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7화. 지하천 탐색
“도야, 어찌 되었나요?”
원강이 가장 먼저 물었다. 제 희생이 값어치를 했는지 알아야겠단 투였다.
“할 얘기는 다 했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고. 오늘부터 제수씨가 원숭이 널 도와 정보 쪽 일을 처리할 거야.”
원강이 깜짝 놀랐다.
“우리 쪽에 오가는 정보는 너무 많은 기밀이 얽혀 있어요. 만약 여무쌍이 개입한다면, 우리 쪽 비밀을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괜찮아, 어떻게 할지 알겠다고 했잖아. 맡겨도 돼. 네가 확실히 알아야 할 건, 그녀가 과거에 누구였든, 어떤 신분이었든,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선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두 눈을 가린 것과 같아. 상황을 모르면 쓸모있는 의견을 낼 수 없는 법이야.”
원강이 침묵 속에 떠나고, 이번엔 관방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야, 보통 여인이 아니야. 원숭이는 그녀 상대가 안 되지 않을까? 평생 아주 높은 신분으로 산 사람이야.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언젠가 그 야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원숭이를 이용해 도야와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면?”
“상관없어. 최소한 여무쌍도 한가지는 알고 있을 거야. 미래의 그녀는 원숭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그러니 아무리 우리 사이를 이간질한들, 원숭이 목숨을 살리기만 하면 괜찮아. 정말 그런 상황이 올 때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미 수많은 일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겠지.”
그때,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왔다. 여무쌍의 발소리였다.
모두 고개를 돌리자 정말 여무쌍이 서탁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방금 한가지 잊고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성나찰을 구할 때, 이쪽에 있는 날짐승 2마리가 노출됐어요. 육성이 추적하고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로 우리를 찾을 순 없을 겁니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제갈지가 누군가의 밀고로 도망친 후, 여기저기 혼란이 생기는 것을 보고 전에 우리끼리 모여 의논한 적이 있어요. 혼란을 억제하기 위해 역심을 품은 사람들 반응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천하의 모든 날짐승을 통제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이번에 저와 성나찰이 다 사라졌지요. 그 2마리를 찾지 못하면 육성은 천하의 날짐승을 다 몰수하려 할 거예요.”
운희와 관방의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가능성이 어느 정도죠?”
우유도가 물었다.
“확실하다고 봐야 해요. 그러니 미리 준비하세요.”
그리고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한 여무쌍이 밀실을 빠져나갔다.
우유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각지를 오가는 것이 번거로워질 것 같았다.
* *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오후에 바로 소식이 도착했다. 표묘각이 온 천하에 보유한 날짐승을 모두 상납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각 대 문파를 비롯해, 각국 조정과 경내 군정 세력의 모든 날짐승을 다 상납하고 단 한 마리도 숨길 수 없었다. 법지를 받은 곳은 지체하지 않고, 즉시 집행해야 했다. 모두 가까이 있는 천하 전장에 날짐승을 보내면, 천하 전장에서 알아서 처리하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그냥 공짜로 몰수하는 건 아니었다. 시장 가격에 따라, 천하 전장에서 조금의 모자람도 없이 계산해 주었다.
법지가 내려지고, 모든 게 신속히 진행되었다. 그 누구도 감히 머뭇거리지 않았고, 우유도 쪽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려별원 사람들도 보유한 날짐승 모두를 남주부성에 있는 천하 전장으로 보냈다.
표묘각 때문에, 일순간 각 문파에서 인원을 운용하는 반응 속도가 하향 평준화됐다. 각 세력은 원하든, 원치 않든 모두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대 문파 요원들도 출행할 때 말을 타고 다녀야 했다. 속도는 매우 느렸다. 이건 각 대 문파 고위층 특권 하나를 빼앗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일 처리 과정이 매우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표묘각이 원하는 효과가 분명했다.
그 후, 서해당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수문은 아마 표묘각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날짐승을 보유한 곳이 되었다. 만수문 권력을 유지해 준 건 만수문이 계속 날짐승을 기르고 번식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표묘각은 만수문에게 날짐승을 사용하라고 남겨 놓은 것이 아니었기에, 만수문의 날짐승은 만수문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만수문은 다른 문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 표묘각 정책은 만수문의 밥줄을 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문파가 사용하지 못하는 날짐승을 굳이 돈을 주고 살 이유가 있겠는가? 만수문 역시 감히 판매할 배짱도 없었다.
* * *
우유도도 이젠 어쩔 수 없이 말을 이용해야 했다. 그는 운희와 함께 남주부성을 나가 창오현으로 향했다.
여무쌍에게 당분간 아무 일 없을 거라는 확답을 얻은 후, 우유도는 뭔가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다.
관방의는 결국 같이 보물을 찾으러 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우유도는 떠나기 전 관방의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타는 말이었다. 갑자기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생소했다. 일 처리 효율이 크게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땅엔 수많은 이목이 있었기에 신분이 들킬 가능성도 농후했다. 그나마 창오현이 남주 경내에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또한 남주 군부의 명령서가 있어, 역참에서 말을 바꿔 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밤낮으로 달려 창오현에 도착했다.
* * *
두 사람은 한 객잔을 찾아 방을 잡고, 즉시 말을 맡긴 뒤 성을 벗어났다.
