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8화. 원색을 돕다
세 장로와 호연무한은 한쪽에 있는 언덕 위로 올랐다.
“상장군, 반란군이 곧 경성에 도착할 것 같소. 조정은 이미 달궈진 철판 위의 개미처럼 난리를 치고 있지. 그런데 장군은 이처럼 시간을 끌며 가다 멈추고를 반복하고 있으니, 종문조차도 조정에 뭐라 할 말이 궁할 판이오.”
천화교의 장로가 말했다.
호연무한은 허리춤에 있는 보검의 검병을 움켜쥐고, 경성이 있는 방향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장로님께선 설마 아직도 경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번엔 대구문의 장로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성에 10만이 있소. 경성 방어시설이 견고하고 백성들도 충분하잖소. 우리 3대 문파 종문도 그곳에 있는데, 한 달은 족히 지킬 수 있을 것이오!”
호연무한이 고개를 저었다.
“인심이 흩어졌습니다. 아마 경성 내의 내통자들을 찾자면 끝도 없겠지요. 전에 제후들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저지선을 형성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장로님들, 저랑 내기하시겠습니까? 전 반란군이 도착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경성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열어 적을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에 걸지요.
만약 경성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 주력군이 조금 빠르거나 느린 건 아무 문제도 못 됩니다. 양쪽에서 가고 있는 지원군이 경성 수비군을 위해 포위를 풀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성이 지원군을 기다리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우리 주력군이 발이 닳도록 달려도 시간을 맞출 수 없습니다.”
경성에 내통자가 있다는 얘기에, 현병종의 장로가 발을 굴렀다.
“어째서 좀 더 일찍 말하지 않은 것이오?”
세 장로는 그 길로 종문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이윽고 사호가 가까이 다가왔다.
“장군께서는 경성의 수비에 자신이 없으십니까?”
호연무한이 고개를 저었다.
“하늘에 맡기세!”
사호는 다급해졌다.
“그럼 가문에 있는 식솔들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장군께서는 어째서 일찍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사호가 즉시 대비를 위해 움직이려 하자, 호연무한이 그를 불러세웠다.
“노호!”
사호가 뒤를 돌았다.
“내 식솔들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그 많은 식솔까지 다 경성에 있네. 자네는 그들 모두를 빼낼 수 있는가? 내 식솔들은 움직이면 안 되네. 그들이 움직이면 경성 수비군 군심이 그대로 흩어질 것이야.
위풍당당한 제국의 경성이네. 일국의 수도야. 이 나라의 힘이 결집된 곳일세. 10만의 수비군이 있고, 견고한 성벽이 있는 곳이네. 그곳이 만약 일개 반란군조차 막지 못한다면, 어찌 면이 서겠는가?
내 식솔이 경성을 떠나면, 백관의 식솔들도 즉시 도망갈 것이야. 백관을 그곳에 묶어두어야, 저들이 목숨 걸고 경성을 지킬 것이네.
진군은 아직 국경 밖에 있네. 도착하지도 않았어. 적군이 아직 발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데, 이대로 경성이 함락되도록 놔두자고? 그들은 반드시 그곳을 지키고 있어야 하네.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거길 지키고 있어야 해!”
사호의 얼굴에 고민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키지 못하면 어찌합니까? 가족들이 위험해지지 않겠습니까?”
호연무한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위험? 내가 군사를 이끌고 사방을 돌며 곡식을 강탈했네. 각 주부는 나중에 분명 수많은 백성을 착취할 것이야. 그러니 내 행동부터가 제국 백성에게는 재난과 같지. 참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네…….”
* * *
남주부성, 영무당 내부.
제군과 후진군의 새로운 움직임을 전해 들은 몽산명은 입을 다물었다.
실수다. 몽산명도 호연무한이 이런 짓을 벌일 줄은 몰랐다. 수백만 대군을 이끌고 자기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곡식을 강탈하다니. 심지어 후진군을 그 일에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상조종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일을 벌이다니, 분명 백성의 원성이 들끓을 것입니다. 나중에 설령 제국을 지켜낸다 해도, 그가 독자적으로 병권을 장악하고 한 지역의 제후가 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위로는 황제에게, 중간에는 만조백관에게,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수많은 원한을 샀습니다. 아마 3대 문파조차도 백성들을 달래려면 그를 죽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몽산명은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불파불립(不破不立)이라는 말이 있지요. 낡은 것을 파괴하지 않으면, 새것을 세울 수 없다……. 그저 호연무한이 성공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 * *
제경, 조용한 장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곽만이 문을 열었다.
밖에는 문을 두드린 사람과 함께 뒤로는 두립(*斗笠: 중국 전통모자)을 쓴 사람이 있었다. 천으로 뒤덮인 두립이라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곽만은 빠르게 문을 열어 두 사람을 안으로 들인 다음, 무심을 찾아가 보고했다. 잠시 후, 무심과 안보여도 신속히 밖으로 나왔다.
“사부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랬다, 방문객은 바로 귀의였다. 무심은 귀의에게 깍듯이 예를 차렸다.
귀의는 별말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자고 손짓했고 그렇게 두 사제는 함께 방으로 들었다.
* * *
방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귀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반란군이 곧 경성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는 전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여기 있을 작정이냐?”
귀의는 원래 원색에게 어울리는 눈을 찾으러 나왔다가, 이곳 상황을 듣고 특별히 무심을 찾은 것이었다.
