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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25화 (824/1,000)

1725화. 발버둥

주위가 조용해지자, 여무쌍이 입을 열었다.

“이곳 책임자가 누구더냐?”

그 집행자가 다급히 포권하며 말했다.

“표묘각 송국사 집행자 진감괴(陳撼魁)가 무쌍성존을 뵙나이다!”

집행자가 여무쌍임을 확인시켜주자, 아래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빠졌다.

여무쌍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냉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이 눈에 익구나. 본 존이 문천성에서 너를 본 적이 있더냐? 원 뚱땡이의 사람이더냐?”

일국을 책임지는 집행자였다. 단지 눈에 익기만 한 정도일 리가 없었다. 여무쌍은 진감괴를 똑똑히 기억했으나, 부러 거드름을 피우는 것일 뿐이었다.

진감괴가 다급히 말했다.

“그러합니다. 소인은 문천성에서 성존의 용안을 뵌 적이 있나이다.”

“명을 받아라. 모든 사람은 즉시 이곳에서 30리 밖으로 물러나라.”

“그것이…….”

진감괴는 망설였다. 구덩이에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성나찰이 있었다.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막말로, 그는 무쌍성지의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지금 무쌍성지를 대하는 성경과 표묘각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어 여무쌍이 더 싸늘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꺼져라! 명을 어기는 자, 죽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진감괴도 결국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즉시 포권하고는,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명령을 내렸다.

“철수하라!”

그들은 떠나기 전, 하늘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날짐승 한 마리가 더 높은 고도를 맴돌고 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한나절을 준비했고, 바쁘게 움직였던 사람들이지만, 이에 대해 어떠한 불만도 표하지 못하고 그대로 후다닥 떠나갔다.

서해당은 떠나며 저도 모르게 계속 뒤를 돌았다. 과연 우유도가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다. 여무쌍, 확실히 그녀가 나서면 딱히 어려울 게 없었다. 우유도가 특별히 나서서 자신의 법술을 노출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신분이 폭로될 걱정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우유도는 어쩌다 여무쌍과 손을 잡았을까. 대체 우유도 저놈의 배후에 얼마나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단 말인가?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우유도는 다시 구덩이 쪽 성나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도 손을 풀고 그를 돌아보며 분노 가득한 처절한 고함을 내질렀다.

“하악……!!!”

“저게 성나찰? 목연택과 장손미가 성나찰의 손에 죽었다더니, 어찌 저런 잡졸의 손에 떨어진단 말이지?”

여무쌍은 의외라는 듯 우유도를 돌아보며 물었다.

“성나찰을 구하려고요?”

여무쌍의 말투는 확실히 바뀌어 있었다.

우유도는 침묵했다. 여무쌍에게 독에 관해선 설명하지 않고, 아래에서 손과 발을 이용해 구덩이 밖으로 기어 나오는 성나찰을 보며 손짓했다.

그 즉시 하늘을 맴돌며 주위를 살피던 운희가 빠르게 날짐승을 타고 아래로 쏘아져 내려왔다. 불타는 마을을 스치고 지나갈 즈음엔, 운희와 원강은 동시에 날짐승에서 뛰어내렸다.

날짐승은 마을을 스치고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 위를 맴돌았다.

구덩이를 기어 나온 성나찰은 휘청거리며 일어나 앞에 내려선 원강과 운희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 안의 두 사람은 마치 생사 대적이 돼 버린 것만 같았다.

실제로 성나찰은 앞에 있는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그렇게 천천히 양팔을 벌린 그녀는 고개를 들고 분노 가득한 고함을 질렀다.

“하악……!!!”

너덜너덜해진 양 날개가 활짝 펼쳐져 다시 은빛을 뿜어냈다. 마치 마지막 한 줄기 생명을 뿜어내는 것만 같았다.

휙-

그 순간, 웬 소리와 함께 성나찰이 사라졌다. 마지막 힘을 모아 적을 향해 목숨을 건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우유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지경이 되고도 여기서 더 난리 칠 힘이 남아 있다니, 더군다나 지금 성나찰의 기세는 놀라울 정도였다.

이에 원강도 몸을 살짝 낮추고, 성나찰을 향해 마주 쏘아져 나갔다. 꼭 사람이 아니라, 시위를 떠난 날카로운 화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공중에 있던 여무쌍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경악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 힘을 모두 잃긴 했지만, 그 안목은 여전했다. 지금 원강의 속도를 보자면 그는 이미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듯했다.

쾅!

폭음이 울렸다.

원강과 성나찰이 뒤엉켰고, 그로 인해 일어난 광풍 때문에 양쪽에 타오르던 화염이 뒤흔들렸다.

몸이 부딪히는 그 순간, 원강은 양손으로 성나찰의 양팔을 붙잡았다. 이후 한 사람과 한 요괴의 발아래 땅이 갈라지며, 둘의 발도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악!”

성나찰이 다시 고함을 토하며, 입에서 대량의 피를 토해냈다. 동시에 원강에게 잡힌 팔을 앞으로 당기더니, 그대로 원강을 뒤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원강이 지나간 발아래가 길게 파이기 시작했다.

“하앗!”

원강이 기합을 토하며 성나찰의 힘에 저항했다. 양다리에 힘을 주자 성나찰에게 밀리던 속도도 서서히 느려졌다.

이때, 우유도는 벌써 날짐승을 타고 땅에 내려선 후였다.

여무쌍을 데리고 같이 뛰어내린 우유도는 날짐승을 다시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운희에게 다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를 살펴보세요. 만약 누군가 남아 있다면 죽여 버리세요.”

그의 말에 살기가 가득했다.

