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5화. 참으로 난처하도다!
원강은 계속해서 대전 안의 부녀를 보고 있었다. 문제가 심각했다. 혼자 힘으로 세 사람이나 데리고 천군만마를 돌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반란군에게는 수많은 수행자가 있었다. 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 한 사람을 데리고 돌파한다고 해도 사방팔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을 모두 막아낸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원강 혼자서도 돌파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밀고 들어온 건, 마음에 거리낌을 남기지 않겠다는 원강의 용기였다.
방법이 없었다. 일단 황제는 차치하더라도 호연위에게 아내를 두고 도망가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죽여라!”
반란군이 쏘아져 오며 창검을 겨누고 원강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원강은 즉각 고개를 돌리고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렇게 호연위를 벽이 있는 곳까지 밀어붙이곤, 원강은 손에든 칼을 번쩍번쩍 휘둘렀다.
여기저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방팔방에서 원강을 향한 창칼이 날아들었지만 끝내 그의 몸은 뚫지 못했다. 반면, 원강이 길게 휘두른 칼에는 주위의 그 수많은 반란군이 너무도 손쉽게 잘려 나가고 있었다.
현재 금위군은 전멸하다시피 했고, 반란군은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나 원강은 굳건히 대전 앞을 지키며, 미친 듯 칼을 휘둘렀다. 가까이 다가오는 자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호연위도 곁에서 검을 휘두르며 적을 공격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은 있는지 몇 명 정도는 처리할 수 있었다.
수많은 반란군이 쓰러지고, 드디어 더는 두려움에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미 혈인(血人)이 된 원강이 칼을 휘두르면, 계단을 올라오던 반란군들은 다급히 뒤로 물러나기 바빴다.
계단 아래, 일단의 궁수들이 앞으로 나섰다. 쏘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동시에 하늘을 뒤덮은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원강은 지지 않고 칼을 연달아 휘둘렀다. 그는 오로지 눈과 같은 급소만 보호했다. 화살도 계속 원강의 몸에 맞고 바닥에 떨어지길 반복했다.
그런데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에 원강이 다급히 뒤를 돌았다. 그곳엔 코와 입에서 피를 쏟는 호연위가 있었다. 그는 이미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박힌 채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원강은 최선을 다해 호연위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혼란스러운 와중에 좌우 양익에서 불시에 발사된 화살까지는 미처 막지 못했다. 이건 포위당해 혼전이 되면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 방위는 없었다. 당연히 그 모든 걸 막을 순 없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는 자체가 이미 죽음을 자초한 것이었다.
원강도 구해야 하는 세 사람을 앞에 두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윽고 원강은 뒤돌아 날아오는 화살을 등지고 바닥에 쓰러진 호연위를 보호했다. 그러나 호연위에겐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선연했다.
대전 안에서 춤을 추던 호청청도 남편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바닥의 호연위는 피를 토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빛과 입가엔 너무도 참담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아프군! 아파……. 죽을 만큼 아파! 원 형, 난 이런 최후를 바라지 않았소. 딱히 뭔가 큰일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지.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나를 질책하며, 향상심을 가지라 하셨소.
장군은 전장에서 죽기 마련이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소. 역시 피할 수 없었어. 더욱이 내가 지금처럼 제국의 금위군 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이오!
빌어먹을, 난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소. 나도 두렵단 말이오. 도망갈 기회도 있었지만……. 우리 형들 모두가 영웅으로 죽었소. 내가 이대로 도망친다면 우리 형들이 목숨을 다해 지킨 명성에 금이 가겠지.
누가 살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었소. 참으로 난처하지 않소? 참으로…….”
호연위는 원강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대전 안에서 호청청이 크게 울부짖었다.
“이 멍청이! 난 다시 태어나도 너랑 혼인할 거야!”
“아니!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재수 없게 너와 혼인하게 된 건지. 다음 생이 있다면, 최대한 나한테서 멀어져…….”
호연위의 음성이 서서히 꺼져갔다. 원강의 옷을 부여잡은 손에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연위는 다시 목에 힘을 주고, 피를 쏟으며 말했다.
“황제는 죽고 싶어 저러는 것이니, 내가 목숨을 내어놓고 그 곁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해, 이 정도면 우리 호연가는 할 만큼 한 것이지. 그러니 신경 쓸 필요 없소. 하지만……. 구해……, 아이 엄마……, 저 사람을 구해…….”
그렇게 호연위의 머리가 푹, 꺾였다. 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원강은 붉어진 눈시울로 불길 속에서 눈물의 춤사위를 펼치는 호청청을 돌아보았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원강은 그 안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지금 수행자들은 이처럼 많은 화살비를 맞고도 멀쩡한 것에 경악하고 있었다. 다들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하지만 바로 그때,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기둥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원강이 빠르게 칼을 휘둘러 잘라냈지만, 호청청을 구할 시간은 부족했다.
수없이 날아와 꽂힌 화살에 지붕이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했다.
결국 대전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대전은 그 안에서 처량한 미소를 띠고 춤을 추던 공주와 옥좌에 앉아 있던 제왕을 같이 묻어 버렸다.
대전이 무너져 내리자, 궁수들도 더는 화살을 쏘지 않았다.
반란군은 대전을 삼키며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연기가 좀 가라앉았을 즈음, 불빛에 반사되는 칼을 들고 불바다 앞에 조용히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불똥이 사방을 날아다녔다.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처럼 쌓인 폐허만이 눈 아픈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뜨거운 불길이었다. 불바다 앞에 서 있는 느낌은 불에 직접 타들어 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불길은 육신을 고통스럽게 태웠다. 옷과 털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는 원강은 여전히 조용히 침묵하고 서 있었다.
