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화. 혼란스러운 속세
앞뒤로 밀실을 나선 우유도, 원강은 동굴을 지나, 아래로 향하는 교차로를 건너 지하 깊은 곳의 한 거처로 들어갔다.
그곳에 백의를 입고, 얼굴은 흰 천으로 감은 채 멍하니 넋을 잃고 유등 등불을 바라보는 한 여인이 있었다. 여무쌍이었다.
여무쌍은 꼭 고치를 부수고 새롭게 태어난 것만 같았다. 운희의 법력에 도움받은 그녀는 무사히 새로운 피부가 자라나, 거의 원래 용모를 회복했다. 다만 그 피부가 현실적이지 않을 정도로 여려 보였다. 사실 아직 완전히 정상적인 피부는 아니라, 머리카락, 눈썹 같은 건 다 자라지 않은 상태였다.
곧 우유도는 그녀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안색이 좀 더 좋아졌네. 조금만 지나면 정상이 되겠어. 지금 당신 나이에 그 큰 상처를 입고도 이 정도로 회복할 수 있다니, 무량과는 과연 신비한 물건이야. 경지가 사라졌어도 무량과로 인한 육신은 여전하군.”
여무쌍은 그냥 우유도를 무시하고, 넋을 잃고 유등 등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우유도는 그녀에게 밀서를 내밀었다.
“당신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분명 그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겠지? 얼른 피하라고 연락을 취해. 내가 대신 소식을 전해주지.”
여무쌍이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밀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네가 그런 호의를 베푼다고? 내가 볼 때는 일단 그들을 음지로 숨겼다가, 나중에 활용할 참이겠지?”
그녀는 그대로 밀서를 유등으로 가져가 재로 만들었다.
“지금은 그냥 단지 누군가 소문을 낸 것뿐이야. 지금 저들에게 피하라고 하면 아직 기회는 있어. 늦는다면……. 이 안에 네 제자도 있겠지?”
“네가 보기에 나한테 아직도 저들의 죽음이 중요해보여?”
“네가 아직 가치가 있다면, 나는 널 살려둘 거다. 이 간단한 이치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여무쌍은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난 영문도 모르고 죽고 싶지 않아. 그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보여라. 그러면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네가 시키는 대로 해주지!”
“지금 그 지경이 되고도 내가 누군지 중요하다는 건가?”
우유도가 조용히 말했다.
“만약 너라면 누구 손에 잡힌 지도 모르고 승복할 수 있겠나?”
“승복하지 못한다 한들 뭘 할 수 있지?”
여무쌍은 곧 한 글자씩 씹어 뱉으며 물었다.
“우유도? 너는 우유도가 맞느냐?”
그녀는 매번 우유도를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우유도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천천히 목 부근으로 손을 옮겨 가면을 뜯어냈다.
우유도는 본 모습으로 돌아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됐지?”
여무쌍은 두 눈을 부릅떴다.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너였어…….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분명 죽었는데! 아니야. 죽은 건 네가 아니군. 네 대역이었어. 그건 네가 꾸민 함정이었던 거야. 맞지?”
우유도는 살짝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근데 성경은 어찌 떠난 거지? 성경 내부에 내통하는 자가 있었나?”
“구성은 인심을 잃은 지 오래다. 성경에서 내통자를 찾는 건 꽤 쉬웠어.”
“네가 제5 영역에 함정을 설치했군. 제5 영역 존재는 어찌 안 거냐?”
질문이 정말로 그치질 않았다. 우유도도 그녀의 마음에 의문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손을 들어 말을 끊어냈다.
“시간 많아. 급한 게 아니니 그건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고. 일단 그쪽 사람들한테 연락부터 취해. 일단 그들 목숨을 살리는 게 먼저니까.”
그리고 원강에게 말했다.
“성존을 위해 지필묵을 준비해주도록.”
이내 원강이 돌아선 순간, 여무쌍이 갑자기 소리쳤다.
“멈춰!”
원강이 뒤돌아보자, 여무쌍이 그의 팔을 노려보며 말했다.
“잘린 팔이 다시 자라났군? 무량과를 사용한 거냐?”
그러다 여무쌍이 다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당시 넌 무량원 문제를 조사하고 있었다. 설마 네가 무량과를 훔쳤느냐?”
우유도는 순간 웃음이 터질뻔했다. 물론 무량과는 그가 훔친 게 맞았다. 하지만 그렇게 추측한 이유가 원강의 팔이 새롭게 자라났기 때문이라니. 우유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무쌍성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원강의 팔이 새로 자라난 건 수련하는 공법과 연관 있을 뿐, 무량과와는 아무 상관 없다.”
여무쌍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30년 전 도둑맞은 것이니 우유도와는 관계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기묘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저 눈앞의 두 사람 중 하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고, 하나는 팔이 잘렸다가 다시 자라났다. 참으로 공교로운 현실이었다.
이후 원강은 별말 없이 빠르게 나가 지필묵을 가지고 돌아왔다.
여무쌍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다만 서신을 쓸 때, 형식에 관해선 약간 충돌이 일었다. 여무쌍은 밀서를 쓰려고 했고, 우유도는 거부했다.
밀서에 무슨 말을 써 놓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만약 이곳 일을 폭로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할 터였다.
우유도는 그녀에게 명신(明信)을 적게 했다.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 하나를 지목하면 그에게 직접 전하겠다고 했다.
서신을 받고, 우유도는 즉시 운희를 찾아갔다. 우유도는 운희에게 한차례 비밀스러운 당부를 했고, 운희에게 직접 서신을 전하고 오라고 했다.
