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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02화 (801/1,000)

1702화. 제왕의 냉혹함

호운도는 손에든 독주를 한번 보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이놈들이 방금 명을 받고 왔다고 했다. 어째, 믿지 못하는 것이냐?”

호연위는 수염을 긁적이며 눈동자를 때구루루, 굴렸다.

“전 어리석어 많은 일을 제대로 일을 분별하지 못해 수시로 아버지께 얻어맞고는 합니다. 폐하께서 제게 물어보셔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때, 한 여인이 보검을 들고 날아들었다. 호청청이었다.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그 즉시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밖에 호위조차 없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뛰쳐 들어온 것이었다.

그녀는 대전 안의 상황을 보고, 죽어있는 환관을 한번 보았다. 특히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흰 비단을 유심히 보았다. 호청청은 황궁에서 자란 공주였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호청청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황!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네 남편이 나를 살렸구나.”

호운도가 한마디 하고는 다시 호연위를 빤히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내가 볼 때 넌 아주 잘 알고 있다. 그저 밝히고자 하지 않을 뿐이지. 말해봐라, 넌 금위군 통령으로서 금위군을 지휘해 적을 막지 않고 어째서 여기에 나타난 것이냐?”

호연위가 조용히 웃었다.

“아버지께서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누군가 폐하를 시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오직 저만이 3대 문파를 제지할 수 있으니 제가 목숨 걸고 폐하를 지키기만 하면 3대 문파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궁중에서 감히 폐하를 해할 자가 없을 것이라 하셨지요.

저도 어찌 된 일인지는 모릅니다. 그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방금 수하들이 이 개자식들이 몰래 움직이는 걸 발견해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전 즉시 달려온 것이지요. 자초지종은 이러합니다.”

호연위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두 말한 것은 아니었다. 황제의 아들이 그 아비를 죽이려 한 일이었다. 그는 황가 내부의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호연가의 가정 교육과도 연관이 있었다.

오히려 호청청이 묵묵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오라버니가 부황을 죽이려 하다니, 황위를 찬탈한 것도 모자라 친 오라버니가 친 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원래 마냥 고집불통이었던 호청청은 최근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많아졌다.

호연위는 지금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가 정말 모르는지, 가짜로 모르는 척하는 건지 호운도도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만, 그 자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경을 잃어버렸다. 제국의 주력군을 이끄는 호연무한은 이제 3대 문파의 마지막 패가 되었다.

호운도는 이제야 호연무한이 어째서 아들 호연위에게 호홍의 명을 따르라고 했는지, 금위군 통령이 되는 것을 허락했는지 알 수 있었다.

호연위가 황궁의 병권을 쥐고 있기만 하면, 금군을 통제하고 있기만 한다면 호운도는 안전할 수 있었다. 호연위의 보호 아래 있다면 황궁 호위, 환관, 궁녀 누구 하나 감히 호운도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

일반인은 제외하더라도, 수행자 역시 호연위가 목숨 걸고 지키기만 한다면 3대 문파조차도 호연위를 거칠게 대할 수 없었다.

호운도는 내심 탄식을 내뱉었다. 병법의 대가, 제국의 상장군다웠다. 진작부터 조용히 후수(後手)를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호연무한은 호홍을 다독였을 뿐만 아니라, 암중에 군령을 장악해 주군을 보호했다. 호운도는 호연무한이 어쩔 수 없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 그 순간을 상상할 수 있었다. 과연 호연무한은 황제와 제국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 최선을 다했다. 호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독주를 등 뒤로 던져버렸다.

“짐의 상장군은 역시 짐을 실망 시키지 않았다!”

호연위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폐하, 3대 문파가 철수하고자 합니다. 수행자들이 철수하면 금위군으로는 황궁을 지킬 수 없습니다. 긴급한 상황입니다. 폐하, 지체하지 마시고 소장과 같이 떠나시지요. 소장이 목숨을 걸고, 3대 문파가 폐하를 모시고 철수하도록 만들겠습니다. 폐하께서는 무사하실 것입니다!”

“음!”

소매로 눈물을 닦아낸 호청청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의 표시였다. 부부가 된 후, 이토록 망설임 없이 남편의 의견에 동의한 것은 처음이었다.

호운도가 손짓했다.

“가자, 나가서 상황을 한번 보자꾸나.”

“폐하를 호위하라!”

호연위의 호령에, 금위군이 대열을 만들어 황제 호운도의 주위를 둘러싸고 호위를 시작했다.

* * *

호운도는 소매가 펑퍼짐한 하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등 뒤로 늘어뜨린 채 성큼성큼 걸었다.

“호연위, 진군과 싸우는 상장군의 상황은 어떠하더냐?”

“아버지께서는 이미 철수를 명하시어…….”

호연위가 바깥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호운도는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상장군이 국내 곡식을 강탈하다니. 상황이 그토록 악화됐을 줄이야…….”

호연위가 다급히 말했다.

“폐하, 빨리 움직이셔야 합니다. 형제들도 오래 막을 수 없을 겁니다.”

호운도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위 성벽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쉬며 소리를 높였다.

“호연위는 명을 받아라!”

호연위는 멈칫하더니, 즉시 포권을 하며 답했다.

“예! 소장, 여기 있나이다.”

호운도가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실어 명령했다.

“금위군은 지금 즉시 후궁에서 데려갈 수 없는 비빈들은 모두 죽여라. 지금 당장 집행해라. 적군이 황궁에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완수해라!”

“부황!”

호청청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호운도는 손을 들어 딸의 말을 막았다.

