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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01화 (800/1,000)

1701화. 호연위, 드디어 출격하다

관원 일부는 성벽 끝으로 달려가 아래에서 울부짖는 식솔들을 확인했다.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누가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이내 한 사람이 호연위 앞에 다가가 포권을 하며 애원했다.

“통령, 제 가족들입니다. 딱 한걸음 늦었을 뿐입니다. 통령, 제발 은혜를 베풀어 수행자들에게 저들을 데려오게 해주십시오!”

호연위는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피 칠갑에, 수염엔 아직도 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그 붉은 핏빛 얼굴로 더 굳건히 소리쳤다.

“명을 받아라, 궁문은 이미 닫혔으니, 그 누구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자가 무슨 신분이든, 난입하는 자는 목을 칠 것이다!”

관원은 경악했다.

“당신…….”

“여봐라, 이들을 끌고 가 가두어라!”

호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크게 흔들며 외쳤다.

“호연위! 네놈이 직권을 남용하여! 직권을 남용하여…….”

소리치던 사람들은 결국 병사들에게 강제로 끌려 내려갔다.

호연위는 이제야 얼굴의 피를 닦아내며 장탄식을 내뱉었다. 그도 자신이 조정의 대신을 죽일 것이라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사람들 앞에서 어떤 잘못도 없는 조정 대신을 죽였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조정 관리들 식솔뿐만이 아니라, 도망갈 곳 없는 수많은 백성이 관원들의 식솔들을 따라 황궁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저 멀리엔 여전히 적군이 몰려들고 있었다.

호연위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궁수들은 화살을 날려라! 저들을 내쫓아라!”

“통령, 아래 있는 사람들은 관원들의 식솔이고, 경성의 백성입니다.”

한 부장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호연위는 다가오는 적군을 가리켰다.

“지금 저들을 해산시키지 않으면, 적군이 도착했을 때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네. 지금 도망친다면,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다시 소리쳤다.

“궁수들은 활을 쏴라!”

이내 궁수들이 일렬로 나와 활을 쏘았다. 화살이 쏟아지며 성벽 아래에선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화살에 맞은 사람들은 쓰러져 비명을 지르거나, 가족들을 이끌고 도망쳤다. 성벽 아래에 있는 모두가 절망을 품고 달아나고 있었다.

호연위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원한을 보았다. 전쟁의 잔인함을 이리 깊이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그가 직접 명령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이 처음 전장에서 적을 베어 넘길 때보다 더 잔혹하게 느껴졌다.

잠시 생각을 멈춘 그는 뒤돌아 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먼저 들여보낸 사람들은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 내린 것이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한곳에 모아 감시하게.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그 안에 간자가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만약 말을 듣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자의 신분이 무엇이든……. 참하게.”

“알겠습니다!”

장수가 대답했다. 그는 떠나기 전, 호연위를 한번 더 돌아보았다. 셋째 도련님이 한순간 철이 든 것 같았다.

사실 호연위도 외부의 강요로 바뀐 것뿐이었다. 지금 그는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야 했다. 저렇게 높은 성벽도 적군에게 뚫렸는데, 과연 이 황궁의 성벽이 적군을 막을 수 있을까? 내일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호연위의 마음도 걱정으로 혼란스러웠다.

* * *

차불지 일행은 영왕 호진 등을 보호하며, 골목들을 통해 황궁으로 가고 있었다. 일단 일행은 황궁으로 들어가 위험을 피하고자 했다. 지금으로선 황궁이 여기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호진과 소유아도 화려한 옷을 벗고 일반 백성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 지금 경성엔 온갖 간자들과 강도들이 들끓고 있으니, 너무 눈에 띄게 입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그때,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님!”

일행이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유아는 멈칫하더니 의아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곽만?”

일행은 곽만이 다가올 수 있도록 길을 내주었다.

“왕야, 왕비님, 적군이 성벽을 타고 넘어왔습니다. 황궁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차라리 저희 거처로 가서 피하시지요. 귀의 선생님도 계십니다. 아마 적군도 경거망동하지 못할 테니 지금은 그곳이 황궁보다 안전합니다.”

소유아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져 이를 악물었다. 그녀도 알았다. 이런 일을 곽만이 결정했을 리가 없었다. 이는 무심의 뜻으로 추정되었다.

이내 호진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괜찮겠소?”

사실 그는 황궁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호홍의 손바닥 안이었다. 위기에 처한 호홍이 무슨 짓을 할지,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곽만은 미소를 보였다.

“무심 선생님께서 왕비님께서 줄곧 적지 않은 약재를 보내주시어 이를 보답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왕야, 왕비님,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서 더 늦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호진은 괜찮겠냐는 눈빛으로 차불지 등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차불지가 즉각 호진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황궁에 들어간다면, 저희는 종문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호진도 의미를 알아들었다. 더 안전한 곳이 있으니 여기서 굳이 억지를 부릴 필요가 없었다. 호진은 곧 곽만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참으로 고맙소.”

곽만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면 될 것입니다. 어서, 저를 따라오시지요.”

일행은 빠르게 곽만을 뒤따랐다.

* * *

하지만 장원에 도착했을 때, 무심은 여타 사람들의 출입은 허락지 않았다. 하인들은 당연히 안됐고, 차불지 등 수행자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무심은 오직 호진 부부와 아이들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호진의 전 왕비가 낳은 남자아이 2명이었다.

차불지 등도 특별한 거부 반응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들도 종문으로 돌아가 새로운 명령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군말 없이 떠났다.

