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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55화 (854/1,000)

1755화. 박쥐 (2)

다들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자 원강이 또 앞으로 나섰다.

“도야, 아직 시간이 있어요! 제가 가서 그 박쥐 녀석을 죽여버리겠어요!”

여무쌍은 즉시 원강에게 경고했다.

“어쩌면 이미 우리를 팔아넘겼을 수도 있고,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어요. 지금 달려가는 건 스스로 함정에 들어가는 것일지도 몰라요.”

뭐, 실제 감정이 어떠하든, 어쨌건 여무쌍은 지금 원강에게 문제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았다. 원강과 혼인하기 위해 지금껏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며 기를 썼던가. 그 모든 걸 헛수고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 빠르게 고민을 거듭한 우유도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입을 뗐다.

“원방은 내가 잘 알아. 아주 소심하지. 금왕웅 출신으로 숨기는 게 습관이 돼있어. 무슨 비밀을 알게 되더라도 일단은 숨기는 성격이지.

원방이 비록 박쥐이긴 해도 지금껏 단 한 번이라도 뭔가 비밀을 누설한 걸 본 적이 있던가? 당시 자금동에 의탁하려 할 때도, 뭔가 쉽게 발설하지 않았어. 물론 원색이라는 뒷배가 생겼으니 그 입도 이제 믿지 못하겠지만.

일단 실속 없는 일이다 보니, 경거망동하지 못할 테고 반드시 초려산장을 떠날 수 있다고 확신이 서기 전까지 망설이며 진실을 토로하지 못할 거야. 홍랑에게도 기고만장하게만 나왔지, 별말은 하지 않았잖아.

정말 뭔가를 말했다면 원색이 직접 행동을 시작했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섣부른 행동보단 함정을 파고 기다리지 이처럼 홍랑에게 뭔가 단서를 남기진 않았을 거야. 원방의 태도만 봐도 아직은 괜찮아.”

다들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무쌍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죠? 그토록 못 믿을 자를, 박쥐 같은 사람임을 알면서도 곁에 두다니요? 일찍 처리했다면 지금 같은 후환도 없었을 것 아닌가요?”

우유도가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강호를 거닐면서 바람을 만나든, 비를 만나든, 이걸 내다 버리고, 저걸 차버리면, 애초부터 강호에서 뭔가 할 생각을 버려야 했을 겁니다. 장기를 두면서 내 말이 많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를 곁에 남겨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초려산장을 세운 이후, 초려산장을 배신한 사람은 있어도, 감히 나를 배신한 사람은 아직 누구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성인군자도 아닌데 누구에게 잘못이 없겠습니까? 더군다나 원방은 땡중인걸요. 그가 잘못하는 것도 내가 허락한 것입니다.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다면 충분하지요.

내가 그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한다면, 그도 감히 서쪽으로 향하진 못할 것입니다! 내가 원방조차도 손에 틀어쥐지 못한다면, 지금 하는 일들도 모두 다 때려치워야지요.”

그리고 우유도는 관방의에게 말했다.

“원방이 지금껏 우리 모두의 시중을 들었으니, 공로는 없다고 해도 그 고생은 생각해 줘야겠지. 다들 같은 편이니 서로 싸우고 죽일 필요 없어. 땡중이 경전 하나 잘못 읽었을 뿐이야.

지금 다른 사람들은 너무 흥분한 것 같으니 그 상태로 원방을 만나 좋을 건 없지. 어쩔 수 없이 이번엔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홍랑은 원방을 밖으로 빼낼 방법을 생각해봐. 내가 원방을 만나 머릿속 미혹을 쫓아내 줘야겠어.”

다들 우유도의 의중을 깨달았다. 원방에게 신분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여무쌍은 우유도를 힐끔 바라보았다. 우유도는 자신 있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다.

간단한 이치였다. 우유도조차 원색 앞에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몰래 숨어다니는 판국에, 우유도와 원색을 두고 원방의 마음이 어느 곳에 쏠릴지는 이미 정해진 것 아니겠는가.

