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화. 목숨을 걸고
“천검부!”
저 먼 하늘에서 날아오던 날짐승 위에서 우유도 역시 이를 목격했다. 높이 치솟는 불길과 연기 사이로 번쩍이는 천검강기가 보였다.
이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날고 있는 날짐승 위에서 운희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여무쌍을 붙잡고 있었다.
“저들이 이미 손을 썼고, 성나찰이 쓰러진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천검부를 감히 사용하지도 못했겠지!”
성나찰? 여무쌍의 두 눈이 번득였다. 눈빛엔 의아함이 스치고, 텅 비어있던 화산현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누님과 원숭이는 이곳에서 기다리세요. 전 여무쌍과 먼저 가볼게요.”
우유도가 고개를 돌려 당부하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운희도 몸을 날려 두 사람은 그렇게 공중에서 자리를 바꿨다. 곧 우유도는 여무쌍의 팔을 붙잡고, 그녀가 쓴 두립을 벗겨 운희에게 날려 보냈다.
“아!”
그런데 갑자기 여무쌍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우유도는 즉시 여무쌍을 붙잡아주었고, 그녀는 그런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두 다리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고, 고개는 축 늘어져 있었다.
우유도가 손을 들자, 날짐승 2마리는 마을로 다가가지 못하고 공중에 멈춰 주변을 맴돌았다. 이어 우유도는 빠르게 법력을 이용해 여무쌍을 살폈다.
“……?”
우유도는 여무쌍에게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하지만 몸엔 아무 이상도 없었다. 우유도는 그 즉시 여무쌍의 팔을 홱 잡아당겼다.
“뭐 하는 짓이지?”
여무쌍은 축 늘어진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웃는 듯, 마는 듯 참 묘했다.
“몸이 별로 안 좋아. 기분도 그렇고.”
우유도가 크게 분노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날 분장까지 시켜 데리고 나왔지. 분명 날 이용할 거란 걸 알고 있었어.”
여무쌍이 여전히 힘없이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여유로운 표정을 보였다.
마을 쪽에선 천검부가 쏘아지는 소리가 더 빠르게 들려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지금 성나찰이 얼마나 급한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우유도는 격렬한 소리가 들리는 마을 방향을 바라보다, 다시 약한 척 연기 중인 여무쌍을 바라보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세 사람은 이제야 깨달았다. 여무쌍이 지금까지 고분고분 따른 건 진작부터 뭔가를 눈치채고 정말 결정적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운희가 소리쳤다.
“여무쌍,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우리가 네까짓 걸 못 죽일 것 같더냐!”
“너희 손에 잡힌 그 순간부터 무슨 좋은 처지가 될 것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한낱 벌레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건만, 나는 살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할 뿐이야. 내가 뭘 원하는지, 너희가 더 잘 알고 있겠지.”
여무쌍의 시선은 원강에게 닿아있었다.
세 사람도 비로소 상황 파악이 됐다.
원강은 힘껏 여무쌍을 노려보았다. 눈에선 곧 불이라도 쏟아질 듯했다.
우유도는 이를 갈며 일단 여무쌍을 일으켜주었다. 정말 시기 선정에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이 여인을 찢어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매우 급박한 상황이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무쌍은 웃었다. 우유도가 이성을 잃을수록 그녀는 더욱 기뻤다. 이건 우유도가 그만큼 이번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뜻했다. 우유도가 이렇게 나올수록 그녀의 성공확률도 더 높아진다.
그때, 원강은 더 긴박해지는 마을 쪽을 한 번 보다 여무쌍을 응시했다.
“이러는 게 무슨 의미지? 나중에 후회할까 두렵진 않은 것이냐?”
여무쌍의 말투가 갑자기 단호하게 바뀌었다.
“네가 후회된다면 뭐 할 수 없지. 받아들이겠다. 내가 지금 원하는 건 네 한마디뿐이야. 나와 혼인하겠단 그 한마디면, 너희에게 전력으로 협조하마.
