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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35화 (834/1,000)

1735화. 도야, 전 이미 결심했어요

약곡.

원비가 찾아와 약 냄새 가득한 약방 안으로 들었다. 안에는 수많은 병을 들고 뭔가를 하는 귀의와 무심이 있었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귀의는 멈칫하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포권을 했다.

“성비께서 오신 것을 알지 못해, 마중 나가지 못했습니다.”

옆에 있는 무심도 같이 예를 올렸다.

원비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를 보였다.

“제가 갑작스럽게 방문한 것이지요. 방해됐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직접 오신 것을 보면, 성존의 명령이 있는 것이 분명하겠지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원비가 손사래를 치며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오늘 온 건 선생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예요. 제게 적합한 안구를 찾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선생님께선 계속 약곡에 계신단 얘기를 듣고……. 선생님은 안구를 찾으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귀의는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는 병을 들고 한번 흔들어 보였다.

“아닙니다, 저번에 성존을 위해 적합한 안구를 찾는 일을 하면서 제가 가진 약 대부분을 소모했습니다. 지금 저희가 이렇게 대량으로 약을 배합하고 있는 건 출행을 나설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성비께서도 아시겠지만, 적합한 안구는 찾고 싶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충분한 약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원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귀의의 말이 진짜인지 알 순 없었다. 그저 지금은 귀의와 원한을 맺어 봤자 좋을 게 없으니 예를 차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군요. 서둘러 주세요.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씀하시고요.”

“차근차근 해야 하는 일이지 서두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 시간을 줄일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저와 원비 모두 그럴 힘이 없을 뿐이지요.”

원비는 귀의가 고의로 시간을 끄는 것이 가장 두려워 다급히 말했다.

“어쩌면 제가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한번 뭐든 말씀해보세요.”

귀의는 약병을 내려놓았다.

“음, 아무리 좋은 안구라 해도 결국은 다른 사람의 안구입니다. 타인의 안구를 넣으면 많든 적든 불편할 수밖에 없지요. 정말 완전무결한 건 바로 자신의 것입니다. 그러니 성존께 그 눈을 돌려줄 수 있는지 여쭈어보십시오. 성존께서 원하신다면 원비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원비는 말문이 막혔다.

* * *

주방의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난 뒤, 원강이 밀실로 들어왔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우유도가 앉은 서탁 앞에 서신 2통을 내려놓았다.

“사여래의 답장과 호종의 서신이에요. 사여래가 동시에 보내왔어요.”

우유도는 원강의 안색을 살피더니, 서신을 들어 내용을 살펴보았다.

첫 번째 것은 은희에게서 온 서신이었다. 그녀는 우유도가 안배한 대로 나추를 제외한 나머지 오성과 만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 묻고 있었다.

우유도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성나찰이 갑작스럽게 접몽환계에서 뛰쳐나온 그 순간, 자신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예상은 정확했다. 우유도는 그 서신을 한쪽에 내려놓고 원강에게 말했다.

“은희에게 알고 있으니 오성과 만나지 말고 일단 내 연락 기다리라고 해.”

원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우유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우유도는 나머지 서신을 돌아보고, 서서히 미간을 찌푸렸다.

답장을 보내는 그 시간까지 나추는 성경에 돌아오지 않았다. 성경 입구에 있는 사람들도 나머지 성존이 성경에 돌아오는 건 보지 못했고, 대나성지는 아예 확실히 나추의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나추는 당분간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니, 대나성지의 각 제자는 각자 맡은 직무를 잘 수행하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즉시 그에게 연락을 취하라는 명령을 보냈다. 거기에 나추는 대나성지에서 일부 인력까지 빼갔다.

성경 출입구에서 보내온 소식을 보면, 나머지 성존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람들을 성경 밖으로 빼간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로써 정말로 확실해졌다. 육성은 인간계에 있었다. 하지만 사여래는 나추가 인간계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고, 대나성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추는 그저 전할 말이 있으면 전서로 연락을 취하라고만 전해왔다.

우유도는 서신을 내려두고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뗐다.

