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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14화 (813/1,000)

1714화. 금안(金顔)의 원숭이

사호는 호운도가 호연위를 그곳에 남긴 것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가 보기에 호운도가 호연위를 그곳에 남긴 판단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호운도가 고의로 호연무한의 장성한 아들들을 다 죽이려 하는 것만 같았다. 호연무한이 자립할 가능성을 아예 다 차단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고의로 호연위를 죽게 만들어 호연무한의 세 아들은 모두 적군의 손에 죽게 만들려고 했을까? 그렇게 되면 호연무한은 진국과 죽기까지 싸울 것이었다.

진실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호운도는 이미 저 하늘로 떠난 뒤였다.

그때, 군막 밖에서 누군가 들어와 보고했다.

“보고드립니다! 경성을 포위하고 있는 병력에게서 온 소식입니다. 영왕 호진 전하께서 세 황손과 경성을 빠져나오셨다고 합니다!”

소식을 들은 호연무한은 손녀를 내려놓고, 신속하게 3대 문파의 장문인들을 만나러 갔다.

* * *

황자들 중, 반란군이 경성을 뚫고 들어왔을 때 몸을 피한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했다. 하지만 호운도의 어명을 전해 들은 호연무한은 줄곧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중에 적당한 후계자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호진은 본디 신중하고 겸손한 품성이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이가 있었다. 애초 소평파가 누이를 호진과 혼인시킨 이유가 있었다. 인재를 소평파 홀로 눈치챈 건 아니었다.

줄곧 황위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호연무한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호진을 지지한다!”

호운도가 붕어하고, 제국의 정세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새로운 군주를 내세워 인심을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3대 문파는 호진을 빠르게 모셔왔고, 군중에서 황급히 보위에 올랐다. 제국의 새로운 황좌는 결국 호진의 차지가 되었다.

* * *

상황이 상황인지라, 등극제전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이 소박한 즉위식도 눈여겨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폐황후와 폐태자였다.

이젠 그 화려한 비단을 벗고 막일을 하는 신세가 된 모자는 멀리서 즉위식을 지켜보았다. 그들 역시 당연히 무릎을 꿇고 경배를 올려야 했다.

무릎을 꿇는 순간, 과거의 미몽이 스쳐 지났다. 모든 게 한순간 물거품이었다. 호운도에게서 그리도 힘겹게 얻은 진국신기도 결국 타인의 몫이 되었다. 호홍이 주기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로 온갖 짓을 다 해, 아비를 죽였다는 악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손에 넣고 싶던 물건이었다. 결국 그 모든 게 타인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제국 3대 문파는 모자가 다시 권력을 쥘 기회는 주지 않으려 했다. 호운도가 황태자에서 폐한 것이 아주 좋은 빌미가 되었다. 계략을 꾸민 건 호홍이고, 모든 책임은 호홍에게 있다고 뒤집어씌운 것이다.

3대 문파는 모든 소란이 바로 자신들에게서 시작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들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는 사실은 끝까지 부인했다.

* * *

태학누각 위.

소평파는 높이 올라 난간을 잡고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엔 슬픔이 가득했다.

결국 호진이 황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는 즉, 소유아가 순조로이 제국의 황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찍이 누이를 호진과 혼인시킨 이유도 이날을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땐 결코 상황이 이리 변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시 소평파는 북주에 있어, 지금처럼 진국에 의탁하게 될 미래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그의 누이는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제국은 비바람에 흔들리고, 언제든 침몰할 수 있는 처량한 처지였다.

이는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소평파 스스로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소평파조차 자신이 누이를 도운 건지, 해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거기다 지금 역시도 제 손으로 누이를 다른 시시비비에 끌어들인 상황이었다.

* * *

소식은 남주에 있는 우유도에게도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저 일반적인 정보로 취급할 뿐, 딱히 유의 깊게 보진 않았다.

누가 제국의 황제가 되든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우유도에게는 우유도의 일이 있었다.

우유도는 돌아와서 먼저 요마령 쪽에 연락을 취해, 조웅가에게 계속해서 성자를 찾으라고 전했었다.

* * *

한편, 연국과 한국에는 큰 움직임이 있었다. 병력을 집결해 후진국 공격을 시작했다. 후진국의 항의를 무시한 채, 양국이 손을 잡고 사전에 논의한 대로 나뉘어 동시에 땅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후진국은 원래부터 세워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나라에다, 조정이 정치를 잘하지 못해 인심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과거의 조국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 후진국 방어력도 약해서 도무지 적들의 공세를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일패도지하거나 항복하는 지역이 속출했다.

정세가 그러했다. 연국과 한국은 이런 식일 수밖에 없었다. 진국이 세력을 크게 일으키고 있으니, 양국은 손을 잡고 진국에 대항할 준비를 해야 했다.

송국이 강렬하게 반대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다. 연국과 한국이 손을 잡고 움직이고 있었다. 후진국에 출병도 동시에 했고, 송국 국경에 병력을 보내 송국을 압박하고, 뒤에 있는 송국의 기습을 방어하는 것도 손을 잡고 동시에 진행했다.

이번에 연국과 한국의 태도는 놀랄 정도로 일치했다. 서로 간에 어떠한 방해나 수작도 부리지 않았다. 점차 강해지는 진국은 이미 두 나라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었다.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진국은 당연히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너무 멀어 영향력이 닿지 않으니, 그저 입으로만 연국과 한국을 비난할 뿐이었다.

그 얼마나 모순적인 이야기던가. 후진군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게 바로 진국인데, 또 후진국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니. 후안무치하기를 비교하자면 천하에 진국을 따를 곳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라 간의 외교라는 게 본디 이런 식이었다.

