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9화. 10만 까마귀 장군
까마귀 곁에 머물며 바람에도 흩어지지 않는 검은 안개는 어떻게 보면 마치 호흡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거대한 공간 안에선 법안으로 볼 수 있는 음기가 계속해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까마귀 몸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운희는 이 지하 공간 전체가 불빛에 물들어 있는 그 웅장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뭔가 깨달은 것처럼 까마귀의 대략적인 수량을 눈으로 셈해 보았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어도 실제로 본 규모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우유도 또한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동곽호연 일행은 이런 규모를 누구도 모르게 비밀리에 준비했다. 그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모든 안배를 마치고 이 풍경을 봤을 때, 동곽호연은 죽어도 여한이 없지 않았을까?
운희는 무지한 이가 아니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이게 바로 그 전설의 까마귀 장군이야?”
우유도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거예요.”
이내 우유도는 석문 한쪽에 있는 마개를 집어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는 기름구멍을 막았다. 운희는 우유도의 움직임을 보더니, 방금 이곳을 밝힌 그를 떠올리고 문득 질문을 던졌다.
“마치 여기 와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아주 익숙해 보이네. 근데 여태까지의 널 보면 또 와본 것은 아닌 건 같고 말이야.”
우유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쓸데없는 추측이네요. 저도 여긴 처음이에요. 그냥 지하의 이런 공간에 좀 익숙할 뿐이에요. 이쪽 분야는 동곽 늙은이보다 내가 더 전문가일 걸요. 척 보면 딱 알죠. 그래봤자 결국은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요.”
“전문가?”
운희는 놀랐다. 우유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유도도 더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사실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일은 오히려 설명할수록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잠시 손에든 야명주를 살피던 우유도는 다시 품에 넣었다. 화룡처럼 긴 불길이 주위를 밝히고 있는데, 이처럼 작은 야명주 빛은 이제 쓸모가 없었다.
이런 곳에 와서 입구만 확인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법, 발아래를 한번 살핀 우유도는 내부를 살펴보러 계단을 한 걸음 내디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옷을 휘날리며 높은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 * *
주변을 살피며 걷는 운희는 여전히 놀란 얼굴이었다.
“대체 까마귀 장군이 얼마나 많은 거지?”
“만약 틀리지 않는다면 10만일 거예요. 이 공간 규모를 보니, 비슷하겠네요. 오차가 있다고 해도 크진 않겠지요.”
운희가 동요했다.
“10만? 그 정도면 군대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단서와 이야기를 조합해 보면, 처음부터 군대를 염두에 두고 만든 거예요.”
두 사람은 도와 검, 창과 극으로 만들어진 숲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 지하 공간엔 9개의 구멍이 있었는데, 강하게 불어오는 음산한 바람은 바로 그 구멍에서 불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력으로 살펴도, 구멍이 얼마나 깊은지, 이 음기는 대체 지하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나 확실한 건, 까마귀 장군 제련을 위해 이곳을 택한 건 분명 저 음기가 불어오는 구혈이 이유일 것이었다.
운희가 다시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난 함음산을 가봤어. 여기 천연 음기가 가득한 게 함음산과 비슷할 정도야. 단, 함음산 음기는 밖으로 노출됐고, 여긴 땅속 깊이 묻혀 있지. 네 사부 동곽호연은 대체 이처럼 은밀하고 괴이한 곳을 어떻게 찾은 걸까?”
“아마 그가 찾은 건 아닐 거예요. 이런 곳은 찾고 싶다고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명확한 목표가 없다면, 누님 같은 수행자 100명이 그 지하천을 다녀가도 발견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면, 동곽호연의 차례가 오기도 전에 진즉 민감한 귀수가 여길 찾았을 테고, 지금까지 숨겨져 있을 수도 없었겠죠.
과거 영왕이 대군을 이끌고 이곳에서 쟁투를 치른 적이 있어요. 그렇게 사람이 많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나 우연히 발견할 수 있는 곳이에요.”
우유도는 대답하면서 물이 스며 나와 흘러내리는 석벽으로 다가갔다. 도대체 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흘러내린 물은 다시 돌 사이 균열을 통해 어딘가로 흘러갔다.
