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7화. 최상의 결과
그들이 모두 떠난 후, 무상이 조용히 당부했다.
“사부님, 저 독한 여인이 나중에 보복하면 어찌합니까?”
귀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역시 조용히 대답했다.
“보복? 네가 뭘 아느냐? 환자의 마음은 노부가 너보다 더 많이 보았다. 저 여인이 저리 방자하게 굴어도 결국 내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아직 몸에 이상이 없으니 그러지, 나중에 정말로 저 여인의 눈을 하나 뽑아낸다면 내게 와서 빌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데 보복이라, 간덩이 10개를 이식해준다고 해도 절대로 그렇게는 못 하지. 이 사부가 그 정도 확신도 없었다면, 네 사형의 일을 승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감히 저 여인 앞에서 눈을 부릅뜨지도 않았겠지.”
무상은 비로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쪽에 있던 무심이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부님, 그런데 원색이 원비를 감싸고 있습니다.”
“넌 여전히 속세에서의 단련이 부족하구나. 네가 나중에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된다면 깨닫게 될 것이다.
미인은 모두 영원한 젊음을 원하고, 제왕은 모두 불로장생을 원하지. 마찬가지로 환자는 원래대로 회복되는 것을 원한다. 입으로 백날 좋은 말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 결국은 내가 쓰라는 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여인이 감히 내 앞에서 저리도 오만하게 굴다니. 이왕 이렇게 원한을 맺었으니, 저 여인의 눈을 반드시 파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나도 절대 좋게 죽지 못할 것이다!”
* * *
이틀 후, 무심은 사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날은 원색의 제자, 현 표묘각 각주 곽공도 성경으로 와 검사를 받았다. 그렇게 검사받을 사람은 모두 다 검사를 끝냈다.
원색은 다시 귀의가 머무는 곳에 찾아와 결과를 물었다.
귀의는 다시 이름이 붙은 약병 3개를 건네며 말했다.
“성존께서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색은 병에 적힌 이름들을 확인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전히 저번의 세 사람인가?”
귀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후에 검사한 사람 중에 적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이들 세 사람만이 어느 정도 적합하다 할 수 있었습니다.”
원색과 같이 온 원비는 이를 악물었다.
“어느 정도? 괜찮겠는가?”
“최소한 성존께서 평소 사물을 보는 것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고, 조금 불편한 정도일 것입니다. 만약 그것보다 상황이 안 좋다 해도, 몇 년은 더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있으니, 분명 적합한 안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때 가서 바꿔도 늦지 않습니다.”
원색은 정신이 다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무려 눈이었다. 그런데 귀의는 마치 어디 탁자 하나 고치는 것처럼 쉽게 말하고 있었다.
“겨우 몇 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오해하셨습니다. 소인이 말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에도 몇 년은 사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가 없다면, 아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으십니다.”
“정말 더 안전한 방법은 없는가?”
“성존, 만사만물(萬事萬物)의 이치는 대부분 대동소이합니다.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지요. 성존께서 급하지 않으시면, 소인이 천천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는가?”
귀의는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것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성지의 적합률이 제일 높은 편이었습니다. 외부인 중에서 찾는다면……. 사실 이런 건 인연에 달린 일이지요. 여기서 나가자마자 찾을 수도 있고, 몇 년이 지나도 힘들 수도 있고……. 1만 명을 만나도 힘들 수도 있고…….”
원색은 독안(獨眼)으로 원비를 힐끗 쳐다보았다.
“네가 보기에 원비의 눈이 제일 적합하다고?”
원비가 입술을 깨물었다.
“경험으로 인한 판단입니다. 최종적인 결론은 아닙니다. 어쩌면 가장 적합한 것일 수도 있고, 이 세 사람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소인의 안목이 쓸모없을 수도 있지요. 그러니 적합 여부는 검사해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원색은 곧 유쾌하게 웃으며 원비를 쳐다보았다.
“원비, 검사만 한번 받아보는 건 어떠냐, 흑리의 안목도 시험할 겸.”
원비의 안색이 매우 나빠졌다.
“성존, 저자는 제게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저를 검사하게 한다면, 분명 적합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내 귀의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비!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안구가 말로 적합하다고해서 적합해지는 겁니까? 이는 진료 과정입니다. 조금도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되지요. 결과는 치료가 끝난 뒤 성존께서 직접 느끼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거짓으로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소인은 성비와 아무런 원한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비께서는 어째서 계속해서 저를 적대하시는 겁니까?”
원색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도 당연히 이게 단순한 적개심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원비는 그저 자신의 눈을 잃어버리기 싫은 것이었다. 귀의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치료 결과는 그가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곧 원색은 그 통통한 손을 들어 가볍게 원비의 등을 쓸어내렸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나는 단지 그 유명한 귀의의 안목이 어떠한지 궁금할 뿐이다. 그냥 검사를 받아보아라.”
그리고는 가볍게 그녀의 허리를 밀었다.
원비는 본의 아니게 두 발짝 앞으로 나갔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어 원비는 천천히 손가락을 내밀었다. 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많이 봐왔으니 딱히 물음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귀의는 즉시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고, 두 제자는 즉시 다가가 원비의 손가락에서 조심스레 혈육을 떼어냈다.
이후 원색은 방해하지 않겠다며 그대로 원비를 데리고 떠나버렸다. 그리곤 즉각 곽공을 불러 귀의의 거처를 잘 지키고, 원비를 포함한 그 누구도 귀의와 사제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덧붙여, 결과가 나오면 바로 알리도록 지시를 내렸다. 곽공은 당연히 충실히 원색의 명을 따랐다.