무심은 침묵했다. 그도 사부가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온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무심이 알기로, 소유아는 조정에 의해 왕부에 연금당한 상태였다.
‘정말 반란군이 경성을 공격한다면? 경성이 뚫리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뚫리게 되면…….’
잠시 고민하던 무심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별일 없을 겁니다. 사부님 덕분이지요. 전쟁이 어떠하든, 이 경성이 누구 손에 들어가든, 여기 쳐들어와 절 난처하게 할 자는 없을 겁니다.”
귀의가 담담히 말했다.
“네가 날 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원색 성존이 나를 찾아와…….”
귀의는 원색이 안구를 고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명을 치료하는 사람들이다. 천리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지, 그러니 적당한 안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을 홀로 하려니 참 힘들구나. 원색이 계속 재촉하니, 이번에 네가 날 좀 도와줬으면 좋겠구나.”
무심은 이것이 핑계에 불과함을 알았다. 그가 여기 남아있으면 위험해질 수 있으니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것 같았다.
무심이 즉시 정색하며 말했다.
“제가 여기 남아서 사부님을 돕겠습니다. 얼마 후면 이곳에 수많은 사상자가 생길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적당한 안구를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리한다면 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요.”
귀의는 무심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귀의 역시도 제자가 그 여인을 잊지 못해 떠나지 않으려 한다는 걸 알았다. 무심의 답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얼마 후면 이곳에 수많은 사상자가 생길 텐데, 죽은 자를 이용하는 것이 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결국 귀의도 떠나지 않았다. 원색에게 적합한 안구를 찾는다는 이유도 있었고, 이곳에 머물면 무심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일의 배후에 원색이 있으니, 귀의는 그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 * *
남주, 밀실 내부.
밀서를 살피던 우유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중얼거렸다.
“원색을 위해 안구를 찾는다고?”
밀서는 곽만이 보내온 것이었다. 귀의와 무심은 관련된 준비를 하고 있었고, 곽만이 곁에서 거들고 있기에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우유도는 잠시 주변을 서성였다. 그도 원색이 외눈박이가 됐음을 알았다. 지난번 사여래가 보내온 서신에도 원색과 귀의의 일이 있었다. 당시엔 그 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접하기 어려운 약곡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유도가 코웃음을 쳤다.
“이럴 수가, 한 바퀴 돌아서 내 손에 떨어질 줄은 몰랐군.”
곁에 있던 운희가 물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원색을 도와 소망을 이뤄주려는 거지요.”
운희가 의아한 표정을 드러냈다.
“네가 그런다고? 혹시 귀의에게 원색을 암살하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
우유도가 웃었다.
“하하!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귀의가 그러고 싶다 한들, 그만한 배짱이 있을까요. 하지만 들어 보니, 원색 곁에 진정한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여인이 한 명 있다고 하더군요. 혹시 그 여인이 원색을 위해 안구를 하나 바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유도의 입가에 괴이한 미소가 어렸다.
곧 뒤돌아 서탁에 앉은 우유도는 잠시 고민하더니 붓을 들고 서신을 썼다.
입으로 불어 먹물을 확실히 말린 그가 운희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이제 슬슬 소평파도 일을 해야지요. 이일은 소평파가 가장 잘 처리할 겁니다. 여기 있는 내용대로 밀서를 만들어 소평파에게 보내주세요.”
운희는 당연히 참지 못하고 서신을 살폈다.
서신엔 원색이 귀의를 찾아 새로운 안구를 이식하려 한다는 것과 귀의가 원비의 안구로 원색을 치료하게 만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덧붙여 귀의가 제자 무심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는 당부도 특별히 남겨져 있었다.
* * *
서재 안.
소평파는 서탁에 앉아 서신을 한참이나 살펴보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소삼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가무군이 아가씨를 어쩌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소삼성조차 알아본 것을, 소평파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귀의가 제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걸 특별히 언급했다. 이는 나더러 무심을 통해 수작을 부리란 말이 아니냐. 그 무심은 유아를 신경 쓰고 있고.”
소삼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무설이 상황을 손금보듯 파악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가씨를 휘어잡으면 그건 곧 무심을 휘어잡는 것이고, 무심을 휘어잡는다는 건 귀의를 좌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원색의 심복에게 수작을 부리는 일입니다. 귀의가 감히 그럴 배짱이 있겠습니까?”
“그걸 내 어찌 알아? 난 원색의 상황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데.”
소삼성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무설이 이처럼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면, 어째서 공자님께 이번 일을 맡긴 것입니까?”
“유아가 내 누이이니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가 움직일 거다. 그가 움직인다면, 유아에게 어느 정도 강제로 수작을 부릴지 가늠도 되지 않는구나. 하지만 내가 움직인다면 나는 더 깊이 빠져들게 되겠지. 남도림의 일도 있고, 이제는 원색이 있구나…….”
소삼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색의 심복에게 수작을 부리는 것이 소용이 있는 일입니까?”
“그래봤자 이간계 같은 것이겠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소란을 일으키려는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원비를 이용해 뭔가를 하려는 것일 것이다. 이래저래 이 몇 가지 가능성이 다일 것이다. 일단 남명을 만나봐야겠다. 그에게 최근 원색과 원비의 상황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
소평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고원달의 반란군이 곧 제경을 공격하려 한다. 너는 유아 쪽 상황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신이 특별히 흑수대 쪽에 당부했으니, 아가씨가 다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