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5화. 천하를 뒤흔든 명성
무서운 줄 알면 됐다. 금작은 바로 창덕을 겁주려 꺼낸 말이었다. 곧 금작이 그를 힐끔 돌아보았다.
“정말 그대가 언급한 것이 아니오?”
창덕은 자신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고, 대사마!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입니까! 저희가 어떤 사람인지 대사마께선 잘 아시지 않습니다. 소인은 주제를 아는 사람입니다.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절대 그런 말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다른 사람 귀에라도 들어가면 어찌한단 말입니까?”
이건 거의 비는 수준이었다.
“그럼 자세히 생각해 보시오. 혹시 누가 폐하께 그 이야기를 했소?”
창덕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쪽으로는 별다른 기억이 없습니다. 없는 것 같습니다.”
금작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대총관, 잘 생각해 보시오. 저 위국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한번 보시오! 저 큰 위국이 겨우 요녀 둘 때문에, 단번에 무너졌소. 그 모습을 보면 내 간담이 다 서늘해질 지경이오! 위국이 망한 지 얼마나 지났소? 지금은 각국이 힘겨루기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요. 이런 시기에 갑자기 저런 여인이 후궁에 들어왔소. 반면교사가 있소. 정말 두렵지도 않소? 조금의 경계심도 없소?”
창덕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금작이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대내총관의 신분으로 온 황궁을 관리하고 있소. 그 손에 명경사(明鏡司)를 쥐고 있으니, 마땅히 그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할 것이오!
노부가 대내총관에게 당부하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시오. 노부는 문제가 생기는 걸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오. 노부는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소. 그렇다고 속없는 사람도 아니지.
만약 어느 날 노부가 정말 군사를 일으켜 폐하 곁의 간신을 몰아내야 하는 날이 온다면, 노부는 대내총관 당신을 가장 먼저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금작의 살기등등한 어투에, 창덕이 쓴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왜 본인을 겁주는 것인지. 그래도 창덕은 고개를 숙였다.
“대사마의 말씀을 뼈에 새기겠습니다. 수시로 경각심을 가지고, 폐하를 잘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웅할 필요 없소. 잘 처신하시오!”
금작이 대내총관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살펴 가십시오.”
창덕이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인 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일도 어렵지만, 사람은 더 어려웠다. 그는 금작에게 황제가 즐기겠다는 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본디 제왕의 집안일은 사적인 일이 아니었다. 후궁과 관련된 조정의 이익만 해도, 조정의 신하들이 끼어들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움직였다. 금작이 한 경고도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위국이 그렇게 쓰러졌다. 같은 일이 한국에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창덕도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했다.
* * *
어서방.
한창 상소를 확인하던 섭진정은 갑자기 마음이 조금 들뜨기 시작했다. 수시로 경국지색의 그 아리따운 얼굴이 떠올라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가끔 넋을 놓았다가, 한참이 지나 마음을 진정시키길 반복했다.
그리고 한편에서 지켜보던 창덕은 황제의 그 기분을 알아차렸다.
* * *
송국 황궁.
“천하제일 미인?”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의자에 앉아 있던 오공령이 손에든 정보를 살피다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섭진정이 아작에게 천하제일 미인이라 칭한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궁녀 하나가 줄을 잘 잡았다는 기쁨에 생각 없이 발설했고, 그 덕에 이제 한국 황궁에서 그 소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됐다.
이로 인해 한국 대내총관 창덕은 크게 분노했다. 그는 결국 그 입이 가벼운 궁녀를 사형에 처해버렸다.
하지만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소식은 송국 오공령에게도 전해졌다.
오공령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반복해서 내용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과거 목탁진이 있을 때부터 황궁에 있던 노인을 불러 그 아작이 정말로 그렇게 아름다운지 물어보았다.
노인은 확실히 세상에 보기 드문 절색이며,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미모라고 칭송하며 천하제일 가는 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대답했다.
묘사를 듣고, 오공령은 간질거리는 속을 참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만약 목탁진이 아작을 다른 이에게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여인이지 않았겠는가.
오공령은 이미 목탁진이 남긴 미인들을 취했다. 목탁진은 그에게 수많은 미인을 남겼지만 유일하게 가장 아름다운 그 여인만은 다른 이에게 보내버렸다. 결국 그는 정보나 받아보며 아쉬워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 * *
진국 황궁.
이곳에서도 정보를 확인하던 태숙웅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천하제일 미인? 섭진정 정도면 여색을 밝히는 사람은 아니지 않더냐?”
도략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여색을 멀리하진 않지만, 밝힌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태숙웅은 천천히 의자에 기대앉아, 손에든 종이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과거 목탁진만 그 아작이란 여인을 총애한 것이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추후에 상건웅 역시 아작을 매우 총애했었다.
당시 태숙웅은 목탁진과 상건웅이 비슷한 놈들이라며, 그러니까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 것이라 비웃었었다.
그리고 이제 섭진정조차 그 여인을 데려가 천하제일 미인이란 칭호를 내렸다. 옛말에 재일재이불재삼(再一再二不再三)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같은 일이 3번 반복되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제 바로 그 3번째가 나타났다. 그것도 셋 모두 제왕의 신분이었다. 정말 희한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숙웅도 호기심이 동했다.
아작이란 이름에 그의 두 눈이 번쩍였다. 대체 그 여인이 어찌 생겼기에 세 제왕이나 미쳐버렸는지 실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본디 무언가 일단 머리에 박히면 더는 억제할 수 없이 뿌리를 내리고 몸집을 불려가는 생각이 있기도 했다. 그게 호기심을 자극할 정도의 미색이라면, 더더욱 통제는 불가능했다.
* * *
연국 대전 내부.
“어찌 좌시한단 말인가! 어찌 좌시할 수 있단 말인가!”
