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사갈은 지면 위에서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가 있는 위치를 특정했고, 곧바로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모래 속으로 들어오니 여무쌍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이에 원강은 자신의 몸으로 여무쌍을 덮어주며 그녀가 받을 압박을 최대한 막아 주었다.
모래 속으로 파고든 사갈은 두 세계를 이어주는 몽롱한 녹색 빛을 빠르게 찾아냈다. 곧바로 그 안으로 파고들어 원래 세계로 돌아온 사갈은 곧바로 위로 기어 올라갔다.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식으로 통로를 통과한 것이었다.
* * *
쾅!
지면이 터져나가고 갈황이 몸을 드러냈다.
원강은 힘차게 고개를 내저으며, 몸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곤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숨 돌리며 주변을 살피니 이곳은 이미 밤이었다. 달과 별의 방위로 볼 때, 두 시진(*二時辰: 4시간) 정도 지나면 해가 뜰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고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은 원강은 이내 여무쌍을 살펴보았다. 원강은 나름대로 여무쌍을 열심히 보호했지만, 다리까진 감싸질 못해서 모래 속을 지나는 동안 검게 탄 껍질이 거의 다 벗겨져 있었다.
그는 피 묻은 모래가 덕지덕지 붙은 여무쌍의 다리를 살살 털어주었다. 모래를 털고 보니 피부가 다 갈려 나간 상태였다. 차마 제대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상태였다.
여무쌍도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원강은 손을 뻗어 여무쌍의 숨을 확인해 보았다. 여무쌍은 정말로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통로를 지난 시간은 짧았고, 여무쌍의 육체가 가진 강도면 아직 살릴 기회는 있을 것 같았다.
원강은 빠르게 자신의 몸에서 여무쌍을 풀어내고는 여무쌍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즉각 여무쌍의 심장을 압박하며, 인공호흡을 했다.
사실 지금 여무쌍의 얼굴은 사람의 형상이라 할 수가 없어서 인공호흡을 위해선 살짝 용기가 필요한 지경이었다.
한참이 지나, 여무쌍이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엔 자신의 입술을 마주치고 호흡을 불어넣는 원강이 가득 찼다. 여무쌍의 눈이 커다래졌다.
여무쌍의 숨결을 느끼고 원강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이미 눈도 뜨고 있었다. 원강은 그제야 여무쌍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구호 조치를 멈췄다.
이내 여무쌍이 입을 열고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질…….”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뜻은 없었다. 사실 지금 네 모습을 본다면 있던 생각도 없어질 판이지. 난 법력이 없어서 널 살리려면 방법은 이것뿐이야.”
상황을 설명한 원강이 삼후도를 바닥에 던지곤 여무쌍을 들고 뛰어내렸다. 그렇게 여무쌍을 땅에 내려놓은 후, 다시 소리쳐 갈황을 소환했다. 갈황은 그 즉시 조금 앞으로 가더니, 그대로 모래를 파고 사라졌다.
원강은 다시 소리쳤다. 이번엔 몸집이 좀 작은 사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물론 작다곤 해도 두 사람은 충분히 탈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갈황은 너무 눈에 띄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작은 사갈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안전했다.
다시 여무쌍을 붙잡는데, 그녀는 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원강은 즉시 숨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숨을 쉬고 있었다. 그냥 기절한 것이었다.
이내 원강은 여무쌍을 사갈의 등에 싣고, 별을 보며 방향을 특정했다.
원강의 명을 받은 사갈은 곧 빠르게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동하면서도 원강은 주변을 극도로 경계했다.
도중에 여무쌍이 깨어나 몽롱한 소리로 어디냐고 물어보고는 다시 기절했다. 원강은 그냥 그녀의 질문을 무시한 채 주위만 경계하며 중얼거렸다.
“여정이 순조롭기나 기도해. 문제가 생기면 너부터 죽여버릴 테니까.”
거짓말이 아니었다. 원강은 절대 여무쌍이 도망갈 여지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이 여인을 도야에게 건네주지 못한다면, 원강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 여인을 죽여버릴 참이었다.
* * *
대체 며칠이 흘렀나. 하늘엔 태양이 고개를 들고 밤빛에 가려지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우유도는 줄곧 상 정상을 지키며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저 높이 걸린 해가 한창 땅에 뜨겁게 그림자를 늘릴 때도, 우유도는 결코 그늘로도 피하지 않았다. 며칠간 눈도 감지 않고 사막을 관찰 중이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유도의 조바심도 더 짙고 깊어지고 있었다.
지금 다른 쪽에선 운희가 날짐승을 타고 사막의 하늘을 순찰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 사막을 살피며 원강을 찾아다녔다.
우유도의 뜻이었다. 우유도는 요마령으로 통하는 위치를 지키고, 운희는 남주에서 돌아온 후 만약을 대비해 남주로 향하는 방향을 지키기로 했다.
우유도 역시 그냥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다. 원강이 여무쌍을 만나고 몸을 피했다면 남주로 가서 우유도를 찾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분명 그를 찾아 어찌 된 일인지 알려주려 할 터였다. 서신으로 정확히 전하기 어려운 일도 있었다. 그러니 원강이 남주로 향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우유도는 이미 사여래에게 소식을 전달받았다. 여무쌍이 아직 성경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우유도는 그 소식을 가느다란 희망으로 붙잡고 이곳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대량의 인원을 동원해 무변사막을 둘러 싸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유도는 이성적이었다. 아무리 조급하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무변사막은 너무 넓어서,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한계 없이 다 지킬 수는 없었다.
