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8화. 커진 부담
남주 병력은 후진국 점령지와 연국 사이 통로를 틀어막았다.
연국 조정은 상조종 세력이 급격히 커지는 걸 보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한국이 중간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했기에 그러했다.
한국 쪽에서도 자신들이 역할을 발휘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아니었다면 연국 조정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그 전에 연국 황제 상건웅이 사랑하는 여인을 넘겨준 것만 봐도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다.
상조종은 외부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세력을 확장한 상조종은 점령지에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한쪽으로는 남약정을 통해 새로운 정책을 펴며 청장년들을 군적에 편입시켰다.
군적에 편입되면 상조종의 사병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지방의 인심을 안정시켰다.
이는 누군가 청장년들을 모아 패거리를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는 걸 사전에 차단하는 것과 동시에, 인력을 집중시켜 밭을 일구고, 최대한 빠르게 점령지의 생기를 되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군적에 편입된 청장년들은 당분간 종군하고 전쟁 치르는 걸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각지의 농지를 개간하고 생산을 책임지게 했다.
남약정은 정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지만, 지방 관료의 틀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특수한 상황에 맞춰 특수한 조처를 취했다. 농지를 그대로 군 측에 편입시켜 관리하게 하고, 군령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지금껏 남주에서 오래도록 모아온 물자와 곡식으로 전력을 다해 점령지 회복을 도왔다. 이는 곧 미래에 더 넓은 보답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동시에 남약정은 면세와 각지 핵심 상계에 독점 경영을 미끼로 내거는 등 여러 가지 이익을 통해 상인들의 참여를 장려하고, 민간의 힘, 그리고 더 많은 물자와 재물이 들어올 물꼬를 텄다. 한 마디로, 지금 이익이 되는 모든 조처를 취하고, 회복을 촉진할 수 있도록 동시에 일을 추진 중이었다.
상조종이 장악한 대군 역시 조용히 있지 않았다. 이왕 조정 병력에게 가는 공급을 끊었으니, 이참에 조정 병력을 철저히 후진국 점령지에서 몰아내 그냥 후진국 점령지를 통째로 삼켜버리려 했다.
그리고 한국은 남주가 점령지 원기를 회복하는 방법이 효과적임을 확인한 뒤, 남주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 * *
그러나 산중에 숨어 사는 우유도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상조종 세력이 급속도로 확장하는 건 미래를 위한 대비일뿐, 현재 그에겐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급한 건 표묘각 쪽이었다.
사여래와 표묘각에 남아있는 여무쌍의 이목이 보내온 정보에 따르면, 각 문파 감찰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조사하던 갖가지 일들이 육성 때문에 모두 없던 일이 되었다고 했다.
게다가 여무쌍과 성나찰까지 난리를 피우기 시작하는 등, 각종 문제가 터지며 육성은 지금 외부인사로 내부를 조사하게 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거기에 내부 인사들이 동요하는 것을 다잡기 위해, 각 문파 감찰이 무엇을 알아냈든,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없던 일로 취급하며 처벌하지 않았다.
이에 표묘각에 있던 각 문파 감찰들은 직위 해제돼 각자의 문파로 돌아가게 됐고, 성경에 있던 감찰들까지 각 문파로 돌아갔다. 자금동의 엄입 역시 문파로 돌아갔고, 그렇게 엄입을 포함한 각 문파 감찰들은 목숨을 건졌다.
표묘각 사람들은 비로소 안도했다. 더는 그들을 방해하는 자가 없으니, 무량과를 도둑맞은 일을 조사하는 표묘각 내부 작업도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 표묘각은 각 문파를 상대로 확인 작업을 진행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유도가 받는 부담이 순간 크게 늘었다. 한쪽에선 심상치 않은 결과가 다가오고, 한쪽으론 육성이 직접 인간계에서 그물을 펼치고 있었다.
육성은 직접 나서서 표묘각 각자의 세력을 조율하며 서로 소통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그렇게 서로 견제하는 힘이 없어지자, 표묘각 업무 집행 효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들은 각 문파 인원의 동향을 매일 정리해 일률적으로 각지에 있는 가장 가까운 천하 전장에 보고해야 했다. 보고에 오류가 있을 경우, 각 문파에 심어 놓은 표묘각 인원이 즉각 그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일단 뭔가 문제를 발견하면, 각지에 있는 표묘각 인원이 즉시 방문해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천하의 모든 산수는 더는 여기저기 쏘다닐 수 없게 됐다. 어디를 가든 가까운 곳에 있는 수행 문파 세력에 들어가 그들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또 그 문파 역시 그 산수의 동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렇게 되자, 가무군 곁에 있는 원종, 종곡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도망치자니, 가무군이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결국 우유도는 어쩔 수 없이 급히 상청종을 동원해 종곡자를 상청종 책임하에 두고 비호받게 했다.
우유도는 과거 상청종을 도운 것에 크게 안도했다. 잘한 일이었다. 만약 상청종을 가무군 옆으로 보내놓지 않았다면, 종곡자 신분이 폭로됐을 터였다.
그에 반해, 우유도 쪽은 손쉬웠다. 왕소는 원래부터 자금동 세력에 귀속돼 있으니 당연히 자금동의 관리를 받았다.
다만 자금동 내부에 있는 표묘각 이목을 피하는 일이 문제였다. 왕소의 동향을 보고하기 위해, 궁임책은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 짜내야 했다. 하필 또 원색이 초려별원을 점거한 바람에 우유도와 운희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동향 쪽에 큰 문제가 생겼다. 계속 돌아가지 않으면 다들 의심할 것이 분명했다. 표묘각의 의심을 불러일으켜, 자금동에게 왕소를 불러들이라 명령한다면 우유도는 어찌한단 말인가? 또 한 번 죽어야 하나?
