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9화. 나를 아내로 맞도록
태학 내부.
일단의 학생들이 각지로 나가 실습을 하게 됐다. 이에 소평파가 한창 송별 훈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을 모두 보낸 뒤, 소삼성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동쪽에서 답장이 왔습니다.”
여무쌍의 일이 있고, 소평파는 당연히 그 내막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소삼성에게 즉시 가무군에게 연락을 취해, 혹시 그가 한 일이냐고 물었었다.
소평파는 곧 좌우에 있는 교학 선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해어진 후, 조용한 곳으로 가서 소삼성이 건네준 종이를 펼쳐 보았다.
서신에는 딱 두 글자만 적혀 있었다.
「기살(*旣殺: 이미 죽임).」
이 짤막한 답으로 가무군은 자신이 여무쌍을 죽였음을 시인했다.
소평파는 천천히 서신을 동그랗게 구기며 중얼거렸다.
“또 하나의 성이 무너졌구나, 과연 신귀막측한 능력이로다.”
소평파는 크게 놀났다. 중생 위에 군림하던 구성이 소리 소문도 없이 연달아 하나둘 처리되고 있었다. 사전에 어떠한 징조도 없었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속도는 소평파의 상상을 가뿐히 초월하고 있었다. 소평파는 가무군이 대체 어떤 방식을 쓰는지 예측도 되지 않았다.
* * *
하지만 우유도는 지금 상황을 낙관할 수 없었다. 이렇게 많은 일이 생겼지만, 육성이 무량과를 조사하는 걸 멈추진 못했다. 표묘각에 대한 조사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젠 그저 조사를 잠시 방어하거나 속도만 늦출 뿐이었다.
우유도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다. 그냥 포기할 수도 없었다. 우유도는 계속해서 그들을 방해해야 했다.
그는 다시 여무쌍을 찾았다. 여무쌍과 대화하고 싶었지만, 여무쌍은 그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말을 거부해도, 우유도는 단도직입적이었다.
“육성이 당신 세력을 대대적으로 소탕하고 있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이 죽었지. 혹시 반격하고 싶진 않나?”
여무쌍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래도 우유도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나는 누가 무량과를 훔쳐 갔는지 알고 있다.”
그제야 여무쌍의 두 눈이 번득였다.
“누구지?”
“독무허! 독무허의 제자와 손제자는 이미 무량과를 이용해 원영기 경지에 올랐지. 오풍을 예로 들 수 있지. 얼마 전 누군가 그를 발견했지만, 오히려 오풍에게 살인 멸구를 당했고, 독무허는 그 일을 숨겼다.”
“그게 내게 중요한가?”
우유도는 계속 말했다.
“나추의 부인 은희는 사실 죽지 않았다. 줄곧 호족 사이에 숨어있었어. 나추는 호족과 결탁했다.”
여무쌍의 두 눈에 경악이 스쳐 지났다. 진정 의외였다. 하지만 여무쌍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대신, 반문했다.
“내게 이런 것들을 알려주는 이유가 뭐지?”
“육성의 사람들이 당신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네 사람이 이 일들을 폭로하는 건 아주 정상적인 수순이지. 이제 우리가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여무쌍이 우유도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우유도가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다해 경청하지.”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나는 내 목숨을 부지하고 싶을 뿐이다. 내 협력을 원한다면, 내게 한 가지 약조해라.”
우유도가 빙그레 웃었다.
“어디 한번 말해봐.”
여무쌍은 곧 한쪽에 서 있는 무표정한 원강을 돌아보았다.
“저자가 나를 아내로 맞도록 해라!”
무표정한 얼굴의 원강이 무척 격렬하게 반응했다. 진정 자신을 말하는 게 맞냐는 얼굴로 깜짝 놀라 여무쌍을 바라보았다.
우유도 또한 깜짝 놀랐다. 지금 뭘 들은 건지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
“……뭐???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해봐.”
