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화. 천벌
여무쌍은 벼락을 피한 줄만 알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지만, 벼락은 나뭇가지가 갈라지듯, 그 경로를 구불구불 틀었다. 꼭 신이 직접 붓을 들고 방향을 긋고 있는 것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맞추려는 것 같았다.
여무쌍 역시 등 뒤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벼락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 혼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쾅!
폭음이 울리고, 그렇게 갈라진 벼락은 결국 여무쌍의 등을 명중했다.
“컥…….”
여무쌍은 고통에 비명을 토했다. 사지가 마비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법력을 이용해 허공으로 날아올라 도망치려 했다.
쾅!!!
하지만 다시 굉음과 함께 먹구름 속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벼락은 공중에서도 그녀를 완벽하게 관통했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벼락은 그 후에도 계속 내리쳤다. 검은 하늘에 피어난 거대한 빛의 나뭇가지가 여무쌍을 집어삼킬 듯 끊임없이 포효하고 있었다.
벼락은 그 엄청난 빛줄기로 여무쌍을 아예 허공에 붙잡아 놓으려는 듯했다. 아파할 여운도 주지 않고, 끝도 없는 마수를 뻗었다.
원강도 이를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늘을 가득 메운 벼락이 공중에 있는 오직 한 사람만 노리고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벼락에 맞아본 도야의 말이 맞았다. 저 피라미드를 공격한 사람의 공격력이 클수록, 반서(反噬)의 힘이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강이 그 무엇보다 더 놀란 건, 여무쌍의 힘이었다. 여무쌍은 저 엄청난 벼락 폭풍우에도 여전히 발버둥 치며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아직도 법력으로 하늘에 대항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원강은 전생에 들었던 전설이 떠올랐다. 산중요괴나 수선(修仙)들이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천겁(天劫)에 대항해야 한다는 전설이었다. 지금 저 여무쌍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천겁에 대항한다던 그 전설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벼락만 내리치던 하늘이 갑자기 멈췄다. 벼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여무쌍도 탑에서 되돌아와 몸을 뒤흔들던 원기의 파동이 드디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동시에 원기의 파동이 그녀가 본래 가지고 있던 법력도 같이 가지고 사라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기의 파동이 사라지자, 하늘에서 내리치던 벼락도 멈췄다. 벼락에 묶여있었던 여무쌍 역시 힘없이 사막으로 떨어져내렸다.
털썩…….
벼락은 올 때와 같이, 갈 때도 홀연히 사라졌다.
벼락이 그치고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도 빠르게 흩어져갔다.
하늘은 다시 환해졌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양은 다시금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빛을 내뿜었다.
원강도 이제야 한숨을 돌렸다. 연달아 내리친 벼락 때문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충격에 빠져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원강은 사막 위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원강은 한쪽 팔로 칼을 꽉 움켜쥐고, 발악하는 인형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길을 돌렸다. 얼굴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 * *
여무쌍과 가까워진 순간, 원강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지금 여무쌍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입과 코에선 피를 토하고, 입고 있던 옷은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드러난 피부는 온통 석탄처럼 검게 타 있었다. 옷과 피부가 같이 눌어붙어 타버려서, 어느 게 피부이고, 옷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유일하게 원모습을 지키고 있는 건 여무쌍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비단뿐이었다. 그것만 유일하게 벼락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그녀에게선 폭포수같이 검게 찰랑거리던 긴 머리칼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아니, 그녀에게 더 이상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여무쌍이 꿈틀거릴 때마다 표면에 검게 탄 각질이 사라지고, 그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사람에게 이런 표현을 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정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담할 지경의 괴물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전에 벼락을 맞은 도야는 지금 여무쌍에 비하면, 온 천지의 축복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강은 다시금 무섭게 내리치던 벼락을 떠올리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한편으론 우유도를 대신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도야가 전력을 다해 탑을 공격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때, 여무쌍이 고통에 일그러진 눈을 들었다.
“사……, 살려줘…….”
