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3화. 빈승도 참으로 의외입니다
사여래가 당황하며 말했다.
“사부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색 곁에 사람을 심은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 원색이 갑자기 남주부성에 있는 초려별원에 입주하면서, 마침 제 사람이 원색에 옆에 자리하게 된 것일 뿐입니다.”
“초려별원에 네 사람이 있어?”
“그렇습니다! 전 과거 표묘각을 관리할 당시 천도비경을 주관했었습니다. 우유도는 당시 제게 잘 보이려 술 담그는 비법을 주었었지요. 후에 그 비법대로 술을 담그는데 뭔가 의아한 부분이 있어, 왕존에게 술 담그는 사람을 찾아가 보도록 했습니다.
이름은 원방, 금왕웅에서 변한 승려로 초려산장에서 ‘남산사’라 부르는 곳을 책임지고, 술뿐 아니라 장기간 초려산장의 음식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때 전 그저 술 담그는 방법만 확인하게 한 것이지만, 그 원방은 왕존이 누구인지 알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의탁하며 표묘각 사람이 되길 청했습니다. 누군가 알아서 밀정이 되겠다는데, 저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나중에 그 원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니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 요승은 태생적으로 박쥐와 같은 사람이고, 초려산장에서 하는 일도 잡일에 불과한지라 그곳 기밀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별 쓰임이 없는 자라, 저도 줄곧 그자를 잊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표묘각 명단에 올리지도 않았던 자이지요.
그러나 이번에 원색이 초려별원에 들어가고, 또 방비를 잡아간 후 그가 떠올랐습니다. 초려별원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를 동원하게 됐지요. 그에게 연락을 취해, 가장 먼저 초려별원 상황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요승이 원색의 눈에 들어…….”
사여래는 우유도가 제공한 정보를 나추에게 줄줄이 읊어 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추는 어이가 없어졌다. 그 역시 여무상처럼 사여래의 설명을 듣자마자 어찌 된 일인지 단번에 파악했다. 원색이 왜 하필 초려별원에 묵고 있는지도 뻔히 보였다. 식탐……. 식탐 때문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나추는 벌떡 일어나 석대(石臺)에서 내려왔다.
“원색의 눈에 든 사람이다. 믿을 수 있겠느냐?”
“그는 성경과 표묘각 내부 역학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를 찾았을 때, 묻는 말에 모두 고분고분 답했었지요. 이야기를 마치고, 배후에 제가 있다는 걸 알면, 원색은 더 이상 그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당부도 남겨뒀습니다.”
나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뒷짐을 지고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깊은 사색에 빠진 그를 두고, 사여래가 계속 말을 덧붙였다.
“사부님, 원비에게 방비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아낼 수만 있다면, 원색이 무방비한 틈을 타 사부님 실력으로 단번에 방비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색이 인질을 잡고 협박할 것은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빼앗는다고? 나추가 멈칫했다. 지금은 인질이 문제가 아니라 원색이 알고 있는 약점이 더 중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나추도 그리 쉽게 돌아선 것이다. 그건 제자에게도 쉬이 알려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신중하게 고민하던 나추의 두 눈에 알아차리기도 어려운 살기가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안배할 것이니 너는 여기 남아 나를 돕거라.”
“존명!”
사여래는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 * *
남주부성 바깥, 한 동굴.
우유도는 사여래가 보내온 소식을 보고 냉소를 지었다,
“나추가 강제로 빼앗을 생각이 있었다면 지금껏 기다릴 것도 없었겠지.”
그리고 여무쌍에게 서신을 넘겼다. 이제는 육성과 직접 겨루는 상황이다 보니, 여무쌍이 곁에서 수시로 조언해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했다.
서신을 확인한 여무쌍은 돌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누구의 서신인가요? 사여래? 사여래도 도야의 사람인가요?”
보통 서신이 아니었다. 서신에 이름은 없지만, 서신의 내용을 근거로 여무쌍은 이미 발신자에 관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우유도는 부정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이미 사실이라 인정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여무쌍은 어쩌다 사여래와 붙어먹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은희는 죽지 않았고, 은희와 우유도가 서로 아는 사이며, 은희의 딸이 바로 사여래의 아내였다. 천천히 추론하자면 우유도와 사여래가 아는 것은 딱히 이상할 것이 없었다. 결국 육성 곁에 있는 친전 제자까지 포섭하다니!
여무쌍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서신을 살피다 한숨을 내쉬었다.
“나추는 분명 사여래가 은희 일을 모른다고 생각할 거예요.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천재일우의 기회에요. 단지 딸을 구하는 것만으로는 나추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하겠지요. 지금 나추는 살심이 동했어요. 그는 딸을 구하고, 동시에 원색을 죽이려 할 거예요. 원색을 살인멸구한다면 은희와 관련된 일을 숨길 수도 있잖아요?”
우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살초(殺招)를 쓰기엔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추가 손을 쓴다면 그 성질이 달라질 것이니 나추 본인의 존재로 미성숙한 살초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결과가 어떠하든, 나추가 원색을 죽일 수 있든 없든, 모든 일이 끝나면 원색은 초려별원에 계속 머물진 못하겠군요. 그렇게 원색이 처리되면, 이제 우리가 돌아갈 문제도 해결될 겁니다.”
“너무 기뻐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호오, 고견을 들어 보지요.”
“나추가 보기에 이번 일은 원색을 없애는 것이 딸을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 있어요. 그러니 나방비를 지키고 싶다면 조심해야 할 거예요. 나추는 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어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은희 쪽에 변명할 말이 없지 않겠어요?”
다시 우유도의 침묵이 길어졌다.
* * *
초려별원 주방.
