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1화. 육성보다 먼저 (2)
우유도는 계속 밀실을 서성였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이번 일로 영향을 미칠 수많은 상황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곧 운희가 봇짐을 하나 매고 나타났다. 그렇게 원강을 기다리는데, 마침 원강이 빠르게 뛰어왔다. 그의 손에는 다른 서신이 들려 있었다.
“도야, 서해당이 서신을 보냈어요. 성나찰의 흔적을 발견했답니다!”
우유도는 바로 서신을 살폈다. 운희도 곁에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내 성에 난입한 자가 어디 있느냐고……?”
우유도가 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틀림없어. 분해서 나온 거야. 나머지 성존을 찾아 복수하려고. 자신이 싸운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눈치군. 더군다나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도 힘들고 말이야. 이런 식으로 대놓고 자신을 드러내니, 찾는 건 어렵지 않겠어.”
우유도가 운희를 힐끗 바라보고는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렵지 않다고요? 제가 보기엔 큰일입니다. 표묘각 사람들은 온 천하에 퍼져있어요. 이 상태면 어딜 가든 감시가 붙을 테고 우리도 그녀와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없는 상황에 그 수많은 눈을 뚫고 어떻게 데려옵니까?”
운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어떡하지?”
우유도도 주먹 쥔 손을 입가에 대고 고민하다가, 곧 단호하게 말했다.
“날짐승 2마리가 필요해요. 그리고 여무쌍을 데려가죠. 정말 손을 써야 한다면, 그녀의 신분으로 표묘각 이목을 물릴 수 있어요. 그냥 여무쌍이 한 일이라고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지금 여무쌍은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아서 너무 눈에 띌 거야.”
“그건 간단해요. 홍랑의 기술로 여무쌍을 화장시켜 피부색을 바꾸고 가발을 씌우면 되죠.”
“좋아!”
운희는 들고 있던 봇짐을 내려놓고 빠르게 뛰쳐나갔다.
그때, 원강이 급히 다가왔다.
“도야, 여무쌍 그 여자 보통이 아니에요.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죠. 이용하기 쉽지 않아요. 어쩌면 이번 기회에 조건을 제시할지도요.”
우유도가 그를 돌아보더니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슨 조건. 설마 이번 기회에 널 협박해서 결혼할 거라고?”
원강은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다. 일종의 긍정이었다.
우유도는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 아내 자리를 가지고 거래하진 않을 거니까. 여무쌍을 데려가는 건 정말 만약을 대비해서야. 정말 수많은 사람이 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여무쌍을 내세워 얼굴이라도 보여주려고.
우리 목적은 호가호위(*狐假虎威: 남의 권력으로 위세를 부림)나 허전관령(*虛傳官令: 윗사람 명을 거짓으로 꾸며 전함)이라 할 수 있지. 여무쌍은 뭘 할 필요도, 말할 필요도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하면 우리가 대신하면 돼.”
원강도 이제 알았다는 듯 안심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 * *
모든 준비를 끝내고, 네 사람은 비밀통로를 빠져나갔다.
여무쌍은 지금 운희에게 한쪽 팔을 부축받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어딜 가는 거지?”
여무쌍이 반복해서 물어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비밀통로를 벗어났을 때, 그들은 이미 남주부성 성문 밖에 있었다. 곧이어 지령 2개를 흔들자 하늘에서 날짐승 2마리가 내려와 네 사람 모두를 태우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빙설성지, 빙궁 내부.
설파파는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는 서신을 들고서 내용을 한참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결국 중얼거림을 토해냈다.
“은희……? 은희……! 이미 죽은 여자가 아니던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 나를 만나려 한다는 거지?”
백무애가 답했다.
“과거 그녀가 죽었다고 말한 사람은 나추였습니다. 모두 대나성지에서 나온 말이지요. 정말 죽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설파파가 백무애를 돌아보았다.