호연위는 다소 망설였다.

“폐하, 데려갈 수 없다고 모두 죽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저 자생 자멸하게 놔둔다면, 어쩌면 살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호운도가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살길? 너도 잘 알겠지만, 반란군이 황궁에 들어오게 되면 여인들이 어떤 모욕을 당할지 잘 알 것이다. 짐이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고, 짐의 여인들까지 치욕을 보이란 말이더냐?

그래, 살기 위해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짐이 용납할 수 없다. 또 데려갈 수 없는 황자, 공주들. 짐의 아이들도 적군에게 치욕을 당하게 할 수 없다, 같이 죽여라!”

호연위는 무겁게 변한 눈빛으로 입술만 쩍 벌렸다.

“그것이…….”

호운도의 목소리도 굳어졌다.

“어명을 거부할 참이더냐?”

“소장이 어찌 감히! 소장, 명에 따르겠습니다!”

포권한 호연위는 이를 악물고 곁에 있는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처리해라! 시간이 없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모두 처리하거라!”

“알겠습니다!”

수하들이 빠르게 달려 나갔다.

* * *

정궁대전 밖.

수많은 후궁이 운집해 있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후궁들은 수행자들로 인해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 서 있었다.

이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철수하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자신들을 놓고 갈까, 이렇게 달려와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들 알고 있듯, 철수에 사용될 날짐승의 자리는 제한이 있었다. 모든 사람을 다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아마 대부분은 여기 남겨지고, 일부만 데리고 갈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일부 후궁들은 의도적으로 호운도의 자녀를 데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황가의 골육이란 점을 고려해 탈출 대오에 합류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쿵쿵!

그때, 갑자기 소리가 요란해지더니 일단의 금군들이 뛰어 들어와 그들을 모두 다 포위해버렸다.

포위된 후궁들은 매우 놀랐다. 병사들이 왜 자신들을 포위하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내 대전 안에 있던 3대 문파의 장문인들과 호홍, 황후를 포함한 사람들은 밖의 소란에 빠르게 입구로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냐!”

호홍이 바깥 상황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금군이 창칼을 겨누며 후궁들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호홍의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곧 다시 대전 한쪽이 소란스러워졌다. 호홍 일행은 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머리를 풀어 헤친 호운도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 좌우엔 호연위와 호청청이 따르고 있었다.

3대 문파의 장문인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호홍과 황후는 안색이 급변했다. 엄청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호홍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목적 달성에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호홍은 다시 이미 통제권을 다 잃어버린 듯한 금위군을 바라보았다. 절로 마른침이 꿀꺽 삼켜졌다. 가슴속에선 알 수 없는 공포가 치솟고 있었다.

“폐하! 폐하…….”

포위된 후궁들이 여기저기서 호운도를 불렀다.

호운도는 걸음을 멈춘 뒤, 금군이 포위한 후궁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분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이제는 그 부귀영화의 대가를 받을 때다. 너희가 먼저 가서 짐을 기다리거라!”

제왕은 곧 고개를 돌리며 명했다.

“손을 써라!”

호연위는 남몰래 한숨을 쉬곤, 수하 장수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받은 장수는 손을 크게 내저으며 소리쳤다.

“죽여라!”

창칼은 무정했다. 포위한 그대로 창칼을 내지르니, 선혈은 사방으로 갈피 없이 튀었다. 다들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려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갑자기 이 같은 참사를 맞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폐하! 부황…….”

귓가엔 참담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다들 죽어가며 슬피 울부짖었다.

하지만 호운도는 무표정한 얼굴로 꿋꿋이 서 있었고, 호청청만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대전 안에 있는 아이들, 철수할 자격이 있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재빨리 그 눈을 가린 채 빠르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3대 문파의 장문인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있던 수행자들도 다들 서로를 돌아보았다.

호홍과 황후의 안색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창백했다. 다리엔 자꾸 힘이 풀려서, 곁에 부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진작 주저앉았을 수도 있었다.

비로소 비명이 그쳤다. 금군은 뒤로 물러나 혹시 놓친 사람이 없는지 황궁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핏물이 묻어나는 황궁……. 호운도는 장발을 휘날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온통 핏물을 머금은 붉은 웅덩이였다.

그렇게 시신 사이로 걸어와 계단 앞에 도착한 제왕은 앞을 가로막는 수행자를 밀어내곤 그대로 계단을 올랐다.

이내 호운도는 모자 앞에 섰다. 황후와 호홍 모두 두려움에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호운도는 호홍은 무시한 채, 황후를 빤히 바라보았다.

“두렵더냐? 짐의 왕비이자, 본디 제국의 황후였을 여인이 짐의 눈앞에서 죽었다. 바로 저들이 죽어있는 저곳에서 쓰러졌지.

반란군이 포위해오며, 시신이 산처럼 쌓였고,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그러나 짐의 왕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으로 화살을 막아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었지, 그렇게 짐을 구했다.

너는 짐의 왕비 덕분에 오늘날 제국의 황후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스스로를 보아라, 너는 네가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하느냐?”

호운도는 황후를 멸시했다. 그 눈빛은 황후의 뼛속까지 파고들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곧 호운도가 3대 문파의 장문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밖에 적들이 공격해 들어 오는 소리가 들리오. 곧 있으면 황궁의 성벽도 버티지 못하겠지. 데려갈 수 없는 자들은 짐이 모두 처리했소. 떠날 거면 서두르는 것이 좋겠소.”

세 장문인은 계단 아래 있는 시신들을 보았다. 이 제왕의 냉혹함과 무정함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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