이는 초려산장 사람들에 관해 깊이 알지 못하는 여무쌍으로선 당연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초려산장에서 우유도가 가지는 위상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관방의도, 원강도, 또 누구도 초려산장 사람들을 승복시킬 수 없었다. 관방의가 현재 초려산장을 관리하고 있어도 절대 불가능했다. 원방이 고민도 없이 배반한 것만 봐도 관방의 현재 위상이 보이지 않는가.

관방의가 초려산장을 관리하는 이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최소한 상조종이나 자금동 영향 아래 있어야만 무사하리란 판단, 그 때문이었다.

또한 원방이 원강을 무서워는 해도 그냥 원강을 이길 수 없기에 약자로서 두려워하는 것일 뿐, 뭐 완전히 승복하는 건 아니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당시 자금동의 일이었다. 원방은 자금동에서 원강이 있었어도 여전히 박쥐처럼 자금동에 들러붙으려고 했었다.

당시 우유도가 있었더라면 원방은 절대 자금동에 의탁하려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설혹 우유도가 그 자리에 없더라도,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원방은 어김없이 늘 고분고분했다.

이게 바로 다년간 여러 측면에서 우유도가 서서히 초려산장 사람들에게 심어둔 그의 위엄이었다. 그리하여 나머지는 우유도가 일단 얼굴을 내보이기만 하면, 원방에게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이내 관방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늘을 한번 살핀 후 말했다.

“좋아, 별다른 방법을 마련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어. 원방은 지금 이미 별원을 나와 부성에서 식자재를 사고 있을 거야. 지금 바로 만날 수 있어.”

“초려별원 식자재는 상인이 직접 배달해 주지 않았나?”

“한 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왔으니까. 기존에 있던 것으로는 감당이 어렵지. 나도 원방이 뭔가 이상해 보여서 주의 깊게 보다가, 남산사 승려와 나누는 얘기를 들은 거야. 그 중놈이 원색 앞에서 요리실력을 한번 제대로 뽐내고 싶었나 봐. 그러니 직접 상급 식자재도 사러 나가는 거지.”

“일단 홍랑은 성으로 돌아가 준비하도록 해. 나도 곧 안으로 들어가 홍랑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게.”

관방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또 한 가지. 운 누님이 지금 별원 쪽으로 침투할 수 있을까?”

“위험할 거야. 그쪽 방어 조처가 아주 치밀해. 아마 들킬 가능성이 커. 그러니 모험하지 않는 걸 추천해.”

“밀실로 들어가는 건?”

관방의가 깜짝 놀라 물었다.

“뭐,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 노리는 거야?”

“쓸데없는 걱정이야. 원색이 언제 떠날지 알 수 없잖아. 혹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인원을 좀 불러오려고. 지금 외부와 연락하는 금시는 다 별원에 있어. 그걸 다시 가져와야 해. 그러니까 홍랑이 저들의 이목을 끌지 않게 비밀 연락을 하는 금시를 밀실에 집어넣고, 나중에 운 누님을 통해 가지고 나오자고.”

관방의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아, 방법 한번 생각해 볼게.”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가봐. 조심하고.”

관방의가 떠나고, 우유도 측도 성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우유도가 원강만 데려간다며, 운희에게는 여무쌍과 은아를 잘 돌봐달라는 이야기에 운희는 금세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차라리 원숭이를 두고 나와 같이 가는 건 어때. 만약 원방이 정말로 이쪽을 팔아넘겼다면 원색이 이미 남주부성 안에 함정을 파 놓았을 거야. 그때가 되면 둘 다 그곳을 벗어나기 어려울 텐데.”

운희의 뜻은 둔지를 이용해 도망치는 게 훨씬 편하다는 이야기였다.

“함정일 가능성은 적어요. 원숭이를 데려가는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누님은 우리를 성으로 데려다주고, 나중에 다시 마중 나올 준비만 해주세요. 정말 문제가 생기면, 그 즉시 은아를 깨워 화나게 만드세요.

우리 둘이 원색에게 붙잡힌다고 해도 원색은 상황을 파악하려 할 테니 우리를 즉각 죽이려고 하진 않을 거예요. 은아와 원색이 대립하게 되면, 누님 능력으로 우리를 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잖아요.”

