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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94화 (793/1,000)

1694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제국에서 호연무한은 여전히 큰 영향력이 있었다. 호연정은 각 주를 돌아다니며, 나름 순조롭게 병력을 차출했다.

그리고 중군 군막의 고원달은 지도 위 적군이 모이는 상황을 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의 얼굴에도 세월은 고스란히 제 흔적을 새겨두었다.

그는 제국을 배신하고, 진국에 붙었다. 그에겐 이제 평생 반역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이라는 걸 그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여지가 있었다면, 그도 이런 선택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때론 정말 선택지가 단출한 경우도 있었다. 뒷일을 고려해야만 했다.

본래 그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반역이 일어나 황위가 찬탈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미 제국은 운명을 다한 것이다.

“우리 진국에 의탁한 내통자들을 통해 호연정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소. 대장군, 어째서 그리 망설이시는 것이오? 호연정은 이미 20만 병력을 차출했소. 적들이 모두 집결하기 전에 호연정의 목을 먼저 베어버려야 하오! 호연정만 없다면 저들은 그저 오합지졸에 불과하잖소.”

기운종의 장로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적들이 모두 집결한 후에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고원달의 답에, 기운종의 장로가 분노를 드러냈다.

“쉬울 때 손쓰지 않고, 어려울 때 손을 쓰겠다니. 장난하는 것이오?”

고원달이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화를 가라앉히시지요! 장난이 아닙니다. 호연정이 병력과 따로 움직여, 각 주부에서 병력을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호연무한이 아들의 안전을 신경 쓰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분명 상당한 고수들이 호연정을 호위하고 있을 겁니다.

얼핏 보기엔 지금이 적기 같아도 실은 가장 호연정을 죽이기 어려운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가장 경계심이 높을 때입니다.”

“지금 호연정을 놓친다면, 나중에 다시 그를 죽이는 긴 쉽지 않을 겁니다.그러니 지금 해야 하는 건 경거망동하지 않는 겁니다. 지금 제국의 인심이 흔들리고 있고, 저들도 곁에 딴마음을 품은 사람은 없는지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호연무한이 아들에게 직접 병력을 모으게 했다는 게 그 증거지요. 지금 호연정은 곁에 있는 제후들의 병력을 가장 크게 경계하고 있을 겁니다.”

“예, 장로님 말씀처럼 지금이 손쓰기 가장 좋을 때지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딴마음이 있다면, 분명 지금 움직일 겁니다. 그런데 호연정이 설마 그걸 대비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저희는 역으로 움직여야지요. 저들의 군대가 순조롭게 모이도록 두고, 저들이 경각심을 늦추는 그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대군이 모이고 제후들의 병력이 딴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게 확인되면, 거기에 대군이 주위를 방비하고 있다면, 외적은 가까이 다가올 수 없습니다. 지금 호연정 곁에 있는 수행자들도 감군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휘하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흩어지기 시작할 겁니다.

호연정의 경각심이 낮아지면, 우리 쪽에 붙은 병력도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호연정 곁에 배치될 수 있습니다. 그때가 절호의 기회가 될 겁니다.

그때 영허부, 수정각, 대악산의 모든 고수, 그러니까 저들 문파의 장문인과 장로들 아니, 저들의 태상 장로들까지 모두 동원해야 합니다. 또 쓸 수 있는 천검부는 다 쓰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호연정을 처리해야 합니다!”

기운종의 장로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

“만약 실패하면 어찌하오?”

“그것이 바로 제가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쓰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만약 지금 손을 쓴다면 설사 호연정을 죽인다 해도 호연무한은 다른 사람을 보내 호연정이 모은 병력을 지휘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시기가 무르익고 나서 손을 쓴다면, 그 효과가 남다를 것입니다!”

* * *

군막 내부.

“사령관님, 소장군이 20만 대군을 모아 집결시켰습니다!”