여무쌍은 아예 손까지 들어 원강을 가리켰다.
“제대로 들었어. 저자와 혼인할 것이다. 내가 널 따르길 원한다면, 원강이 날 아내로 맞아야 할 것이야.”
결국 원강도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지금 장난하는 건가?”
“장난 아니다! 심각하게 고민한 결과다.”
“너…….”
우유도가 손을 들어 원강의 말을 끊었다. 그렇게 우유도는 일단 원강을 진정시킨 후, 다시 여무쌍을 바라보았다.
“장난이 너무 심한 것 같군.”
여무쌍은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한 글자씩 분명히 강조했다.
“다시 말한다.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다.”
우유도가 잠시 소리 내 웃었다.
“하하! 당신 신분을 생각해. 원강은 그냥 거친 사내놈이야. 성존과는 도저히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지.”
“하, 신분? 네가 보기에 난 지금 무슨 신분이지? 난 지금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죽을 수도 있는 죄수에 불과하다. 그래도 내가 아직도 높은 신분인가? 나도 그 정도 주제는 파악하고 있다.”
우유도는 다소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물었다.
“이 세상에 까닭 없는 혼인은 없을 터, 특히 성존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 말해봐라. 원강과 혼인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뭐지?”
“말했다시피 난 이제 다른 건 하나도 중요치 않아. 그저 내 목숨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내가 원강과 혼인만 하면 앞으로도 목숨은 멀쩡하겠지.”
우유도 또한 혹시 그런 이유는 아닐까 예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대답을 들으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목숨 부지를 위해서라면 왜 굳이 원강이지? 나하고 혼인한다면 그 목숨줄이 더 단단히 붙어있지 않겠어?”
“하! 네가 날 받아 주긴 할 텐가? 하지만 원강은 네 말을 듣겠지.”
우유도는 고개를 저으며 원강을 직접 가리켰다.
“하하, 저놈이 내 말을 들어? 그럼 당신이 직접 물어보든가. 이런 일에 내 말을 들을 사람으로 보이나?”
그러나 여무쌍은 원강에게 무엇도 묻지 않고 우유도에게 명확히 답했다.
“너는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세상에선 그런 사람이 가장 못 믿을 사람이지. 하지만 원강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 너보다 믿을 만하다.”
제5 영역에서 죽을 뻔했을 때도 여무쌍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그녀는 다시 한번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여무쌍에게 더는 이용 가치가 없다면 그녀는 아주 위험해질 수 있었다. 최소한 경륜으로 지금 상황을 분석하자면 그러했다.
이 상황에 그녀를 구명할 생명줄은 원강뿐이었다. 이유는 방금 우유도에게 말한 것과 같았다.
그녀는 무변사막에서 원강을 기다리던 우유도를 보았다. 우유도가 원강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또 하나, 원강이 목숨 걸고 나조를, 호연가를 도우러 간 것도 한몫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런 사내와 혼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물론 여무쌍도 원강이 싫지 않았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녀는 우유도 같은 사람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우유도가 원강보다 신분이 높다 한들, 별로 끌리지도 않았다. 과거 여무쌍의 신분이 어떠했던가. 이미 우유도의 신분은 아무런 매력도 되지 못했다. 이 모든 건, 여무쌍이 길고 긴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때, 우유도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일단 자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는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사람 보는 안목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구성다운 판단력이었다. 원강과 하나로 묶이면 우유도가 여무쌍을 건들지 않으리란 걸 파악한 것이다.
“원강이 그런 일에 내 말을 들을까?”
우유도가 고개를 젓곤 원강을 돌아보며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였다.
“무쌍성존이 그 신분에도 너와 혼인하겠다는데, 어때. 혼인할 것이냐?”
원강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야, 그 농담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우유도는 픽, 웃으며 다시 여무쌍을 바라보았다.
“봤지? 이런 건 나도 함부로 강요할 수 없다.”
“마음대로 해. 나도 강요하지 않을 거다. 강요할 수도 없는 거고.”
