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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697화 (796/1,000)

1697화. 상장군, 결국 도리도 불사하고

호연무한이 전면적으로 철수하며, 더 이상 진국을 방어하지 않는 행동에 천하가 동요했다. 그중 제일 크게 동요한 곳은 역시 제국 조정이었다.

양 승상은 자신의 측근이 죽임을 당하자, 크게 분노하며 조정에 상소를 올려 호연무한을 엄벌해달라 주청했다.

그러나 사실 이는 보여주기에 지나지 않았다. 승상은 정말로 분노했지만, 호연무한을 처벌해달라고 한 건 아랫사람들을 향한 보여주기의 일환이었다.

지금 감히 누가 호연무한을 건들 수 있단 말인가?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 호연무한의 자리에 대체자를 앉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순 없었다. 어느 누가 저 수백만 병력을 통제한단 말인가!

병권이란 건 음식이 아니었다. 식탁에 올려놓고,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직 충분한 능력을 가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이었다.

섭정 태자 호홍은 분노하고 두려워했다. 호연무한이 조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군령을 내렸다. 마치 조정 위에 있는 듯한 행동이었다.

이건 병권을 가지고 있다고 조정과 황태자를 무시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군령이 조정의 칙령을 넘어섰다. 군령이 조정의 칙령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호홍이 섭정은 무슨 빌어먹을 섭정을 하겠는가!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그의 안전을 호위하는 금위군이 지금 호연가의 손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와 호연위의 금군통령 직위를 회수할 수도, 그렇다고 회수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방책은 그저 계속해서 호연위에게 상을 내리며 그를 다독이고, 모후에게 딸과 손녀를 본다는 명목으로 수시로 호연가를 찾아가 호연위와 교류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본디 제왕은 병권을 쥔 장수를 꺼리기 마련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그 법칙은 어긋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 감히 무슨 수를 쓸 수도 없었다.

호홍은 어쩔 수 없이 3대 문파를 찾았다. 그러나 지금 3대 문파에게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상황이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의 태도 또한 이도 저도 아니게 애매모호했다.

다들 보기에 호연무한은 크게 분노한 것처럼 보였다. 아들의 원수를 갚으려는 듯했다. 효과도 매우 뛰어났다. 호연무한은 한이 서린 사람처럼 조정을 무시하고 자신을 건드리는 사람들은 모두 다 쳐 죽이고 있었다.

조정에서조차 그를 어쩌지 못하고, 유희의 규칙도 호연무한에게는 쓸모가 없는데, 무슨 수가 있겠는가. 대충대충 하는 척만 하던 것이 호연무한에겐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실로 엄청난 공포만 형성되고 있었다.

이제 호연무한의 군령이 도착한 곳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호연무한은 또 순식간에 20만 병력을 만들어 고원달의 반란군도 막아섰다.

하지만 지금 제국 내부엔 이미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라가 이미 나라가 아니었으니, 확실히 기울어진 대세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어려워진 상황에, 이미 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국과 내통하고, 적극적으로 칼자루를 넘겨주며 의탁하려는 성의를 보였는지 모른다. 그저 호연무한의 행동으로 인해 다들 대놓고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을 뿐이었다.

진국의 병력은 멀리 있으니, 멀리 있는 물로는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법. 사실 지금 튀어나오는 사람은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에 불과했다. 설혹 한곳에 집결한다고 해도 다들 감히 호연무한과 싸우지도 못했다.

진국이 압박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암중에 수작을 부렸고, 긁어모은 병력은 고원달의 반란군에 계속 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고원달의 행군 속도를 어느 정도는 늦췄고, 먼저 출발한 제군과 후진군의 지원군을 위해 시간을 벌었다.

이 상황을 보고, 제국의 3대 문파는 약간 동요했다. 호연무한의 막 나가는 행동이 오히려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 더 이상 조정의 생사는 중요치 않았다. 더더욱 조정의 명령에 애매한 대응을 보였다.

호연무한은 바보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반란군을 저지하지 않으려는 수작질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 상황에 그 사실을 대놓고 폭로하진 않았다. 정말 저들과 반목하게 되면,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저들이 이런 식으로 놀겠다면, 호연무한도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호연무한은 이제 대군이 지나가는 곳에 있는 주부의 창고를 강제로 열고 군량을 챙기거나, 부호들이 몰래 숨겨놓은 곡식을 모두 착취하기 시작했다. 곡식을 숨기는 건 아무 소용 없었다. 곡식이나 머리, 둘 중 하나를 내놓아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그대로 반란을 일으키면 되었다.

호연무한도 충분히 선택권을 주었다. 정한 시간 안에 규정된 곡식을 가져오면 살려주고, 충분한 곡식이 없다면 반역하든 말든 알아서 하란 식이었다.

곡식을 내놓지 않고 머리를 내놓겠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또 반역을 일으킨다고 해도 언제든 어울려 주겠으니 시도해 보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과연 도망을 생각할 수 있을까. 군대의 척후와 밀정은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효기군의 공격 속도도 나쁘지 않았고, 호연무한에겐 수많은 수행자가 있었다. 심지어 제국 각지를 지키던 3대 문파의 수행자들은 나름 협조적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호연무한은 무장 출신이었다. 준비 없는 전쟁은 치르지 않았다. 손을 쓰기 전, 각지 수행자들에게 먼저 협조를 구했고 일부 사람들의 식솔을 인질로 사로잡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호연무한이 손을 쓸 때마다, 당하는 곳은 다들 허둥지둥하기 바빴다. 대응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애초에 호연무한이 이렇게까지 나오리란 건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슬슬 상장군과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감히 상장군의 대군 앞에 반역을 꾀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들 얌전히 곡식을 내놓았다.

