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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71화 (870/1,000)

1771화. 죽음도 불사하고

그렇게 한참 울리던 굉음이 멎고, 운희가 즉시 손을 뻗었다.

이내 통로 주변 토벽이 합쳐지며 길을 봉쇄했다.

여무쌍이 소리쳤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토벽이 아무리 견고하다 한들, 나방비 몸의 향기가 있는 한 원색은 계속 우리를 따라올 거에요. 지금 당장 나방비를 포기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이에요!”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나방비를 안은 원방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불쌍한 얼굴로 우유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토벽이 무너져 내리고, 흙먼지가 휘날렸다.

그리고 일행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원색이었다.

이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모두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누구도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원색은 이런 상황에서도 일행의 뒤를 쫓아왔다. 그의 반응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유도는 빠르게 법력을 이용해 은아를 깨웠다.

원색 역시 빠르게 사람들을 훑었다. 우선은 원강이 든 삼후도에 시선이 머물렀다가, 다시 그의 큰 덩치를 살폈다.

원색은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흐흐, 마교 성자!”

원색의 눈이 다시 관방의와 원방을 향했다. 다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이 두 사람만 원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방비를 안은 원방을 보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 이 요괴 땡중아, 넌 참 재미있는 놈이구나. 연기가 참으로 출중하다. 감히 내 눈을 속이다니!”

당황한 원방의 얼굴엔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지만, 너무 큰 공포로 인해 모든 것이 다 가려졌다.

“도도!”

마침 은아가 비몽사몽 깨어났다. 우유도는 지금 왕소의 얼굴을 하진 않았지만, 은아는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찰싹!

은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유도가 난데없이 팔을 때렸다. 그것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주 기분 나쁘게 팔을 밀어내기까지 했다.

은아는 너무도 황당하고 어리벙벙한 얼굴을 했다. 이 반응에 우유도는 환장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당장 은아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유도는 왠지 자신이 약해서 반응이 없는 듯해 관방의에게 은아를 맡겼다.

우유도의 의도는 분명했다. 은아의 분노를 사려는 것이었다. 성나찰이 자신들을 알아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해야 했다.

바로 그때, 원색이 유쾌한 얼굴을 하고 느릿한 걸음을 옮겼다.

그를 보는 원강의 두 눈에선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손에든 칼을 한번 크게 휘두르며 고함을 내뱉었다.

“빨리 가!”

원강은 그렇게 원색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일순 제갈지의 두 눈이 번득였다. 그는 지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동요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천하를 군림하는 구성 중 한 사람이었다.

제갈지는 수십 년간 저들을 피해 숨어 지내왔다. 그러나 눈앞의 저 사내는 자신이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거침없이 강자를 향해 달려갔다.

죽음도 불사한 항전, 원강의 모습이 제갈지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여무쌍도 눈을 크게 떴다. 마침 은아의 화를 돋워보려던 관방의도 넋을 잃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원강 앞에, 모두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원숭아!”

우유도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부릅떠졌다.

“가라고?”

원색은 원강을 보며 그저 유쾌하게 웃었다. 다른 이들에게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려 저 홀로 무모하게 뛰어드는 사내라니. 정말 그에게 묻고 싶었다. 진정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원색은 여전히 느긋한 걸음으로 달려드는 원강을 간단히 무시했다. 그의 눈에 이들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다 죽여버릴 수 있는 잔챙이에 불과했다. 발버둥도 그저 헛고생에 지나지 않았다.

더불어, 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내가 정말 그 마교 성자인지 가면을 벗겨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정말 그가 맞다면, 반드시 오상에게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 물어봐야 할 터였다. 분명 한쪽 팔이 잘리고, 여무쌍이 구해 데려가지 않았던가?

“하앗!”

분노한 원강은 저 깊은 폐부에서 마지막 한 줌의 힘까지 모두 끌어모아 사자 후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몹시 신비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흥~”

원강의 움직임에 따라 칼이 춤을 추고, 통로 안엔 벼락같은 호랑이 울음소리가 형형하게 울려퍼졌다. 호랑이 울음, 분명 호랑이 울음소리였다.