화구에 장작을 집어넣던 승려의 눈에 주방으로 다가오는 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승려는 즉시 뒤에서 주방일을 감독하던 원방을 돌아보았다.
“주지 스님, 안보여가 금단방 1위 고수가 됐습니다!”
원방은 가슴이 철렁했다. 승려의 말은 암호였다. 이건 관방의가 직접 그에게 전달하고 실행하라고 한 계획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쉰 그는 곧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금단방 1위가 뭐라고. 과거 도야가 계실 때 그 안보여는 도야를 피해 여기저기 도망 다녔었지. 하아, 아쉽구나. 그런 도야께서 일찍 돌아가셨어. 만약 지금까지 살아 계셨다면……. 그러고 보니 성경에 감찰로 간 자금동 인원이 돌아왔다던데.”
마침 사립을 쓰고 주방 앞을 지나던 원비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그녀는 주방 안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고!”
승려들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원비는 할 일 하라며 손짓하곤, 옆에서 굽실거리는 원방에게 다가갔다.
“나와보아라.”
“알겠습니다!”
원방이 즉시 고분고분 그녀를 따라 주방을 나섰다.
* * *
주방 바깥, 작은 마당.
발길을 멈춘 원비가 뒤를 돌았다.
“너, 안보여를 아느냐?”
원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금단방 1위 고수가 됐다던데. 빈승, 방금 재료를 사러 가다 직접 그녀를 목격도 했었습니다.”
원비는 갑자기 왜 안보여를 언급하냐고 물으려다 곧장 질문을 틀었다.
“남주부성에서 안보여를 보았다고?”
“그러게 말입니다! 빈승도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특별히 마차를 늦춰 가만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약방에 드나드는 것이 남주부성에 있는 약방을 모두 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아직도 약방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요?”
‘약방’이란 말에, 원비는 이미 어느 정도 믿음이 생겼다.
“혹시 잘못 본 건 아니고?”
“빈승도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전에는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번엔 다소 거친 흰 무명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리따운 용모는 똑똑히 기억하니 절대 잘못 보았을 리는 없습니다. 고고,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혹시 고고께서도 그녀를 아십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할 일이나 하러 가라. 선생님 입맛을 버리면 아주 혼쭐이 날 것이다.”
“네, 네, 네!”
굽실거리며 물러난 원방은 뒤돌아서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관방의가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라고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도야의 명령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도야를 언급하지 않을 땐 몰랐지만 일단 그 이름을 뱉고 나니 가슴이 다 벌렁거렸다. 장손미, 목연택에, 여무쌍도 모자라 눈앞의 원색까지, 거기에 자신에겐 알 수 없는 말까지 시키고 있는데, 당최 그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본래 요리를 잘하고 있는지 살피려던 원비는 그대로 뒤돌아 마당으로 나와서 대원성지의 사람을 불렀다. 귓속말로 조용한 명령을 받은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두 사람을 데리고 빠르게 초려별원을 빠져나갔다.
* * *
세 사람은 목적 없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먼저 천하 전장으로 향한 뒤, 두 사람은 밖을 지키고 한 명만 안으로 들어가 천하 전장 지배인을 찾았다.
“남주부성에 약방이 몇 개나 있습니까?”
“크기는 크고 작고 다양한데, 일단 총 11곳입니다.”
“구체적인 위치를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천하 전장 지배인은 빠르게 남주부성 지도를 펼쳐, 붓으로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그는 남주부성에 대해 아주 빠삭했기에 붓놀림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빠르게 11곳 약방 위치를 확보했다.
지도를 손에든 자는 다시 지배인에게 믿을만한 사람들 몇 명을 요청하고는 그들을 이끌고 거리로 향했다.
* * *
거리에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각자 맡은 약방이 있는 곳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헤맨 끝에, 한 약방에서 목표를 찾았다. 한 마차가 멈춰 대기 중인 약방이었다.
일반 백성이나 입을 거친 무명옷을 입은 안보여는 마침 약방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약방 점원은 안보여가 찬찬히 살펴볼 수 있도록, 약방에 있는 특정 약재들을 모두 포장해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
안보여는 허리 숙여 포대를 살짝 벌려 내용을 살피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품에서 금전 3개를 꺼내 주인장에게 건넨 그녀는 잔돈은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주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고, 점원에게 입구에 있는 마차까지 포대를 실어 주라 손짓했다.
마차에 올라타기 전, 마부는 안보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를 살핀 안보여는 느긋이 마차에 올라탔다.
마부는 마편을 휘둘러 마차를 천천히 움직였다. 약방을 찾던 일행도 그 길에 합류해 곧장 성문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마차가 막 한 거리를 지났을 때, 소식을 받은 초려별원 대원성지 세 사람이 나타났다. 그들은 천하 전장에서 파견한 사람들을 돌려보내고는 직접 마차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물밑의 일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초려별원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누군가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고, 천하 전장에서 보내준 사람까지도 예외 없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그들이 안보여를 발견했을 때, 감시하는 자들도 그들이 안보여를 발견했음을 알았다. 이번 계획을 세운 자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방대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자라,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뒤따르던 사람들은 마차가 성을 나서려는 걸 보고, 누군가 빨리 움직여 어딘가에서 마차를 구해왔다. 나머지 둘은 달리는 그 마차에 빠르게 올랐다.
안보여의 마차는 성문을 나선 후 속도를 높였고, 뒤따르는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뒤를 쫓았다.
그 안의 안보여는 침묵하고 있었다. 본인이 사여래의 명을 따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녀 역시 정작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일에 말려들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뭔가 위험하게 돌아간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위험을 안다고 한들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사여래처럼 큰 권력을 가진 사람 앞에, 금단방 1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귀의조차 어쩌지 못하는 사람인데, 과연 안보여가 뭘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