마을 내부는 이미 불바다였다. 사람이 숨어있을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운희는 우유도가 어떠한 가능성도 없길 바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운희는 즉각 불바다 속으로 몸을 날려 의심스러운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우유도는 이미 여무쌍을 내려놓고, 성나찰에게 몸을 날리고 있었다.

성나찰은 날개를 이용해 정면에서 자신을 붙잡고 있는 원강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날개는 이미 큰 상처를 입어 원래대로 구부리기도 어려웠다.

그때, 등 뒤에 누군가 나타났다. 성나찰은 이를 정확히 감지했다. 그러나 양 날개 모두 원강에게 꽉 붙들려 있는 통에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이내 성나찰의 뒤에 나타난 우유도는 그대로 그녀의 등에 일장을 가한 뒤, 성나찰 체내의 요력을 해소할 법력을 불어 넣었다.

예전이라면 성나찰은 시원한 느낌에 분명 고분고분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반항하며 너덜너덜한 날개를 펄럭였다. 다쳤다고 날개의 위력이 약해진 건 아니었다.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우유도는 일찍부터 방비가 돼 있었다. 이번에 접몽환계를 떠난 성나찰의 마음이 예전처럼 평온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특별히 원강을 데려왔다.

이어, 성나찰의 날개가 우유도를 공격할 때, 우유도는 다른 손으로 평소 들고 다니던 보검을 가로로 든 채 성나찰의 등을 누르고 있었다. 검집에 든 보검의 양 끝이 날개가 우유도에게 닿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

성나찰은 그야말로 미칠 듯한 상황이 되었다. 양손과 날개 모두 붙잡힌 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예 몸을 뒤틀어 다리로 공격하려 했지만, 우유도는 이마저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허공에 물구나무선 그의 손은 한시도 성나찰의 등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성나찰은 우유도를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미친 듯 발버둥 쳤다. 성나찰의 힘과 속도는 우유도가 계속 법력을 주입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빨라졌다.

하지만 원강은 성나찰이 전력으로 자신과 힘 싸움을 벌이지 못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그녀에게 다가간 원강은 양다리를 가위처럼 꽉 붙들어, 균형을 잃어버린 그녀와 같이 바닥에 쓰러졌다.

쾅!

두 사람이 굉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성나찰은 그대로 입을 벌려 원강의 얼굴을 물어버리려고 했고, 원강은 그녀의 양팔을 그대로 상대 쪽 가슴 앞까지 당겨 내리눌렀다. 덕분에 성나찰은 미친 듯 입을 벌려도 무엇 하나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성나찰의 입에서 튀어나온 선혈이 원강의 얼굴을 적셨다. 그런데도 원강은 그녀를 상대로 조금도 힘을 풀지 않았다.

이때, 허공에서 튕겨 나간 우유도가 다시 검을 가로로 하여 날개를 방어하며 등을 통해 법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하악……! 하악……!”

연신 하늘을 향해 절규하던 성나찰은 사력을 다해 온몸을 흔들었다.

원강의 목에도 힘줄이 솟았다. 그도 온 힘을 써 상대를 제압 중이었다.

여무쌍은 멀지 않은 곳에서 이를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놀란 빛이었다. 저 형제들이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대치 시간이 길어지며, 미친 듯 발버둥 치던 성나찰이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주위를 샅샅이 뒤진 운희는 마을에 인적이 없음을 확인하고 하늘로 날아올라 공중을 맴돌던 날짐승에 올랐다. 그런 뒤에도 여전히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우유도가 성나찰을 제압하는 광경은 그 누구도 봐선 안 된다고, 우유도는 운희에게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었다.

이윽고 성나찰이 조용해진 후, 반항하던 힘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너덜너덜하던 날개도 천천히 줄어들어 성나찰의 등으로 사라져가고, 날카로운 송곳니와 손톱 발톱 같은 것들도 느리게 자취를 감췄다.

이에 성나찰을 붙들고 있던 원강도 천천히 힘을 거둬들였고, 우유도도 등을 압박하던 보검을 회수했다.

여무쌍은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잘못 본 줄로만 알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조금 더 지척에서 상황을 살펴보니, 정말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성나찰 몸에 있던 은색 갑골이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은발도 변해가고 있었다.

성나찰은 이제 아예 반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

원강은 즉각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성나찰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다. 우유도 또한 한쪽 무릎을 꿇고 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쳐주었다.

곧이어 은발이 흑발로 바뀌었을 때, 그 흉악하고 공포스럽던 성나찰이 평범한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얼굴도 너무 순수하고 천진난만했다.

그러나 입술은 비정상적으로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고, 온몸에 수많은 상처도 지금까지 사투의 흔적으로 남았다.

발가벗겨진 몸은 가냘팠고, 또 더러웠다. 하지만 두 사내는 실오라기 하나 없는 그녀의 몸을 보고서도 별다른 생각은 가지지 않았다. 특별히 피하려는 모습도 없었다. 우유도와 원강 모두 그녀에게 내내 시선을 떼진 않았지만, 그건 분명 그녀를 몹시도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그때, 성나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검게 빛나는 커다란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생기가 감돌고 있어야 할 눈은 그저 힘없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곧 좀 얼떨떨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유도는 이제야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 부축해주며 부드럽게 운을 뗐다.

“은아야.”

그 부름에 그녀가 뒤를 돌았다. 그녀의 시야로 낯선 얼굴이 담겼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했다.

우유도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우유도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녀도 드디어 가면을 쓴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았다.

그녀의 입가로 그리움 가득한, 가녀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도…….”

그 장면을 본 여무쌍은 아연실색했다. 우유도가 어째서 그토록 성나찰을 구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특히 그 ‘도도’란 호칭에 여무쌍의 마음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우유도와 성나찰은 아는 사이였다. 그것도 보통 사이도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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