호연위가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한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원강의 옷은 수많은 구멍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모두 화살에 맞아 생긴 구멍들이었다.
한참이 지나, 원강이 조용히 일어났다. 호연위에게 다가간 그는 잠시 바라보다 땅에 칼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몸을 굽혀 호연위의 몸에 꽂힌 화살을 다 뽑아내곤 그대로 안고 일어나 불바다로 다가갔다.
멀리 떨어진 반란군과 수행자들은 그 장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원강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
황궁은 이미 점령당했다. 황궁의 마지막 수비 병력도 그들에 의해 모두 토벌되었다. 그들은 이제 급할 것이 없었다.
불바다 앞에 선 원강은 멈춰서, 잠시 수염 가득 붉은 피를 묻힌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불바다 속에 시신을 던져 넣었다.
평소 반란군쪽에선 전쟁시 시신을 가지고 위세를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원강은 호연위의 시신이 다시 적들에게 모욕당하고 이용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호연위를 불길 속에 던졌다. 어쩌면 호청청과의 재회를 위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원강은 곧 불 속에 떠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뒤돌아섰다. 그런 뒤 땅에 박아놓은 칼의 도병을 다시 뽑아 들었다.
이내 계단 앞에 선 원강은 아래의 반란군을 가만히 쓸어 보았다.
“당신 대체 누구요! 신분을 밝히시오!”
영허부의 장문인 상임선이 소리쳤다.
원강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고(顧)’라고 적힌 깃발 아래 있는 장군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목표는 고원달이었다.
목표를 낙점한 사내는 그대로 뛰어올라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수행자들이 당연히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는 없었다. 운집한 반란군들 사이에 끼어있던 수행자들도 어쩔 수 없이 원강의 앞을 가로막았다.
“컥……!”
비명이 들려왔다. 혈육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원강이 도광을 휘날리며 파도를 가르듯 반란군을 뚫고 나갔다. 감히 그를 막아설 자는 없었다.
원강이 쏘아져 오는 것을 보고, 주장의 깃발 아래 있는 사람들도 그가 고원달을 목표로 날아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과연 가까이 다가온 원강은 갑자기 뛰어올라 허공에서 칼을 휘두르며 깃발이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과거 위국 3대 문파 장문인들이 즉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안장 위에 앉아 있는 고원달을 붙잡고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원강에게는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능력이 없었다. 여전히 예정된 곳으로 떨어져 내렸고, 원강이 내려서자 주위 수많은 수행자가 원강과 뒤엉켰다.
수행자들은 원강의 흉맹한 공격력을 직접 보았기에, 원강과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았고 주위를 돌며 원강을 타격하려 했다.
그 시각, 세 문파의 장문인들은 이미 고원달을 호위하며 후방에 있는 성곽 위에 내려서 있었다.
원강은 주위 수행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억지로 밀고 나갔다. 그렇게 성곽 아래 도착한 원강은 다시 성곽 위로 뛰어올랐다. 꼭 사람이 아니라 이리저리 쏘아져 나가는 대포를 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원강이 도착하기 전, 그들은 이미 고원달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에 있는 날짐승은 그들을 태우고 더 높이 날아올랐다.
* * *
성곽 위에 내려선 원강은 하늘에 있는 고원달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속에 있는 이 비통한 심정을 풀 곳이 없었다. 원강은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고원달!”
공중을 맴돌던 날짐승들이 순간 통제력을 잃어버렸고,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수행자들은 다급히 지령을 흔들어 날짐승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때, 일단의 늙은이들이 하나둘 성곽 위에 내려서 원강을 포위했다. 누군가는 쇠사슬까지 들고 있었다. 바로 위국 3대 문파의 태상 장로들이었다. 원강이 상대하기 어려운 자임을 알고 직접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원강은 즉시 칼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순간 뒤돌아 칼을 내리그었다. 그러자 그를 향해 날아오던 장강이 원강의 칼과 부딪혀 터져나갔다.
원강이 다시 곧바로 한 사람을 향해 쏘아져 나갔으나, 그는 원강과 맞부딪힐 생각이 없는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때, 쇠사슬 몇 가닥이 원강에게 날아들었다. 원강은 또 즉각 몸을 뒤틀며 칼을 내리그었다.
까강-!
폭음과 동시에 불똥이 튀었다.
지금 원강을 포위한 늙은이들은 원강의 공격에 직접 대항하지 않고, 그저 주위를 맴돌며 괴롭히기만 했다.
결국 원강은 사방팔방에서 오는 수많은 공격을 피하지 못해서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게 되었다.
그 순간, 한 사람이 법력을 이용해 쇠사슬을 날려 원강의 양발을 묶었다. 거기에 힘까지 써서 원강을 빠르게 뒤로 날려 버렸다.
원강은 몸을 뒤틀어 칼을 강하게 휘둘렀고, 발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끊어냈다. 하지만 그렇게 다급히 움직인 탓에 적에게 다시 기회가 생겼다. 거의 동시에 원강의 양팔이 쇠사슬에 붙잡혔다.
두 늙은이는 그 즉시 양쪽에서 쇠사슬을 하나씩 붙잡고 잡아당겼다.
원강은 잡아당기는 힘을 이용해 그대로 하늘로 뛰어오르며 양팔을 강하게 반대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법력으로 원강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던 두 늙은이는 발아래 땅을 부수면서 그대로 끌려갔다.
다시 두 늙은이가 좌우로 한 명씩 더 달라붙었고, 그제야 흔들리는 쇠사슬을 겨우 진정시켰다. 이제는 원강의 양팔도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