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1화. 누가 누굴 설득하는 거지?
영무당 내부.
상조종과 몽산명은 밤낮으로 전쟁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 진국와 제국의 전쟁은 주요 핵심도 아니었다. 지금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후진국과의 전쟁이었다.
이번에 후진국 정벌에서 연국과 한국이 연합했다. 연국 쪽 공세는 남주 홀로 나선 게 아니었다. 연국 쪽에서도 남주 홀로 독식하는 걸 용납지 않았다.
물론 남주도 독식할 실력이 없었다. 정말 남주 병력 모두를 보내 후진국을 점령하게 하는 것이 남주에게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일단 남주는 병력을 차출했다.
이건 절대적인 실력으로 적군을 압도하는 전쟁이었다. 상조종이든 몽산명이든 직접 나설 필요가 없었다. 이런 전쟁조차도 이들이 나서야 한다면, 그건 남주에 인재가 없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인재에 관련된 일은, 몽산명이 줄곧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숙제였다. 몽산명은 내내 남주 계열 장수들을 육성하고 있었다.
이번에 남주에서 보낸 병력은 두 부대였다. 병력은 몽산명의 두 학생, 나대안과 노정이 각각 지휘를 맡았다. 이들은 전력의 우세에도 여전히 방심하지 않고 남주에서 파견한 병력의 작전 상황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대군이 움직였다. 당연히 남주 내부의 협력이 필요했고, 남약정이 내정 쪽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대안의 동생 나소안도 남약정을 따라 머리가 터지도록 바삐 움직였다. 남약정은 계속 그의 어깨에 짐을 얹고 있었다.
* * *
왕부를 벗어난 상숙청은 초려별원으로 향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도, 누구 하나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상숙정은 크게 긴장했다. 처음엔 이렇게 하는 게 옳은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행위를 심각하게 의심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상숙청이 초려별원에 들어오자, 가장 먼저 관방의가 움직였다. 그녀는 두 사람을 자신의 거처로 데려가려 했지만, 상숙청은 고개를 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숙청은 뭐라고 입을 열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에야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홍 언니, 왕소 선생님을 뵙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관방의는 멈칫했다. 그러다 절로 상숙청과 손잡은 은아를 돌아봤다. 은아는 멍한 얼굴로, 무슨 말이 오가는지도 모른 채 주위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 * *
밀실 내부.
지금 우유도는 여무쌍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둘은 차를 마시며 한창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참 낯선 광경이기는 했다.
“천하대세란 뒤의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계속 교체되는 거다. 그게 자연스러운 이치지. 구성의 패망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겉보기에 그들의 적은 그들뿐이라 여기겠지만, 사실 진정한 적은 온 천하라 할 수 있지.
높은 곳에 있을수록 적은 많아져. 역사에 흐르는 불변의 진리다. 여태 정면에 나서 직접적으로 반항하는 자는 없지만 그거야말로 진정 위험한 것이지. 너희의 적은 무수히 많다. 그 적들은 밝은 곳이 아닌 어두운 곳에 있지.
너희는 스스로가 대권을 손에 쥐고 저 높은 곳에 있는 것 같겠지만, 그건 곧 어디로도 피할 수 없이 밝은 곳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는 것과 같다. 암중에 숨은 무수한 적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계속 나타나겠지.
처음부터 너희는 패망이 결정된 운명이었다. 이제 그건 시간문제일 뿐이야. 언젠가는 누군가 나서 너희를 대신할 것이다.”
우유도는 계속해서 논리를 펼쳤다. 조금이라도 여무쌍의 귀에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여무쌍은 우유도가 너무 많은 허점을 보였고, 육성은 이들을 송두리째 뿌리 뽑을 것이라 했다. 이는 분명 큰 문제였다. 우유도가 도저히 무시하고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우유도는 여무쌍이 적극 협조하여 할 말을 해주길 바랐다.
일단 우유도는 돌아오자마자 사여래에게 육성이 언제 성경으로 돌아올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는 여태 각지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정말 여무쌍의 말처럼 육성이 성경을 버리고 인간계에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여무쌍은 우유도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담담하게 미소만 지었다. 가끔 차만 마시며 처음부터 끝까지 별말은 없었다.
