어찌 생각하시는지, 확실히 말씀해 주시는 게 어떠시오? 그래야 우리도 종문에 뭐라 할 말이 있으니 말이오.”

“그렇소.”

대구문의 장로와 현병종의 장로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연무한이 서서히 서탁 앞으로 나왔다. 세 사람에게도 한발, 한발 압박이 가해졌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세 장로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순 없으니, 호연무한의 압박에 주춤주춤 물러나게 되었다.

그렇게 뒤에 있는 병가(兵架)에 부딪혀 더는 물러날 곳이 없자, 천화교 장로는 어쩔 수 없이 호연무한의 가슴을 손으로 살짝 막았다.

“상장군! 자중하시오!”

그가 손을 내밀자마자, 사호가 마치 귀신처럼 나타나 천화교 장로의 손목을 붙잡았다. 호연무한은 곧 손을 들어 사호를 물리곤 입을 열었다.

“내가 어찌 생각하는지가 중요합니까? 3대 문파가 저 높이 앉아, 나같이 미천한 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있습니까? 만약 노부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폐하께선 아마 3대 문파에게 연금당했을 겁니다, 맞습니까?

3대 문파에서 원하신다면 폐하도 얼마든지 폐위시키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 눈에 제가 뭐 그리 중요할까요. 만약 제가 쓸데없는 짓을 할까 두려우시다면, 간단하지요. 그냥 저도 잡아가십시오. 그러면 간단하고 편하지 않겠습니까?”

대구문의 장로가 노파심에 말했다.

“상장군, 화를 가라앉히시오! 어찌 그러시는 것이오! 상장군은 제국의 기둥이오. 만약 누가 상장군을 건드리려 한다면, 내가 첫 번째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오! 다만, 상장군은 대국을 생각해 주시오! 만약 누군가 대국을 무시한다면, 그 또한 내가 첫 번째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 대국을 생각하신다고요. 지금이 어떤 순간입니까. 그렇게 대국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임진환수(臨陣換帥)’같이 전쟁 중에 사령관을 바꾸는 짓을 하신단 말입니까? 그것이야말로 병가의 금기임을 모르십니까!”

현병종의 장로가 말했다.

“상장군, 폐하의 건강이 더는 부담을 짊어지기 어려울 지경이었소!”

호연무한은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도리질 치며 비애를 토해냈다.

“그래도 이런 방식은 안 됩니다! 지금은 제국의 모든 사람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적을 상대할 때입니다. 폐하의 건강이 좋지 않다면, 마땅히 황자들을 모아 폐하를 돕게 하고, 상황을 주도하게 해야 했었습니다.

황자들 배후엔 그들을 돕는 조정 신하들과 세력이 있습니다. 음으로 양으로 오랫동안 힘을 길러 왔으니 그 세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미끼를 내걸고 그 참 실력을 내보이게 했다면, 3대 문파도 황자들을 충분히 구워삶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3대 문파에서 대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올린 황자를 황위에 올리겠다고 공표만 하면, 황자들도 목숨 걸고 달려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온 나라가 한마음 한뜻이 되면, 이처럼 기세등등한 대국에 겨우 반란이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어찌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스스로 혼란을 일으키고 자중지란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모르면서도 경거망동하다니, 지금 여러분은 우리 제국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양군은 대치 상태에 있습니다. 아군은 적군의 방어선을 돌파할 수 없고, 적군은 아군을 두려워해 쉽게 공격하려 하지 않습니다. 고품은 변화를 기다리며 시간을 끌고 있지요, 우리 제국 내부가 혼란스러워졌을 때 한 번에 해치우려 그 틈을 노리고 있는 겁니다!

저라고 다르겠습니까, 저도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저라고 한 번에 적을 해치우고 싶지 않겠습니까?

구성 중 둘이 죽었습니다. 표묘각이 혼란스럽고, 천하 급변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기가 무르익으면, 풍운이 크게 몰아칠 것입니다!

폭풍우가 언제 몰아칠지 알 수 없습니다. 하늘의 천둥 번개는 천하 중생을 안중에 두지 않겠지요. 그 말은 언제든 각국 정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언제든 전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정말로 어렵게 큰 변화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오래 버티는 쪽이 다른 쪽을 쓸어버릴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와 나조는 제군과 후진군의 지출을 줄이고, 하루치 식량을 이틀에 나눠 사용하고 있습니다. 버티기 위해서요, 바로 그 변화를 기다리고 있지요! 적군과의 대치 상황에 결전의 순간이 오기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하셨습니다! 머리가 뜨거워지니, 그대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어마어마한 내란을 불러왔지요. 그냥 진국에 나라를 가져다 바치려고 하지 않습니까!

혹시 3대 문파는 제국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좀이라도 쑤시는 것입니까? 좋습니다. 소란을 피우십시오. 계속 그렇게 소란을 피우십시오. 어디 어떻게 수습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한차례 호통이 지나갔다. 호연무한은 거의 피를 토하듯 모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그는 제 가슴을 후려치며 비통함에 사로잡혔다.

장로들의 안색도 급변했다. 호연무한에게 정신없이 욕을 얻어먹었지만, 호연무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리가 있었다. 종문의 결정이 천하에 다시없을 멍청한 짓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내 천화교 장로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상장군 화를 가라앉히시오. 혹시 지금 상장군의 말씀대로 다시 계획을 진행할 수 있소?”

“천하의 머저리들이십니다. 눈앞에서 꺼지십시오!”

호연무한이 서슴없이 소리 질렀다. 확실히 더는 차릴 예의도 없었다.

평소라면 황권 계승 문제도, 구성에 관한 것도 이리 쉽게 언급할 리가 없었다. 호연무한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병권을 쥔 사람이었다. 3대 문파는 어찌 자신에게 말 한마디 없이 이런 짓을 벌였단 말인가.

이로 인해 호연무한은 이번 일을 막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면서 이제 와 자신의 의견을 묻다니, 하마터면 저들 때문에 화가 나 피를 토할 뻔했다.

3대 문파가 호연무한에게 아무것도 알리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그들 역시 호연무한이 자신들의 계획을 막을 것을 예상해서였다.

3대 문파는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이 상황을 장악한 후에, 호연무한에게 선택지만 주려고 했다. 호연무한이 먼저 상황을 장악하고 3대 문파가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세 장로는 뒤늦게 호연무한에게 의견을 구하려 했지만, 사호가 그들을 군막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그러나 사호도 호연무한의 대군에 여전히 3대 문파 수행자들의 협조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막을 나선 후 그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오늘 상장군께서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있으니, 나중에 화가 좀 가라앉고 냉정을 되찾은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세 장로도 금세 수긍했다.

“그게 좋겠소! 상황이 이리되었소. 사호, 그대가 상장군을 잘 설득해 주시오. 화 때문에 몸이 상해서는 안 되오.”

현병종의 장로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세 장로는 다들 기가 죽은 채, 고개를 저으며 멀어져 갔다. 그리고 속으론 하나같이 종문이 일을 처리하기 전 연락을 주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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