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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30화 (829/1,000)

1730화. 평생 닭 다리도 안 줄 악당!

“내려와.”

관방의가 연신 손짓하자, 은아는 그제야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은아는 계속 닭 다리를 씹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낯선 환경에 경계심을 가지는 얼굴이었다. 닭 다리가 지금 은아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곧이어 관방의가 고개를 끄덕이자, 허노육이 마차를 끌고 떠나갔다.

“은아야, 여기봐봐, 누군지 알겠어?”

관방의의 말에, 한편에서 입을 가리고 있던 상숙청이 손을 내리고 빙그레 웃어보였다. 은아는 얼핏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닭 다리를 한번 뜯고, 다시 고개를 들어 상숙청을 빤히 바라보다 닭 다리를 한번 더 뜯었다.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다시 닭 다리를 한번 뜯어도 고기를 씹는 입술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러다 입에 있는 고기를 꿀꺽 삼킨 은아는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청청?”

관방의는 탄식했다. 먹보일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나빴다. 그런데도 다행히 상숙청이 청청인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아는 관방의에 대해 조금도 기억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물었었지만,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사실 이건 그냥 처음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상숙청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아야.”

은아의 두 눈이 살짝 빛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닭 다리를 쥔 채로 손을 흔들며 다시 확인하듯 조금은 얌전하게 상숙청을 불렀다.

“청청.”

관방의가 보기에, 이 먹보는 상숙청에게 태생적으로 호감이 있는 것 같았다. 뜻밖에도 얌전하고 수줍은 모습을 보였다.

관방의를 대할 때와는 아주 다른 태도였다. 관방의에겐 매번 걸핏하면 인상을 찌푸리며 당장이라도 후려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관방의는 상숙청이 이 요괴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군주님, 그럼 은아 잘 부탁드릴게요. 전에 말씀드린 거, 기억해 주세요.”

상숙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 곁에서 한치도 떨어뜨리지 않을게요. 초려산장에 있을 때처럼 잠도 같이 잘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심이 되네요. 나중에 돌아가서 남산사 승려 2명을 보내드릴게요. 예전처럼 은아를 위해 요리해달라고 하면 될 거예요.”

상숙청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확실히 이 먹보는 하루 내내 계속 먹어댔다. 질리지도 않는지, 일단 먹을 게 있기만 하다면 은아를 다루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아주 말도 잘 들었다.

주변은 어느덧 밤빛에 어둑해져 있었다. 관방의는 작별을 고하며 떠나기까지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만약 은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즉시 왕부 맞은 편 초려산장에 연락하라고 전했다.

상숙청은 살짝 허리 숙여 배웅하고는 은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은아, 이리 와.”

은아는 별다른 불만 없이, 천천히 닭 다리를 먹으며 상숙청의 뒤를 따랐다. 다만 서로 떨어진 시간이 너무 길었으니 어느 정도 어색함이 있기는 했다.

* * *

과거 초려산장의 은아가 왔다는 소식에 상조종과 봉약남이 찾아왔다. 특별히 방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은아는 예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로 인해 상황이 좀 민망해졌고, 부부는 잠시만 있다가 자리를 떠났다.

은아가 결국 닭 다리 한 봉지를 다 먹고 난 뒤, 상숙청은 하인에게 씻을 물을 떠 오라고 했다. 은아의 기름기 가득한 손을 씻어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은아는 낯선 이를 거부했다. 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것도 기분 나빠해서, 상숙청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물리고 직접 은아를 씻기기로 했다.

그렇게 둘만 남았을 때, 상숙청이 먼저 친절하게 물었다.

“은아야, 이게 몇 년 만이야. 어디 갔었어?”

은아는 약간 멍한 얼굴이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숙청도 은아의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야가 널 어디로 데려가신 거야? 혹시 알아?”

은아가 고개를 저었다.

“도도 이야기하면 안 돼.”

상숙청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도야가 널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 싫어졌어?”

은아는 계속 고개를 흔들었다.

“도도가 자기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어.”

상숙청은 당연히 과거 우유도가 한 당부라고 생각했다. 은아는 우유도가 죽은 것을 아직 모르고 있을 수도 있었다. 코가 살짝 시큰해진 상숙청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도야 너무 미워하지 마. 도야도 쉽지 않았어. 그때 그런 결정을 내린 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야.”