그렇게 운희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운희의 일을 넘겨받은 관방의가 찾아와 밀서를 건넸다.
“소평파 쪽에서 귀의 일행이 이미 약곡으로 돌아갔고, 일을 잘 처리했다고 답신을 보내왔어. 혹시 이제 소유아를 풀어줘도 되냐고 물어보는군.”
이런 일은 여전히 운희가 관리하고 있었다. 이유는 원강의 고지식함 때문이었다. 원강은 이처럼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은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서신을 확인한 후 우유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귀의라는 사람 말이야. 참 보통이 아니군. 그냥 시도하는 마음으로 해본 일인데, 정말 성공시키다니. 이제 풀어줘도 돼. 이러고도 소유아가 돌아가지 않을 수는 없지. 그리고 소평파를 통해 무심에게 전해. 원비는 반드시 한가지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아무리 이런저런 눈을 이식해도, 원색의 좌안에는 원비의 눈이 제일 적합하다는 이치를.”
* * *
진경 소부 안.
서재에 조용히 앉았던 소평파는 받은 서신을 확인하고 냉소를 지었다.
“이 가무군의 수법이 과연 악독하군. 우선은 원색에게 원비의 눈을 파내게 해서 원비의 마음을 떠나게 만들고. 이간질로 서로를 멀게 만들어 다시 그 눈을 빼앗도록 유혹하다니, 그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워지게 만들고 있어.
미인은 제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겠지. 한순간은 참을 수 있어도, 평생 참기는 힘들 것이다. 원비가 원색의 얼굴에 있는 자신의 눈을 잊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원색을 배반하겠지.”
“아가씨를 풀어줘도 무심이 우리 말을 따를까요?”
소삼성의 질문에, 소평파가 반문했다.
“귀의 쪽에 선택의 여지가 있더냐?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더냐?”
* * *
소유아는 풀려났다. 차불지, 고점후, 사용비가 그녀를 직접 데려왔다.
호진이 황위에 오른 뒤, 세 사람의 지위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소유아는 붙잡혀 있는 동안 밖의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 성곽 안에서 호진과 재회하고 나서야 제국의 황제가 되었음을 알았다.
호진은 당연히 소유아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표묘각이 어째서 그녀를 데려갔는지 물었다. 하지만 소유아도 아는 게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데려가 가두고, 먹을 것만 주었다고 한다. 평소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고, 당연히 표묘각 사람이 찾아와 뭔가를 물은 것도 없다고 했다.
호진은 답답했지만, 지금은 그곳에 힘을 쏟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전심전력으로 비바람에 흔들리는 정세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수일이 지나, 제국의 모든 신하가 동의한 가운데 소유아는 순조롭게 제국의 황후가 되었다. 상황은 혼란스러웠고, 대대적으로 축하할 재력도, 여력도 없었기에 모든 의식은 간소화되었다.
* * *
한편, 연국과 한국의 연합군은 쉬지 않고 후진군을 몰아쳤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도 저항다운 저항을 마주한 적도 없었다. 그야말로 말을 타고 질주하는 속도로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제국 경내에 있는 후진군은 항의와 비판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속세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수행계도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표묘각은 계속해서 불안하게 흔들렸고, 성경 내부는 더욱더 파란만장했다.
전쟁과 연관이 없는 일반 백성들은 별 느낌이 없었지만, 어느 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온 천하가 격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음을 절감했다.
그 와중에 성경 내부에서 연달아 큰일이 발생했다. 여무쌍이 들렸다는 소식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쌍성지의 모든 사람이 다 사라졌다. 그냥 홀연히 분산돼 숨어든 것이었다.
여무쌍이 죽었다는 소문과 함께 행방불명되자 무쌍성지의 인심도 날로 흉흉해졌다. 그러던 찰나, 갑자기 여무쌍에게서 숨으라는 명령이 전해졌다.
여무쌍조차 그렇게 말하는데, 감히 밑의 사람 그 누가 망설일까. 그들은 그 즉시 음지로 숨어들었다.
이 일로 독무허, 남도림, 설파파, 오상, 원색, 나추 여섯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았지만, 무쌍성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작 소문을 낸 오상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최 여무쌍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만약 죽었다면, 이런 행동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좀 달랐다. 다들 서로의 성지에 밀정 한두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아주 긴 시간을 같이 지냈다. 상대의 집안에 밀정을 심어 놓는 건 아주 정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무쌍성지의 인원들이 갑자기 음지로 숨어든 이유는 여무쌍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 했다. 여무쌍이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면, 아랫사람들에게 숨으라고 명령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의논해도, 대체 여무쌍이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섯은 일단 여무쌍의 세력에게 손을 쓴 후에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가장 좋은 것은 여무쌍을 끄집어내서 변명을 듣는 것이었다.
여섯은 성경 내부에서 연합해 무쌍성지에 대한 토벌을 진행했다. 다들 무쌍성지에 밀정 한두 명씩은 심어 놓았고, 토벌을 진행하며 무쌍성지에 적지 않은 손실을 입혔다.
그래도 무쌍성지 사람들은 분산해 숨은 결과로 일망타진은 피했다.
또 표묘각에 있는 무쌍성지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도 당연한 순서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일부만 잡고, 핵심 인원 대부분은 사전에 무쌍성지의 연락을 받고 이미 벌써 다 도망친 후였다.
장손미와 목연택의 세력을 처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성경이 또다시 여무쌍의 세력에 손을 쓰자, 수행계는 매우 놀랐다.
수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다. 구성은 오래도록 천하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어쩐 일인지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당최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