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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07화 (806/1,000)

1707화. 재현(再現) 삼후도

반란군은 경성 질서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이는 경성의 방어 병력을 정돈하는 것이기도 했다. 밤새워 준비한 이유는 토벌군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성벽 위, 역용한 무심과 안보여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원색을 위해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명분이 있어, 전장의 사람과 암중에 소통하며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 덕분에 수비군과 수행자들을 뚫고 성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안보여는 무심의 팔을 잡고 성벽에서 뛰어내린 후, 짙은 밤하늘에 기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 * *

이윽고 무심과 안보여는 경성에서 수십 리 떨어진 한 마을에 도착했다. 전쟁통이라 그런지 마을은 이미 사람의 흔적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누군가 나타나 안보여를 막아섰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무심뿐이며, 안보여에게는 이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안보여는 우려를 표했으나 무심은 그녀에게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그 후, 또 누군가 나타나 길을 안내했다. 그자는 무심을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로 안내했다.

* * *

환하게 밝혀진 건물 안에는 한 사람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들어오는 무심을 보며 혀를 차며 웃었다.

“허어, 정말 올 줄이야.”

무심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앉아 있는 사람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모르는 게 정상이지. 평소라면 나도 네가 보고 싶다고 함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날 소개하지, 난 과거 무변각 각주였던 남명이다!”

무심의 동공이 빠르게 수축했다. 표정은 거의 경악에 가까웠다. 그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남 선생님이 어째서 왕비를 납치하신 겁니까?”

“자네같이 작은 인물은 나처럼 큰 인물이 하는 일을 이해할 수 없겠지. 때론 너무 많이 알 필요 없는 일도 있어. 넌 그저 시키는 것만 하면 돼…….”

남명이 몸을 일으켜 무심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무심의 얼굴은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마을 입구.

내내 이곳을 감시하며 기다리던 안보여는 무심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빠르게 무심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신가요, 선생님?”

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소. 갑시다!”

안보여는 다시 그를 데리고 경성으로 돌아갔다.

나갔던 곳으로 돌아가니 천하 전장의 책임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직접 둘을 데리고 경성으로 들어갔고, 곧바로 각자 갈 길로 향했다.

* * *

장원에 돌아오자,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는 호진이 있었다.

무심은 그에게 다가가 위로를 전했다.

“왕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제가 확인해 보았습니다. 지금 왕비께서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저 표묘각에서 왕비께 확인할 일이 있어 데리고 있을 뿐, 곧 돌려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호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표묘각 사람이 그녀를 모셔갈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왕비께서 돌아오시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왕야, 표묘각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그러니 함부로 소문내지 말고 일을 크게 만들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호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무심은 그 후 곧바로 뒤에 있는 약방을 찾았다.

* * *

귀의는 약방에서 약물을 옮겨 담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이 들어온 것을 보고 조용히 다가와 그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뭘 그리 수상쩍게 움직이는 것이냐?”

무심은 방금까지도 차마 귀의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협박에 혹시라도 소유아에게 문제가 생길까 밝히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귀의의 도움이 절실했다.

“사부님, 소유아가 누군가에게 납치당했습니다…….”

무심은 소유아가 표묘각 사람들에게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귀의 역시 매우 의아해했다.

“표묘각이 그녀를 왜 잡아간단 말이냐. 설마 그녀에게 우리가 모르는 무슨 다른 것이 있단 말이냐?”

무심의 얼굴에 고통이 어렸다.

“모두 저 때문입니다.”

귀의는 들고 있던 물건을 아예 내려놓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넌 또 표묘각과 무슨 상관이 있어? 어서 말해봐라.”

무심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를 잡아간 사람은 표묘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표묘각 인원의 신분을 가장한 것입니다.”

귀의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그리 간덩이가 부었단 말이냐?”

“남도림의 아들 남명입니다. 방금 성을 나서서 그와 만났습니다.”

귀의는 정말 크게 놀랐다.

“아? 그놈은 이미 제 아비를 배반한 놈이 아니더냐! 너는 언제 남명과 알게 됐던 것이냐?”

“저도 오늘 처음 만났습니다. 오히려 지금 사부님이 하시는 일이 남명의 눈에 띈 것 같습니다. 남명은 원색의 심복 원비의 눈을…….”

무심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명과 만났던 일을, 그리고 남명이 원하는 일을 알려주었다.

귀의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하느냐?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 사이의 힘겨루기는 우리가 끼어들 만한 것이 아니다. 일단 얽혀든다면, 이처럼 큰 빌미를 저들 손에 쥐여준다면, 다시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이 사부가 너를 돕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 너를 위해서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러하지도 않을 것이다.”

무심이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사부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그녀를 돕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사부님! 제발 그녀를 살려 주십시오. 만약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신다면, 저도 사부님과 같이 약곡으로 돌아가 의술에 전념하겠습니다!”

귀의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연신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애원하는 자신의 애제자를 조용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 * *

끝도 없는 무변사막 경계에 있는 한 돌산 위, 지평선 너머 태양이 고개만 살짝 내밀었을 때쯤, 누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는 땅에 착지해, 한 사내를 바닥에 팽개쳤다. 한쪽 팔이 없는 사내, 그는 바로 원강이었다. 팔이 잘린 곳은 이미 점혈해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원강은 남은 한쪽 팔로 몸을 지탱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여전히 의기소침한 얼굴이었고, 여전히 호연위의 부인을 구하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긴 침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원강을 구한 병사에게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인……? 원강은 흠칫하며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여인은 한쪽 팔이 없는 원강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원강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병사는 그대로 손을 뒤로 돌려선, 천에 돌돌 말린 물건을 땅에 던졌다.