은아는 다시 강조했다.

“도도 이야기하면 안 돼.”

“알았어, 이야기 안 할게.”

상숙청이 미소 지으며 수건으로 손을 닦아 주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은아의 소매를 걷는데, 그 순간 은아 팔에 있는 혈흔이 드러났다.

상숙청은 그 즉시 은아의 소매를 쭉 걷어 올렸다. 은아의 팔에 흉터와 여기저기 멍이 적지 않았다. 상숙청은 매우 놀랐다.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은아는 자신도 잘 모른다는 듯 멍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상숙청은 가슴이 아팠다. 아무래도 머리가 좋지 않다 보니 저 밖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았다.

“홍랑이 나보고 많이 묻지 말라고 했어, 근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일반적으로 도야의 조치라면 별일이 없었어야 할 텐데. 어쩌다가 이리된 거지? 은아야. 홍랑은 널 어디서 찾은 거야?”

“도도가 은아 보고 홍홍이랑 가라고 했어.”

상숙청은 은아의 말을 해석해 보았다.

“도야가, 은아 보고 홍랑을 따라가라고 했다고?”

그 말을 뱉은 순간, 상숙청 자신도 흠칫 놀랐다. 눈엔 경악이 서렸다.

“도도 이야기하면 안 돼.”

다시 고개 저으며 말하는 은아를 보고, 상숙청이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왜 도도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닭 다리 안 줄 거야.”

상숙청은 더욱 진지하게 집중했다.

“도야 이야기를 하면, 닭 다리를 안 준다고 했구나?”

은아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랑이랑 돌아오기 전에 도야를 만난 거지?”

은아는 또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도도 이야기하면 안 돼.”

상숙청의 호흡이 점점 다급해졌다.

“이번에 여기로 돌아올 때, 도야를 만났어?”

은아가 고개를 저었다.

“도도 이야기하면 안 돼.”

상숙청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빠르게 걷어 올린 소매를 내리고 입구로 다가가 하인을 불렀다.

“지금 즉시 거리에 나가서 갓 구운 닭 다리 한 바구니 사 와. 빨리.”

“알겠습니다!”

하인이 뛰어가고, 방 안의 은아는 멍청한 얼굴로 서 있었다. 상숙청은 그런 은아 곁을 계속 서성였다. 누가 봐도 다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곧 왕부 하인이 찾아와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말했지만, 상숙청은 배고프지 않다며 바로 하인을 돌려보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하인이 드디어 닭 다리 한 바구니를 가져왔다. 상숙청은 바구니를 받고, 하인을 물린 뒤 직접 문을 닫았다.

사람을 유혹하는 익숙한 냄새에, 은아는 침만 꼴깍 삼키며 간절한 모습으로 상숙청을 따라다녔다.

* * *

상숙청은 은아를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바구니에 씌워진 천을 잡아 올리자, 먹음직스러운 황금색 닭 다리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은아는 그대로 손을 뻗었다.

상숙청은 즉각 은아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은아는 말을 잘 들었다. 그저 불쌍한 얼굴로 상숙청만 빤히 바라보았다.

“청청, 배고파.”

상숙청은 한쪽 탁자에 바구니를 올리고, 닭 다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은아, 거짓말하면 안 돼. 거짓말 안 하면 닭 다리를 줄 거야. 알았지?”

은아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상숙청은 즉시 닭 다리를 은아에게 주었다. 은아는 닭 다리를 쥐자마자 베어 물고,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상숙청이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홍랑이 은아를 데려오기 전에 도야도 있었어?”

은아는 이제 꺼릴 것이 없었다. 닭 다리를 주는 사람이 있으니, 누군가의 협박은 통하지 않았다. 곧 은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상숙청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이 먹보의 말을 믿을 순 없었다. 어쨌든 머리가 잘 돌아가진 않는 사람 아니던가. 어쩌면 자신의 말을 오해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시점에서 확인했다.

“은아가 돌아오기 전에 도야가 본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어, 말하면 닭 다리를 안 주겠다고. 맞아?”

은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우 분노한 얼굴로 외쳤다.