결국 우유도도 더 이상 말하는 건 입만 아프다고 느꼈다.
“그래서 대체 원하는 것이 뭐지? 의논해서 같이 해결해보자고.”
여무쌍은 그제야 찻잔을 내려놓고 미소 지었다.
“그쪽에서 먼저 약속을 어겼죠. 난 당신들 문제를 해결해줬는데 날 죽이려고 했지요. 내가 약점을 잡고 그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지금 난 어떤 처지일지 상상도 안 되네요. 그런데 지금 내가 당신 말을 믿을 것 같나요? 정말 성의가 있다면 집안 식구가 되어 신뢰를 쌓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놈이 네게 호감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혼인하겠다는 건가? 그런 거친 사내랑 혼인하는 게 뭐가 좋다고 그러는 거야, 억울하지도 않아?”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감정이 무슨 소용이죠? 설파파가 무량원에서 협공받았을 때, 억울하지 않았을까요? 남도림이 무변각에서 협공받았을 땐 억울하지 않았을까요? 원 뚱땡이가 한쪽 눈을 파였을 때 억울함이 없었을까요?
나도 수많은 억울함을 겪었었죠. 오래전 밥으로 다 씹어 삼키고도 남았을걸요. 억울함이 없다면 말썽이 생길 수밖에 없고, 억울함을 참지 못한 채 함부로 움직인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사실 난 당신들이 왜 이렇게까지 반대하는지 모르겠네요. 나 정도면 용모도 나쁘지 않은데. 신분을 보자면, 천하에서 감히 나와 비교할 자가 있나요? 대체 내 어디가 모자라서 그토록 반대하는 건가요?
지금 난 이제 더 갈 곳이 없어요. 살길이 필요해요. 당신들도 내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정략혼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도 우리 모두에게 이익인 일인데. 난 아무리 봐도 당신들이 거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개인마다 삶의 의미는 각각 다 다르지. 성격도 다르고. 원강이 승낙한다면, 그 인간성의 최저선을 짓밟는 일이 되겠지. 그는 평생 괴로워할 거야.
너도 풍관아의 일을 알겠지만, 결과가 어땠지? 문제가 생기니 원한을 갚으러 갔어. 너도 원강이 바로 그런 사람이니 네 목숨을 의탁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를 목표로 삼아 기어이 혼인하려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잘 생각해봐. 너라면 너 같은 사람과 혼인하겠나? 그래, 풍관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원강과 풍관아의 관계를 잘 알 거야. 만약 원강이 너와 혼인한다면 원강은 풍관아를 어찌해야 하지?”
여무쌍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그 여인은 원강과 어울리지 않아요. 오해하지 말아요. 풍관아를 비천하다고 깔보는 게 아니에요. 내게 사람의 귀천이란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냥 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뿐이지요.
원강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여인과 혼인을? 뭐 하러요?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죠? 침상을 데우나요? 아니면 고작 그 연정? 늘 진심 어린 말로 사람을 기쁘게 해주나요?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한발 물러나서 이야기해 보죠. 그녀가 가진 건 나도 다 가지고 있어요.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다 할 수 있죠. 설혹 그러는 척이라고 해도 그녀보다 훨씬 잘할 자신 있어요.
아무튼 나와 비교하면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에 비해 그녀는 그냥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하죠. 아무리 높게 봐도 꽃병 수준의 사람이랄까. 오래 보면 질릴 테고, 결국은 걸림돌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죠.
우유도, 정말 원강을 형제라고 생각한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원강은 큰 결함이 있는 사람이에요. 지금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죠. 풍관아와 혼인한다면 원강에게 해가 될 뿐이에요.
하지만 난 달라요. 내가 그의 아내가 된다면 난 그를 도울 수 있어요. 최소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게 해줄 수 있죠.”
이내 여무쌍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우유도, 당신 똑똑한 사람이잖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요. 원강과 같은 사람들은 나 같은 여인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한마디로, 당신 같은 사람들은 연정을 고려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원강 같은 성격의 사람은 그런 허무한 것에 대해 고려할 자격이 없지요.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도움이에요. 그를 단속할 수 있는 사람이요. 장담하는데, 만약 당신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껏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옆에서 듣고 있던 운희는 저도 모르게 우유도의 반응을 살폈다. 지금 누가 누굴 설득하는 자리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우유도는 계속 침묵하며 천천히 차를 음미하고만 있었다.