“네 말은, 이 여인이 아직 살아있고 서신도 그 여인이 보냈단 말이더냐?”
백무애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실파파의 시선을 느낀 그는 다급히 첨언했다.
“야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설파파는 다시 서신을 쳐다보았다.
“황택사지에서 만나자는구나. 왜 하필 황택사지일까? 야료? 얼굴 한번 본다고 나를 어쩔 수 있단 말이냐?”
백무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혹시 약속에 가시려는 것입니까?”
“도대체 사람인지 귀신인지 보아야겠다.”
“어머니, 음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제가 대신 다녀오겠습니다.”
설파파가 고개를 돌렸다.
“은희의 얼굴은 아느냐?”
멈칫한 백무애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제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그 여인 부고를 들었지요.”
“그럼 어찌 알아본단 말이냐?”
“아니면 그 여인을 본 적 있는 성지의 노인을 보내시지요.”
설파파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서신에 비밀이라고 돼 있구나. 본인이 아니라면 갑작스럽게 나를 찾는 것에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간다면 무슨 일인지도 듣지 못하겠지. 내가 직접 가는 것이 좋겠다. 정말 무슨 함정이라 하더라도 내가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 누가 나를 막을 수 있겠느냐?”
* * *
천마궁 내부.
오상은 등 뒤로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서신을 든 그의 눈이 경악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은희…….”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한쪽에 있던 흑석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성존, 그녀는 죽지 않았습니까?”
오상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시 그녀의 부고는 수상한 부분이 있었지. 그녀와 나추의 감정은 줄곧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나추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만 봐도 매우 이상하지. 여러 가지 흔적을 통해, 나는 당시 나추가 그녀를 죽였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나를 불러내다니. 과연 당시 일이 참으로 수상하다 여겨지는구나.”
“이 서신이 함정은 아닐는지요?”
“은희는 나와 의남매를 맺은 의누님이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인이지. 인연이 없는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필적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주 익숙하구나. 글자는 따라 쓸 수 있어도, 글자가 가지는 느낌은 모방하기 어렵지. 이건 그녀의 글씨가 틀림없다. 더군다나 정말 함정이라 한들 왜 하필 이미 오래전 죽은 이를 끄집어내 함정을 판단 말이냐?”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불러낸 건 매우 수상합니다!”
“그 사실 여부는 만나면 알 수 있겠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겨우 이런 함정이 나를 죽일 수 있었다면 오늘날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겠지.”
* * *
대원성지.
원색은 손에든 과일을 떨어뜨리고는 서신을 든 손을 연신 휘둘렀다.
“물러가라, 모두 물러가라!”
무희들은 춤을 멈추고, 여인들이 분분히 물러갔다. 유일하게 원비만이 그의 곁에 남아있었다.
원색은 말끔히 회복한 두 눈으로 몹시도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희? 이 여인이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인가?”
좌안에 분홍빛 안대를 한 원비가 한쪽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추의 부인이 확실합니까?”
원색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내 그걸 어찌 확신하겠느냐?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구나. 매우 아름다운 미인이었지. 꼭 선녀를 보는 것 같았다. 거기다 이미 원영기 경지에 도달했고, 성품도 부드럽고 호감 가는 사람이었지. 나추가 그 여인을 배필로 맞게 돼 그야말로 부러움에 침을 질질 흘렸다.
만약 오상이 그 여인과 날 연결해주었더라면 나도 재간이 없었을 거다. 그런 여인이 오상을 위해 나서는데 어찌 내가 그 부드러운 공격을 버틸까. 어찌 그 여인 동생에게 손을 쓰겠냔 말이다.”
순간 이상한 공기를 감지한 원색이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원비의 안색이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 원색은 곧바로 말을 바꿨다.