여무쌍의 목소리도 형편없이 갈라져 나왔다. 그녀 자신도 듣기 힘들 지경이었다. 거기에 자신을 괴물 보듯 하는 원강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여무쌍은 절로 눈물이 흘렀다. 사막 한편이 금세 그녀의 눈물에 젖고 있었다.
여무쌍처럼 오만한 사람이 처절히 생명을 구걸하는 걸 보면 더 반격할 힘이 없는 건 확실해 보였다. 원강이 그녀를 빤히 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과연 원영기 절정의 고수군. 무량과로 새롭게 빚어낸 육신이 정말 보통이 아니야. 저런 벼락으로도 죽지 않다니. 이건 아마 천벌일 것이다. 너희 구성이 수많은 악행을 자행했기 때문에 천벌이 내린 것이다!”
여무쌍이 다 갈라진 목소리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천벌이 아니야. 저기도 보총이 아니야. 저곳은 대진이 보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살초가 숨어있었어. 저길 건드는 사람에게 벼락이 떨어지는 살초가.”
“확실히 보총이 아니고 함정이군. 하지만 천벌이 확실하기도 하지. 만약 악행을 자행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같이 벼락을 맞을 일도 없었어. 소위 구성이라는 너희 때문에 천하에 전란이 끊이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 몰라. 이대로 죽는 건 사실 너무 약한 벌이지.”
“나를 죽이려는 것이냐?”
여무쌍도 원강의 말투에서 증오를 읽어냈다.
“내가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넌 살지 못할 거다. 이곳은 외부의 무변사막과 다를 것이 없어.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갈이 있지.
사갈의 천성을 알 거다.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지. 벼락의 공포가 지나가면, 그놈들이 나타나 널 산 채로 삼킬 거다. 이 진법을 이곳에 설치한 사람이 수많은 사갈을 함께 놔둔 건 바로 그걸 위한 것일 수도 있어.”
“여기에 사갈이 많다는 건 어떻게…….”
순간 흔들리던 여무쌍의 눈동자가 멈췄다. 뭔가를 깨달은 것이다.
“아……, 알고 있었어?”
원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
여무쌍의 두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그 전에 갈황을 통제할 수 없었던 것도, 고의로 그런 거냐?”
“내가 왜 처음부터 널 여기로 데려왔을까. 일단 여기 들어오면, 나갈 길이 없다. 난 애초부터 여길 살아서 나갈 생각이 없었어. 네가 이리 쉽게 속을 줄은 몰랐군. 하지만 지금 보니, 악행에는 응보가 따르기 마련인 것 같네. 하늘조차 널 용서하지 않으니, 살아선 여길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원강은 저 멀리 높게 솟은 탑을 바라보았다. 그는 속으로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도야는 과연 도야였다. 그 심계가 참으로 깊었다.
나중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 원강이 여무쌍에게 잡힐 것까지 걱정해 만약에 만약을 대비한 한 수를 남겨 놓다니…….
흔적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수였다. 과연 그것이 효과를 발휘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원강은 우유도가 저 돌기둥을 후려쳐서 사막에 떨어뜨리고는, 여러 차례나 돌기둥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라고 당부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만약 어려움이 닥치면 저 돌기둥을 가지고 대응하라고 이야기했었다.
“어떻게 이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지?”
여무쌍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네 조모님도 결국 이향의 하인에 불과했지. 여긴 이향이 만든 곳이야. 소위 그 가문의 비밀도, 그저 네가 비밀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여무쌍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입가론 듣기 괴로울 정도의 참담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참으로 비통한 모습이었다.
“난 네가 정인군자라고 생각했어, 넌 다른 사내와 다르다고 생각했지. 너도 결국 다른 사내와 다를 바가 없구나! 마찬가지로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어! 내가 널 너무 쉽게 믿었구나. 내가 죽일 것이다, 내가 너무 방심했구나! 정인군자인 척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었어!”
“난 정인군자가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지, 적에게는 조금의 자비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사갈에게 먹혀버리기에는 너무 아쉽구나. 여무쌍, 내가 직접 널 보내주마!”
원강은 그대로 칼을 높이 쳐들었다.
* * *
“성경!”
여무쌍이 다급히 소리쳤다.