여무쌍도 찻잔을 들더니 다시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당신이 간섭하지만 않으면, 당신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만 않으면, 원강은 분명 승낙할 거예요.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원강 같은 사람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더라도 승낙할 거예요. 그 멍청이는 자기 희생정신이 전부인 사람이니 멍청한 짓을 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잖아요.”
우유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원강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그런 괴짜는 아주 보기 힘들죠. 오래 만날 것도 없이,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어요. 어쨌든 나도 수백 년은 산 사람인데, 안목은 있지요. 그 인간성을 믿지 않았다면, 제5 영역에서 함정에 걸리지도 않았을 거예요.
날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원강에게 모두 뒤집어씌워야죠. 당신도 이해해야 해요. 저 높은 곳에 얼마나 오랫동안 군림했었나요. 이제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나 자신을 위해 좋은 남편을 쟁취해야죠. 원강은 괜찮은 사람이더군요. 그와 혼인한다면 안심할 수 있어요.”
우유도는 여무쌍의 말에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넌 똑똑한 사람이지. 원강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 있나? 원강은 너를 혐오해. 그런 사람과 혼인한다면 너한텐 그리 좋은 남편이 아닐 수도 있어.”
“내 발아래, 천하에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 무릎 꿇었는지 아나요? 원강이라고 뭐 그리 다를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부부가 되는 일이에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편 하나 단속하지 못할 사람으로 여기는 건 날 조롱하는 거 아닌가요?
난 그가 원하는 무엇이든 돼줄 거예요. 부부 사이에 뭐 거리낄 것 있나요? 당연히 그럴 수 있어요. 그를 만족스럽게 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지금 하는 걱정은 다 쓸데없는 거예요. 나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데, 당신은 뭘 두려워하는 거죠? 나와 혼인하는 건 그에게 복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풍관아 같은 경우는 나와 경쟁할 자격도 없는 여인이니 신경 쓸 것 없어요. 풍관아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 집안일이니, 내가 알아서 할게요. 모두한테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드리죠.
누구라도 우리 집안을 어지럽히는 걸 두고 보진 않을 거예요. 최소한 원강이 보기에 아무런 불만도 없게 할 거예요. 원강조차 불만이 없다면, 내가 풍관아를 어떻게 처리하든 당신도 불만 없겠죠?”
우유도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일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여인은 그도 처음 보았다. 어쩔 수 없었다. 전생에서도 수백 년을 산 여인을 만난 적은 없었다. 이런 사람들이 감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여무쌍은 살짝 고개를 들어 우유도의 반응을 살피며 차를 마셨다.
그때, 관방의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안에 여무쌍이 있는 것을 보고 즉시 멈춰서 우유도에게 눈짓을 보냈다. 우유도 역시 지금 여무쌍의 말을 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즉각 운희에게 말했다.
“일단 데려가 쉬게 하세요.”
운희가 말을 하기 전, 여무쌍은 벌써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관방의 옆을 지나갈 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그대로 스쳐 지났다.
우유도는 여무쌍의 뒷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 상황이 거꾸로 된 듯했다. 지금 누가 누굴 설득하고 있던 것인가?
그렇게 여무쌍이 멀어지고 나서야 관방의가 입을 열었다.
“도야, 큰일 났어.”
우유도가 천천히 차를 마시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군주가 은아를 데리고 왔어. 왕소를 만나겠대.”
우유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더는 차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먹보야, 먹보야……. 믿을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도 빨리 날 팔아넘길 줄이야!”
관방의도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아니라던가. 어느 정도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이 정도 속도는 예상 밖이었다. 채 반나절도 지나기 전이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떡하지?”
“뭘 어떡해? 이미 알았는데, 더 숨어봐야 소용없지, 여기로 불러.”
관방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두려워?”
우유도는 매우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뭐가? 내가 두려운 이유가 뭐지? 가봐, 마침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
‘자존심은 세 가지고!’
관방의가 속으로만 중얼거리곤 별말 하지 않고 밀실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