단순히 지금뿐만이 아니다. 한 가족이 되면, 너희도 내 신분을 알겠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범위가 너희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을 것이다. 내게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면 너희도 지금껏 날 살려두지도 않았겠지.
원강, 어찌할 테냐. 지금은 네 한마디가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지금 내 목숨으로 너와 도박을 하는 것이다!”
사실이었다. 여무쌍은 지금 제 목숨으로 도박을 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 때문에 마을 일에 늦게 된다면, 이쪽은 분명 자신을 죽여버릴 것이었다.
원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그에게 고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를 악물고 크게 소리쳤다.
“좋다!”
“언제! 평생 기다릴 수는 없다.”
원강이 증오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 바로 너와 혼인하지. 이제 만족하느냐?”
여무쌍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을 빤히 바라보았다.
“좋아! 가자, 사람을 구해야지!”
우유도의 눈빛이 싸늘히 식었다. 그는 여무쌍만 빤히 노려보았다. 자신들의 상황이 너무 다급한 나머지 이 여인에게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어찌 됐든 결국은 자신이 이 여인을 너무 얕잡아 본 탓이었다.
그때, 여무쌍이 뒤돌아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도야, 뭘 기다리는 거죠? 이번 일에 복수하려 한다 해도 일단 눈앞의 일부터 처리한 후에 해야 하지 않겠어요?”
여무쌍은 다른 일행처럼 그를 도야라고 불렀다. 어째 다분히 살짝 놀리는 것 같은 말투였다.
우유도는 소매를 휘둘렀다. 그 또한 혹시라도 늦을까 더는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그는 빠르게 날짐승을 조종해 마을로 쏘아져 날아갔다.
운희는 곁에서 원강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저 계집은 나중에 복수하면 돼. 지금 네 덩치는 너무 눈에 띄니 다른 사람에게 들킬 수 있어. 그러니 일단 좀 자리에 앉는 게 어때!”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던 원강은 최대한 냉정함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도 지금 뭐가 제일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원강은 곧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낮췄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운희는 날짐승을 움직여 마을로 향했지만, 방향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역시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조심해야 했다. 원래라면 지금 자신들은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했다. 만약 외부인이 뭔가를 알아차린다면 그 결과는 아주 끔찍할 터였다.
사실 우유도가 저기로 향하길 꺼리는 건 서해당뿐이 아니었다. 운희도 원치 않았다. 심지어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우유도처럼 이성적인 사람이, 어째서 이런 위험을 무릅쓴단 말인가. 그럴 가치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도 운희는 전력으로 협력했다. 성나찰은 초려산장의 은아였다. 앞서 우유도는 원강을 위해서도 굳이 모험했었고, 이젠 은아를 위해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초려산장의 사람, 우유도의 사람들이었다. 운희의 신분도 그 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운희는 자신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우유도는 분명 또 최선을 다해 자신을 구하려 할 거란 걸 알 수 있었다.
운희도 우유도를 돕고 싶었다.
* * *
오늘 성나찰을 포위한 수행자들은 성나찰이 얼마나 대단한지 진정으로 깨달았다. 세 사람이 세 방위에서 동시에 천검부를 이용해 중간에 있는 성나찰을 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나찰은 팔과 날개를 휘둘러 그 천검강기를 하나하나 신속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성나찰이 서 있는 곳은 이미 반구형 구덩이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그 중앙에서 수시로 비명을 지르며 격렬하게 저항 중이었다.
“천검부는 한계가 있소.”
서해당이 당부했다. 이곳을 책임지는 표묘각 책임 집행자는 이미 천검부를 2장이나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또 뒤로 물러나 관전만 하고 있었다.
이내 책임자가 서해당의 당부를 듣고 냉소를 지었다.
