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화. 다시 만난 피라미드
사막 속, 갈황은 녹색의 빛을 파고들었다.
그때, 주위를 한번 둘러본 여무쌍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여기가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란 말인가?”
원강은 그녀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무쌍은 이곳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갈황은 녹색 통로를 통과하고 갑자기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선 사막 지면으로 솟아올랐고, 그 뒤에 있던 두 사람은 다시 하늘 아래 서게 되었다.
* * *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사막이었다. 여무쌍은 매우 놀랐다. 우유도 일행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여전히 여기를 무변사막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에 원강은 마치 보란 듯 하늘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이상 행동을 보고 여무쌍도 함께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태양 옆에 원구 하나가 더 있었다. 그녀도 이제야 뭔가를 깨달았다.
“우린 지금 다른 세계에 있는 거네…….”
두어 번 깊은숨을 들이쉰 여무쌍은 법력을 펼쳐 보았다. 평소와 같음을 확인하자 두 눈에 상기된 빛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곧 빠르게 정신을 차린 여무쌍은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멈춰 서 있는 갈황을 잠시 바라보더니, 빠르게 원강을 점혈하고 소매에서 빠져나온 비단으로 원강을 묶었다.
“뭐 하는 거지?”
원강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무쌍은 별말 하지 않고, 그대로 날아 지면을 뚫고 들어갔다.
쾅!!!
원강은 여무쌍이 뭘 하려는지 깨달았다.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무쌍 앞에서 도망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때, 갈황은 입으로 소리를 내며 불안하다는 듯 그 큰 몸을 흔들어 방향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사막의 지면이 터지며 여무쌍이 다시 날아올랐다. 갈황의 등에 내려선 그녀는 원강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무쌍은 통로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두 세계를 이은 통로가 살아 있는 것처럼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무쌍은 원강 앞에서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원래 그녀는 일단 출입구를 찾아 위치를 기억하기만 하면 앞으로 손쉽게 드나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통로가 움직였다. 그 말은 여기를 떠나려면 원강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여무쌍은 불안해졌다. 그래서 원강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를 쉽게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방금 상황을 반추해보면 통로가 이동하는 속도는 빠르지 않아 보였다. 지금 땅속에 들어가 빠르게 탐색하면 분명히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온 세계를 이대로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여무쌍은 원강의 몸에 있는 금제를 풀고, 그를 묶은 비단을 풀어 주었다.
원강은 곧장 일어나 칼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고 섰다.
“이제 어디로 가지?”
그때, 두 사람을 태운 갈황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방향을 향해 미친 듯 돌진했다. 그로 인해 등 위의 두 사람도 함께 휘청거렸다.
“어찌 된 일이냐?”
여무쌍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모른다.”
“갈황을 멈춰라!”
“하, 하!”
원강이 즉시 소리쳤지만 갈황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원강도 소리치는 것은 멈추고 뒤돌아 말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갈황이 명령을 안 들어.”
“명령을 안 들어?”
여무쌍이 두려워하는 상황이 바로 이것이었다. 정말 명령을 안 들으면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여무쌍이 재차 다그쳤다.
“다시 시도해!”
“하, 하!”
원강도 즉각 그 말에 따랐지만, 여전히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소용없어, 어째 갈황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것 같네.”
“우릴 어디로 데려간다고?”
여무쌍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도 이젠 다그치는 것을 포기하고, 두 눈을 번득이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한쪽 팔로 칼을 짚고 선 사내와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병사 복장의 여인이 있었다. 이중 한 사람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지만,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한 사람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두 눈만 반짝일 뿐, 갈황이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을 지키며, 갈황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 * *
결국 도착할 곳에 도착했다. 사막 지평선 너머, 높은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원강은 입꼬리를 딱딱하게 굳히고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무쌍의 눈길도 그곳으로 향했다. 얼굴에도 기대가 가득했다. 건축물에 더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그녀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저게 뭐지?”
“몰라.”
원강은 거짓말을 했다.
