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6화. 강직한 귀의
얼마 지나지 않아, 원비가 불러 모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귀의와 무심, 무상은 수많은 병을 꺼내 들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사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사람들을 크게 괴롭히지도 않았다. 그저 한 사람씩 아주 소량의 혈육을 채취했을 뿐이었다. 예상처럼 그리 무섭지 않았다.
사람들은 처음엔 영문을 모르고 불려왔지만, 귀의를 확인한 후에는 대략적으로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다들 귀의의 상궤를 벗어난 치료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검사는 간단했어도, 속으론 공포가 밀려들었다.
그들이 물러간 후, 세 사람은 채취한 혈육을 가지고 이리저리 검사를 진행했다. 다들 바쁜 척 움직이고 있지만, 무상은 그저 옆에서 허드렛일만 도왔다. 사실 약곡에서 귀의의 진정한 제자라 할 수 있는 건 무심뿐이었다.
* * *
세 사람은 깊은 밤까지 바쁘게 움직여서야 모든 일을 다 마쳤고, 다음 날이 밝자마자 원색이 직접 그들이 머무는 곳으로 찾아왔다.
귀의는 3명 이름이 적힌 혈육이 든 병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예상이 맞았습니다. 성존과 같은 공법을 수련한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적합률이 높았습니다. 어찌어찌 쓸 수 있는 사람을 셋이나 찾았습니다.”
어찌어찌? 이 중대한 일을 어떻게 그리 대충 처리할 수 있는가. 원색은 입꼬리만 끌어올리며 병 3개를 집어 들었다. 그는 위에 적힌 이름을 다 확인한 후 다시 병을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이 3명이 나와 제일 적합한 건 아니라는 말이군?”
귀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최소한 보통 사람들의 눈보다는 잘 어울릴 것입니다.”
원색이 뒤돌아 원비에게 물었다.
“성지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검사해 보았더냐?”
“그렇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성지 밖에 있습니다. 이미 곽공에게 연락을 취했으니, 아마 3일 이내에 도착할 것입니다.”
원색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때, 귀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성비 말씀은 사실이 아닙니다. 성존 앞에서 사실을 말씀하셔야지요. 그래야 나중에 소인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질책하지 않으시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무심의 가슴이 다 철렁했다. 사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강 추측이 갔다. 사부는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다만 무심은 귀의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지 못했다. 귀의가 그에게 했던 말처럼 이미 남명에게 찍혔다. 이미 한 발을 잘못 디뎠으니 되돌아갈 길은 없었다.
원색 앞에서 원비가 검사를 거절했음을 고하지 않으면 귀의도 더는 강요할 방법이 없었다. 원비에게 수작을 부릴 수 없다면, 남명의 요구를 완수하지 못한다면, 남은 건 죽음뿐이었다.
이내 원비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원색은 귀의를 한번 보고 다시 원비의 반응을 살펴봤다.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게 분명했다. 그는 곧 유쾌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흑리야,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해라. 내 앞에서 그리 숨길 필요 없다.”
“소인이 어찌 감히 그리하겠습니까. 다만 성비의 태도를 기대할 뿐입니다.”
원비에게 직접 물으란 뜻이었다. 원색은 흥미로운 얼굴로 원비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그리 모호하게 하는 것인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귀의를 보는 원비의 눈빛에 원한이 서렸지만, 담담히 답을 이었다.
“별일 아닙니다. 흑리는 저를 검사 범위에 넣었고, 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원비는 진실을 그대로 말했다. 귀의가 사실을 밝혔으니, 평소 원색의 머리를 생각하면 더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원색의 한쪽 눈이 의미심장한 빛을 번쩍였다.
“호오……. 그래, 확실히 그럴 필요 없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원색이 원비를 완전히 편애하고 있었다. 귀의는 흠칫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말이 이리 된다면 남명은 자신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
“예, 성존의 말씀이 맞습니다. 성존께서는 성존의 이치가 있으시지요. 다만 소인은 의생으로서 치료해야 할 병환(病患) 앞에 줄곧 사실만을 입에 담았습니다. 이제 더는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 치료에 빈말은 아무 이득도 없지요. 소인이 보기에, 성비야말로 가장 적합한 분일지도 모릅니다.”
귀의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무심은 그야말로 숨도 내쉬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었다. 사부의 방식은 너무도 강렬하고 묵직했다.
원비의 얼굴은 즉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흑리! 그게 무슨 소리냐! 기어이 나와 대립하겠다는 소리더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소인이 말씀드렸다시피, 소인은 언제나 치료해야 할 병환 앞에 사실만 입에 담습니다.”
“뭐라? 사실만 입에 담아? 순 헛소리! 누가 봐도 내가 마음에 안 들어, 이참에 보복하려는 것이 아니더냐!”
삿대질하는 원비를 보고, 귀의도 안색을 굳혔다.
“성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말씀드렸다시피 빈말은 치료에 아무 이득도 없습니다. 소인은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소인은 성비와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어째서 이것이 보복이란 말입니까?”
원비는 즉시 반박했다.
“네가 만약 눈으로만 보고 누가 가장 적당한지 알아낼 수 있는 거라면 이처럼 많은 힘과 시간을 들여 굳이 사람들을 찾아다닐 필요가 있더냐? 그냥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서 한 바퀴 돌면 끝이 아니더냐! 그런 능력이 있으면서 지금까지 시간을 낭비한 건 뭐라고 설명할 것이냐?”
원색도 한쪽 눈을 번뜩이며 귀의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 그 부분은 원색도 의아하게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무상과 무심 또한 걱정했다. 원비는 핵심을 짚었다. 사부가 과연 뭐라고 대답할지 염려되었다.