“각지에 있는 밀정에게 육성에 대한 보고가 올라온 건 있고?”

“없어요. 서해당이 그 마을에서 볼일을 본 사람들은 다 사라져서 어디로 향했는지도 모르겠대요. 서해당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어, 결국 육성이 성경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우유도는 잠시 공백을 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육성이란 그 큰 목표는 천하 어디를 가든 경천동지한 소란을 일으킬 거야. 인간계에 나타나기만 하면 각지 밀정들이 아무것도 모를 순 없지. 하지만 만수문, 자금동, 영종, 천행종 같은 대 문파 세력조차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어. 매우 비정상적이지. 이렇게 되면 가능성은 한 가지 뿐이야.”

원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어둠으로 숨어들었어요.”

우유도 역시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얼마 전 육성은 밝은 곳에 있고, 우리는 어두운 곳에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장점이라고 했지. 저들이 이렇게 나올 줄 전혀 몰랐어.

상황이 좀 심각해졌어. 천하 수행자 중에 육성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 원색의 그 특별한 체형을 제외하고는. 저들이 신분을 숨기고자 한다면 아마 대놓고 돌아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아예 남주부성에 와서 우리 집 입구에 서 있는다고 해도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

“도야…….”

원강이 갑자기 망설이며 말을 꺼내는 것을 보고, 우유도가 의아해했다.

“왜 너까지 그렇게 웅얼거리는 건데?”

“여무쌍 말이 사실이었어요. 과연 육성은 성경행을 포기하고 인간계에 남아 손을 쓰기 시작했어요.”

우유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그걸 모를 순 없었다.

여무쌍의 말은 사실이었다. 전에 자신들이 움직일 때 정말 큰 단서를 남겨 놓았을 수도 있었다. 일단 육성이 그들에게 손을 쓴다면, 그 결과는 아주 끔찍할 터였다. 그들은 도망친다 한들 다른 사람은 또 어찌할까. 결국 온 남주가 피에 젖을 것이었다.

여무쌍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는 이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있어 보였다. 마냥 허세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육성과 오래도록 서로 대립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경험이 쌓였을 테고 육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 여무쌍의 뜻은 확실했다. 뭘 원하는지 대놓고 밝히기까지 했다. 도움을 원한다면, 성의를 보이라고 하고 있었다.

도움을 받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그렇게 되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유도 측은 어디에 허점이 생겼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는데, 해결은 어찌한단 말인가.

그래도 우유도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강에게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꺼내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우유도는 여무쌍과 대화를 나눈 그 날, 여무쌍의 말에 어느 정도 마음이 동했었다.

과연 원숭이와 풍관아가 어울리나? 원숭이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여무쌍보다 더 어울리는 상대는 없었다. 여무쌍이 문제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고, 눈앞의 큰 위기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유도에게도 사람으로서 넘을 수 없는 선이라는 게 있었다. 해야 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었다.

막말로 다른 사람이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추진했을 일이지만, 이런 일에 원숭이를 교환조건으로 내거는 일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때, 원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제가 약속했잖아요. 약속을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우유도는 천천히 서신을 돌돌 뭉치며 그를 쳐다보았다.

“잘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야?”

“뭐, 남자로서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는 아니죠.”

원강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뭐가? 서로 껴안고 뒹굴면 남자한테 이득이라고? 너나 나나 더는 빠듯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 아니야. 독선적인 생각으로 헛소리하지 마. 이런 일로 남자는 이득, 여자가 손해라고 생각하는 건 황당무계한 논리일 뿐이야.”

“지금 도야도 별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방법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진작에 해결했겠죠.”

우유도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 여자를 얕잡아봤어. 여무쌍과 지내보고 나서야 어떤 사람인지 알았지. 세상일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이야. 미련을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이용할 수 있는 약점, 가족, 우정, 제자의 정, 은원 등등, 그런 게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야.

설령 이익에 관련된 것이라 해도 여무쌍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너무 잘 알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 다른 사람에게 통하는 방법이, 그 사람한테는 아무 쓸모도 없어.