우유도의 말이 맞았다. 그가 만약을 대비한 퇴로까지 생각하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우유도도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여무쌍 역시 우유도를 돌아보았다. 벌써 모든 계산을 마치고. 각 상황에 대응하는 계획을 세워놓다니. 머리가 돌아가는 반응 속도만 봐도, 진정으로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그 실력이 느껴졌다.

과연 수행계에서 그 수많은 논란을 만들어 내고도 지금껏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유도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무쌍도 뭔가를 깨달아갔다.

* * *

대로를 타고 달리던 마차가 삼엄한 경계의 왕부 정문을 지날 무렵, 조심스러운 손가락이 주렴을 들추고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였다.

주렴은 다시 제자리를 되찾고, 마차 안에선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원방은 어제까지만 해도 기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점점 냉정함을 되찾은 후엔 슬그머니 걱정거리가 고개를 들었다. 은아 때문이었다.

그는 은아의 진짜 신분이 성나찰이라는 걸 알았다. 이 비밀을 원색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원방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게 뭘 뜻하는지 매우 잘 알았다. 그 비밀이 밝혀진다면, 그 일에 얽힌 초려별원은 말할 것도 없고, 왕부에도 피가 강처럼 흐르게 될 것이었다. 피해는 남주 파벌 세력까지 미칠 것이 분명했다.

비록 그는 사람을 죽이고 방화를 하는 등 수많은 나쁜 짓을 해왔지만,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출가인 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불조(佛祖)께도 변명할 말이 없는 짓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많은 이와의 교분이었다. 일부는 원방에게 나름 잘 다해주기도 했다. 그 못생긴 군주 역시도 그러했다.

이 모든 이유로 지금 원방은 아주 불안했다. 하지만 만약 말을 하지 않았다가 언젠가라도 원색에게 들킨다면, 아마 남산사 승려는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원색에게 의탁했으니, 앞으로 그는 원색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을 도울지도 답이 뻔한 얘기였지만, 원방은 줄곧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 * *

마차가 시장에 도착했다. 사색을 멈춘 원방은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쓴 채 내렸다. 마찬가지로 편한 복장을 한, 두 승려도 마부석에서 내려와 원방을 부축해 주었다.

시장은 매우 북적였다. 인파를 보며 원방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정신을 차렸다. 일단 눈앞의 일을 잘 처리해야 했다. 그 대단한 성존을 시중드는 일이었으니, 절대 대충할 수 없었다.

남산사 두 승려는 대바구니를 등에 짊어지고 원방을 따랐다. 이번 식자재는 원방이 직접 선별했고, 신선한 고기와 채소는 죄다 사들였다.

고민의 무게를 안은 원방은 오늘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 중이었다. 평소의 그는 아낄 수 있다면 악착같이 아끼려 했었지만, 오늘은 좀처럼 식자재를 구매할 때 딱히 흥정하는 일이 없었다.

* * *

그렇게 오전 시간을 다 보낸 원방이 이제 별원으로 돌아가려는데, 한 점포 직원이 길가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기 드문 물건이 들어왔습니다! 참으로 보기 드문 상급의 산짐승입니다! 원하시면 와서 한번 살펴보십시오!”

마침 옆을 지나던 원방이 멈칫하더니 그에게 다가갔다.

“어떤 짐승들이오?”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와서 한번 살펴보십시오.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그럽시다.”

원방이 앞장서라며 턱짓했다.

* * *

별로 멀지도 않았다. 직원은 시장 옆에 있는 점포로 이끌었다.

안에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던 원방은 마른고기를 집어 들고 잠시 살피더니 다시 제자리에 내려두고 직원에게 물었다.

“겨우 이것이오?”

직원이 다급히 말했다.

“뒤에 있습니다, 뒤에. 귀빈께서는 저쪽 뒤로 가시지요. 물건은 저 뒤에 있습니다. 아직 여기 내놓지 않았을 뿐입니다.”

원방은 양쪽 소매를 한번 털어내곤 거들먹거리며 직원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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