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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78화 (877/1,000)

1778화. 숙청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장내는 매우 놀라 잠시 숙연해졌다.

궁임책은 일어나 춘신량, 도쾌 두 태상 장로에게 공손히 밀서를 올렸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다. 그중 다소 불같은 성정의 도쾌가 바로 서신을 가져와 춘신량과 같이 붙어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곧이어 두 사람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시 눈빛을 교환한 이후, 춘신량이 도쾌의 손에서 서신을 빼앗아 궁임책에게 돌려주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은퇴한 사람이니, 이번 일은 장문인과 장로들이 의논해서 결정을 내리시게. 우리 두 사람은 종문의 결정을 따를 것이네.”

“음!”

도쾌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궁임책은 돌려받은 서신을 다른 장로들에게도 건네주었다.

두 태상 장로가 의견을 내지 않았다. 거기에 극도로 엄숙하고 조심스러운 반응까지. 장로들 모두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엄입이 먼저 서신을 받아 뒤로 물러난 뒤, 부군량, 윤이덕, 막영설과 같이 우르르 모여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들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용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

표묘각은 장손미, 목연택, 여무쌍이 각 문파에 심어놓은 여당을 없앨 작정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이들 모두가 표묘각의 밀정이었다는 소리였다.

지금 장손미, 목연택, 여무쌍이 이미 다 무너진 상황에, 왜 그들을 없애려 하는 걸까.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이유였다.

여기에 곽공은 믿을만한 소식통이라며, 저 여당이 여전히 장손미 등의 잔여 세력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육성은 이들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다들 다시 위에 있는 이름을 살펴보았다. 빽빽한 숫자는 거의 100여 명에 달했다. 가장 앞에 있는 건 자금동의 장로, 원안의 이름이었다.

다들 이제야 장문인이 원안을 다른 곳에 보낸 이유를 알았다. 이런 일을 어찌 원안에게 알린단 말인가.

이내 엄입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원 장로가 어찌 표묘각 밀정이란 말입니까?”

궁임책은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게 또 불가능할 것은 무엇인가. 태상 장로 종곡자조차 표묘각의 사람이었다. 그가 반문했다.

“내게 물어보면, 난 누구에게 불어보겠느냐? 맞는지 아닌지, 나중에 원 장로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하지 않을 수도 없겠지.”

다들 마음이 무거워졌다. 원안은 평소 종문 안에서 사람들과 이리저리 경쟁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표묘각의 간자였다니.

하지만 이는 표묘각이 직접 보낸 명단이었다. 가짜일 리는 없었다.

원안이 표묘각 밀정이라……. 사람들은 이제야 간담이 서늘해졌다. 긴장으로 두근대는 심장과 함께 등에는 식은땀도 한줄기 흐르는 듯했다.

지금껏 자금동 종문 고위층이 모여 같이 의논했던 비밀이 얼마였던가. 표묘각은 이미 모든 걸 선명하게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표묘각을 욕하던 일부 말들도 원안이 벌써 다 표묘각에 보고했을 수도 있었다.

막영설이 말했다.

“종문 내부, 그리고 종문 관할 범위 내 문파에 표묘각 이목은 100여 명에 달합니다. 심지어 이건 장손미, 목연택, 여무쌍 세 곳의 밀정일 뿐, 다른 성존 사람들까지 합치면 대체 우릴 어디까지 들여다보고 있단 말입니까?”

궁임책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막 장로, 하면 안 되는 말은 삼가시게.”

막영설은 장문인의 뜻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원안조차 표묘각의 밀정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 중에도 두 번째 인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곧이어 궁임책이 들고 있던 서신을 흔들며 말했다.

“지금 표묘각은 이미 숙청 계획과 명단까지 배부했소. 수많은 사람이 연관돼 있소. 이대로 집행할지 말지, 나 홀로 결정을 내리진 못하겠소. 혹시 여러분에게 무슨 의견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개진해 보시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궁임책은 다시 한번 물었다.