오랫동안 고민해도 그 여자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감도 잡히질 않아. 이젠 고문해 보는 수밖에 없어 보여.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기만 한다면, 여무쌍을 상대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죽어도 입을 다문다면요? 정말 그 여자 말이 사실이라 우리한테 시간이 별로 없다면요. 괜찮을까요? 도야, 사실 도야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요. 그냥 저한테 쓰고 싶지 않은 것뿐이죠.”

“정말 괜찮아?”

“남주 사람들을 다 살릴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괜찮을 수 있어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한다 해도 그들은 너를 모를 거야. 어쩌면 그들은 오히려 네가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겠지. 그 여자는 보통이 아니야. 혼인하면 스스로 목에 목줄을 거는 거랑 다를 바가 없어. 그러니 다시 한번 차분하게 잘 생각해봐, 우리한테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원강은 우유도가 말하는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일부 인원만을 지키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 원강은 더욱더 단호하게 말했다.

“도야, 전 이미 결심했어요.”

그리고 원강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우유도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아, 두 눈만 번득이고 있었다.

원강이 떠나고, 운희가 밀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밖에서 이미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들은 상태였다.

“정말 이대로 여무쌍에게 굴복할 거야?”

운희가 봐도 이번 일은 여무쌍밖에 이득을 보는 사람이 없었다.

우유도는 종잡을 수 없는 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무쌍은 죽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동문서답에 운희가 다시 물었다.

“여무쌍 말대로면 곧 큰 고난이 몰려올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여기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여무쌍은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더군요. 정말 생사에 초탈한 것이 아니면, 담담한 척하는 거겠죠. 근데 정말 여무쌍이 생사에 초탈한 사람 같나요? 여무쌍은 죽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러니 이번 일은 여무쌍 말처럼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죠.”

“설마 지금 여무쌍이 우리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는 말이야?”

운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런 사람과 태어나 처음으로 진지한 교류를 했어요. 확실히 안목를 넓힐 수 있었죠. 나도 사실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과장했을 가능성이 커요.”

운희는 더 의아해졌다.

“그런데 여무쌍의 계략이 성공하도록 두고 보는 거야?”

“원숭이가 보통 무부(*武夫: 용맹한 사내, 무사)였다면, 이런 큰일을 저지르지도 못했겠죠. 연달아 이런 큰 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원숭이의 능력과 연관이 있습니다. 원숭이의 능력이 강해질수록 어리석은 일을 할라치면 제가 통제하기 어려워지지요. 원숭이에게 제약을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풍관아는 안 됩니다. 신분이 다르다는 게 아니고, 무능할 뿐만 아니라 멍청하기까지 한 여인이에요. 외모가 좀 뛰어난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인물이 원숭이 같은 사람에게 쓸모가 있을까요?

원숭이는 원래부터 어리석은 짓을 너무 쉽게 해요. 거기에 풍관아까지 발목을 잡으면 다른 사람에게 너무 쉽게 이용당하겠죠. 잘못하면 두 사람 모두 아주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어요.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원숭이에게 제가 나서서 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어요. 하지만 원숭이의 아내라면 가능하겠죠. 그게 아니면 우리 형제는 진작에 갈라섰을 거예요.

원숭이는 여무쌍 적수가 아니에요. 여무쌍은 원숭이 약점을 속속들이 알아요. 그녀라면 불같은 원강의 성격을 온순하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여무쌍은 원강을 도울 수 있어요. 자신을 위해서라도 원숭이를 꼭 지킬 거예요.”

“결국 여무쌍이 도야를 설득해 낸 거군.”

“여무쌍 말이 맞아요. 이건 원숭이를 위한 거예요.”

우유도는 원강과 여무쌍의 혼인을 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나서서 여무쌍 요구를 승낙해줄 수가 없으니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결정은 내려졌고, 이게 모두한테 좋은 일이라면 운희도 이견이 없었다. 다만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타인인 그녀가 봐도 여무쌍의 행동은 좀 후안무치한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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