물론 그저 목소리만 낸 것도 아니었다. 후진국에게 적극적으로 휴전을 제안하며, 후진군이 서병관을 통해 후진국으로 돌아가 적을 격퇴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협상을 제시했다.

누가 봐도 제국 영역 안에 있는 저항력을 줄이려는 수작이었다. 동시에 후진군이 한국과 연국의 힘을 줄여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 후진군이 승낙할 리가 있겠는가. 다른 것 때문이 아니었다. 대군이 오가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 대군이 후진군에 돌아갔을 때는 후진국은 이미 끝장이 났을 시간이었다.

각국은 서로 욕설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문관들이 나설 때였다. 누가 더 인상 깊게 욕하고, 누가 더 고단수로 타국을 욕하는지 우위를 견줄 때였다.

* * *

그동안 고품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한쪽으로는 후진군과 협상을 진행하고, 한쪽으로는 제국 내부를 더욱 곤란하게 했다. 땅 위에서든, 바다 위에서든, 제국이 얻을 수 있는 모든 보급을 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수행자는 바다로 보내 제국으로 향하는 모든 화물선을 격침시키게 했고, 동시에 계속해서 제국 국내 제후들을 흔들어 혼란을 부추겼다. 승낙하지 않을 시, 그전에 진국과 결탁했던 죄증을 공표해 버렸다.

고품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대전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국과 전면전을 벌이지 않고, 계속해서 적을 말려 죽이려 했다. 가끔 병력을 보내 습격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저 제국 내부의 회복할 기회를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또한 동시에 제국 내부에서 전란에 고통받는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했다. 과거 위국 영토에 곡식이 풍족하고, 제국의 난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으며, 지금 그곳으로 넘어간 사람들은 매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식의 소문을 퍼트렸다.

그야말로 악독한 수작이었다. 제국의 약점을 정확히 찌른 것이었다.

전에 제군과 후진군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후, 수많은 제국 백성들이 말려들었다. 이제는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졌다. 나라의 사정을 넘어 일단은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유민들은 하나둘 과거 위국의 영토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람이야말로 농지 소출을 회복할 근간이었다. 충분한 인구가 없다면 근본이 없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고 제국이 어쩌겠는가.

제국은 다른 나라와 달랐다. 초원의 모든 곳이 길이었기에 유민들을 막을 수도 없었다. 설혹 막아선다 한들, 다음은? 그들에게 목숨을 연명할 곡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

고품은 제군과 후진군이 가진 곡식으로 과연 얼마나 버틸지 지켜보기로 했다. 반년을 버티면 그도 반년을, 1년을 버티면 그도 1년을 버틸 참이었다.

고품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는 싸움보단 적을 굴복시키는데 주력했다.

* * *

한편, 황위에 오른 호진은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선은 진국과 소통한 제후들을 사면했다. 전에야 어쨌든 그가 황위에 오른 후에는 과거를 모두 묻겠다고 장담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인심부터 다독이려 했으나 이미 돌이키긴 어려웠다. 구멍은 수없이 뚫려 있었고, 내부는 이미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시간을 끌수록 상황은 불리해졌다. 누가 봐도 제국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대세가 넘어갔다. 이제는 남은 목숨을 겨우 부지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 * *

운희는 지하 깊이 다른 곳과 떨어진 곳에 새로운 밀실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원강은 웃통을 벗고 마보를 하고 있었다.

복부는 반구형으로 볼록 튀어나와 끊임없이 꿈틀대고, 입과 코 사이에 있는 혈무에선 훅, 훅, 하는 바람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몸에 있는 혈도 위에는 작은 뱀 같은 혈문(血紋)이 왔다 갔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전체적으로 팔이 잘린 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만약 지금 법안을 열어 본다면, 천지 영기가 끊임없이 원강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터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며 원강의 팔은 이미 진작에 자라났다. 이젠 손바닥을 넘어 꿈틀거리는 새살이 서로 얽히며 손가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만 피가 너무 많이 필요하다 보니, 원강의 붉은 피부는 색이 바뀌어 처음엔 창백해졌다가 후에는 누렇게 바뀌었다. 코와 입 사이를 순환하는 혈무도 점차 색이 바뀌어, 누런 담황색이 되어갔다.

그 후로 아직 다 자라나지 않은 손가락 새살이 꿈틀거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회복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진 것이다.

그렇게 다섯 손가락의 윤곽이 잡힐 정도로 회복된 순간부터, 더는 새살도 꿈틀대지 않을 때쯤 원강은 목구멍에서 기침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가슴도 격렬하게 움직이며 입에선 금색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금빛 안개는 다시 코와 입을 왕복하며 순환했다. 동시에 몸에선 천둥 같은 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입으로 빨아들이자, 금색 안개는 폐까지 빨려 들어갔다. 복부에서 꿈틀대던 반구도 천천히 원상복구 되었다.

원강은 돌연 눈을 번쩍 떴다. 눈에선 웅혼한 정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찰나의 순간 터져 나온 정기신을 천천히 수습한 후, 양팔을 활짝 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두둑-

터져 나온 관절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 * *

우유도는 서탁에 앉아 각지의 소식을 확인하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때, 한쪽에 있던 운희는 고개를 돌리다가 멈칫했다. 지하에서 걸어 나온 원강을 발견한 것이다. 이내 운희는 우유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우유도는 그녀를 한번 돌아보곤 그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의 얼굴도 똑같이 멍해졌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 우유도는 마치 괴물을 보는 듯 원강을 바라보았다. 붉은 얼굴의 홍안 원숭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웃통을 벗고 있는 원강은 온몸이 옅은 금빛을 띠고 있었다. 홍안(紅顔)이 금안(金顔)이 된 것이다.

“어떻게 된 거야?”

우유도의 물음에, 원강도 제 양팔을 한번 내려다보고 대답했다.

“저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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