더 가까워지자, 건축물의 거대함이 더욱더 실감이 났다. 갈황은 그렇게 건축물 아래에 멈춰 섰다.
* * *
여무쌍은 건축물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절대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야, 누가 만들어 낸 게 분명해.”
원강은 침묵하며 건축물 아랫부분을 살폈다. 속으론 벽돌 순서를 계산하며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다시 여무쌍의 반응을 조심히 관찰했다.
그때, 여무쌍이 갑자기 날아올라 건축물 꼭대기에 내려섰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사막 경계 밖의 녹주를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그곳을 살폈다.
이내 원강은 칼을 들고 뛰어내린 뒤, 미리 확인한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탑 꼭대기에 있는 여무쌍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조용히 하, 하, 소리를 냈다.
파바박-
갈황은 곧바로 땅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갈황이 움직이는 소리에 여무쌍이 갑자기 뒤를 돌았다. 그녀는 갈황이 땅을 파고 사라지려는 것을 보고 다시 빠르게 날아왔다.
“뭐 하는 거야!”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저게 갑자기 저러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
“지금 당장 다시 불러내!”
여무쌍이 분노했다.
원강은 즉시 또 하, 하, 소리쳤다. 땅속의 갈황이 발버둥 치는 것이 두 사람의 발끝으로도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래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돌기둥을 확인한 원강은 두 눈을 차갑게 빛냈다. 원강은 곧 소리를 멈추곤 뒤를 돌아보았다.
“갈황의 감정을 보자면 너무 오랫동안 움직여 모래 속에서 회복하면서 좀 쉬고 싶어 하는 것 같네.”
그렇다면 여무쌍도 할 말이 없었다. 바로 손을 써서 땅속에서 갈황을 끄집어내려던 그녀는 원강을 빤히 쳐다보았다.
“갈황을 다시 불러낼 수 있는 건 확실하지?”
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땅 위의 한 곳을 바라보며 삼후도를 든 손으로 모래를 뒤적였다.
이윽고 안에선 문양이 새겨진 돌덩이가 나타났다.
그 모습은 당연히 여무쌍의 이목을 끌었다. 문양이 새겨진 돌 위에 글자까지 보이자, 여무쌍은 즉시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쓱-
모래 속, 3척은 돼 보이는 기다란 돌기둥이 뽑혀 나왔다. 여무쌍은 양손으로 기둥을 받아 이리저리 돌려가며 아름다운 문양을 살펴보았다.
“보총…….”
돌연 여무쌍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는 즉시 뒤돌아 거대한 건축물을 바라보며 다시 중얼거렸다.
“보총!”
“그게 무슨 말이지?”
원강이 담담히 물었다.
여무쌍은 원강을 무시하고, 다시 돌기둥을 살펴보았다. 돌기둥 뿌리 부분이 어딘가에 끼울 수 있게 제작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여무쌍은 진지하게 건축물을 살폈다. 아마도 이 기둥이 원래 있던 곳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건축물 꼭대기를 바라보는가 싶던 여무쌍이 그대로 돌기둥을 껴안고 꼭대기로 날아올랐다. 그녀는 꼭대기에 모래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소매를 휘둘러 모래를 날려 버렸다.
원강도 빠르게 탑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 * *
원강이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여무쌍은 돌기둥을 꼭대기 움푹 파인 부분에 끼워 넣고 있었다.
퉁!
딱 맞아떨어졌다. 돌기둥은 그 위에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마치 무덤의 비석 같은 모습이었다.
“과연 이 위의 물건이었어!”
여무쌍이 크게 기뻐했다.
“무슨 물건이지?”
원강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이 탑 안에 무슨 물건이 있을지 궁금해. 무엇이길래, 감히 ‘보총’이라고 칭하는 걸까.”
여무쌍은 법력으로 내부를 살폈지만, 알아낸 것은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탑을 위부터 아래까지 싹, 훑어보았다.
그때, 옆에 있던 원강이 말했다.
“뭔가 묻혀있다면 열어서 보면 되잖아.”