그리고 호진은 나머지 하인들에게 일단 각지에 숨어 있으라 명했다.

밖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곳은 귀의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귀의는 원색이 지시한 일을 처리하는 중이었기에 누가 와도 물리칠 당당함이 있었다.

곧이어 무심이 안보여와 함께 나타났다.

호진 부부는 즉시 아이들을 불러 같이 인사를 했다.

“무심 선생님.”

무심을 보는 소유아의 눈빛이 다소 복잡했다. 이게 어떤 심정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한 이 남자의 감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되돌아갈 수 없었다.

이내 무심은 손사래를 치고는, 소유아가 안은 아이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는 소유아의 아들을 처음 보았다.

곧 정신을 차린 그가 뒤돌아 명령을 내렸다.

“이분들을 측원(測院)으로 안내해라.”

곽만이 바로 그들을 안내하려는데, 호진이 입을 열었다.

“귀의 선생님도 여기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혹시 인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는 외부인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무심이 담담히 말했다.

“예, 선생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호진이 포권을 했다.

그때, 검은 천으로 가려진 두립을 쓴 무상이 홀연히 다가왔다.

“이분께서 왕비님이시지요? 사부님께서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호진은 깜짝 놀랐다. 상대방이 말한 사부님이 귀의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귀의가 맞다면 그가 소유아를 왜 만나려 한단 말인가?

호진은 당연히 귀의의 목적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귀의는 제자를 그토록 홀린 여인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얼굴이나 한번 보려는 것이었다.

* * *

“폐하, 참으로 참담한 마음입니다. 이 중에 하나를 고르시지요.”

환관 몇몇이 호운도가 연금된 곳에 들어왔다. 선두에 선 사람은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흰 비단 천과 독주가 올려져 있었다.

성문이 뚫린 여파가 너무 컸다. 병사들의 군심과 사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누군가는 끝까지 항전하고, 누군가는 즉시 항복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성벽 밖으로 줄을 타고 내려가 도망쳐 버렸다.

제국의 3대 문파는 더는 이곳에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희망 없는 곳에서 주력을 소모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3대 문파가 황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데려갈 순 없었다. 사실 그런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일부 중요 인물만 데려가기로 했다.

그 부분에서 호홍과 3대 문파의 의견이 충돌했다. 철수한다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당연히 호연무한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럼 호운도를 데리고 호연무한에게 가나? 호홍은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호운도는 명목상 황제였다. 그리고 황태자 호홍이 일단 경성의 세력을 잃고, 백관의 지지를 잃으면 호연무한에게 갔을 때 과연 그는 황태자인 호홍을 따를까, 황제인 호운도를 따를까. 답은 하나뿐이었다.

일단 호연무한이 누굴 따르든, 그런 상황에서 3대 문파가 다른 의견이 있을 리 없었다. 호연무한이 호운도를 따르겠다면, 황태자의 최후가 어떠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로 인해 지금 이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참을 빤히 바라만 보던 호운도는 갑자기 냉소를 지었다.

“그 역적놈 아들은 경성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칠 준비 중인가 보군.”

선두에 선 환관이 말했다.

“폐하, 어서 가시지요. 여기서 시간을 끈다면 저희가 도움을 드려야 하고, 그 모습은 가히 보기 좋지 않을 것입니다.”

좌우에 있는 환관이 그 즉시 앞으로 나서서 호운도를 포위했다.

“과연 짐의 아들이로다! 참 착한 아들이로다!”

호운도는 별말이 없었다.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이처럼 천한 이들에게 모욕을 당하느니, 화끈하게 가는 것이 나았다.

이내 호운도가 천천히 독주를 그러쥐고서 화끈하게 마시려던 그때였다.

갑자기 일단의 병사들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호연위였다. 호연위가 금위군을 데리고 이곳을 찾아왔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호연위는 쟁반 위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직도 얼굴에 붉은 핏물을 매달고서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뭘 하는 것이냐!”

결정적인 순간에 사위가 도착했다. 독주를 손에든 호운도는 흥미로운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의 환관들은 크게 당황했다. 곧 선두에 있는 환관이 급히 나섰다.

“통령, 저희는 명을 받들어 행하고 있습니다. 통령께서는……. 저……, 저희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헛소리!”

호연위는 크게 분노하며 허리춤의 보검을 뽑아 그대로 환관의 가슴에 박아넣었다. 뒤이어 금위군도 도검을 빼 들고, 현장에 있는 환관들을 모두 끌고 나가 죽여버렸다.

곧이어 호연위가 보검을 집어넣고, 호운도에게 예를 갖췄다.

“소장이 늦어, 폐하를 놀라게 해드렸습니다.”

자신의 착각이려나? 호운도가 보기에 왠지 모르게 사위의 기세가 예전과 달라 보였다. 그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흐흐……. 얼굴에 피 칠갑을 하고, 어째 직접 적과 싸우기라도 했더냐?”

“폐하, 저를 너무 높게 쳐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게 그런 능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밖은 가문의 장수들이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금위군을 지휘해 적군의 공격을 막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따라 수많은 전장을 전전한 장수들입니다. 비록 다들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그 경험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지요.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호운도가 크게 웃었다.

“이제야 조금 점잖아졌구나. 네가 처음 전쟁을 겪고 돌아왔을 때, 얼마나 허풍을 쳐댔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구나!”

호연위가 민망해했다.

“폐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서 저와 여길 나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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