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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32화 (831/1,000)

1732화. 다시 만난 도야

밀실을 나선 관방의는 비밀통로를 지나 바깥마당으로 나왔다.

달빛 아래, 긴장한 모습의 상숙청이 있었다. 그녀는 관방의가 다시 나온 것을 보고 손에 식은땀이 났다. 여태 그녀는 은아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군주님, 저를 따라오세요.”

상숙청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관방의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방향은 관방의의 거처였다. 상숙청은 곧장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홍 언니, 전 왕소 선생님을 뵙고 싶어요.”

그건 운희의 거처로 가자는 말이었다.

관방의는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 왕소 선생님을 보러 가는 거예요. 여기서 동생을 보겠다더군요.”

상숙청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긴장에 걱정으로 격동이 일었다. 만약 자신이 잘못 판단한 거라면? 왕소가 도야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 * *

관방의는 두 사람을 데리고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간 이후, 관방의는 한쪽에 있는 천을 들고 웃으며 은아를 보았다.

“은아야, 우리같이 재미있는 놀이 할까?”

은아는 경멸하는 얼굴로 한번 쳐다보곤 무시했다.

관방의도 멋쩍어졌다. 그렇다고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먹보를 강제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관방의가 상숙청에게 조용히 말했다.

“동생, 천으로 은아 눈을 좀 가려줘요.”

상숙청은 의아했다.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관방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채근했다.

“군주님, 그렇게 해주세요.”

이건 어쩔 수 없어서 택한 방법이었다. 은아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만약 은아가 비밀통로 입구를 보게 된다면, 우유도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이 자제력도 없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먹보가 매일 같이 쳐들어와 우유도를 찾게 된다면?

은아에겐 절대로 길을 알려줄 수 없었다. 수년간 초려산장을 관리하며 이 정도 후환에 대책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진 않았다.

상숙청은 어쩔 수 없이 은아를 어르고 달랬다. 그나마 은아는 상숙청의 말은 듣는 편이라 순조롭게 눈을 가릴 수 있었다.

상숙청은 그렇게 은아의 손을 잡고 관방의의 뒤를 쫓았다.

* * *

궤짝을 밀어내니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안에 또 다른 비밀통로가 보였다. 일행은 그렇게 한 밀실에 도착했다.

상숙청은 단정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왕소였다.

상숙청은 크게 긴장하며, 밀실 내부를 한번 살펴보았다. 벽엔 수많은 지도가 걸려 있었고, 그중엔 한 번도 본 적 없는 성경의 지도도 있었다.

이내 관방의는 두 사람과 떨어진 한쪽으로 가더니,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두 사람이 만났다. 이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우유도가 목소리를 바꿨다. 여전히 왕소의 목소리였다. 확실한 그 순간이 오기까지 우유도는 숨길 수 있으면 끝까지 숨기려 하고 있었다.

상숙청은 곧 은아의 손을 놓고, 두 손을 모아 오른쪽 허리에 살짝 올리고 무릎을 살짝 굽혀 예를 올렸다. 반준례(半蹲禮)라는 궁중 예법이었다.

“선생님을 뵙습니다.”

“그렇게 예를 차릴 필요 없습니다.”

우유도는 상숙청에게 앉기를 권했다.

손이 놓인 은아는 당연히 가만있지 않았다. 다른 사람 목소리가 들리자 그대로 눈을 가린 천을 벗어 버리고 의아한 얼굴로 우유도를 주시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연했다. 우유도는 밖에서 왕소의 얼굴로 움직이지 않았다. 은아가 본 얼굴은 다른 얼굴이었다. 심지어 이번엔 목소리까지 변조하고 있었다. 은아의 반응에, 상숙청은 조금 난처해졌다.

“앉으시지요!”

왕소가 다시 손을 뻗어 앉기를 권했다.

객이 주인 말을 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법, 상숙청은 이내 우유도 맞은 편에 앉았다. 하지만 말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어색하게 앉아만 있었다.

이어, 우유도는 차를 따라 상숙청 앞에 놓아주었다. 상숙청은 또 살짝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우유도가 먼저 운을 뗐다.

“그래,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상숙청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께 꼭 드리고 싶은 청이 있어요. 들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네, 경청하겠습니다.”

상숙청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용기를 냈다.

“참으로 주제넘은 이야기이지만, 선생님께서는 혹시 가면을 벗어 얼굴 한 번만 보여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우유도는 담담히 답했다.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은아가 갑자기 달려들어 우유도를 붙잡고 가면을 강제로 뜯어내려 했다. 상숙청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은아! 무례를 범하지 마!”

우유도는 은아의 팔을 간단히 잡아 돌려 탁자에 내리눌렀다. 지금 은아는 우유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 순간, 은아의 성격의 나오기 시작했다. 무력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니 크게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발버둥 치는 은아는 송곳니까지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쁜 사람! 나쁜 사람……!”

우유도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우유도는 은아의 힘이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은아 체내의 이종 요기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상숙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그 아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유도는 상숙청을 힐끗 보고는 다시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구경하고 있는 관방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은아 몸에 한 손을 올리고 법력으로 몸 안에 빠르게 생겨나는 이종 요기를 정화했다.

이내 은아는 탁자에서 힘겹게 고개를 돌리고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도도!”

상숙청은 순간 멈칫하더니, 멍한 얼굴로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우유도는 은아를 풀어주고는 그대로 가면을 벗어 관방의에게 던져주었다. 그렇게 원래 얼굴을 드러낸 우유도는 계속해서 은아 몸속에 있는 이종 요기를 정화했다.

할 일을 다 끝낸 우유도가 은아를 옆으로 밀어냈다.

