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군-1736화 (835/1,000)

1736화. 부창부수(夫唱婦隨)

밀실 내부.

정양하고 있던 여무쌍이 고개를 돌렸다. 원강이 막 들어오고 있었다.

여무쌍은 곧바로 걸치고 있던 피풍의에 달린 모자를 썼다. 머리카락이 새싹처럼 자라고 있어 별로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여무쌍이 자리에서 일어나 원강을 맞자, 그는 여무쌍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 혼례식을 성대하게 열 순 없다. 섭섭할 수도 있겠지.”

“이해해요. 설명할 필요 없어요. 전 괜찮으니 간단히 하지요.”

여무쌍의 말투가 달라졌다. 음량도 한결 낮고 차분해져 있었다.

“언제가 적당한 것 같지?”

“더는 늦출 수 없어요. 빠를수록 좋죠.”

“별다른 요구가 없다면 지금 당장 준비하지.”

여무쌍이 두 눈을 번득였다.

“한 가지 요구가 있어요.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기도 하지요.”

“말해.”

“절 싫어한다는 걸 알아요. 제 방법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요. 그러니 절 냉대해도 상관없지만, 한가지는 반드시 약속해 줘요. 혼인하면 반드시 같이 자야 한다는 거예요.

말했다시피 냉대해도 상관없어요. 딱히 제게 뭔가 해줄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반드시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해요. 당신이 돌아올 곳은 반드시 제 방이어야 해요.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뿐이라도 꼭 그래야만 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당연하지요. 당신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 전 다 알고 있지요. 요마령에 정부까지 두고 있죠? 제 과거의 신분은 당신도 잘 알잖아요. 전 체면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어떤 심정이겠어요?”

원강은 여무쌍이 곧바로 풍관아에 대해 언급할 줄은 몰랐다. 결국 원강의 얼굴이 살짝 뒤틀렸다. 지금 원강은 풍관아를 어찌 마주해야 할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원강의 안색을 살피던 여무쌍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보여주기식 요식행위조차 거부한다면 혼인이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도록 하지.”

원강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 * *

모든 게 간소화됐으니 속도는 번개 같았다. 다음날부터 지하 공간에 붉은 비단과 오색천이 장식되기 시작했다. 외부인사를 불러올 수 없어, 운희와 관방의가 직접 움직였다. 그러나 우유도는 그 모든 걸 본체만체하고, 홀로 밀실 안에 앉아 수집된 정보만 살폈다.

같은 날 저녁, 혼례식이 치러졌다. 손님이랄 것도 없었다. 지하에 머물 수 있는 사람만 참석했다. 한번 와본 적 있는 상숙청조차 초대하지 않았다. 주연(*酒宴: 술잔치)도 남산사 승려들에게 한 상 풍성히 차리게 한 게 다였다.

그렇게 은밀한 땅속,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신혼부부 한 쌍이 탄생했다.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운희와 관방의는 참으로 괴이한 심정이었다. 운명이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초려산장의 원숭이가 구성 중 하나를, 무쌍성존과 부부의 연을 맺다니.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유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신혼 방.

오늘 탄생한 신혼부부의 방엔 무섭도록 짙은 적막만 흘렀다. 부부는 침상에 나란히 앉아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결국, 원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육성을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 이제 말할 수 있나?”

툭-.

여무쌍의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촛불 아래서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원강도 여무쌍의 희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위풍당당하던 구성이 지금처럼 나락으로 떨어지다니. 원강은 다시 침묵하며 여무쌍에게도 더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시 긴 침묵 속에 각자의 밤을 준비했다. 한 사람은 옷을 입고 모로 길게 누웠고, 한 사람은 여전히 침상에 앉아 침묵 속에 첫날밤을 보냈다.

* * *

다음날, 여무쌍이 화장대 앞에 앉아 있는데 원강이 다시 말을 붙였다.

“이젠 말할 수 있나?”

여무쌍은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마주하다가, 다시 거울에 담긴 원강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혼인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식으로 압박을 가하나요?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전 당신과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잠시 후 우유도를 찾아가 직접 설명할게요. 그럼 됐나요?”

원강은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 *

여무쌍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바로 우유도가 있는 밀실을 찾아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우유도는 앞에 있는 신혼부부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축하합니다.”

그는 이제 제수가 된 여무쌍에게 한껏 격식을 갖췄다.

운희와 관방의도 최대한 웃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예의상 하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요.”

여무쌍의 답에,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여무쌍은 잠시 좌우를 둘러보다 원강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러분들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세요. 당신도요.”

우유도가 손짓하자, 세 사람은 눈빛을 교환한 후 밖으로 떠났다.

이내 우유도는 차를 따라 여무쌍 앞에 한잔 내려놓으며 차를 권했다.

여무쌍은 그런 우유도를 빤히 한번 바라보았다.

“아마도 육성이 이미 인간계에 자리를 잡은 것 같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들이 혼인을 승낙할 리도 없겠죠.”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근데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고요. 사라졌습니다. 육성이 우리 허점을 발견하고 손쓰려 한다고요. 이제 말씀 귀 기울여 듣지요.”

“만약 혼인하기 위해 제가 그냥 과장한 것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우유도가 미소 지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무쌍이 깜짝 놀라 우유도의 안색과 반응을 살폈다.

“이미 알고 있었나요?”

우유도는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담담히 차 맛을 음미했다.