무쌍성존은 과연 무쌍성존이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순간에도 어떤 말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두 눈을 꼭 감고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여무쌍도 이 말로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응답도,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이에 여무쌍은 천천히 눈을 떠보았다. 순간 시야에 그녀의 목을 노리는 원강의 칼끝이 꽉 들어찼다. 원강은 한쪽 팔로 칼을 들고서 여무쌍을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원강은 성경 다음에 나올 말이 몹시 궁금했다. 여무쌍 역시 살아남을 일말의 기회를 얻었음을 알고, 다급히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녀는 일단 가장 핵심이 되는 말을 내뱉었다.
“우선 내 몸을 살펴봐. 내 몸 안에 있던 법력은 이미 저 진법 때문에 다 사라졌어. 단전의 기해(氣海)가 벼락 때문에 다 훼손됐다고.”
여무쌍은 먼저 원강에게 자신은 이제 아무런 위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렸다. 원강은 의외라는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무쌍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여무쌍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성경을 이해하고 있어. 나머지 육성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지.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도움을 줄 수 있어! 필요한 게 있다면 반드시 날 살려야 할 거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내가 줄 수 있는 것들도 있지. 재물 같은 거랄까. 원한다면 재물을 모두 네게 줄게!”
원강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재물이 탐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다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도야는 칠성과 대립 중이었다. 그런데 여무쌍을 살린다면 과연 도야에게 도움이 될까?
여무쌍은 침묵을 지켰다. 지금 더 말해봐야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이것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면 결국 남은 결말은 죽음뿐이었다.
휙-
원강은 칼을 회수해 사막에 꽂아 넣곤 여무쌍의 몸에 둘러진 비단을 잡아당겼다. 피부가 검게 타버린 여무쌍은 고통에 신음했다.
여무쌍은 드디어 자신의 말이 상대의 마음을 흔들었단 걸 알았다. 다만 원강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원강이 하는 일은 별것 아니었다. 원강은 정말 여무쌍의 단전이 훼손돼 법력이 모두 소실됐는지 확인할 방법을 몰랐다. 그러니 일단 여무쌍을 묶어둘 생각이었다.
한쪽 팔로 사람을 묶는다는 건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손과 발, 이빨까지 다 동원했다. 비단에 묶이는 과정은 여무쌍에게도 고통이었다. 그야말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고통에 몇 번이나 혼절했고, 피부는 갈라져 온몸이 피로 범벅되었다.
마침내 여무쌍을 다 묶은 원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하, 하!”
얼마 지나지 않아, 부근의 모래가 터져나가며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사갈 한 마리가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두 사람 앞에서 비린내 나는 숨을 토해냈다.
원강은 한쪽 팔로 여무쌍을 들어 사갈의 등에 던져 올렸다. 그런 뒤 땅에 꽂은 삼후도를 잡아 들고 그대로 사갈의 등으로 뛰어올랐다.
그는 다시 칼을 놓고서 남은 비단으로 자신과 여무쌍을 같이 묶었다. 땅속에 파고들었을 때, 사갈의 등에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여무쌍의 법력이 없으니, 이제 모래 속에서 공간을 만들어 내긴 어려웠다. 더욱이 지금 원강은 한쪽 팔밖에 없어서 누군가를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원강은 사갈의 등 뒤 모래가 잘 흐르지 않을 만한 곳을 골라 자신과 여무쌍을 함께 잘 묶었다.
이윽고 원강이 다시 소리치자, 사갈이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모래 속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이곳은 외부 세계와 달라, 누군가 사갈이 달리는 것을 볼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또 원강은 혹시 땅속에 들어갔다 호흡이 곤란할 것을 걱정했다. 지금 여무쌍의 상태로는 그런 환경은 조금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사갈에게 땅 위에서 두 세계가 통하는 통로를 찾게 했다.
사실 원강은 제5 영역에서 상처를 치료한 다음에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무쌍의 상태를 보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거기다 원강은 사실 여무쌍의 경지가 정말 사라진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일단 여무쌍이 경지를 회복할 시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원강은 여무쌍의 강대한 능력에 감히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빨리 이곳을 떠나 우유도를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