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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68화 (867/1,000)

1768화. 바람과 비처럼 붙잡을 수 없구나

황혼에 물든 남주부성 곳곳에 하나둘 등불이 걸리기 시작했다. 행인들도 여유롭게 거리를 거닐거나 피로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원비의 마차도 이 풍경에 자연스레 섞여들었다. 거리를 느릿하게 가로지르는 마차 안에서, 원비는 내내 창틈으로 밖을 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윽고 한 점포를 지날 즈음, 원비가 창을 살짝 열고 입구에서 빤히 바라보는 그 점포 점원에게 살그머니 손짓했다. 점원도 신호를 읽었다는 듯 고개를 약하게 끄덕이곤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다시 마차가 한 골목 앞에 도착했을 때, 원비는 마부에게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명한 뒤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골목 반대편에 나타난 원비는 미리 준비한 다른 마차에 올랐다. 이후 마차가 움직이자마자 그녀는 신속히 준비해둔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지금까진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 중이었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원비는 비로소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춘이 식당에 들어와 원색에게 조용히 보고했다.

“성존 말씀이 맞았습니다. 원비가 초려별원을 떠났습니다. 확실합니다.”

원색은 젓가락질을 멈추곤 뭔가 손짓을 했다.

곧 춘이 한편에 있던 대야를 가져오자, 원색은 바로 일어나 입을 벌리고 지금껏 먹은 음식들을 다 토해버렸다.

원색은 분명 음식을 먹었지만, 줄곧 속에 들어온 음식들을 법력으로 격리하고 있었다. 지금 하나로 뒤섞인 음식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그 이후 원색은 술주전자를 움켜쥐고 꿀꺽꿀꺽 마셨지만, 그마저 대야에 뱉어냈다.

이내 춘은 대야를 식탁에 올린 후 작은 자기병 하나를 꺼냈다. 음식을 검사해보기 위함이었다.

“음!”

그때 원색이 춘에게 물러나라 손짓했다.

춘이 물러나자, 원색은 소매에서 직접 조그만 자기병을 꺼내 음식에 분말을 털어 넣더니, 젓가락으로 그 역겨운 음식물들을 휘저었다.

춘은 이에 입술을 삐죽이며 불만을 드러냈다.

“직접 하시는 겁니까?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설마 제가 그녀를 음해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시지요?”

원색은 춘을 무시했다. 다른 사람은 신경 쓸 심정이 아니었다.

이윽고 원색의 얼굴에서 미소가 완벽히 지워졌다. 그는 싸늘한 눈으로 역겨움 음식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섞인 음식물은 이미 검게 변해있었다.

춘이 냉소를 지었다.

“이것 보십시오. 네 사람이 교차 검사했어도 알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이래도 의심하십니까?”

젓가락을 던져버린 원색이 뒤를 돌았다.

“인원을 잘 배치했느냐?”

“나추가 개입하지만 않고, 그녀를 돕는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나타나지만 않으면 도망치지 못할 것입니다.”

“……무정은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는가. 아, 붙잡을 수 없구나. 바람과 비처럼 붙잡을 수가 없구나!”

원색은 탄식과 함께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춘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넌 가서 할 일 하거라. 손님이 올 것이니 나는 가서 기다려야겠다.”

* * *

객잔 내부.

빠르게 달려온 사여래가 문만 두드린 후 그대로 열고 들어왔다. 어두운 실내엔, 창문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나추가 있었다.

사여래는 급히 걸음을 옮겨, 조용히 보고했다.

“사부님, 원비가 나왔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나추는 일어나 창을 활짝 열고, 싸늘한 눈으로 초려별원 쪽을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색에게 반응이 올 것입니다. 별원 쪽에서도 일단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즉시 신호를 보내올 것입니다.”

사여래가 이어 말했다.

* * *

지하.

검은 옷, 복면까지 한 야행 복장의 운희가 깊은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지하를 헤집고 다닐 수 없어 대략적인 위치까지만 움직인 후, 천천히 지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운희는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며 법력의 파동도 최대한으로 억제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수시로 멈춰서 주변을 살피길 반복했다.

그렇게 상부 한쪽에 공간이 있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즉각 둔지를 썼다.

땅을 뚫고 나오기 전, 운희는 대략 위치를 계산해 보았다. 지금 그녀 위에 있는 공간은 지면과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운희가 조심스럽게 움직인다면 지면에 있는 이들이 법력의 파동을 감지하지 못할 듯했다.

곧이어 머리 위, 토벽이 마치 구름처럼 갈라지더니 한쪽에 공간이 나타났다. 운희는 조심히 안으로 들어가 월접을 날려 주위를 밝혔다.

흙벽은 매우 단단했다. 이건 땅을 파낸 것이 아니라 강대한 법력으로 흙을 밀어내고 다져서 만들어 낸 공간이었다.

다시 빠르게 앞으로 이동하는데, 운희의 눈앞에 작은 미로가 나타났다. 길을 따라가던 그녀는 이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크지 않은 공간에 이런 미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운희는 매우 놀랐다. 지금은 법력을 퍼트려 살필 수도, 큰 소리로 뚫고 갈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 미로는 운희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그녀는 즉시 자신이 가장 잘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손을 내밀고 앞으로 움직이자, 굳건하게만 보이던 흙벽이 하나하나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전진하는 운희의 눈앞에 흙으로 만든 토대가 나타났다. 그 위에 조용히 누워있는 여인이 보였다.

운희는 기뻐하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로, 길게 뚫린 어둡고 검은 수직갱이 있었다.

잠시 수직갱을 관찰하던 그녀는 별것 아니라는 생각에 빠르게 토대로 다가가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방금 뭔가 파동 같은 것이 느껴진 것 같았다.