숲을 가로지른 두 사람은 한 노목들 사이에 멈춰 섰다. 우유도는 맞은편 산간의 산장을 가리켰다. 그곳이 바로 영왕이 남겨준 별원이었다.
운희는 잠시 멍하게 보고 있다가 곧 두 눈을 번득였다.
“아, 그 네 패검 지도에 나와 있는 그 산장이야?”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장 내부에 지하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어요. 지하 100장(丈) 깊이까지 내려가죠. 거기 지하천이 있어요. 산장은 안에서 지키는 사람이 따로 있어, 들키지 않으려면 산장 내부 비밀통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누님이 아래 들어가 잠시 살펴보고, 지하천을 찾으면 절 데리러 와주세요.”
운희는 고개를 끄덕인 후, 땅속을 파고 들어갔다.
확실한 방향과 지점이 있었던 덕분에, 지하천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운희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고개를 쏙, 내밀었다.
“찾았어.”
“절 데리고 가 주세요.”
운희는 즉시 우유도를 데리고 다시 땅속을 파고들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벽을 뚫고 한 지하 공간에 나타났다. 귓가엔 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곧 월접 2마리가 날아올라 주위를 밝히자, 두 사람도 이미 지하천 공간에 있음을 확인했다. 현재 월접의 빛이 닿는 곳 바깥은 칠흑처럼 어두워 왠지 모를 괴이한 느낌이 있었다.
우유도가 월접을 멀리 보내며 조용히 물었다.
“여기가 산장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이죠? 상행인가요, 하행인가요?”
“멀지 않아, 대충 200보 정도 떨어진 하행 방향이야.”
우유도는 잠시 물 흐름을 관찰하더니 머릿속으로 지도를 떠올려 보았다.
이내 그는 뒤돌아 월접을 불러 계속 하행 방향으로 나아갔다. 운희는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빠르게 날지 않고, 느긋하게 마치 뭔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주위를 자세히 살피며 움직이고 있었다.
운희는 딱 따라붙어 주위를 경계했다. 쓸데없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지도에 기록된 비밀 공간을 찾으러 온 것이 확실한 상황에, 우유도가 그녀와 같이 움직인다는 것만 봐도 이미 이루 말할 수 없는 신임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녀는 우유도와 같이 출행을 나왔을 때부터 자신의 어깨에 호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꼭 우유도를 지켜야 했다.
* * *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무렵, 전방에 크게 꺾이는 곳이 나타났다. 물 흐르는 소리가 지하를 울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지하천이 터져 나오는 곳인, 지하 폭포가 보였다. 그곳에서 발생한 물안개로 주위 석벽이 잔뜩 젖어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운희는 멈춰선 우유도를 보고 같이 멈춰 섰다. 우유도의 월접은 물안개 사이를 오갔고, 우유도는 그 빛에 의지해 법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다시 월접을 불러들인 우유도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우리가 찾는 곳이 여길 거예요. 지도에 나온 표기가 그랬어요. 겉보기엔 특별할 게 없는데 정말 뭔가 있다면 여기 분명 비밀통로 입구가 있을 거예요. 찾아보죠. 누님은 이 위를 살펴보세요. 전 물 안을 살펴볼게요.”
“응.”
운희가 대답했다.
우유도는 월접을 회수하고 야명주를 하나 꺼내 들더니 그대로 폭포를 향해 뛰어들었다. 서서히 칠흑처럼 어두운 곳으로 가라앉은 우유도는 이제 물안개에 가려 흐릿한 빛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뭍에 있는 운희는 고개를 내밀고 우유도를 잠시 살핀 후에야 월접을 부려 석벽 조사를 시작했다. 때론 벽을 두드리고, 때론 법력으로 내부를 살폈다.
폭포 아래 들어간 우유도는 수많은 거품을 헤치며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수심이 생각보다 꽤 깊어 수십 장(丈)을 내려가야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이제 이곳은 우유도가 손에 든 빛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일부 형태가 기괴한,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가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는데, 일부 천성이 흉포한 것들은 우유도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우유도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물고기는 없었다.
바닥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여기저기 있어 울퉁불퉁했다. 우유도는 그곳을 거닐며 법력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주변의 벽을 법력으로 훑어봐도 여전히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 * *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조사한 우유도가 폭포를 뚫고 다시 뭍으로 올라왔다.
운희는 그곳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도 우유도가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 바로 날아왔다.
“뭐 발견한 거 있어?”
마침 우유도도 운희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운희 반응을 보니, 물을 것도 없이 아무 수확이 없는 듯했다.
고개를 내저은 우유도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너무 멀리까지 조사할 필요 없어요. 지도 표식에 따르면, 입구가 멀리 있진 않을 거예요. 그것도 아니면 제가 지도를 잘못 해석한 것이겠지요.”
이내 우유도는 낙차가 큰 폭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 떠오른 듯한 그는 다시 몸을 날려 폭포 수막 뒤편을 따라 내려가며 벽을 살펴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포 중간쯤에 멈춰있는 야명주 빛이 보였다. 이제 운희도 몸을 날려 수막을 뚫고 우유도 곁에 나타났다.
법력으로 물살을 가르자, 그곳에 거대한 암석이 폭포 벽에 꽉 박혀 있었다. 오래도록 폭포가 떨어지는 힘을 받아서인지 이미 암벽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유의 깊게 살피지 않는다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우유도는 그 암석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