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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12화 (811/1,000)

1712화. 그 괴이한 것이 여무쌍이라고?

한참 후, 운희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도 힘든 여무쌍에게서 손을 뗐다. 법력을 회수한 운희는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목숨은 구했어, 하지만 부상은 쉽게 치유하지 못할 거야.”

원강은 운희에게 물병을 청해 본인도 꿀꺽꿀꺽 마셨다. 그도 매우 목이 말랐던 참이었다.

“너는 누구냐?”

여무쌍이 운희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운희는 답할 말이 없었고, 결국 여무쌍의 물음은 그대로 증발됐다.

이윽고 갈증을 조금 달랜 원강이 갑자기 여무쌍을 가리키며 말했다.

“법력으로 몸을 좀 살펴 주시오. 여무쌍이 이미 단전이 훼손돼 법력을 잃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주시오.”

원강은 여전히 속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여무쌍의 경지를 보면 방심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그 때문에 원강은 부상당했음에도 제5 영역을 다급히 벗어난 것이었다.

운희는 멈칫하다 곧바로 여무쌍의 복부에 손을 갖다 댔다. 이내 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손을 회수했다.

“어떻소?”

“단전기해가 완전히 훼손돼 경지를 다 잃었어. 일반 사람보다 몸이 강하다는 것 외엔 범부와 다를 바 없을 거야.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운희는 탄식했다. 위풍당당한 무쌍성존이 이런 모습이 되다니, 자신들 손에 붙잡히기까지 한 지금의 상태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여무쌍의 눈에도 괴로운 빛이 어렸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본인도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였다.

“그 일은 나중에 얘기하는 게 좋겠소. 여긴 그리 오래 머물 곳이 못 되니 일단 도야를 만나러 갑시다.”

“그래, 지금 도야는 사막 경계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엄청나게 조급해하고 있겠지. 얼른 가자!”

운희는 그 즉시 한 손에 한 사람씩 끼고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곧 그녀는 공중을 맴돌던 날짐승 위에 안전히 안착했다.

세 사람은 이제 날짐승을 타고서 우유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닥의 사갈은 원강의 통제를 벗어나 자연스럽게 떠나가고 있었다.

* * *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날짐승 위에서 원강이 오랜 침묵을 깨고 나왔다.

“도야는 내가 여기있는지 어찌 알고 사막 경계에서 기다린단 말이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그가 너 정도의 수법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지. 네가 왜 남몰래 요마령을 떠났는지 바로 알아차리더군. 하지만 우리가 제경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누군가 널 데려간 후였지.

도야는 바로 여무쌍이 널 데려갔다고 예측하고 널 무변사막으로 데려갔을 거라 생각했어. 그렇게 여기 와서 지금까지 널 찾아다닌 거야.

원숭아, 넌 정말 갈수록 문제만 만드는구나. 이리 큰일을 도야에게 한마디 말도 안 하고 결정하다니. 지금 네 모습 좀 봐라. 이제 도야에게 대체 뭐라고 변명할 것이냐!”

운희는 잘린 원강의 팔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강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침묵에 잠겨 들었다.

* * *

일행이 있던 곳은 우유도가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 날짐승을 타고 간다면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아직도 돌산 위를 지키고 있던 우유도도 마침내 저 멀리서 날아오는 날짐승을 발견했다.

날짐승이 가까워지자 그 위에 있는 사람도 확연히 보였다. 우유도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날짐승은 산 위에 내려섰다. 운희는 여무쌍을 데리고 뛰어내렸고, 원강이 여인들의 뒤를 따랐다.

우유도는 뒷짐을 진 채 차가운 눈으로 원강을 응시했다. 원강도 우유도가 줄곧 무변사막에서 요마령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았다. 감동이 밀려들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도야 말이 맞았어. 과연 남주로 향하고 있었어. 방금 발견했어.”

운희가 설명했지만, 우유도는 그녀의 말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 운희가 안고 있는 검게 탄 사람이 누구인지도 묻지 않았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원강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유도는 거의 어깨까지 잘려 나가다시피 한 원강의 팔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우유도의 얼굴이 확연하게 꿈틀거렸다. 원강은 서서히 앞으로 나가 조용히 그를 불러보았다.

“도야…….”

“감당하기 어려운 호칭이군! 다른 할 말은 없나?”

우유도의 목소리는 눈빛만큼이나 싸늘했다.

원강은 말이 없었다. 여전히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짝!

돌연 명쾌한 소리가 났다. 우유도가 갑자기 원강의 따귀를 때렸다. 원강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본디 사람을 때릴 때 얼굴은 때리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사내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우유도는 한껏 힘주어 원강의 따귀를 때렸다. 그처럼 튼튼한 거구가 비틀거리며 물러날 정도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유도는 바로 다가가 원강을 걷어찼다.

퍽-

원강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한 바위에 부딪히고서야 겨우 멈춘 그는 기침하며 붉은 피를 토했다.

우유도의 공격에 원강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다. 사실 반항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렇게 아무런 방비 없이 원강은 상처를 입었다.

여전히 여무쌍을 안고 있는 운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나서서 저지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우유도가 지금까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직접 본 사람이었다. 원강이 돌아오면 크게 혼날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우유도가 원강을 죽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 굳이 나서지 않았다. 굳이 죽일 자를 이리 초조하게 구하려 애쓰는 자는 없을 터였다.

우유도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의 진짜 성격을 쉽게 끄집어냈다. 우유도는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의 폭도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만약 제 사람이란 생각이 없었더라면 시종일관 감정의 변화도 없었을 것이었다.