손으로 물을 찍어 냄새를 맡아본 우유도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하고 손에 묻은 물을 털어냈다.
그렇게 뒤돌아섰을 때, 우유도가 순간 깜짝 놀라 다급히 소리쳤다.
“멈춰요!”
한 돌 위에 보검이 한 자루 꽂혀있었고, 그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마침 눈높이가 맞아, 운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까마귀를 만지려 하고 있었다.
운희는 해선 안 되는 행동을 했음을 알고, 다급히 손을 거둬들였다.
“만지면 안 되는 거야?”
우유도가 걸어와 운희 앞에 있는 까마귀 장군을 관찰했다. 검은 깃털엔 윤기가 흘렀고, 그 사이사이로 음살지기(陰煞之氣)가 흘러나와 까마귀를 뒤덮고 있었다. 동시에 끊임없이 주변 음기를 빨아들이며, 꼭 감은 눈 사이론 얼핏 보이는 사기 가득한 붉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지면 안 돼요. 이것들은 깊은 잠에 빠진 후, 줄곧 음기 속에 있었어요. 만약 생기와 만난다면, 잘못하면 깨어날 수도 있어요.”
“깨어나는 게 어때서? 여길 어렵게 찾고, 까마귀 장군을 어렵게 찾아냈는데 데려가지 않을 거야?”
우유도가 웃었다.
“하하! 데려가요? 이것들의 제련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아무나 이들을 통제할 수 없도록 정해져 있어요. 이것들을 깨우고 지휘할 수 있는 사령관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것들을 데려가지 못해요.
이것들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죠. 만약 반항한다면 언제든 그 혼이 흩어질 수 있어요. 한 마디로 이건 사령대군(死靈大軍)이라 할 수 있지요.
여기 있는 까마귀는 살아생전 한 사자(死者)의 영혼을 주입해 융합하고, 까마귀 장군으로 제련된 후에는 살아 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현세의 틈새를 거닐게 됐어요.
제련 비법에 적혀 있는 기록에 따르면, 명계에서까지 전투를 벌일 수 있다더군요. 명계라는 곳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록을 보면 이것들은 음양 양계를 왕래할 수 있고, 어느 쪽에서도 존재할 수 있으며, 아무나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돼 있어요.
누님은 이들을 뭐로 통제할 건가요? 정말 아무나 이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면, 제가 누님처럼 강한 사람을 이렇게 감히 쉽게 데려왔겠습니까?”
운희는 순간 주위에 있는 까마귀 장군의 규모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음양 양계를 왕래할 수 있고, 음양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까마귀 장군마다 죽은 자의 영혼이……. 그럼 대체 여기 얼마나 많은 자의 영혼이 까마귀와 합쳐졌단 거지? 정말 사실이라면 이처럼 대량의 망령을 붙잡아 천리 순환을 역행하게 한 자는 실로 악마가 아닌가? 천벌이 무섭지도 않은가?”
“원래 이것들은 인간계에 나타나선 안 되는 것들이에요. 사물(*邪物: 사악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또 이걸 만든 사람이 악마인지는 모르지요. 이들로 뭘 하려고 했는지가 더 중요하니까요. 그러니 하늘이 천벌에 대해서 무슨 생각인지 누가 알까요.
세상 사람들의 옳고 그름은 하늘의 입맛과 다를 수도 있어요. 바른 이치는 사람 마음에 있으니, 천벌을 기다리며 인세의 이치를 유지하길 바라는 것은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일 뿐이에요.”
그리고 우유도는 갑자기 맞은편에 있는 그 까마귀 장군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고, 다시 뒤를 돌았다.
“사실 이 물건을 제련한 사람들은 다들 좋은 꼴을 보지 못했어요. 어쩌면 정말 누님 말마따나 천벌을 받았을 수도 있죠. 지금 이것들을 깨운다면, 이것들은 즉시 누님을 침입자로 간주할 거예요. 이것들은 이미 여기서 30년간 음기를 삼켰어요.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보면 여기서 30년간 쉬지 않고 수행한 것이랑 다를 게 없어요. 30년 동안 쉬지 않고 수행한 거예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요. 누님, 그게 무슨 말일까요?”
운희가 식겁했다.