원색은 웅혼한 법력이 가득 담긴 소매를 휘둘러 원강의 칼에 대응했다.

“어흥~”

‘……?’

또 그 호랑이 울음이 울렸다. 이번엔 첫 번째 울음만큼 기세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더 심오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꼭 저 하늘 먹구름 속에서 태어난 폭풍 같은 무게감이 있고, 언제든 경천동지할 벼락을 내릴 수 있다는, 경고와 같은 울림이었다.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에, 원색의 눈도 살짝 번득였다. 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강이 휘두르는 칼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원색을 더 놀라게 한 건 원강의 기세가 점점 강해짐에 따라 오히려 칼의 움직임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꼭 거친 물건을 깎아내는 느낌이었다. 처음 깎아내릴 땐 그 투박함에 마찰력이 매우 큰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깎다 보면 처음보다 훨씬 부드럽게 움직이는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원강이 휘두르는 칼은 무려 이중으로 가속하는 능력이 있었다. 칼은 사내의 육신과 조화를 이루며 짧은 찰나 2번이나 추가로 힘을 더할 수 있었다. 참으로 보기 힘든, 기묘한 능력이었다.

그래도 원색은 개의치 않았다.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는 웅혼한 법력과 함께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원색의 칼과 부딪힌 그 순간, 원강은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칼도 잠시 움직임이 느려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정작 원색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원색도 딱딱하게 굳어가는 원강을 보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굳은 육신에선 뭔가 그림자가 벗겨져 분리되는 것 같았고, 그의 칼도 마찬가지였다.

뒤로 밀려나는 것도, 튕겨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 굳어버린 모습에서 갑자기 번쩍이며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뭔가 번쩍인 느낌이었고, 딱딱한 그 몸 안에서 무언가 고치를 깨고 튀어나오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원색은 흠칫했다. 머릿속을 스치는 찰나의 생각도 있었다.

저 사내는 칼을 휘두르며 순식간에 부드러운 다른 경지로 넘어갔다. 그 몸속엔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지속적인 폭발력이 내재해있었다. 사내의 몸엔 3차 가속력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칼의 세기에 따라, 사내의 근골도 편하게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체내 모든 잠재력을 전부 폭발시키며 칼과 진정으로 하나가 된 듯했다.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원색은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칼이고, 칼이 곧 사람이었다. 육신과 검이 하나가 되니 천하에 가르지 못할 것이 있으랴.

분명 원색이 휘두른 웅혼한 법력은 칼끝에 갈라졌고, 그대로 사내의 몸에 부딪혔지만, 꼭 도신을 스친 것처럼 그저 공기만 가르고 지나칠 뿐이었다.

‘……함정이다!’

원색의 머릿속에 찰나의 생각이 스치며, 그야말로 대경실색했다.

원색은 그대로 뛰듯이 물러나 다른 손으로 온 힘을 다해 장력을 쏘았다.

그러나 파죽지세로 나아가던 장력 역시 또다시 갈라졌다. 원색 스스로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조금 전 그 웅혼한 법력이 칼끝에 갈라진 것과 같았다. 갈라진 장력 사이로 틀림없이 뭔가 튀어져 나왔다.

무엇인지 잘 보이진 않지만 매우 빨랐다. 그저 빠르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얼마나 빠른지, 순간 착각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굳어진 육신도, 느려진 칼의 움직임도 원색이 쏜 장력에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졌다. 하지만 이는 그저 원색이 보는 잔영에 지나지 않았다.

빠르게 물러난 원색이 땅을 딛고 섰을 때, 비로소 그의 장력을 가르고 튀어나온 그 빠른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강이었다.

원색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물러났다. 침을 꿀꺽 삼킨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눈앞에 있는 사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원강은 물러나는 원색에게 따라붙지 않았다. 그냥 쏘아져 나가는 몸을 멈추고자 한발로 앞바닥을 찍었다.

