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5화. 우위를 점하다 (1)
호연가 저택.
둘째 형의 부고를 듣고, 호연위는 정신이 멍해졌다. 큰형의 전사 소식에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건만, 둘째 형까지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변고란 말인가. 온 호연가에 애통한 심정이 번져나갔고, 사기(死氣)가 진하게 내려앉았다.
* * *
반면 지금 제경의 조당 신하들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호연정의 죽음이 아닌 호연정의 패배였다.
무려 20만 병력이 고원달에게 일패도지(*一敗塗地:싸움에 한 번 패하여 간과 뇌가 땅바닥에 으깨어진다는 뜻으로, 여지없이 패하여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름)했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세상에 더는 반란군을 막을 자가 없고, 저들은 경성으로 직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정 백관들의 주요 가업과 식솔이 모두 경성에 있었다. 위국이 멸망한 후 저들 백관이 어찌 되었던가, 그들 모두가 그 모습을 직접 보았다.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양쪽에서 오는 지원군은 열흘은 있어야 도착할 텐데, 과연 경성의 10만 대군으로 열흘을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제국의 인심이 흉흉해지고, 수많은 이가 뒷일을 고려해 진국 쪽 인원과 비밀리에 결탁하기 시작했을 때, 다시 천하를 뒤흔들 소식이 전해졌다.
호연무한이 죄를 청해왔다.
조정이 다독여도 호연무한은 절대로 이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며, 조정에 공을 세움으로서 죄를 갈음하겠다고 했다.
이후 호연무한은 대대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정의 허락도 받지 않고, 어명을 청하지도 않고서 소수의 인원만 남겨 뒤를 방어하게 하고는, 300만 대군을 전면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진국 대군이 어떻게 나오든, 호연무한은 더는 무엇도 신경 쓰지 않았다.
* * *
“고원달의 반란군을 쓸어버리자! 반란군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리자!”
300만 대군이 전면적으로 철수하며 일심으로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를 듣고 반란군은 정말 매우 놀랐다. 고원달조차 긴장하기 시작했다. 호연무한이 자신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300만을 이끌고 진격하고 있었다. 이는 장난이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끝장이었다.
더더욱 이것은 슬슬 다른 마음을 품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꽤 효과를 발휘했다. 호연무한이 직접 300만 대군을 이끌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 누가 감히 딴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호연무한은 돌아오는 길에 이미 살계를 크게 열었다. 한 주부를 지날 때, 승상의 측근으로 군무를 태만히 했다는 이유를 들어 해당 자사부의 남녀노소를 모두 잡아들여 죽여버렸다.
휘하 관리 10여 명을 잡아들여 그 식솔들까지, 일체 자비는 없었다.
이후로도 호연무한은 조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경성 부근에 있는 각 주부의 관원들에게 모든 힘을 동원해 반란군을 저지하라고 명령하며, 이에 태만한 자는 하나도 남김없이 죽일 것이라 천명했다.
* * *
한참을 침묵하던 나조가 고개를 들고 장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대세는 이미 기울었구나!”
호연무한은 철수하며 당연히 나조에게 연락했다. 호연무한은 나조에게 홀로 진군을 상대하라며, 후진군에게 진군과 결전의 기회를 엿보라고 전했다.
진군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하던가. 그에 반해, 후진군은 겨우 200만에 불과하고, 군량도 부족해 하루 군량을 이틀에 나눠 사용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전이라니!
하지만 나조도 알고 있었다. 호연무한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호연정의 패배가 전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고, 흔들리던 제국의 인심은 무너졌다.
호연무한이 회군이라도 해서 저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면, 후방의 반역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날 테고 고원달은 손쉽게 거대한 성세를 일으킬 것이었다. 갈수록 반란군에 의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건 자명했다.
일단 고원달의 성세가 후방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통제하기 시작하면, 후진국과 제국 양측 주력 병력 보급은 모두 다 끊길 것이다. 군량이 없다면, 수백만 대군이 맞이할 최후는 패배밖에 없었다. 모든 게 다 끝이었다.
그러니 호연무한은 아직 상황이 완벽하게 무너지기 전에, 군량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뭔가라도 해보려는 것이었다.
호연무한이 이렇게 도망치자, 효월각은 그야말로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호연무한이 신의 없는 자라며 쌍욕을 퍼붓기 바빴다.
그래도 나조는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이해관계를 설명하며, 다시 후진군의 병력을 재배치하고 진군과의 전투를 대비했다.
지금은 호연무한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진군이 출격한다면, 나조는 진군의 주력군을 붙잡아 호연무한이 국내를 평정할 기회를 만들려 했다.
비록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고 하지만, 나조는 여전히 최선을 다했다.
호연무한 역시 상황을 되돌려보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 * *
한 저택 내부, 진군 전방 지휘실.
지도 앞에 앉은 고품은 조금 전에 받아든 정보를 들고 냉소를 지었다.
“제국 조정이 이미 인심을 잃었다는 걸 알면서도 호연무한은 끝까지 승복하지 못하고 발버둥 치고 있구나! 지금 이 지경까지 와서 이 몸이 네놈에게 패배한다면 나는 어디 시골에서 밭이나 갈아야 할 것이다!”
한편에 있던 기운종의 장로는 고품이 이토록 승리에 확신을 품고 있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매우 흡족하고 기쁜 요량이었다.
하지만 고품의 진짜 속마음은 달랐다. 사실 그냥 한 말에 불과했다. 고품은 호연무한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상당히 곤란해졌다.
