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6화. 복잡한 심정
익숙한 호칭을 듣고, 다시 은아의 모습을 확인한 우유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눈빛에 젖어 들었다. 최소한 한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먹보가 인간에서 요괴 형태로 변하면 기억이 온전치는 않지만, 너무 오래 떨어진 것만 아니면 은아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유도는 곧 살짝 미소지으며, 원강에게 은아를 부축하도록 했다.
원강도 즉각 은아의 팔을 잡고 일으키려 했으나 은아는 좀처럼 우유도의 소매를 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우유도는 일단 은아의 행동은 무시하고, 빠르게 제 외투를 벗어 입힌 후 허리띠를 묶어주었다. 발가벗은 몸이 가려지자, 은아는 자연스럽게 반쯤 우유도의 품에 안겨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안겨 있어도 은아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매우 서러운 낯빛을 하고 있기도 했다.
이내 은아가 양손으로 우유도의 옷을 꼭 잡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도를 찾을 수 없었어.”
다른 사람들은 은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우유도마저 그녀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우유도는 강호를 거닐며 수많은 은원을 맺어왔다. 그는 언제나 의(義)를 가장 중요시했고, 전생에 이어 현생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가 너무 이성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 수많은 일도 지난일이 되어버렸다. 본디 세월이란 것이, 또 세상사라는 게 바다에 새겨진 파도처럼 숙명 같은 것 아니겠는가. 지난날 수없던 시시비비 앞에서도 지금 이 순간 우유도는 잔잔한 물결처럼 웃을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 은아를 찾아온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런데 은아를 안심시키려 했던 말이 끝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은아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얼굴에 은은한 은색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은아는 이내 두 손으로 우유도의 팔을 붙잡고 힘겹게 말했다.
“도도, 너무 괴로워!”
우유도는 한쪽 손을 은아의 몸에 대고 법력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은아 몸속의 요력을 해소한 게 그녀를 도운 것인지, 해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은아는 인간의 몸으로 바뀐 이후 더는 체내 독성의 침식을 버티기 힘들어졌다. 차라리 요괴일 때가 체내 이종 요력으로 독에 저항하고 있었던 터라, 중독되고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현재 은아는 그 독성의 침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체내에선 독성에 저항하고자 빠르게 요력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마도 은아의 몸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본능일 터, 이는 은아조차도 억제할 수 없을 것이었다.
우유도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만약 해독하지 않고 계속 건곤결로 은아 체내에 있는 이종 요기를 정화한다면 그건 은아의 죽음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고 체내의 요기가 생겨나는 걸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그럼 은아는 다시 통제를 잃어버리고 독성에 사망할 것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은아 체내에 자라나는 이종 요기의 속도는 그가 알던 속도를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우유도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건곤결로 요기를 정화시켰다. 단, 완전히 깨끗하게 정화하진 않고, 요괴로 변하지 않을 정도의 요기를 조금 남겨 독성의 발작을 저지했다.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생겨나는 건 미뤄보려는 의도였다.
“도도! 괴로워, 도와줘!”
은아는 매우 고통스러워했고, 결국은 우유도의 목을 껴안고 손가락으론 우유도의 등을 움켜쥐었다. 우유도 역시 은아를 함께 껴안고 다독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은아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참아봐. 조금만 참으면 괜찮을 거야. 날 믿어.”
“응.”
은아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한 침묵이 고통의 종결을 얘기하는 건 아니었다. 지금 은아는 독성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우유도를 꽉 안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때, 여무쌍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중독된 것 같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
우유도가 싸늘하게 답했다. 그는 여무쌍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을 하면서도 우유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품에서 보통 해독 영단을 꺼내 은아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러나 은아가 중독된 건 분명 보통 독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라면 우유도가 여태까지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다 우유도는 홀연 주위를 둘러보고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그가 원강을 향해 신속하고 간결한 주문을 했다.
“서해당이 그렇게 멀리 가진 않았을 거야. 당장 연락해 무슨 독인지 알아보고 해약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 와. 만약 있다면 반드시 세 시진 안에 여기로 보내라고 해. 더 오래 버티긴 힘들 거야.
분명 여기 독을 썼어. 용량을 보면 분명 희귀한 독은 아닐 거야. 분명 해약이 있어. 서해당에게 해약을 달라고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손에 넣으라고, 지체하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 전해.”
“알겠어요!”
원강이 고개를 끄덕인 후, 즉시 일어나 하늘에 있는 운희에게 손짓했다.
금시를 포함한 물건은 모두 날짐승 위에 있었다. 서해당과 연락하기 위해서는 금시를 사용해야 했다.
한편, 한쪽에 있던 여무쌍은 다시 두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서해당이란 이름에 마음속 파도가 다시 휘몰아쳤다.
‘서해당……. 무슨 약이라도 잘못 먹은 건가? 서해당과 우유도가 서로 결탁한 거야! 그러니까 서해당은 이놈이 살아있다는 걸 진즉 알고 있었어! 설마 우유도의 생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나? 감히 우유도를 숨기는 일에 소매 걷고 나서서 거들다니, 뭐 죽고 싶어 환장하기라도 한 건가?’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무쌍의 눈앞엔 인간의 모습을 한 성나찰이 있었다. 전에 있었던 제5 영역 일까지 더해 충격이 연속으로 덮쳤다. 대체 우유도에게 얼마나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내 우유도는 은아의 양다리를 잡아 고통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를 안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운희에게 다가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더 머무를 수 없어요. 지금 즉시 떠나야 해요. 다른 적당한 곳을 찾아 몸을 숨기고, 은아의 독을 해독한 후에 움직이도록 하죠.”