쾅!!!

주변의 돌과 모래가 터져나가고, 그렇게 돌진하는 기세를 죽인 원강은 비로소 이 찰나의 시간 동안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원강은 전방을 벤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몸은 앞으로 구부린 채, 양손에 그러쥔 삼후도의 끝은 전방에 살짝 틀어진 지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격한 호흡에 따라 금색 안개가 구름처럼 터져나오길 반복했다.

삼후도를 쥔 양손과 원강의 목엔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칼끝을 노려보고 있는 원강조차 그 단 한칼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목숨을 걸었다. 그야말로 죽음도 꺼리지 않았다. 적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원강은 결코 포기를 하지 않았다. 후퇴를 생각한 적도 없었다. 두려움도, 목숨도 팽개치고 정말 사력을 다해, 단 하나의 집념으로 칼을 휘둘렀다.

“어흥~”

다시 그 호랑이 소리가 느지막하게 들려왔다. 이는 멈춘 칼에서 들리는 듯했지만, 사실은 원강의 등 뒤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아마도 그가 칼을 휘둘렀던 바로 그곳에서 울린 소리인 것 같았다.

지하도 내부는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원색이 휘두른 단 하나의 일격이 온 지하도를 뒤흔들었다.

뒤쪽에 있던 사람들도 원강이 다시 빠르게 2번째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보았다. 가히 산을 부수고 땅을 가를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검 끝이 갈라지며 뒤편 사람들에겐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하도는 그 힘을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지하도가 무너지는 그 틈으로 다들 그 여유롭던 원색이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 이상은 확인할 수 없었다. 추락하는 흙더미가 결국 모든 걸 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 * *

다들 그 찰나를 확인하긴 했지만, 모두 뭔가를 잘못 본 것으로 여겼다.

그 여유롭던 원색이 밀려나? 그 잠깐의 순간에도 지하도는 붕괴했고, 모래와 먼지바람에 뒤덮였다. 원색의 공격력이 너무 강한 탓이었다.

이에 제갈지가 나섰다. 그는 병풍이 아니었다. 나름 오랜 시간 원영기 고수로 지내 온 사람이었다.

제갈지가 팔을 휘둘러 모래바람으로부터 일행을 보호했다. 나머지도 분분히 법력을 일으켜 위로 떨어지는 흙과 바위를 떠받들었으나 앞과 뒤, 모두 순식간에 무너져 길이 끊겨 버렸다. 이대로는 도망도 쉽지 않아 보였다.

“어흥~”

지하도가 무너지는 굉음 속에서도 다시 그 호랑이 울림이 전해져왔다. 굉음에도 묻히지 않는 울음이었다. 오히려 유독 더 선명하게 울렸다. 울음은 잡음의 침범도 허용하지 않는 듯했다.

앞선 두 울음과도 달랐다. 이번엔 별로 크지도 않았다. 뭔가가 깨어나며 내지르는 소리 같았고, 나른한 느낌마저 드는 울음소리였다. 그래도 동시에 고막을 물어뜯는 것 같은 느낌도 전해졌다.

딱 한 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사람의 심신을 다 씹어먹는 듯한 그 소리는 오랫동안 귓가를 떠나지 않고 여운을 남겼다.

소리는 강대한 침투력까지 지닌 듯했다. 거대한 산 곳곳으로 퍼져가며 땅속 깊은 곳까지, 그야말로 온 세상을 깨우고 다녔다.

밖에선 은은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지만, 산속은 마치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듯 난리가 났다. 산중 새들과 날짐승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야수들은 감전이라도 당한 듯 분분히 꼬리를 말고 동굴로 틀어박히거나 사방으로 도망을 다녔고, 벌레들도 둥지를 뛰쳐나와 온 사방에서 꿈틀거렸다.

마치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 된 것 같았다. 산 명계에 있는 마왕이 깨어난 듯, 산에서 살아가는 생명 모두가 몸부림치며 도망 다니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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