여무쌍도 운희에게 안겨 이 광경을 보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이 모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도 원강을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과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강을 학대하기도 했다. 그러니 원강이 얼마나 고집스러운 사람인지는 누구보다 여무쌍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원강이 저토록 고분고분할 수 있다니, 여무쌍은 의외라는 감정을 넘어 거의 경악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원강이 한쪽에 든 칼로 몸을 지탱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다시 우유도 앞으로 걸어왔다.

“만약 제가 간다고 했으면, 보내주셨을 리가 없잖아요.”

우유도는 삿대질까지 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못 가게 하는 게 어때서! 가서 뭘 하려고! 네놈보고 요마령에 있으라고 한 게 뭐 때문인데! 넌 또 뭐 때문에 요마령에 있었던 거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개자식! 정말 끝이 없군, 끝이 없어! 정녕 머리에 물이라도 찬 거냐? 여무쌍이 네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걸 정말 몰랐던 거야?”

일순 여무쌍의 숨결이 조금 흐트러졌다. 운희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원강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강에게는 그만의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설명하는 건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이내 운희가 헛기침했다. 여기서 이런 식으로 밑도 끝도 없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원강을 돕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에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무쌍 여기 있어!”

“그 입 다무세요! 이건 누님하고 상관없는 일입니다!”

목소리를 높이던 우유도가 잠시 흠칫했다. 원강을 향해 호통을 치려던 그가 다시 운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방금 뭐라고요?”

‘아니, 왜 괜히 엄한 사람한테 성질이야!’

운희는 괜히 울컥했지만, 그냥 안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답했다.

“여기, 이 사람이 여무쌍이야. 원숭이가 잡아 왔어. 이 정도면 용서해 줘도 되지 않을까?”

우유도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원강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운희에게 안겨있는 여무쌍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조용히 떠보듯 물었다.

“……그 괴이한 게 여무쌍이라고?”

여무쌍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지만, 여전히 허약한 목소리만 새어 나왔다.

“넌 누구지? 도야? 설마 우유도인가?”

운희는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우유도의 반응은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녀 역시 이 괴이한 무언가가 여무쌍이란 말을 들었을 때, 우유도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운희는 곧 쓴웃음을 지으며 우유도를 쳐다보았다.

“원숭이가 그리 말했으니까 맞겠지.”

우유도는 즉시 앞으로 다가와 여무쌍을 자세히 살폈다.

“난 여무쌍 그 여인을 본 적이 있어요. 이게 어찌 여무쌍이란 말이죠?”

우유도는 이 낯선 이에게서 여무쌍의 모습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눈빛조차 달랐다. 물론 지금은 사람의 형상도 아니고, 눈 주변 윤관도 바뀌어 있었다. 힘이 없으니 눈빛조차 달라 보이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우유도가 이 사실을 전혀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뒤돌아 원강에게 물었다.

“정말 여무쌍이야? 네가 어떻게 여무쌍을 사로잡았다는 거지? 설마 한쪽 팔로 여무쌍을 잡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원강이 가까이 다가왔다.

“여무쌍이 맞아요!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니라 도야가 때려잡은 거죠.”

우유도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내가? 뭐라는 거야, 이 자식이! 확실히 말 안 해?”

“여무쌍은 도야가 제5 영역 피라미드에 남겨 놓은 ‘보총’이라는 수법 때문에 하늘의 벼락을 맞아 이렇게 됐어요. 제가 제경에서 여무쌍에게 납치당해서 바로 무변사막으로 왔었죠…….”

원강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여무쌍을 왜 제5 영역으로 데려갔는지, 원강은 그 까닭도 소상히 밝혔다.

설명을 다 듣고도 우유도는 정신이 멍했다. 분명 자신이 만든 함정은 맞지만, 여무쌍을 보고 있으려니 정말 말이 안 되는 얘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너무 뜻밖이었다. 어찌 자신이 남겨둔 함정이 이처럼 큰 효과를 발휘했을까.

이런 결과에도 우유도는 득의만면하거나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곧바로 여무쌍 위에 손을 얹고 정말 그녀의 경지가 사라졌는지 확인했다.

……확실했다. 분명 경지가 사라졌다. 우유도는 다시 저 괴이한 여무쌍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젖었다. 그때 피라미드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 자신은 여무쌍보다 참담한 모습일 수 있었다.

정말 이 여인이 여무쌍이라고……? 우유도는 여무쌍과 처음 만난 그날을 떠올렸다. 무량원 입구에서의 그녀는 진정 선녀처럼 아름다웠었다.

우유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위풍당당한 무쌍성존의 단전이 훼손되고, 일신의 경지를 잃어버렸다. 어쩌면 이 여인에게는 죽는 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여무쌍의 감정도 그러했다. 우유도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대해서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는지 몰라도, 여무쌍은 자신을 이리 만든 원흉을 보고 있자니 화산 같은 분노가 터져 나왔다.

“우유도? 정녕 우유도가 맞느냐!”

여무쌍의 갈라진 음성엔 너무도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우유도는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얼굴로 그냥 운희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보통 상처가 아니네. 좋은 약을 써야죠, 천제단을 쓰지요!”

운희는 우유도가 여무쌍을 남겨 어딘가에 쓰려고 결심했음을 알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은 우유도가 맞느냐!!! 어서 그 가면을 벗어라!”

여무쌍은 여전히 목이 찢어지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도 어리석지 않았다. 세 사람의 대화에서 단서를 발견했다. 더욱이 여무쌍은 우유도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 우유도는 운희, 원강과 대화하며 목소리를 따로 변조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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