“이제 한 식구가 됐는데 서로 불화를 일으켜서 되겠습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 일은 하늘과 땅을 제외하면 오직 제수씨와 저만 알 것입니다. 원숭이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숨기겠습니다. 그러니 그 일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앞으로 같이 지낼 날이 깁니다. 내 성의를 봤다면, 앞으로 제수씨도 어찌해야 할지 아실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여무쌍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수많은 말을 준비했지만, 이제는 모두 쓸모없게 되었다. 찻잔을 들고 있는 그녀의 손이 다소 불안해 보였다.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신 우유도가 미소를 지었다.

“차 맛이 어떻습니까?”

여무쌍은 최대한 미소 지으려고 노력했다.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네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지요. 제수씨가 원숭이를 정말로 남편으로 대우한다면 분명 좋은 맛이 날 것입니다.”

우유도 앞으로 빈 찻잔이 밀려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주전자를 들어 빈 찻잔에 찻물을 따라주었다.

우유도는 또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음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차입니다.”

곧이어 찻잔을 내려놓은 우유도가 물었다.

“함음산에 대해서 들어봤습니까?”

“귀모, 당신의 의누님이 있는 영역이 아닌가요?”

여무쌍은 우유도가 갑자기 그걸 왜 언급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귀모 오설군과 운희 관계가 나쁘지 않지요. 원숭이가 마교 성자가 된 후, 특별히 운 누님에게 오설군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최근 양측의 연락이 끊겼지요. 귀모 쪽에서 연락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원래 오상이 아는 까마귀 장군 제련법은 완전하지 않아 대규모로 제련할 수 없었지요. 마교의 창시 성녀는 사실 이향의 하인이었고, 이향이 실종되기 전 마전 한 부를 남겨 성녀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이 마전은 역대 성녀들에게 비밀리에 전승됐고, 오상은 우연히 그 물건의 존재를 알게 됐지요.

그 후, 오상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 마전을 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오상이 전에 원숭이를 구한 건, 제가 교환조건으로 조웅가를 압박해 그 마전을 오상에게 주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뭔가 깨달은 여무쌍이 순간 경악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함음산에서 더 이상 연락이 없는 건 오상이 까마귀 장군을 대규모로 제련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요?”

“과연 무쌍성존이군요. 맞습니다. 대량의 까마귀 장군을 제련하기 위해선 반드시 음기가 모이는 땅이 필요합니다. 제가 운 누님에게 귀모 쪽과 계속 연락하게 한 건 귀모가 귀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음기가 모이는 각지와 연락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함음산에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오상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 까마귀 장군을 제련하기 시작한 곳은 함음산일 가능성이 크지요.”

여무쌍이 조급한 빛으로 막 입을 떼려는데, 우유도가 손을 들어 보였다.

“묻고 싶은 게 많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나중에 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려드릴 겁니다. 지금 이 일을 알려주는 건 돌아가 잘 한번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아, 그리고 혹시 잘못된 분석을 할 수 있으니 미리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량원의 무량과는 제가 훔친 것입니다.”

여무쌍은 더 깜짝 놀랐다.

“뭐라고요? 말도 안 돼!”

“제가 까마귀 장군의 제련 비법을 알고 있어, 과수에 있는 까마귀 장군을 상대할 수 있었지요. 말이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당시 과수에 꽃이 일찍 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덕분에 제 계획은 크게 어긋났고, 지금 아주 수동적으로 움직이게 됐지요.

서해당, 안돈천, 궁임책, 문화가 각각 무량과를 사용했습니다. 지금 육성은 조사를 추진하고 있지요. 다음은 분명 각 문파를 조사할 것입니다. 제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막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제수씨는 어떻게 하면 절 도울 수 있는지 잘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무쌍은 매우 놀랐지만,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의문이 많았다. 이를 테면 제5 영역과 성나찰, 또 마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여무쌍이 입을 떼기 전, 우유도가 느긋하게 말을 이어왔다.

“또 여기 사람들은 다 절 도야라고 부릅니다. 원숭이도 마찬가지고요. 부창부수(*夫唱婦隨: 배우자 뜻에 따르는 것이 부부간 화목할 수 있다는 도리)란 말이 있지요. 이제 슬슬 진지하게 호칭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무쌍이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싫습니까?”

여무쌍은 잠시 침묵하더니,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하며 예를 다했다.

“도야!”

“신혼이니 더는 시간을 빼앗지 않겠습니다. 멀리 안 나갑니다.”

우유도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여무쌍은 묵묵히 뒤돌아섰다. 머릿속엔 우유도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과거 무량원 입구에서 처음 만났던 우유도, 당시 그녀는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저 높은 곳에 있을 땐 아래를 내려다볼 마음조차 없었다. 그에 반해 우유도는 그녀에게 얼마나 공손해야 했던가. 그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는 완전히 뒤바뀐 처지가 되어버렸다.

복잡한 심경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우유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원숭이는 제수씨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습니다. 당분간 저를 도와 각지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수집하고 발송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요. 제수씨가 원숭이를 돕겠다고 했으니, 오늘부터 곁에서 도와주세요. 풍관아의 일은 너무 소란스럽게 처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알아서 잘 처리하길 바랍니다. 그쪽 집안일이니 저도 더는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여무쌍은 뒤돌아 우유도를 한번 바라보고는 밀실을 나섰다. 마침 밖에서 기다리던 세 사람과 마주쳤지만, 별말 없이 자리를 떠나갔다.

세 사람은 눈빛을 교환하고, 빠르게 밀실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