“응! 맞아, 평생 닭 다리 안 준다고 했어! 나쁜 사람!”

상숙청은 순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두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드러난 눈시울은 빠르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은아는 멈칫하더니, 상숙청에게 닭 다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겨우 한입 베어먹은 닭 다리가 매우 아깝다는 표정이었다.

“울지마, 이거 먹어!”

상숙청은 고개를 저으며 닭 다리를 든 은아의 손을 밀어냈다.

“난 괜찮아, 은아 먹어.”

지금 상숙청은 크게 격동했고, 또 헷갈렸다. 혹시 자신이 오해한 건 아닐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은아야, 홍랑도 여기 오기 전에 다른 사람한테 도야 이야기하면 닭 다리 안 준다고 했지?”

은아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분개했다.

“응! 나쁜 사람!”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지만, 상숙청의 눈물은 결국 은아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은아는 다시 반쯤 먹은 닭 다리를 상숙청에게 내밀었다.

“청청.”

상숙청은 눈물을 머금고 미소 지으며 아직 많다는 듯 바구니를 가리켰다.

“좋아!”

은아는 그대로 다시 닭 다리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상숙청은 뒤돌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방을 서성였다. 열 손가락은 서로 뒤섞여 꼼지락거리기 바빴다.

이내 창문 앞으로 걸음을 옮긴 그녀는 창문을 열고 밤하늘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서서히 냉정함을 찾아가는 두 눈엔 복잡한 심경이 어렸다.

상숙청은 도야의 사망을 받아들였지만, 줄곧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은아의 말이 사실이라 한들, 이제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말 살아있는 게 맞다면, 그건 도야가 어떠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말이었다. 도야가 그리한 데엔 분명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성경이 어떤 곳이던가, 그 성경 안에서 죽음을 가장했다. 심각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건들면 거대한 힘이 움직일 테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얽혀 들어갈 텐데, 그런 건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숙청은 주제를 알았다. 그녀가 알 필요 없는 일이라면, 도움 줄 수 있는 게 없고, 뭔가 좌우할 수도 없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면, 그녀에겐 당연히 뭐라고 할 자격이 없었다. 도야도 그녀에게 뭔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저 우유도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숙청의 가슴은 뜨겁게 타올랐다. 격동에 긴장감이 솟고 있었다.

사실 상숙청은 여전히 은아의 말에 확신이 서진 않았다. 은아와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건 힘든 일이었다. 다시 물어봐도 그 몇 마디가 다였다.

상숙청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도야가 죽은 그때, 초려별원은 자금동에게 쫓겨났다. 본래는 큰 사건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지만, 은은한 우렛소리 아래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남주엔 어떠한 소란도 없었다.

인심이 흉흉하고 사람들 우려가 넘치던 시기에 오라버니는 너무도 신속히 자금동을 처리하고, 남주 내부 수행계 세력과 주변 세력을 안정시켰다.

전엔 매우 의아했던 일들에 비로소 해답을 찾은 듯했다. 남주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아직 살이 있다는 것, 그것보다 확실한 대답이 있을까. 한마디로, 아직도 정녕 그분이 살아있는 거라면 오라버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청청.”

어느 순간 상숙청도 자신이 창문 앞에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는지 잊었다. 그렇게 때마침 기름진 손가락이 그녀의 생각을 비집고 들어왔다.

정신이 든 상숙청은 닭 다리가 들어있던 바구니를 확인했다. 그 많던 닭 다리는 이미 다 사라진 상태였다.

상숙청은 다시 바깥방으로 나가 하인에게 물을 길어오게 하고, 직접 은아의 손을 씻겨 주었다.

하지만 상숙청은 여전히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은아, 지금도 도야를 알아볼 수 있어?”

은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도도 이야기하면 안 돼.”

닭 다리를 다 먹었으니, 은아는 다시 약속을 지키기 시작했다.

상숙청은 별말 하지 않고, 그대로 은아를 데리고 왕부 옆에 자리한 초려별원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엔 몇 번이나 멈춰 서길 반복했다.

왕부는 나름대로 등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하인도, 호위도 각자의 일에 바빴다. 왕부 주인 역시도 편히 쉬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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