또한 일부 조정 대신들 가옥에 쌓여있는 곡식 같은 건 기부라는 허울로 죄다 압수해 버렸다. 그래도 추후 조정이 갚아줄 것이란 인사는 잊지 않았다.

이미 사전에 보낸 밀정들이 사정을 다 파악했고, 뒤에 조정의 어떤 대신들이 있든, 일단 곡식만 발견하면 그대로 군대를 밀고 들어가 강제 기부를 받아냈다. 양 승상의 사람도 죽이는데, 다른 사람 눈치는 볼 필요도 없었다.

이렇듯 호연무한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오랫동안 대군을 유지할 수 있는 군량을 확보하고자 했다. 사실 이건 강도질과 다름이 없었다.

호연무한도 잘 알고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군량을 확보하자면, 여기저기 어려움을 호소할 뿐이었다.

나라가 망할 참이었다. 정말 다들 그렇게 어렵다면 호연무한은 직접 움직여서라도 어려움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 * *

제국 조당에도 분노가 가득했다. 호연무한에 대한 비판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하지만 그저 말뿐일 뿐, 누구도 호연무한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원래라면 3대 문파가 호연무한을 억제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들도 죽은척하기 시작했다. 이건 누가 봐도 호연무한의 행동을 묵인하는 것이었다.

제후들이 반란군의 저지에 수작질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호연무한은 오히려 행군 속도를 늦췄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호연무한의 대군은 이제 동과 서를 오가며, 경성으로 바로 향하지 않았다. 현재 호연무한의 목표는 군량 확보로, 오직 그것에만 집중하며 대군을 이끌고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다.

이 조직적이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강탈은 철저히 분업화돼있었다. 여기에 밀정의 사전 조사까지 있었으니 일반적인 강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 * *

진군 전방 중추.

고품은 내당에 조용히 앉아 보고서를 들고 한참을 침묵하고 있었다.

“호연무한이 지금 무슨 꿍꿍이인 건지 아시오?”

기운종의 장로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품은 깊은숨을 한번 들이쉬었다.

“뭐겠습니까. 지금 호연무한은 군량을 대대적으로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전을 벌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기운종의 장로가 코웃음을 쳤다.

“대단하군. 위풍당당한 제국의 상장군이 이제는 자국 곡식을 강탈하고 있다니. 그것도 직접 수백만의 대군을 움직여 곡식을 강탈하고 있지!”

고품은 들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고 의자에 천천히 기대앉았다.

“호연무한이 제국 조정에 상소를 올려 죄를 청했답니다.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무슨 의미인지 대략 알겠습니다. 정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군!”

그때, 한 장수가 안으로 들어와 급보를 전했다.

“보고입니다! 사령관님, 후진군도 제국 내부로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밀정의 보고에 따르면, 후진군도 부대를 몇 개로 나누어 각 주부의 곡식을 강탈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고품이 대경실색했다.

“뭐라? 다시 알아보아라!”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후진군은 이미 철수 중이었다. 목적은 역시 곡식을 강탈하기 위해서였다.

호연무한은 고품의 계책을 간파했다. 나조에게 전서를 보내, 대군을 후퇴시켜 곡식을 강탈하라고 전했다.

사실 이 큰 제국을 호연무한 혼자선 다 강탈하기도 힘들었다. 호연무한은 자신이 서쪽으로 움직일 테니, 나조에게는 동쪽으로 움직이라고 전했다. 목표는 단 하나, 충분한 군량을 모아 진국과 끝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호연무한은 결코 쉽게 패배를 입에 담을 생각이 없었다. 절대로 진국이 그리 쉬이 제국을 점령하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호연무한이 운을 떼고, 제국 각지에 있는 수행자들이 협조하니, 후진군에게는 어떠한 부담도 없었다. 나조도 즉시 철수해 여기저기서 곡식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고품은 이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야말로 매우 곤란했다. 이렇게까지 곤란해질 수도 없었다. 후진군을 굴복시키는 계책을 시행하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정말로 골치 아픈 문제가 눈앞에 닥쳤다.

진군은 계속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할까? 그건 적군이 천천히 군량을 모으는 것만 구경한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뛰쳐나가면 적군은 기다렸다는 듯 결전을 벌이려 할 터, 호연무한은 그야말로 엄청난 난제를 던졌다.

* * *

제군은 정비를 위해 잠시 멈췄다.

호연무한은 새롭게 마련한 곡식 앞에 서서 한 줌을 집어 살펴본 후,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요리하기 전에 반드시 잘 검사해라, 혹시라도 이번에 마련한 군량 안에 독이 있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좌우의 장수들이 포권을 하며 명을 받았다.

다들 희희낙락했다. 손에 먹을 것이 있으니, 두려울 것도 없었다.

호연무한은 곧 병사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3대 문파 장로들을 향해 다가갔다.

3대 문파 장로들은 호연무한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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