황제 상건웅이 성큼성큼 서성이며, 마치 격노한 야수처럼 분을 토해냈다.
그는 자신의 여인을 섭진정에게 보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없었다.
섭진정은 선물을 받고도 자신이 언제 약속한 적이 있느냐는 답신을 보냈다. 상건웅은 화가나 졸도할 지경이었다.
가슴이 찢어질 정도의 고통을 삼키며 아작을 보낼 땐 나라와 천하를 위한다는 대의로 자신을 위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 뭘까. 상건웅은 결국 그 모두를 잃어버렸다.
아작을 떠올리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이는 모두 사신이 정확히 전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상건웅은 당장 그 사신에게 죄를 물으며 분노한 나머지 사신을 삭관탈직 시켜버렸다.
한국은 여전히 상조종을 돕고 있고, 상건웅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군사를 일으키라고 소리쳤다.
곧이어 소요궁 장로 석요와 영검산 장로 낙명검, 대사공 고견성이 불려왔다. 상건웅은 상조종의 세력이 더 커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그 셋을 불러 군사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 논하려 했다.
그러나 황궁에 있는 자금동 장로 신보춘은 부르지 않았다. 이쪽에서 상대해야 하는 건 상조종이고, 상조종은 바로 자금동 쪽 세력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후진국 점령지에 남주 병력이 없소. 남주 병력 숫자도 적지 않지요. 즉각 출병한다면 그게 바로 절호의 기회일 것이오.”
상건웅의 의도는 명확했다. 두 장로를 설득해, 소요궁과 영검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려 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석요가 입을 열었다.
“폐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한국의 태도가 너무 명확합니다. 혹시 저희가 출병했다가 한국이 개입하면 저희에게는 승산이 없습니다. 그러니 출병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낙명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저희가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금동이 저처럼 홀로 다 해 처먹는 걸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상건웅이 냉소 지었다.
“과인이 보기에 한국은 허장성세에 불과하오. 지금 한국은 후진국의 점령지를 경영해야 하고, 송국을 방비해야 하고, 당연히 출병할 계획도 없이 그냥 우리 쪽을 겁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소. 두 분 장로, 그러니 빨리 종문에 보고하고, 하루라도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하오!”
그때, 고견성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만약 정말 한국이 출병한다면 어찌합니까?”
상건웅이 그를 돌아보며 눈을 치켜떴다. 마치 넌 대체 누구 편이냐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낙명검이 물었다.
“고 대인이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소. 어지간히도 담담하신 것을 보니. 혹시 다른 고견이 있으신 것이오?”
고견성은 확실히 담담했다. 그는 분노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건웅을 마주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노신이 보기에 상조종이 원하니, 그냥 가지라고 두면 될 것 같습니다. 이처럼 대대적으로 움직였다가는 외부인들이 연국은 내부 정리도 안 되어있다고 비웃을까 겁이 납니다.”
참으로 듣는 이 모두를 놀라게 하는 말이었다. 대내총관 전우를 포함한 대전 안에 있는 시선이 속속들이 고견성에게 박혀 들었다.
전우는 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폐하의 심복 대신이라는 사람이 설마 그의 의중을 모른단 말인가? 어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설혹 이견이 있다고 한들 이처럼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역시 상건웅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 눈에도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그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견성, 지금 그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시오?”
“폐하, 만약 한국이 정말 출병하면 어찌하실 겁니까?”
그래도 다시금 같은 말을 반복하는 고견성을 두고, 상건웅이 격노했다.
“그대는 한국이 반드시 출병할 것이라고 어찌 단정하는 것이오!”
사실 상건웅은 설령 한국이 출병한다고 해도, 상조종이 쉽게 뜻을 이루는 걸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지금 상조종의 전략적 동기는 너무도 명확했다. 남주의 지리적 우위를 무기로, 양쪽을 오가는 통로를 장악해 조정이 뻗은 손을 끊어 내려는 것이었다. 나중에 후진국 점령지를 경영하기 쉽게 만들려는 심산 아니겠는가.
남주가 지리적 우위를 믿고 먼저 출병했고, 대량의 영역을 점령한데다 이번 기회에 상당한 수의 후진군을 받아들여 재편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일단 상조종이 그쪽에 있는 영역을 안정시키면, 점령한 후진국 영지는 상조종의 낭중물이 될 터였다. 그럼 조정 지원을 받는 점령지 병력도 허약해질 것이고 결국 상조종의 적수도 되지 못할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그야말로 상조종의 세상이었다. 정말 상조종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게 될 지도 몰랐다.
상조종이 일단 뜻을 이루면, 즉시 조정 병력에 수작을 부릴 것이었다. 대대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진 않아도 분명 조정 병력이 자리 잡기 힘들도록 압박을 가할 게 분명했다.
후진국 영역은 연이어 여러 차례 전란을 겪은 까닭에 아직 회복되지도 못한 상태였다. 당연히 땅은 척박했고, 조정의 지원이 없다면 자리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상조종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영역까지 모두 합쳐 그 홀로 대연국의 3분의 1을 통제하게 될 것이었다.
지금 상조종은 단 한 번도 경성에 황제를 알현하러 오지 않았다. 독자적인 병력을 구축하고, 조정을 안중에도 두지 않으니, 조정도 그를 꺼렸다.
여기에 상조종의 세력이 급격히 확장한다면, 그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상건웅은 상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게 아니었다면 상건웅도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 쉽게 보내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상건웅은 이것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사실 상조종이 이처럼 거리낌 없이 손을 쓰고, 추잡스럽게 땅을 짚어 삼키는 그 배후엔 바로 우유도가 버티고 있기 때문임을.
상조종은 이미 우유도에게 연국을 인계받을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기회가 왔을 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