고개를 내린 운희는 토대에 누운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기 오기 전, 우유도가 묘사한 나방비의 용모 그대로였다.

* * *

딸랑딸랑-

귓가를 울리는 방울 소리에 반쯤 눕다시피 앉아 있던 원색이 눈을 떴다.

본래 원색은 지하 공간에 작은 진법을 만들고, 누군가 난입해 나방비에게 다가가면 경보가 울리도록 만들어두었다.

지금, 지붕 아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작은 방울이 울렸다. 누군가 그가 만든 미진(迷陳)을 깨트린 게 분명했다.

원색은 내내 귀빈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원색은 그대로 문을 나서, 마치 거대한 망치처럼 정원 한 곳을 내리쳤다.

쾅!!!

원색이 타격한 곳의 지층은 원래 그리 두껍지 않았다. 그곳은 처음부터 나방비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할 목적으로 남겨둔 곳이었다. 입구를 통하면 상황이 시급할 때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지면이 터지며, 순간 지하 직행 길이 단번에 펼쳐졌다. 이게 바로 운희가 목격한 그 수직갱이었다.

마침 토대 앞에서 손을 뻗어 나방비 상태를 확인하던 운희는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대경실색했다. 그녀는 망설이지도 않고 곧장 나방비를 안고 둔지를 이용해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데 나방비를 안는 순간, 운희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뭔가 나방비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사실 나방비에겐 은사 한 가닥이 걸려 있었다. 그 끝엔 독침이 있어, 누군가 급히 나방비를 데려가려 하면 나방비가 독침에 당하게 돼 있었다.

그 이후, 지하까지 단번에 내려온 원색은 미처 수습하지 못한 운희의 월접을 발견했다. 그의 두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토대에 있던 나방비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지하에서 움직이는 법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어딜 도망치느냐!”

몸을 날린 원색은 즉시 파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장력을 쏘아 보냈다.

순간 땅이 터져나가고, 지하 공간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원색은 계속 양손을 휘두르며 칼로 두부를 자르듯 땅을 파헤치며 운희 뒤를 쫓았다.

둔지로 도망치던 운희는 갑자기 거대한 힘이 공간을 짓누르는 느낌과 함께 피를 토해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둔지를 펼쳤다. 뒤에서 땅을 뚫고 뒤쫓아오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 * *

초려별원에 있던 사람들도, 성 내에 있던 백성들도 갑자기 땅이 흔들리는 진동을 느꼈다. 한바탕 소란이 일며, 객잔 창가에 있던 나추도 멈칫했다.

눈을 가늘게 뜬 나추는 얼굴의 가면까지 벗어버렸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만은 없었다. 그대로 창문에서 뛰어내린 그는 초려별원 방향 하늘로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누구냐!”

인기척을 감지한 대원성지 일원은 침입자가 나추임을 확인하고 대경실색했다. 소리는 쳤지만 이제 더 이상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지하에선 계속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 나추는 곧 양손을 지면을 향해 휘두르며 화살처럼 땅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움직여! 지금은 일단 피해!”

관방의는 지금 막 자신에게 달려오는 허노육 등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왕부 내부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도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상조종과 몽산명은 서로를 돌아보며 동요했다.

이미 경고를 받았고, 결국은 일어날 일이었다. 다만 이렇게 소란스러우리란 건 생각지도 못했다.

순간 수많은 수행자가 상조종을 보호하러 뛰어왔고, 그는 두말하지 않고 즉시 몽산명과 같이 비밀통로로 숨어들었다.

* * *

한편, 남주부성 내부에 있던 원비도 돌연 뒤를 돌았다. 그녀는 아직 은신하기로 약속한 곳에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드디어 시작한 것인가?”

거리엔 당황한 백성들이 마차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인파엔 죽통을 맨 이들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차 옆을 막 지나던 순간, 죽통이 터져나가며 안에서 금속으로 이뤄진 장창이 나와 마차에 박혀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마차에 있는 사람을 강제로 제압하거나 바로 격살하고자 했다.

불안한 마음에 줄곧 주변을 경계하던 원비는 대경실색했다. 그렇다고 반응이 느린 건 아니었다. 원비는 즉시 마차의 지붕을 뚫고 날아올랐고, 그녀의 발아래로 서슬 퍼런 창두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녀 머리 위로 네 사람이 거대한 그물을 펼쳐 그대로 원비를 낚아챘다. 네 사람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그물의 각 모서리를 잡고 그 안에 원비를 돌돌 말아 포위했다.

네 사람이 동시에 법력을 동원하자, 원비 혼자의 힘으로는 그물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소매에서 천검부를 꺼내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지만, 그들도 원비가 천검부를 사용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진 않았다.

원비는 그물에 걸려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했고, 그 기회를 틈타 누군가 천검부를 든 원비의 손을 꿰뚫었다. 연이어 장창 몇 줄기가 날아와 원비의 팔다리를 꿰뚫었다. 아니, 쓰러진 원비를 아예 장창으로 땅에 박아넣고 더는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아!”

원비가 참담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또 누군가 날아와 그녀의 몸을 점혈해 금제를 가했다.

치명적인 일격을 피한 마부는 자신을 포위한 사람들을 보고 대경실색하며 천검부를 꺼내 사방에 마구 난사했다.

그러나 포위한 자들도 마찬가지로 천검부를 꺼내 대항했다.

거리가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길가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고, 미처 도망치지 못한 백성들은 목숨을 잃었다.

꺼낸 천검부를 다 쓴 마부는 다시 한 장을 더 꺼냈다. 하지만 그와 대치한 무리 역시 천검부를 들고 있었다. 심지어 겨우 한두 장씩도 아니었다.

결국 마부는 원비가 붙잡혀 가는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나추의 제자, 이제 원비의 남편이 된 육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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