한 장수가 들어와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호연무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군막 내부의 관련 인원들이 보고를 기반으로 지도앞에서 토벌군과 반란군의 상태를 지도에 표기했다.

한쪽에 서 있는 사호는 호연무한이 지도를 꼼꼼히 살피는 걸 지켜봤다.

다시 한편에 있던 장수가 보고했다.

“사령관님, 고원달 그 역적의 진세를 보자면, 소장군과 결전을 벌이려는 것 같습니다. 이건 소장군의 병력이 자신보다 적다고 얕잡아 보는 것입니다. 다만 소장군의 임무가 저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끄는 거란 걸 모르는 게 분명합니다. 소장군이 저들과 싸워줄 리 없지요!”

하지만 한쪽에 있는 호연무한은 이미 안색이 급변해 있었다. 위험한 기운을 감지한 호연무한은 두 눈을 번뜩이며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큰일이다! 지금 즉시 호연정에게 곁에 있는 병력 중 반란군의 내통자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 전서를 보내라! 빨리! 금시 3마리를 동시에 날려라!”

뛰어난 장수는 언제나 위기를 민감하게 감지하며 제 능력을 입증했다.

호연무한의 말이 떨어지자, 군막 안은 즉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빠르게 문서가 작성됐고 금시 3마리가 빠르게 날아올랐다.

지도 앞의 호연무한은 그야말로 온 낯빛이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잠시 후, 금시가 확실히 날아가는 걸 확인한 장수가 다시 돌아왔다.

“사령관님, 어째서 그리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호연정이 병력을 모으는 게 단지 시간을 끌기 위해서란 걸 고원달이 모르겠느냐? 고원달은 기습의 달인이다. 그러니 이런 식의 결전을 위해 진세를 만드는 건 쓸모가 없다. 설혹 그렇다고 해도 이처럼 대대적으로 적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

유일한 가능성은 호연정에게 변고가 생기는 것이다! 일단 변고가 생기면, 여명이 뜰 때 어둠을 틈타 기습할 테고, 해가 뜨면 총공격을 감행할 거다. 토벌군은 저 끝없는 초원에서 사방팔방 도망치게 되겠지.

고원달은 한방에 토벌군을 격파하는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로구나……. 아직 늦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과거 고원달은 호연무한의 부하 장수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호연무한이, 고원달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한편에 있던 장수의 얼굴이 급변했다. 그도 이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저희가 이제야 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소장군 쪽에서 이미 움직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 *

“보고드립니다! 상장군께서 보내온 급보입니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시간이었다. 전령관은 예를 차릴 시간도 없이 그대로 호연정의 군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겉옷을 벗고 침상에 누워있던 호연정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급보를 살펴보니, 일순간 머리가 곤두서는 것 같았다.

“여봐라!”

하지만 호연정의 외침에 돌아온 답은…….

쾅!!!

거대한 폭음이었다.

* * *

호연무한의 예상이 맞았다. 고원달은 여명이 뜰 때 기습했다.

호연정의 우익 병력은 진작 진국에 넘어간 사람들로, 영허부, 수정각, 대악산의 고수들이 모두 출동했다. 그들은 군사의 복장을 하고, 내통자의 도움으로 호연정 중군 군막 근처에 숨어 있었다.

중군 군막 주위와 공중의 방어 경계 세력은 그냥 없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제국 수행자들이 다급히 방어에 나섰지만, 천검부의 강기에 그저 펑펑, 터져나갈 따름이었다.

토벌군의 중심이 혼란에 휩싸였다. 싸움이 일었다. 3리 밖에 있던 반란군도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기병은 선두에서 적을 기습했다. 땅이 다 뒤흔들릴 정도였다.

정말 시운이 좋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운명이 다한 것일까. 호연무한의 경고가 조금만 일찍 도착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위국 3대 문파 고수들은 어둠을 틈타 성공적으로 기습했다. 양 대군이 맞붙었으나 20만 토벌군은 통일된 지휘체계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30만 반란군을 대적할 수 없었다.