진국은 고원달을 도와 세력을 만들고, 제국과 후진군의 보급을 끊으려 했다. 그렇게 싸우지 않고 이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금 갑작스러운 호연무한의 한 수로 인해, 고원달이 세력을 더 확장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제국 내부에서 준동하려던 사람들이 모두 호연무한에게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호연무한은 전면적으로 철수를 했다. 이제 고품은 들어가야 할지, 버텨야 할지 진퇴양난이 되었다.
일단 대군이 제국 깊숙이 들어갔다가 적절한 시기에 철수하지 못하면, 초원에서 호연무한과 결전을 벌여야 할 수도 있었다. 그건 아마 호연무한이 실질적으로 가장 바라는 상황일 것이다. 물론 승패를 확신할 순 없지만, 그건 고품이 처음부터 최대한 피하려던 상황이었다.
고품은 처음부터 호연무한에게 자신이 그의 수작에 어울려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었다.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 상황에, 1,000의 적을 죽이고자 800의 손실을 보는 건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는 진군의 사령관으로서 반드시 진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고, 진국의 장병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최대한 진국의 국력을 보존한 상태에서 적군을 격퇴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결정이었다.
최대한 진국의 국력을 보존한 상태에서 제국과 위국을 점령해야만 다시 빠르게 전쟁의 후유증을 회복할 수 있었다.
고품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주위를 서성였다. 그러다 다시 지도 앞에 서서 한참을 침묵했다. 그 후로도 오래도록 그의 사색이 길어졌다.
* * *
족히 반 시진이 지났을까. 고품이 천천히 뒤돌아 입을 열었다.
“군령이다. 고원달에게 제국 경성은 해자가 깊고 성이 높아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며 경성에는 이미 아군의 내통자가 있으니 최대한 빨리 제국 경성을 점령해 그곳을 사수하라고 전해라. 그의 손에 30만이 있으니 충분히 지켜볼 만하다. 반드시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라고 전해라!”
원래는 고원달에게 제경을 점령한 후, 주위로 세력을 확장하게 하려 했다. 그렇게 제국과 후진군의 보급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이제 호연무한이 고원달을 토벌하려고 하고, 고원달은 호연무한을 막을 수 없으니 계획은 반드시 수정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전령관이 즉시 움직였다.
잠시 후, 기운종의 장로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고원달이 30만 병력으로 경성을 지킨다 해도 오래 지킬 수는 없을 것이오. 우리 지원군이 그 안에 도착할 수 있겠소?”
고품이 담담히 말했다.
“지킬 수 없어도 지켜야 합니다! 처음부터 그가 지켜낼 수 있을 거라 기대도 안 했습니다. 지원군도 없을 겁니다. 다만 아군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것입니다.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그의 능력과 운에 달려있겠지요!”
기운종 장로가 깜짝 놀랐다.
“아! 그를 벼랑 끝으로 몰면 다시 반대쪽으로 붙을까 우려스럽지 않소?”
“다시 저쪽에 붙는다고요? 어떻게요.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호연무한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그대로 경성을 공격해 들어간다면 그곳을 목숨 걸고 지키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이건 버리는 패였다. 기운종 장로도 이제야 고품의 의도를 깨달았다.
“흑수대는 거기 있느냐?”
고품이 갑자기 소리쳤다.
곧이어 문밖에서 전령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고, 곧 흑수대 책임자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와 예를 올렸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흑수대에게 제국을 배신한 인원들을 동원해, 고원달이 제국 경성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도록 돕게 하라. 이를 태만히 하는자는 군법에 따라 참하라!”
“알겠습니다!”
흑수대 인원이 대답했다.
“그 외에 흑수대 중추에 연락해, 흑수대 모든 역량을 동원해 효월각에 연락을 취해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효월각의 항복을 받아내라고.”
순간 흑수대 인원이 잠시 망설임을 보였다.
“그게……. 사령관님, 저들의 항복을 받아내는 건 어려울 듯합니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 흑수대에 전해라. 아군에게 계책이 있으니, 흑수대를 위해 저들의 항복을 받아낼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가봐라!”
“알겠습니다!”
흑수대 사람이 물러가고, 기운종의 장로가 다시 또 물었다.
“효월각의 손에 정예병이 쥐어져 있건만, 어찌 투항한단 말이오?”
고품이 냉소 지었다.
“호연무한이 나를 무시하니, 나도 그를 무시해야지요. 우리 하나씩 처리해 나가시지요. 일단 군대를 집결해 후진군을 상대할 겁니다. 효월각이라고 해봤자, 일개 살수 집단에 불과합니다. 위국 3대 문파가 우리 쪽에 의탁한 것만 봐도 저 효월각이 어떤 집단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기다려 보십시오. 우리가 후진국과 싸울 필요도 없이, 군대를 집결해 저들을 포위하고 협박한다면, 효월각은 반드시 굴복할 것입니다!
그때 저는 2가지 길을 제시할 겁니다. 하나는 우리 쪽으로 귀순하는 것, 또 하나는 서병관을 통해 후진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효월각은 반드시 그중에 하나를 골라야 할 것입니다!
만약 후진군이 항복하면, 저들을 해산해 아군에 편입시키고, 제국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면 됩니다. 만약 후진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돌아가게 하면 됩니다. 그럼 연국과 한국도 쉽게 이익을 보진 못할 겁니다. 고원달이 제경을 뚫고 들어가는 날이, 아군이 후진군에게 손을 쓰는 날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