“멀지 않았소. 성나찰은 곧 무너질 것이오. 당신 만수문이 보유한 천검부를 꺼내 보시오. 저 요괴를 죽이기만 하면, 천검부를 몇 장 썼든 한 장도 모자람 없이 그대로 돌려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확실히 성나찰은 더 버티기 어려워 보였다. 반응속도는 크게 느려졌다.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엔 자신에게 날아오는 모든 천검강기를 막아 내던 성나찰은 이제 가끔 천검강기에 적중했고, 그 비율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 다만 그런데도 육체의 강도는 단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 성나찰은 입에 피를 줄줄 흘리며, 온몸에 상처를 입고 우리에 갇힌 야수를 보는 듯했다. 그녀의 비명엔 승복할 수 없단 불만이 가득했다.
성나찰은 구덩이를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도, 천검강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각오가 서려 있었다.
이제 그 눈부신 은빛 날개는 너덜너덜한 종이가 되어버렸다. 마치 폭풍우에 휩쓸린 것처럼 수많은 구멍으로 형편이 없었다. 거의 골격만 남은데다 아예 피 칠갑이 된 상태였다.
성나찰이 반항하는 속도도 서서히 느려졌다.
그 순간, 연달아 천검강기 2줄기가 동시에 그녀의 가슴과 등을 관통했다.
“컥!”
성나찰이 선혈을 토하며, 그대로 구덩이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천검부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성나찰은 머리를 감싸 쥔 채 몸을 웅크리고 천검강기의 공격을 버텼다. 더는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는 목숨을 걸고 반격을 가할 때였다. 그녀는 결국 목숨을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멈춰라!”
갑자기 하늘에서 호통이 들려왔다.
모두가 고개를 들고, 허공을 맴도는 날짐승 한 마리를 발견했다.
여무쌍은 당당히 치마를 휘날리고 있었고, 역용한 우유도는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뒤쪽에 서 있었다.
우유도는 혹시 여무쌍에게 문제가 있는 게 들킬까, 그녀를 직접 부축해주진 못하고, 발로 법력을 일으켜 여무쌍의 다리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 여무쌍은 하늘을 맴도는 날짐승 위에서 꼿꼿이 서 있을 수 있었다.
다들 여무쌍 곁의 사람을 몰랐지만, 서해당은 전에 우유도가 역용한 모습을 본 적 있어 그를 알아보았다. 우유도가 결국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서해당은 지금 투덜거릴 정신이 없었다. 우유도 앞에 거만하게 서 있는 여인을 확인하고 대경실색할 정도로 넋이 나가버렸다.
여무쌍……. 서해당도 여무쌍을 알고 있었다. 바로 만수문이 접몽환계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무쌍은 이미 수차례 직접 만수문을 방문했었다. 그러니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여무쌍이 어쩌다 우유도와 함께 있는 것이며, 여기 같이 나타나기까지 한 거지? 무슨 일일까. 서해당은 점점 호흡이 거칠어졌다.
현장의 수행자 중에 여무쌍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지금 이곳을 책임지는 표묘각 집행자는 본 적이 있었다.
여무쌍의 등장에 그 역시 대경실색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표묘각이 무쌍성지 인원을 토벌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우유도는 드디어 성나찰이 구덩이 안에서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즉각 음성을 거칠게 바꾸어 법력으로 크게 소리쳤다.
“무쌍 성존께서 친림하셨다. 멈추라는 말이 들리지 않느냐!”
이 말에, 여무쌍을 모르고, 여무쌍을 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매우 놀랐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싸늘히 그들을 내려다보는 여인을 올려다보았다.
“멈춰라!”
표묘각 집행자가 다급히 소리쳤다.
천검부를 이용해 성나찰을 포위 공격하던 세 사람은 곧 남아 있는 기운을 허공으로 쏘아 보냈고, 광풍을 일으켜 마을을 집어삼키던 불길을 꺼트렸다.
그런데 바람이 지나간 후, 꺼진 불이 다시 자연스레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길의 기세는 아주 맹렬했다.
사람들은 구덩이 안의 성나찰을 경계했으나, 그녀는 머리를 감싸고 아예 움직이질 않았다. 하지만 몸은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