“저기 가 있어.”

다시 우유도가 고개를 돌리자, 이를 악물고 자신을 빤히 보는 상숙청이 보였다. 우유도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아, 상숙청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군주, 앉으시지요.”

상숙청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혹시라도 움직이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까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도도!”

은아는 역시 말을 듣지 않고 우유도에게 달라붙어 옷을 잡아당겼다.

우유도는 은아에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상숙청에게 앉기를 권했다.

“군주께 신분을 숨긴 것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흉험함과 생사가 얽혀 있는 일입니다.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아플 정도로 입술을 깨문 상숙청은 드디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술에서 살짝 혈흔이 비칠 때쯤에야 비로소 자리에 앉았다.

눈앞의 사내는 여전히 그토록 침착하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얼굴은 과거보다 더 성숙한 느낌이었다. 세월이 다녀간 흔적이겠지.

상숙청은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짝 흐느끼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누가 봐도 그녀가 억지로 미소를 쥐어 짜내고 있음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번에 군주와 만난 건 사실 군주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군주는 반드시 사실대로 말해줘야만 합니다.”

상숙청은 입술 끝에 느껴지는 피 맛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세요.”

“물어볼 일이 있습니다. 사실 일찍이 홍랑을 통해 알아본 일이기도 하지요. 제 사부님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또 군주의 얼굴과도 연관이 있지요. 군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영존이신 영왕께서 정말 얼굴을 치료할 어떠한 단서도 남겨주시지 않았습니까?”

정신을 분산할 곳이 생기자 상숙청도 드디어 진정할 수 있었다. 목소리도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았다. 다만 꽉 움켜쥔 손가락 깍지는 여전했다.

“아직도 기억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하지만 제 얼굴은 이제 괜찮아요.”

우유도는 다시 천천히 차를 음미하며 말했다.

“군주는 아직 잘 모를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이 일은 단순히 군주의 얼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외에 정말 중요한 일과 얽혀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관방의는 한쪽에서 냉소를 지었다. 우유도가 순간적으로 사무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불만스러웠다. 저 냉혈한처럼 무정한 모습이 뜻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상숙청의 감정은 그럴만한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것 아니겠는가.

관방의도 상숙청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있는 걸 보았다. 자신이라면 우유도가 결코 모른척하지 못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마음을 밝혔을 텐데. 하지만 상숙청은 절대 그런 짓을 할 리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상숙청은 얼굴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어, 자신은 우유도의 애정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여겼다. 어쩌면 관방의가 대신 진심을 전해줄 수도 있겠지만, 상숙청이 우유도의 거절을 감당하지 못할까 섣불리 나설 수도 없었다.

우유도가 사람들 앞에서 거절한다면, 그 상처는 평생 잊을 수도 없겠지. 그러니 지금처럼 어물쩍 모르는 척하는 게 제일 최선일 수도 있었다.

관방의를 포함해 누구라도 우유도가 상숙청처럼 아름답지 못한 사람을 원하지 않으리란 걸 잘 알았다. 받아들이긴 어렵겠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홍 언니가 제게 물어보신 적이 있어, 저도 깊이 고민해봤던 일이에요. 하지만 정말 부왕께서 무슨 단서를 남기셨는지 모르겠어요. 제게 상청종 동곽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하셨지만, 동곽 선생님께선 이미 세상을 떠나셨어요.”

상숙청은 자신의 얼굴에 어떤 큰일이 연루되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군주, 내가 알기로 당시 영왕께선 사부님과 한가지 큰일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을요. 그런데 영왕께서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분명 군주께 무슨 단서를 남기셨을 겁니다.

군주는 이번 일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영왕께선 분명 군주께 특별한 당부를 남기셨을 겁니다. 너무 중요한 일이다 보니 대놓고 알려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뭔가를 암시하셨을 것입니다.

군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당시 영왕께서 군주께 당부하셨던 이야기 중, 뭔가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자세히 떠올려 보십시오.”

상숙청은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는 우유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처럼 집중이 쉽진 않았다. 격한 감정을 그리 쉽게 추스를 수 없었다. 노력은 해도 과거를 떠올리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순 없었다.

결국 별다른 성과는 얻지 못한 채 상숙청이 입을 열었다.

“도야, 얼굴을 고치는 일에 관해선 정말 동곽 선생님을 찾아가라는 당부 외에는 다른 말씀을 하신 적은 없어요.”

우유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영왕께서 군주께 그걸 몇 번이나 당부했습니까? 따님 인생이 걸린 일인데, 그냥 대충 한번 말씀하시고 끝내진 않았겠지요?”

상숙청이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네, 대충은 아니고 부왕께선 진지하게 몇 번이나 당부하셨어요. 단, 매번 하시는 말씀은 비슷하셨어요. 다 상청종을 찾아가라는 말이었지요.”

“따님께 직접 상청종을 찾아가라고 하다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영왕과 상청종의 관계라면 전서를 통해 사람을 불러와도 됐을 텐데요. 그런데 여인인 군주께 직접 그 멀리 있는 상청종에 가라고 하다니요?

군주,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영왕께서는 만약을 대비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께서 세상을 떠나시면 상청종에 있는 사부를 찾아가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그걸 꼭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분명 이건 영왕께서 만약을 대비해 뭔가를 준비한 것이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군주,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영왕께서 하신 당부 중에 분명 뭔가가 있습니다. 혹시 간과한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유도의 말을 들으니 상숙청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서서히 정신을 집중하고 찬찬히 과거를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한편에 있던 관방의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우유도의 말이 맞았다. 전에 상숙청과 대화할 때는 어째서 이상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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