퍽! 웅-

그 충격으로 물건이 진동하더니, 천이 흘러내리며 안의 물건이 드러났다.

아침 햇살을 머금고 빛을 내뿜는 도신, 도배(刀背)에는 호랑이 3마리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원강은 칼을 빤히 보다가, 눈앞에 있는 복면의 병사를 한번, 다시 뒤돌아 끝없이 펼쳐진 무변사막을 바라보았다.

병사는 곧 투구를 벗었다. 그러자 아래로 긴 머리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고, 병사는 마지막 복면까지 뜯어내 바람에 날려 보냈다.

태양 아래,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아름다운 미인이 서 있었다. 병사의 복장으로 가린다 한들 여인의 미모까지 감출 순 없었다.

홀연히 나타나 원강을 구한 일개 병사는 아직 세상에 살아 있는 7대 성존 중 하나, 여무쌍이었다.

원강은 천천히 일어나 삼후도 도병을 그러쥐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여무쌍도 고개를 돌려 원강을 쳐다보았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눈빛 속엔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녀는 원강이 나조의 군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왔다. 그러나 거리가 있다 보니 원강을 찾았을 때는 한발 늦은 뒤였다.

여무쌍은 반란군에 숨어들어, 원강이 홀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과 죽은 이를 화장하는 장면까지 직접 다 지켜보았다.

그 후에 펼쳐진 상황은 여무쌍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원강은 도망치지 않고 대군을 향해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죽은 자의 복수를 하기 위해, 고원달을 죽이려 나섰다.

그러다 원강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 그를 구하려 했으나 너무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망설였었다.

하지만 결국 원강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야 여무쌍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원강을 구해 여기로 데려왔다.

변장한 이유는 공개적으로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무쌍은 이미 다른 성존들에게 더는 원강한테 손을 쓰지 않겠다고 약조한 바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지켜만 볼 수 있겠는가. 그녀는 원강이 도망칠 줄 알았다. 그러면 암중에 원강의 도망을 돕고, 기회를 봐서 몰래 납치할 계획이었다.

“나인 줄 생각 못 했나 봐? 다시 내 손에 붙잡힐 줄은 몰랐겠지?”

여무쌍이 비웃음을 흘렸다.

챙!

원강은 칼을 뽑아 들며 외쳤다.

“그래, 전혀 생각지 못했다!”

“나랑 또 싸우려고? 아직도 자기 실력을 모르나? 넌 내 상대가 아니다. 도망칠 수도 없지. 쓸데없는 힘 빼지 말지 그래?”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여무쌍도 참 의외라고 생각했다. 원강을 데려오면서 그가 발버둥 치는 힘을 느꼈다. 확실히 그 힘이 과거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해진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얼굴에 적의가 가득하네. 그래도 내가 네 목숨을 한번 구해줬는데 말이야. 설마 조금의 감사함도 없는 건가?”

“당신이 그런 게 필요한 사람이던가?”

여무쌍은 이내 원강의 잘린 팔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참 이상하단 말이야. 네 과거를 모두 조사해봤었지. 너와 호연가의 인연이라고 해봤자 과거 제경에 숨어있을 당시 맺었던 교분이 끝인데. 그저 한 번의 불살지은(*不殺之恩: 살려준 은혜)일 뿐이지 않나?

아, 그러고 보니 네게 칼도 하나 선물로 줬지. 그 외에는 양측에 어떠한 인연도 없었어. 하지만 너는 저들을 위해 홀로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건가?”

“없다. 내 상황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군.”

“겨우 그 정도 인연으로 목숨을 걸었다고? 겨우 그 때문에 팔이 잘리다니,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날 데려온 게 겨우 그게 궁금해서냐? 다른 볼일 없다면 이만 떠나지.”

“넌 생명의 은인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거냐?”

“내가 볼 때는 다른 의도가 있어 보이는데?”

여무쌍의 시선은 원강을 떠나 저 먼 곳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말을 바꿔보지. 내가 네 목숨을 이리 구했고, 네게 바라는 것이 없다면 어찌 되느냐. 내가 이대로 널 놓아주면, 나중에 내가 필요할 때 지금 호연가에게 그러했듯 내게도 보답할 것이냐?”

“그렇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보답하지. 그럼 이만!”

정말 그대로 발길을 돌리는 원강을 보고, 여무쌍이 소리쳤다.

“잠깐!”

원강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았다.

“다른 할 말이 있나?”

여무쌍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 대답이 너무 호쾌해서 불안할 지경이야. 그러니까 먼 미래에 보답을 받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보답받는 게 났겠어.”

원강은 천천히 뒤돌아 무변사막을 바라보더니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갈황!”

여무쌍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말 널 모르겠단 말이지. 분명 바보는 아닌데 그런 식으로 목숨을 내놓는 멍청이 짓을 하다니. 알고 있다니 편하겠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굳이 알려줄 필요 없겠지?”

“만약 거절한다면?”

“너한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번엔 그 누구도 널 구할 수 없어. 천하에 감히 네가 내 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으니까. 네가 따르지 않겠다면, 나는 널 계속 가둬 둘 거다. 네가 승낙하는 그 날까지. 뭐, 평생 빛을 못 보고 지내고 싶다면 그 소원 내가 기꺼이 들어주지!”

“네 요구에 따른다면, 살 수는 있고?”

“네 안전을 책임져 줄게. 못 믿겠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 꽤 시도해 볼 만하지 않아?”

원강은 사막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따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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