“허! 그러니까, 그 말은 여기 금단기 수행자 10만이 있다는 말이야? 그런 까마귀 장군으로 군대를 만든다니!”
“아마 금단기 수행자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을 겁니다. 이것들은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고, 바람처럼 빠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금단기 수행자들과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요?
천하 수행자들 수가 이것들보다 많겠지만, 원영기 수행자를 제외한 천하 모든 수행자를 모아도 승산이 없을 겁니다. 여기 바위에선 누님도 둔지술을 못쓰겠지요. 그러니 일부러 이것들을 깨워 악전고투할 필요가 있을까요?”
운희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네 사부는 이것들을 제련해 도대체 뭘 하려 했던 거지?”
“이렇게 많은 까마귀를 붙잡고, 10만 망령을 구속했어요. 이건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홀로 어느 천년에 다 이룰까요. 분명 상당히 큰 세력이 도와줬겠죠. 자! 저길 보세요.”
우유도가 한쪽에서 펄럭이는 큰 깃발을 가리켰다. ‘상(商)’자가 크게 적힌 깃발……. 운희도 비로소 이 까마귀 장군의 사용처를 깨달았다.
“네 사부와 영왕 상건백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들었었지. 설마 상건백이 천하 수행자들을 진압하려 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이야?”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요. 상건백 뿐만 아니라, 천하 각국에서 수행자 위에 올라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누가 그걸 싫어할까요?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던 거고, 상건백은 누군가에게 그 속내를 들킨 거죠.
상건백은 방법을 찾았어요. 하지만……. 정말 누님 말대로 이 일에 참여한 사람들은 천리의 순환을 어겨서인지 모두 죽었어요. 천벌을 받은 걸까요, 이런 걸 만들고도 써볼 기회가 없었다니. 자신이 심은 씨앗이 열매를 맺는 걸 보지도 못하고 후세들에게 전해졌네요.”
우유도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10만의 망령! 그 누가 공개적으로 이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요. 그 소란은 얼마나 컸을까요. 여기 망령은 전쟁에서 전사한 장수들일 겁니다.
상건백은 당시 연국을 위해 수많은 전장을 전전했고, 그 휘하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지요. 사실 상건백 같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고 산처럼 많은 전사자 중에 이 많은 망령을 구속할 수 있었겠죠.
상건백과 사부뿐만이 아니에요. 아마 지금쯤 오상도 똑같이 하고 있을 겁니다. 서삼국의 전쟁, 무수히 많은 자가 죽어 나갔으니 마침 오상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었을 거예요. 정말 천벌이 있다면, 그중 가장 천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은 바로 오상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우유도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냥 농담에 불과했다.
“오상도 대규모 까마귀 장군을 제련하고 있다고?”
운희가 깜짝 놀랐다.
“제가 왜 누님보고 귀모와 정기적으로 연락하라고 했겠어요? 귀모에게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요. 제 예상이 맞다면, 오상은 십중팔구 함음산에서 까마귀 장군을 제련하고 있을 겁니다.”
운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오상이 까마귀 장군을 제련하고 있다는 걸 네가 어찌 알아? 또, 오상이라면 진작부터 까마귀 장군을 제련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았어? 어째서 지금까지 기다린 거지?”
“원래 오상이 아는 까마귀 장군의 제련법은 불완전했어요. 까마귀 장군의 제련 비법은 무조시대 황후 이향에게서 시작됐지요. 이향이 심복 하인에게 제련법을 전했고, 그녀가 바로 마교를 세운 초대 성녀예요.
이향은 마전 한 부를 남겼어요. 마전에 이 비법이 기록돼 역대 성녀에게 대대로 전승됐지요. 조웅가는 성녀의 정인으로, 그녀는 죽기 전 마전을 조웅가에게 맡겼죠. 동곽호연이 그런 조웅가를 어떻게 홀렸는지, 보세요. 지금 눈앞의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우유도가 주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수많은 무기 사이를 산책하듯 뒷짐 지고 걸으며 서글픈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전에 원숭이가 성경에 붙잡혀 갔을 때,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어 조웅가에게 마전을 오상에게 넘기라고 했고, 그 때문에 원숭이의 목숨을 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