“사실 말은 그리했지만, 나는 나추처럼 충동적이지 않았을 거다. 그 여인은 신분이 불명확했지. 나추가 정신이 나갔었던 거야. 그야말로 오상의 미인계에 당한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오상을 절대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이 여인의 경지 때문에 모두가 꺼렸고 나추도 이 여인 때문에 큰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나중에 오상이 실력을 키워 나추와 연합해 대항하지 않았다면, 이 여인은 진작 다른 사람들 손에 유명을 달리 했을 것이다.”
“듣기로 나추가 그녀를 죽였다던데, 성존께선 그녀가 부활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사라졌었다. 나추는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했지. 하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당사자만이 알고 있겠지. 흐흐, 그 진위는 만나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어디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아봐야겠구나.”
“수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신다니, 성존께서는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으시군요! 하긴, 그때 저는 아직 어렸습니다. 비록 일개 어린 하인에 불과했지만, 저도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있지요. 확실히 선녀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같은 여인으로서 참 부러울 정도로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나추의 총애를 받고 있었지요. 나추는 그녀를 위해서 천하의 모든 사람과 대적했고요. 어느 여인이 그걸 부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미색을 위해 성존이 위험을 감수하시는 걸 충분히 이해합니다.”
원비의 어투에는 질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원색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드러난 부드럽고 얇은 허리를 꼭 감싸 안으며 말했다.
“부인, 그건 아니지. 내 마음속에는 부인 하나뿐이다.”
예전이라면 이 말을 철석같이 사랑의 속삭임이라 여기고 기분이 풀어졌겠지만, 원비는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원색이 자신의 눈을 앗아간 것을 생각할 때마다 누군가 심장을 바늘로 마구 찌르는 것만 같았다.
이내 원비가 다소 비웃음이 담긴 어투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여기 있는 가희와 무희 중에 성존의 총애를 받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성존께서는 그저 수많은 여인에 둘러싸여 성존을 놓고 싸우는 것만 보며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정말 마음속에 저밖에 없다면, 우리가 부부라는 것을 천하에 공개하실 수 있으십니까?”
원색은 원비의 둔부를 두드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 공개하지 않는 건 모두 너를 보호하기 위함이야! 아직도 이 눈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냐? 너도 알겠지만, 눈 하나 없는 건 지극히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능력에 영향을 미칠 테고, 목연택과 장손미가 죽어 지금처럼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에 내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너를 어찌 지키겠느냐. 걱정하지 마라. 귀의가 분명 너에게 적합한 안구를 찾아줄 것이다.”
* * *
“은희?”
무허성지의 독무허도 같은 서신을 받았다. 그는 멍하니 서신을 들고서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천남성지에도 서신은 전해졌다.
“이 여인이 아직 살아 있다고?”
천남성지 대전 안 남도림도 서신을 든 채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누군가 산속 협곡 안으로 날아 들었다. 우유도와 운희는 즉시 그를 경계했다. 원강은 이곳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 여무쌍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곳에 여무쌍을 데리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협곡에 들어온 자가 정체를 밝혔다.
“날세.”
서해당의 목소리였다.
“우리입니다.”
우유도도 자신들을 밝혔다. 그도, 운희도 현재 역용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양측이 만났다. 서로를 확인하자마자 우유도는 쓸데없는 말은 모두 건너뛰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성나찰이 소란을 일으켰다는 녹현현성(鹿縣縣城)에 도착했을 때, 성나찰은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장문인은 줄곧 지켜보고 있었을 테니 아실 거라 생각하고 뵙고자 한 겁니다.”
“무엇을 하려고 직접 온 것인가?”
“당연히 육성이 도착하기 전에 성나찰을 데려가야지요.”
서해당이 깜짝 놀랐다.
“성나찰을 데려가? 그녀의 실력이 어떠한지 우리 다 보지 않았는가! 설사 우리가 협공한다 해도, 그녀를 데려가기 어려울 것이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녀를 제압할 방법이 있습니다. 장문인을 위험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아무튼 빨리 그녀를 찾아야 합니다. 만수문이 줄곧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으니 어디로 향했는지 흔적을 발견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