탕!
귀의는 탁자를 내리쳤다. 의생으로서 크게 분노한 듯한 연출이었다.
“성비!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의 주장일 뿐입니다! 성비께서 모르신다니 저도 부러 성비와 드잡이질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검사를 받기 싫으시다면 그만이지 이런 식으로 노부를 모욕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성존의 부상을 저 말고 다른 자가 치료할 수 있다면 그냥 그분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귀의는 두 제자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직도 여기서 뭐 하고 있느냐? 빨리 물건을 정리해라!”
무상과 무심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수많은 약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비는 가볍게 냉소를 지었다.
“흑리, 대원성지가 네 집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네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이란 말이냐?”
그에 귀의가 소매를 탁탁, 쳐내며 다시금 분노를 토했다.
“노부는 오래도록 의를 행하며 성비처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는 것입니까? 원하시는대로 맞춰드리지요!”
원비도 진노했다. 대원성지에서 이처럼 대놓고 오만하게 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분노로 손을 쓰려는데, 순간 원색이 그녀를 저지하고 나섰다.
“아이고! 할 말이 있으면 차분히 설명하면 될 것 아니냐! 서로 아무 원한도 없건만, 말이 안 통한다고 바로 싸우려 하다니. 이 사실이 소문나면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진정들 해라. 여기서 누구라도 더 소란을 피운다면 본 성존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원비가 굳은 얼굴로 냉소를 짓다가 귀의를 빤히 쳐다보며 침묵했다.
귀의도 마찬가지로 원비를 노려보며 수염을 부들거리며 두 눈을 부릅떴다. 그냥 보아도 매우 화가 난듯한 모습이었다.
원색은 다시 귀의를 돌아보며 웃음을 지었다.
“흑리야. 원비의 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네가 그저 보는 것으로 알아낼 수 있다면 이처럼 큰 공을 들일 이유가 무엇이냐? 원비를 문외한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럼 전문가의 말로 설명해봐라. 우리가 그걸 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무난히 지나갈 수 있는 일이지 않겠느냐? 이렇게 싸워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법이지. 그렇지 않나?”
귀의는 여전히 분노의 여운에 잠겨 있었지만, 그래도 천천히 운을 뗐다.
“일반적인 의생이 치료하는 수단으로 망(*望: 살펴보기), 문(*聞: 냄새 맡기), 문(*問: 질문하기), 절(*切: 자르기) 이 4가지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관망지법(觀望之法)으로 병증을 식별하는 건 저도 마찬가지이지요.
이 관망지법은 의생 각 개인의 경험과 능력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망지법은 보조 방식일 뿐,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소인도 성비를 검사해 확실히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원비가 다시 냉소 지었다.
“헛수작이겠지.”
“이처럼 간단한 이치를 알려줘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더 깊고 오묘한 이치를 설명한다 한들 이해할 순 있겠습니까? 아직도 소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간단하지요. 사실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이렇게 하시지요. 성비께서는 속세에서 임산부를 데려오십시오. 노부는 오직 ‘망’으로만 살펴보고, 태아가 여아인지, 남아인지, 회임한 지 몇 달 인지 맞춰보겠습니다. 만약 하나라도 틀린 것이 있다면, 소인이 직접 제 머리를 잘라 바치겠습니다. 절대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비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두립을 쓴 무상을 쳐다봤다. 원색도 마찬가지로 절로 무상에게 눈길이 닿았다.
다들 무상의 원래 신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귀의가 조국 금주자사부에서 데려온 사람으로, 사건 발생 당시 귀의는 해여월을 보자마자 복중에 남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었다.
당시 해여월은 배가 나온 상태도 아니었고, 회임 사실도 숨기고 있었으나 귀의는 그녀를 보자마자 회임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귀의는 단번에 태아가 남아라는 것도 알아맞혔었다. 귀의의 의술은 실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사실 묻힌 기억이었지만, 귀의는 직접 예시를 들어가며 그때를 끄집어냈다. 그렇게 사람들도 더는 귀의의 ‘망’에 대해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원비도 말문이 막혔다. 더는 귀의가 헛수작을 부린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확실한 수였다. 정말 진지하게 달려들었다간 체면을 크게 구길 수도 있었다.
반면 무상과 무신은 방금 귀의의 말이 순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속이려는 헛소리임을 알았다. 회임 상태나 태아의 성별은 알아볼 수 있다 해도 특정한 이의 안구가 누구에게 적합한지는 보기만 해선 알 수 없었다.
정말 그런 능력이 있다면, 귀의도 경성에서 미리 안구를 구해오지 않았을 터였다. 사실 귀의는 이미 원색에게 적합한 안구를 준비한 상태였다.
“됐다, 됐다. 그저 이치를 말한 게 아니더냐. 머리를 바치느니, 마느니 너무 과한 이야기다. 원비를 검사하는 일은 그냥 지나가도록 하자.”
원색은 열정적인 중재인처럼 나서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그리곤 다시 원비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관련된 사람이 밖에 몇이나 남아있더냐?”
“아직 열몇 명 남아있고, 3일 안에 모두 들어올 것입니다.”
원비도 최대한 차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를 검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방금 귀의가 눈으로 보았을 때 가장 적합한 것이 그녀의 눈이라 천명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들이 들어오거든 원비가 수고해주게.”
“알겠습니다.”
원색은 다시 귀의를 보며 치하의 말을 하고는 그곳을 떠나갔다.
원비도 원색을 따르며 귀의 일행을 뒤돌아보았다. 지금 그녀의 두 눈에는 살벌한 독이 가득 찬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