결국 패배한 20만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이미 날이 밝은 후였다. 도망친 토벌군의 행보가 어디에서든 훤히 다 보였다.

반란군은 도망자들을 계속 뒤쫓았고. 기병은 그대로 달려가 도망자들의 머리통을 쪼개며 도살했다.

한 언덕 위.

고원달은 안장 위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원하던 것이었다.

그는 단번에 제후들의 병력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렇게 제후들을 압박해, 조정에서 흩어진 병력을 다시 모아 더는 제 앞을 막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여유롭게 경성을 공격할 수 있다.

또 그는 대승을 거둬 사기를 올릴 필요도 있었다. 휘하에 같이 반란을 일으킨 병사들은 모두 제국의 장병들이었다. 나라를 배신한 것에 대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양심의 가책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려움이었다.

그러니 그는 휘하 병력에게 조정 군대라고 한들 별것 아니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제국의 운명은 이미 다했다. 더는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이내 고원달을 수행하고 있는 기운종 장로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대장군의 전술이 실로 영명하오. 정말로 큰 공을 세웠으니, 조정에서 분명 큰 상을 내릴 것이오! 노부가 바로 대장군을 위해 주청을 드리리다!”

* * *

제국 3대 문파 제자들 몇몇이 낭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호연정도 함께였다. 그러나 호연정은 이미 차가운 시신이 되어있었다.

시신은 실로 참혹했다. 잘린 절반을 겨우 맞춰 땅에 내려둔 상태였다. 참담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또한 3대 문파의 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시신을 회수한 것으로, 주장을 버리고 도망쳤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했을 터였다.

“목주(木州)가 반란에 가담했소. 적군은 아군을 깊숙이 끌어들였고,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막아섰지만 상대방에게 고수가 너무 많았소. 영허부, 수정각, 대악산, 장문인과 세 문파의 태상 장로들까지 모두 출동했소. 세 문파의 고수들이 모두 그곳에 있는 것 같았소. 천검부조차 아끼지 않고 사용됐소…….”

호연정 곁을 지키던 현병종의 한 장로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보고했다.

호연무한은 무뚝뚝한 얼굴로 땅에 있는 아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얼굴엔 어떠한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호는 굳은 얼굴로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세 문파의 종군 장로들 안색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다들 수시로 호연무한의 반응을 살폈다. 지금 그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할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장남이 전쟁터에서 죽었다. 이젠 차남도 그의 뒤를 따랐다. 세 아들 중에 남은 건 경성에 있는 그 머저리 하나뿐이었다.

“상장군, 조의를 표하오!”

천화교의 장로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내 호연무한도 긴 침묵에서 깨어났다.

“떠날 때, 고원달이 국내 수비군을 지휘한 것을 들어,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었지. 그런데도 이런 일이 생겼군.

자신의 무능함으로 상대의 계책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속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가 근처에 다가오는 것도 감지하지 못하다니. 도대체 방진을 어찌 형성한 것이란 말인가! 이는 군무 태만이다, 직무유기야!

이런 식으로 살아 돌아왔다면 아군의 군기 대사를 그르친 죄로 내가 직접 목을 베었을 것이다!”

한쪽에 있는 장수가 말했다.

“모두 소장군의 잘못은 아닙니다. 근위 병력이 모두 제후들의 병력이었습니다. 자유자재로 부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호연무한이 호통쳤다.

“어렵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이 아이를 직접 보냈겠는가! 결국 군에 들어온 후 겪은 경험이 너무 적었도다. 단련이 부족했어. 그 형보다 모자랐고, 고원달 보다 노련하지 못했다. 이 아이를 보내 반란군을 토벌하게 한 것이 내 잘못이다. 조정에 죄를 청해야겠다. 이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그리고 호연무한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대대적인 장례를 치르지도, 경성으로 보내지도 말라고 명했다.

결국 호연정은 대충 불에 태워 장사지내는 것으로 생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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