골치 아픈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천하엔 종곡자같이 밝은 곳으로 나설 수 없는 수행자들이 적지 않았다. 만약 지금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그 결과가 어떨진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표묘각의 거대한 세력이 음양으로 전력을 다해 움직이자, 그 힘이 어찌나 세고 방대한지, 정말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실로 공포가 따로 없었다.
동굴 안에선 여무쌍이 천천히 서성이며 지금 상황을 분석해주었다.
“각 세력의 날짐승을 빼앗는 건 시작일 뿐이에요. 목적은 각 세력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기 위해서이지요. 관련 세력의 반응 속도를 늦추면, 표묘각은 각지로 움직이는 반응 속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어요.
반응 속도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한다면, 그다음 소탕과 일련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어요. 남은 건, 육성이 그물을 치고 천천히 조여가는 것이에요.
표묘각 내부를 모두 조사하고, 무량과가 내부 사람들에게 쓰임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되면, 다음은 당연히 각 대 문파를 향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각 대 문파를 조사한 후엔 마지막으로 천하 수행자들의 차례가 돌아올 거예요.
지금 육성은 천하 수행자들을 전적으로 장악하려는 거예요. 이미 천하 수행자를 대상으로 진행할 조사를 준비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요. 그렇게 한 걸음씩 훑어 내려가면, 문제가 있는 자는 당연히 나타나 도망을 치겠지요. 그럼 도망친 그자와 연결된 수많은 단서도 줄줄이 캐낼 수 있고요.
그렇게 한 걸음씩 훑어 내려가면, 결국 단서가 나타나게 돼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성경 내부도, 표묘각에도, 인간계에 있는 수행자들까지도 훔친 사람도 없고, 아무 연관도 없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조사하다 보면, 무량과가 마지막에 어떤 사람에게 들어갔는지, 설령 정확한 목표를 특정하지 못한다 해도, 대략적인 방향은 잡히겠죠.
무량과를 먹은 자들이 조사 범위 내에 있기만 하면, 이제 와 죽은 척 몸을 숨긴다 한들 늦었다는 이야기에요. 이제는 누가 죽든, 표묘각은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데, 죽은 척할 순 있을까요?
또, 육성이 그리한 건 최대한 저와 성나찰의 조력을 끊어내기 위해서예요. 도야가 불러온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못 하고 결국 그대로 철수한 게 가장 좋은 증거이지요.
육성은 저와 성나찰의 배후에 분명 다른 세력의 도움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천하 수행자들의 동향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 배후에 있는 세력을 움직일 수 없게 묶어둘 수 있다면, 그래서 저와 성나찰이 홀로 움직인다면, 그들에게는 별로 큰 위험도 되지 않지요.”
한쪽에서 우유도는 침묵하고 있었다. 확실히, 원색에 대항하기 위해 불러온 자들은 육성의 움직임에 다급히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제갈지만 남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지경까지 오니, 우유도는 돌로 자신의 발등을 찍은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무량과수에 꽃이 일찍 핀 일로, 지금 우유도는 아주 수동적인 상황에서 뒤늦게 대응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우유도는 처음부터 무량과를 이런 식으로 나누어 주진 않았을 터였다.
그때, 여무쌍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우유도를 바라보았다.
“육성이 직접 독전하며 숨어들었어요. 그건 표묘각 내부 인원들에게 거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지요. 육성이 어디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니, 집행 인원들은 감히 자기 일에 태만하지 못하고 있어요!
도야 말에 따르면, 오상은 지금 제국 함음산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원색은 바로 우리 앞에 있고요. 하지만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육성이 숨어든 것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건 무량과를 복용하고 원영기에 오른 사람에게는 큰 공포일 거예요.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겠지요.
지금 사람을 보내 천도봉에 있는 표묘각 총단을 습격할 수 있나요? 육성 중 하나가 천도봉에 숨어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하죠?
저 여섯이 각기 다른 곳을 차지한 것엔 다른 의도가 있어요. 일단 표묘각이 숨어있는 원영기 수행자를 끄집어낸다면, 그 즉시 가까이 있는 사람이 달려갈 거에요. 거기엔 저나 성나찰의 발목을 잡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요.”
우유도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건 다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원색이 여기 눌러앉아 있는 게 이미 큰 문제가 됐지요. 나와 운 누님이 끝끝내 초려별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 행적에 대해 거짓 보고를 하는 궁임책도 결국은 곤란해질 겁니다.
그렇다고 이런 시기에 실종되거나 죽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 돌아간다면 내가 쓴 이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겠지요. 원색 곁의 호위들이 얼굴을 숨긴 자를 그냥 내버려 둘리는 없으니 말입니다.”
여무쌍은 걸음을 옮겨, 동굴 벽의 돌멩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비틀었다.
“사실 이리 어렵게 일 처리할 필요는 없어요. 일단 문제가 생기면, 자금동 사람들에게 숨으라고 하면 되지요. 이미 그쪽으로 다 준비하지 않았나요?”
“그 준비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아직 물러날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으면, 진작 극도로 혼란스러워졌을 테고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앉아있을 수도 없었겠지요. 그리고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책 중의 하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도망치면, 여기 남주에게는 큰 화(禍)가 될 것입니다.”
“이런 말은 도야가 싫어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묻고 싶네요. 저는 도야가 여기 남주 사람들을 아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범인에 불과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도야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지요. 오히려 도야의 심혈을 허비하게 하는 짐짝일 뿐이지 않나요?”
여무쌍 곁에 서 있던 우유도는 천천히 뒷짐을 졌다.
“제수씨 말은 그들을 포기하란 말인가요? 알고 있겠지만,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이 죽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