* * *
반나절이 지나, 곽공은 다급히 성전으로 달렸다. 그러나 원색 곁에 원비가 있는 것을 보고, 원색에게만 귓속말로 조용히 보고했다.
“사부님, 결과가 나왔습니다. 완벽합니다. 최상의 결과라 합니다!”
의자에 기대듯 앉아 있던 원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이어 그는 하나 남은 눈으로 원비를 바라보더니 곽공에게 호통쳤다.
“여기 외부인도 없는데 어찌 그리 비밀리에 보고한단 말이냐? 이 앞에서 크게 보고하거라!”
곽공은 멈칫하더니, 큰 소리로 보고했다.
“사부님, 결과가 나왔습니다. 최상의 결과라 합니다!”
원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혹시 실수가 있는 건 아니고?”
“귀의도 혹시 실수가 있을까 반복해서 검사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인제 보니 과연 그 늙은이 안목이 제법이군.”
원색은 곽공에게 물러가라 손짓하고는 원비를 바라보았다.
“원비, 걱정하지 말아라. 이 일은 너와 무관하다. 나는 단지 귀의의 안목이 어떠한지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귀의가 내게 적합한 안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구나.”
원비도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 * *
하지만 원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안구 찾는 일의 책임자는 원비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원색 곁엔 여자 하인 2명이 새로 생겼다. 그들이 밤낮으로 원색의 곁을 지키니 원비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원색이 둘러댄 이유는 원비에게 안심하고 수련에 힘쓰라는 것이었고, 또 무량원 쪽에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묵직했다. 원비에게 권력을 내놓고 무량원으로 떠나라는 것이었다. 이제 원비의 빈자리는 원색의 새로운 하인들이 대신하게 될 터였다.
대원성지의 풍향이 빠르게 바뀌었다. 원색은 두 하인을 밀어주기 시작했고, 원비는 한순간 세상인심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득세한 두 하인도 원비에게 점차 서슴없이 대하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겨우 이틀이나 지났을까, 원비는 성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원색을 보려고 해도 번번이 성전 밖에서 가로막혔다. 변명은 하나, 지금 원색이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
원비는 온몸으로 실권한 현실을 체감했다. 너무도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천한 것들은 자신이 두 번 다시 권력을 쥘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할 테고, 나중엔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일이 되겠지…….
결국 원비는 그대로 성전 안으로 밀고 들어가, 강제로 원색을 만났다. 그리고 끝내 본인 입으로 희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원색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곽공에게 귀의가 안구 이식을 준비할 수 있게 시급히 연락을 명했다.
* * *
반나절 간의 이식 수술이 끝나고, 좌안에 흰 천을 감은 원색과 원비가 치료실에서 같이 걸어 나왔다.
귀의는 원색을 따라 걸으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천제단을 복용하신다면 3일 후 성존의 좌안은 완치될 것입니다.”
“좋아, 3일을 기다리지.”
원색이 크게 웃었다.
3일간은 귀의 일행도 당연히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작은 장원을 나선 원색은 동행하는 원비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원비는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이미 흑리에게 단단히 당부해 놓았으니, 전력을 다해 원비에게 적합한 안구를 찾아줄 것이다.”
원비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한쪽에서 같이 걷는 곽공은 남몰래 탄식했다. 그는 이 여인이 굴복하는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원색은 처음부터 단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여인은 알아서 고분고분 협조하며 무릎을 꿇었다.
* * *
다급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원비는 거울 앞에 앉아, 눈을 가린 천을 살짝 들춰보았다. 왼쪽 눈엔 텅 빈 구멍만 남아 있었다.
원비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주체할 수 없이 부들부들 떨었다.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던 여인은 한순간 눈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원비는 좌안을 다시 천으로 가린 후, 거울 속 자신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엉망이 된 머릿속엔 홀연 정위를 죽이던 그 순간이 스쳐 지났다.
그녀는 정위에게, 사실 자신이 원색의 부인이었음을 알렸다. 당시 정위는 자신을 비웃었었는데, 이제야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가 됐다.
원색은 수백 년을 살았지만, 원비는 이제 겨우 몇 년을 살았던가? 그런데도 자신은 원색의 부인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감정을 추스른 뒤, 원비가 가장 첫 번째로 한 일은 원색 곁을 차지한 두 하인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원색은 그 일을 알고도 못 본 척해주었다.
* * *
초려별원 밀실.
우유도는 뒷짐 진 채 지도 앞에 서 있었다.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육성은 조금도 혼란스러워지지 않았다. 여전히 표묘각 내부 조사 진행 중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번 난리가 일어나 중단되긴 했지만, 다시 절차를 조정하고는 계속해서 할 일을 해나갔다. 이대로 간다면, 다음은 각 대 문파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하게 될 터였다.
이미 피할 수 있는 대책이 있다고는 해도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지경은 피하고 싶었다.
지금 남주 세력 배후에 자금동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일단 자금동이 도망쳐서 은거하게 되면, 남주도 연루될 수밖에 없기에 우유도는 최대한 그런 상황은 피하고자 했다.
육성은 흐트러짐 없이 차분히 단계를 밟아 나갔다. 그 때문에 우유도가 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때, 원강이 해석한 밀서를 가져와 우유도에게 건넸다. 이제 원강은 다시 원래 자신의 역할로 돌아왔다. 각지에서 보내온 정보와 소식을 책임졌다. 그에게 자유가 사라진 것이다. 다시는 나가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밀서는 사여래가 보내온 것으로, 최근 성경 내부에 여무쌍이 갈황의 손에 죽었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그 밀서를 빤히 읽어내려가던 우유도는 코웃음을 쳤다.
“오상이 수작을 부렸군. 가자, 우리의 무쌍성존을 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