사실 지금처럼 우유도와 운희가 지키고 있는 것도 소용없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아직 성경에 돌아가지 않았을 뿐, 여무쌍이 이미 사막을 떠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여무쌍이 아직 무변사막에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으니 마냥 이렇게 죽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여무쌍의 소재였다. 그래야만 원강의 생사를 판가름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우유도는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샅샅이 주변을 살피라 명을 내려두었다.
일단 여무쌍의 행방만 발견하면 즉시 연락하라고 했다. 여무쌍만 찾으면 우유도도 즉시 이곳을 떠나 수작을 부려서라도 원강을 구할 계획이었다.
* * *
다행히 우유도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주변을 살피던 운희는 작은 검은 점이 사막을 빠르게 가로지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운희는 즉시 날짐승의 고도를 낮춰 가까이 다가갔다. 그곳에서 지면을 달리는 사갈과 그 위에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운희는 가장 먼저 원강을 떠올렸다. 원강을 제외하곤 사갈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람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운희는 곧바로 날짐승을 타고 아래로 쏘아져 내려갔다. 더 가까워지자 누가 타고 있는지 확연히 보였다. 과연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았다.
날짐승을 탄 자는 원숭이가 맞았다!
운희는 크게 기뻐하며 사갈이 달리는 방향으로 날짐승을 틀어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그렇게 사갈과 함께 나란히 날기 시작했다.
원강도 즉각 고개를 들고 머리 위에 날짐승이 있는 걸 보았다. 그의 경계심이 높아졌다. 운희는 역용한 상태였다. 그에겐 당연히 낯선 인물이었다.
원강은 삼후도를 그러쥐었다. 지금껏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순조롭게 움직였다.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무변각이 무너지고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아직 수행자들의 교역 장소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가는 사람이 적으니 당연히 이 넓은 사막에서 사람을 만날 확률은 극히 낮았다. 그렇게 곧 사막을 벗어나려는데 누군가에게 꼬리가 밟힌 것이었다.
운희도 원강의 눈빛에 어린 적의를 읽고 그가 오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원숭이, 나야!”
원강이 잠시 멈칫하더니, 곧 운희의 목소리란 걸 깨닫고 바로 소리쳤다.
사갈은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멈춰 섰다.
이내 원강은 즉시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운희! 여기 곧 죽을 사람이 있소. 빨리 와서 살려주시오.”
여무쌍의 부상이 너무 심했다. 마실 물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으니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무쌍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기적이었다. 원강도 여무쌍의 강한 육신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운희는 곧바로 뛰어내려 사갈의 등에 내려섰다. 그녀가 사라진 날짐승은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녔다.
그리고 운희는 잠시 멈칫했다. 눈앞엔 온통 검게 그을려 여인인지, 사내인지도 분간하기 어려운 누군가가 있었다.
“이 사람 누구야?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야?”
“여무쌍이요.”
“뭐??? 다시 말해봐, 누구라고?”
운희는 순간 잘못들은 줄 착각했다. 이 괴이한 것이 여무쌍이라고?
하지만 우유도의 판단대로면 원숭이는 여무쌍과 같이 있는 게 옳았다.
정녕 이 사람이 여무쌍이라고……? 운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지금 이 모습이 천하 사람들을 발아래 둔 무쌍성존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 성존에게 잡혀간 원숭이는 무사하고, 오히려 성존이 이렇게 처량한 모습이 되다니, 운희는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도야가 제5 영역에 남긴 수법에 당해 이렇게 됐소.”
원강이 빠르게 설명했다.
“제5 영역에 남긴 수법?”
운희의 두 눈이 번득였다.
“……도야? 우유도를 말하는 건가? 너희들이 우유도를 도야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갑자기 여무쌍이 중얼거렸다. 방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여무쌍이 눈을 뜨고 있었다. 눈빛도 이상하리만치 밝았다. 회광반조(*回光返照: 해지기 직전 강하게 비추는 햇살, 사망 직전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비유)의 징조였다.
원강은 즉각 고개를 들었다.
“설명할 시간이 없소. 나중에 말해도 늦지 않으니, 일단 살려 주시오. 더는 버티기 어려워 보이오.”
운희는 머뭇거렸다. 더욱이 지금 우유도가 폭로된 상황이 아니던가.
“정말 여무쌍이라면 도야도 죽이려 할 거야. 왜 이자를 살리려는 거지?”
“여무쌍은 성경에 관련된 수많은 상황을 알고 있소. 나머지 육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지금 반항할 힘도 없으니 도야에게 넘기면 큰 이용 가치가 있을 수 있잖소. 도야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때 죽여도 늦지 않소!”
원강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운희는 즉각 여무쌍 앞으로 몸을 숙이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상세를 살피니 이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부상이었다.
운희는 빠르게 법력으로 심맥부터 보호해 목숨을 구했다. 동시에 품에서 영단을 꺼내 여무쌍이 삼키도록 한 뒤, 법력으로 약효를 촉발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론 허리춤의 물병을 풀어 법력으로 뚜껑을 열고, 여무쌍의 입속에 천천히 물을 흘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