여무쌍도 생각해 보니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이어, 그녀는 법력으로 탑 꼭대기에 있는 석대 옆을 뜯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리 쉽게 움직이지도 않을뿐더러, 공중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울림이 있었다.
그 순간, 여무쌍은 절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허공엔 갑자기 담담한 안개가 모여들고 있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천지원기의 파동이 있다니, 이 탑이 하나의 진법인 것 같네.”
“이 안에 묻혀있는 것이 보통 물건이 아닌가 보군. 진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니. 네 경지로도 이 탑을 어쩌지 못하는 것인가?”
원강의 말에, 여무쌍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내가 만약 힘을 쓴다면 돌들이 터져나갈 거다. 넌 버티기 어려울 테니 먼저 내려가 있어라.”
원강은 두말하지 않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거기에 그냥 내려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최대한 탑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도야가 어떻게 됐는지, 원강이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여무쌍은 그걸 알 길이 없으니 양팔을 벌려 서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바닥에 떨어져 내리며 한 바퀴 구른 원강은 그대로 뛰어서 한쪽에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이제 곧 기대하는 장면이 나타날 터였다.
한편, 여무쌍도 허공에 고요히 떠서 아래를 살폈다. 원강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혹시라도 그대로 도망쳐 버릴까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원강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언덕에 멈췄다. 원강은 결국 자신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한 듯했다. 여무쌍은 다시 탑에 시선을 고정했다.
휙-
여무쌍의 신형이 움직였다. 그녀는 마치 신선처럼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탑과 부딪혔다.
여무쌍은 탑 꼭대기가 아닌, 탑 허리춤을 조준했다. 그리고 탑에 가까워지자 일장을 내질렀다.
쾅-!
운석처럼 탑과 충돌한 순간, 천지에 경천동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벽돌 하나가 그 자리에서 터져나가면서 사분오열되었다.
여무쌍은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탑을 이룬 벽돌의 견고함이 그녀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여무쌍은 전력을 다해 탑을 후려쳤지만, 겨우 벽돌 한 장만 깨졌다. 이건 그야말로 강철과 다를 바 없는 강도였다.
거기에 이 거대한 탑 전체에서 이상함이 감지됐다. 그녀는 분명 탑의 한 곳을 공격했지만, 아예 탑을 무너뜨릴 만한 힘이 탑 전체로 퍼져나갔다가 탑의 지하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이번엔 탑이 천지원기와 소통하는 걸 더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공격력이 클수록, 천지원기의 파동이 더 강렬해지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의 공격으로 탑에서 되돌아온 원기의 파동이 여무쌍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하늘에서 굉음이 울리며 온 세상이 긴 밤처럼 어두워졌다. 고개를 올려다보니, 그 맑은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여무쌍은 다급히 몸을 뒤틀어 탑 위에 내려섰다가, 하늘을 빤히 응시했다. 자신의 맹렬한 일장이, 온 하늘을 뒤흔든 것만 같았다.
가능한 일일까, 일장 하나가 하늘 전체를 먹구름으로 뒤덮다니…….
먹구름은 계속 꿈틀대며 급격히 불어나더니 급기야 그 안에서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실로 무수한 천둥 벼락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지자, 원강도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얼굴을 씰룩거렸다. 과연 구성이고, 과연 원영기의 수행자였다. 이 공격력은 감히 도야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윙윙-
이 경천동지할 일격이 만들어 낸 굉음으로, 원강의 귀엔 이명이 생겼다.
그리고 여무쌍은 아직도 경악한 얼굴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당최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가늠도 되질 않았다.
그때, 한줄기 벼락이 허공을 가르며 내리꽂혔다. 여무쌍은 내내 크게 경계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반응했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마치 사전에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것만 같았다.
여무쌍은 마치 몸이 사라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몸을 틀었고,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벼락의 일격을 피했다.
벼락이 바로 옆을 스치는 그 느낌……! 여무쌍은 저도 모르게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심장도 저 어딘가로 추락했다가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벼락은 직선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