여무쌍의 태도는 명확했다. 그녀와 원강이 혼인하지 않으면, 여무쌍의 협조를 얻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 보장도 없는 상황에 자신의 이용 가치를 잃어버릴 일을 할 리도 없었다. 우유도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여무쌍,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는 것이냐? 고문을 당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인데.”
“내게 이용 가치가 있다면, 넌 날 죽이지 않겠지. 만약 나를 불구로 만든다면 나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협박할 수도 없을 거다. 알지? 나는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도 견뎌냈다. 더는 못 견딜 고문이 뭐가 있을까.”
우유도는 별말 하지 않고 그대로 뒤돌아 나갔다. 여무쌍의 말이 맞았다. 정확히 핵심을 짚었다. 여무쌍을 불구로 만들면 다른 사람을 협박할 때 이용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여무쌍과 이렇게 힘겨루기할 시간도 없었다.
여무쌍이 협조하지 않겠다니, 우유도는 성경에 있는 이쪽 사람들을 이용해 소문을 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다신 여무쌍이 육성에게 대립하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은희가 살아있다는 소식도 퍼트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근원도 없는 소문이 나면 나추는 가장 먼저 상황을 알고 있는 사여래를 의심할 터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사여래는 최소 의심자 대상에는 들어갈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방법이 없었다. 은희가 대놓고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 * *
접몽환계.
거대한 나무에 난 구멍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빛을 발하는 나무즙이 구멍에서 천천히 하나로 뭉치더니 반투명한 결정체가 됐다. 꼭 호박 같은 모습이었다.
그 호박처럼 빛나는 결정체는 마치 호흡하듯 규칙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반짝거리는 빛으로 그 안에 사람의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위 숲속에 적지 않은 접나찰들이 분포돼 있었다. 특히 혈나찰이 가장 많았다. 허공에서도 접나찰들이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그들의 제왕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거대한 나무 꼭대기 위에 있던 접나찰 한 마리가 갑자기 뒤를 돌았다. 다시 2마리가 뒤돌고, 또다시 3마리가 뒤돌아보았다. 연이어 수많은 접나찰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며 거대한 나무 구덩이를 주시했다.
이들의 시선 끝, 나무 구멍 안에서 그 호박 같던 결정체가 드디어 호흡을 멈췄다. 그러다 빛이 점차 수그러들더니 주변이 다시 어둠에 묻혔다.
퍽!
일순 손톱 하나가 굳은 호박을 깨고 튀어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쾅!
이어서 둥그렇게 굳어있던 호박이 터지며, 동굴 속에서 한줄기 은빛이 쏘아져 나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드디어 중상을 입고 깊은 잠에 빠졌던 성나찰이 깨어난 것이다.
“하악!”
성나찰은 서늘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악! 하악!”
주변에서도 응답이 들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접나찰이 날개를 펼치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서서히 성나찰을 둘러싸고, 주위에서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다만 무슨 감정을 표현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얼굴에 괴이한 은색 문양을 한 성나찰은 자라고 회수되길 반복하는 손톱을 한번 쳐다보다가 홀연 양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견갑골 문양에서 빛 2줄기가 뻗어져 나오더니, 은빛이 서서히 커지며 날개 형태를 갖췄다.
꼭 성나찰이 은빛으로 된 새장에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하악!”
양손을 불끈 쥔 성나찰은 날카로운 고함을 질렀다.
“하악! 하악! 하악…….”
수많은 접나찰도 계속해서 대답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은빛 날개는 천천히 움직이며 성나찰은 갑자기 한줄기 은빛 유성처럼 사라져갔다. 수많은 접나찰들도 날개를 펼치고 끊임없는 울음소리로 뒤를 따랐으나 감히 성나찰의 비행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성나찰은 이미 그들의 시선에서 사라졌지만, 접나찰들은 포기하지 않고 성나찰이 떠나간 방향을 향해 날갯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