“그래.”
운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가 여무쌍의 팔을 잡았다.
“가자!”
곧 날짐승 2마리가 불타고 있는 마을을 뒤로한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우유도 일행은 별이 총총히 박힌 짙은 밤하늘을 날아, 마을에서 떨어진 숲속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멀리 간 건 아니었다. 서해당의 소식을 늦지 않게 받기 위해, 또 해약도 적시에 받기 위해서였다.
협곡에서 기다리는 동안, 우유도는 안벽 아래 바위 밑에 앉아 줄곧 은아를 품에 안고 있었다. 은아 체내에 있는 이종 요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은아가 통제를 벗어나 요괴가 되는 걸 방지하려면 쉽게 떼놓을 수도 없었다. 만약 여기서 소란을 일으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은아 역시 우유도의 목을 꼭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너무도 고통스러워 기댈 곳이 필요했다. 이렇게 우유도를 안고 있으면,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은아는 자신의 손가락을 통제할 수 없었다. 우유도의 등은 이미 은아가 할퀸 자국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은아가 인간으로 변했다고 한들, 일반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유도도 법력으로 방어 중이었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우유도의 등도 이젠 은아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유도는 은아를 조금도 탓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심지어 일말의 반응조차 없었다. 여전히 목을 교차할 정도로 은아를 꽉 껴안고, 서로 의지하며 수시로 은아를 다독이고 있었다.
“은아야, 괜찮아.”
한시도 떠나지 않고 부드럽게 다독이는 우유도의 목소리는 꽤 효과가 있었다. 은아는 그 음성으로 조금이나마 고통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때, 원강이 보다 못해 자신이 우유도의 자리를 대신 하겠다며 나섰다. 자신은 어차피 가죽도 두꺼워 상처도 안 날 것이었다.
그렇지만 은아가 원하지 않았다. 특히 지금처럼 고통스러운 순간에 잠시라도 우유도와 떨어질라치면 어김없이 ‘도도’를 찾곤 했다. 은아는 이미 반쯤 혼절한 상태였다. 의식이 있다고 볼 수 없었다.
우유도는 그저 원강에게 괜찮다고 하며, 다시 은아를 다독였다. 아이를 다루듯, 우유도의 음성은 몹시도 부드러웠다.
“괜찮아. 여기 있어. 무서워하지 마.”
원강도 결국 포기했다.
운희 역시 우유도의 등이 피투성이가 되고 피부가 벗겨져 뼈까지 보일 지경인 것을 보고, 법력으로 은아의 양손을 통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우유도가 고개를 저으며 제지했다.
“그러지 마세요. 지금 매우 괴로울 거예요. 이런 식으로라도 분출을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운희도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물러났다. 그녀도 이젠 원강처럼 왜 해약이 안 오냐며, 수시로 하늘을 살필 뿐이었다.
멀리에 있던 여무쌍도 자연스레 피 냄새를 맡을 지경이었다. 그녀 또한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운희와 원강 쪽으로 다가왔다.
“설마 우유도와 저 성나찰이 서로 연모하기라도 하는 사이인가?”
여무쌍의 물음에, 운희는 눈길만 힐끔 돌렸다. 어째 성존도 보통 여인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야.”
이어, 원강도 참지 못하고 여무쌍에게 결국 한마디 했다.
“사람들이 다 너처럼 두 사람만 모이면 연정만 생각하는 줄 아나?”
여무쌍은 순간 말문이 막혔으나, 그녀도 마냥 고분고분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내 여무쌍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눈에 난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닐 테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의 아내와 그런 잡스러운 짓을 하는 사람보단 나은 사람이다! 그렇고 그런 짓은 다 해놓고, 이제 와 무슨 정인군자인 척하는 꼴 보라지? 참 우습군!”
이는 원강과 풍관아의 일을 대놓고 뭐라고 한 것이었다. 원강은 즉각 여무쌍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여무쌍은 가슴을 펴고 더 당당하게 나왔다.
“이제 와 약조를 번복한다 해도 늦지 않았다. 약조 안 지키는 것쯤이야 처음도 아니니, 토사구팽하듯이 당장 날 죽여 버리면 되겠군!”
원강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걸 본 운희가 그의 팔을 내리눌렀다.
“돌아가 다시 이야기하자.”
지금은 여무쌍을 죽일 때가 아니었다. 아직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은아를 포위한 자들을 물릴 때도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 자신들은 육성에 대항하려 하고 있었다. 육성에 대한 이해라면, 이 여무쌍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여무쌍을 산 채로 잡아들인 이런 기회는 그야말로 다시없을 기회였다. 옛말에 적과 싸울 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우유도는 그 이치를 알고 있었다. 원강도 모를 리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 제5 영역에서 여무쌍의 한마디에 칼을 멈추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 지금 우유도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원강은 이를 악물고 한쪽으로 걸어갔다. 너무도 복잡한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