“여러분의 뜻은 집행하지 않는 것이오?”

그때, 부군량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장문인, 이런 일을 어찌 집행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표묘각이 명확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를 태만히 여기는 문파는 엄히 처벌할 것이라고요.”

“다른 사람은 의견이 있으시오?”

이번엔 윤이덕이 머뭇거리며 나섰다.

“여기에 여무쌍의 사람도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여무쌍은 아직 살아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괜히 건드렸다가 혹시 나중에 여무쌍이 우릴 찾아와 행패를 부리면 어찌합니까? 그렇다고 집행하지 않는다면, 표묘각은 절대 우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진퇴양난입니다.”

“어쨌든 일은 닥쳤소. 표묘각에서 기한을 줬으니 결정 내려야 할 것이오. 차라리 이렇게 합시다. 표결합시다. 집행하길 원하는 분은 손을 드시오!”

궁임책이 먼저 손을 들었다. 누구도 성존들 사이의 은원에 끼어들기 싫은 마음이겠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표묘각이 움직이기로 결정 내렸다면 중립이라는 건 허용될 수 없었다.

사실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누구에게 권력이 있고, 누구의 세력이 큰지 저울에 올려보고 힘 있는 쪽으로 붙으면 그만이었다. 팔로는 허벅지를 비틀지 못하는 법, 결국 약자는 강자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궁임책이 손을 들자 엄입이 곧바로 따라 손을 들고, 하나둘 한숨과 함께 손이 올라왔다. 그러나 두 태상 장로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 궁임책이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에 춘신량은 같은 말을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종문의 결정을 따를 것이오.”

궁임책은 고개를 끄덕인 후, 뒤돌아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그럼 그리 결정하겠소. 표묘각의 계획에 따라 명단에 있는 인원들 처리를 하겠소. 혹시라도 정보가 새어 나갈 수 있으니 먼저 원 장로를 잡아들이겠소.”

다들 마음이 무거워졌다. 전에 무슨 은원이 있었든, 어쨌건 원안은 모두와 오랫동안 동문으로 지냈다.

이제 외부인의 한마디로 동문을 죽여야만 했고, 하필 또 원안은 이들의 동문이 아닌, 처음부터 밀정으로 보내진 자였을 수도 있었다.

지금 이들의 심경이 어떠할지는 무슨 말로도 형언할 수 없었다.

이때, 궁임책이 모두의 반응을 확인하곤 경고의 말을 붙였다.

“여러분은 절대 어떠한 정보도 누설하지 않아야 할 것이오. 일단 장손미, 목연택, 여무쌍의 여당이 도망치고 표묘각이 우리에게 그 죄를 묻는다면 우리 자금동은 절대 그 여파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 * *

종문을 떠나 전장으로 향한 원안은 자금동을 대표해 재무적인 사무를 처리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막 종문에 돌아왔을 때 한 제자가 말을 전했다. 두 태상 장로가 기다리고 있으니, 뒷산에 있는 태상 장로의 거처로 향하라는 것이었다.

원안은 당연히 지체하지 않고 즉시 움직였다.

곧이어 원안이 두 태상 장로와 마주했을 때, 두 사람은 그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며 가까이 다가오라고 이야기했다.

원안은 또 당연히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극비 사항이라 여기곤 가까이 걸음 했다. 그렇게 원안은 어떠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두 사람에게 붙잡혔다.

“어찌……!”

원안이 깜짝 놀라 소리치는 순간, 도쾌가 급히 입을 막았다.

잠시 후, 궁임책과 몇몇 장로들이 문밖에서 줄줄이 들어와 원안 앞에 섰다. 원안은 잠시 발버둥 쳤지만, 결국 현실을 깨닫고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장문인,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궁임책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원 사제,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네. 다만 이제 우리는 자네에게 한가지 확인해야 하는 일이 있어.”

원안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무슨 일입니까?”

“자네, 혹시 자금동의 장로라는 신분 외에 혹시 다른 신분이 있는가?”

원안은 깜짝 놀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들도 빠르게 살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지만, 죽어도 인정할 수 없었다.

“장문인,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신분이 무슨 말입니까?”

궁임책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를 들면 표묘각의 밀정 같은 것이랄까.”

원안이 크게 분노했다.

“그 무슨 헛소리입니까!”

“설마 표묘각 각주가 헛소리했단 말인가?”

원안이 다시 소리쳤다.

“황당합니다!”

원안은 표묘각 각주가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는 걸 전혀 믿지 않았다.

이에 궁임책은 도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쾌는 즉각 원안을 풀어주었다. 원안이 소란을 피울까 걱정은 전혀 필요 없었다. 이미 그의 몸은 금제가 되어 법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자네가 직접 확인해 보게.”

궁임책이 표묘각에서 온 밀서를 건넸다. 원안은 밀서를 받아들고 빠르게 내용을 살펴보았다. 모든 걸 읽은 그의 얼굴이 아주 볼만해졌다. 낙담으로 뒤덮인 얼굴엔 결국 참담한 미소만 살아남았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표묘각에서 자신의 신분을 누설할 리는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본인 역시 구성 사이 힘겨루기의 희생자일 뿐이었다.

설령 종문에서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안다고 한들 어쩌지 못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종문에서 표묘각 사람을 죽일 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미처 생각지도 못한 표묘각에서 자신에게 주살령(诛杀令)을 내렸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처음부터 원안이 사실을 인정했다고 해도, 종문은 표묘각 명령을 따랐을 것이었다. 원안을 죽이라는 그 명령을.

궁임책은 다시 서신을 뺏어 들고 크게 호통쳤다.

“원 사제, 억울하진 않겠지?”

갑자기 불어닥친 액운이었다. 한순간에 기세가 쪼그라든 원안은 그저 참담한 미소만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난 단 한 번도 종문을 배신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과거 종문 사형제와 집행자의 자리를 가지고 경쟁할 당시, 표묘각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띄었는데 내가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것도 제가 자초한 것이겠지요. 당시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다면, 쉽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표묘각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았겠지요.

사실 나도 때때로 남몰래 후회했습니다. 그 집행자 자리를 탐내지 말 걸 그랬다고. 하지만 이미 잘못 들어선 길, 돌아갈 방법은 없었습니다.”

원안의 인정은 표묘각이 제공한 명단의 신빙성에 확실한 마침표를 찍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들 침묵하거나 탄식하기 바빴다.

그때, 궁임책이 갑자기 물었다.

“목연택, 장손미, 여무쌍 중에 자네는 어느 쪽 사람인가?”

원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어느 쪽 사람인지 제가 어찌 압니까. 전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제가 표묘각에 가입했다는 것만 알지요. 그들은 제가 누구의 사람인지 알려준 적이 없습니다. 어쨌든 표묘각의 사람 아닙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저는 그들 중에 파벌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저도 제가 보내는 소식이 평소에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장문인, 저는 정말 후회합니다. 그러니 지금 와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어느 쪽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네. 표묘각이 얽힌 일이다 보니 우리도 더는 묻지 않는 것이 좋겠지. 다만 자네의 억울함이 없도록 확인하려는 것이었네. 자네도 서신을 봤겠지. 표묘각은 자네의 수급을 원하네. 종문은 선택의 여지가 없네. 우릴 원망하지 마시게.”

원안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폭로된 사실입니다. 설사 저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더는 종문의 제자들을 볼 낯이 없습니다.”

이내 궁임책은 포권으로 간청했다.

“두 분 태상께서 사제를 처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선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일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안을 이곳 뒷산 태상 장로의 거처로 부른 진짜 이유였다. 태상 장로 둘도 고개를 끄덕이자, 궁임책은 곧바로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떠나 장로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명단의 인물들을 처리하기로 하고, 일단 종문 내부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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