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9화. 소식
그날 당일, 궁임책은 종문 내부 표묘각 모든 이목을 일망타진했다. 아주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일이었고, 어떠한 소란도 없었다. 사실 정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일을 벌이기 전 어떠한 징조도 없었다.
나머지 표묘각 이목 역시 원안처럼 상부에서 아무 변명거리나 만들어 처리했고, 추후 사람이 보이지 않거든 심부름을 보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표묘각이 기한을 주었으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종문 핵심 구역을 처리한 장로들은 각지 세력으로 가, 자신들과 관련된 곳부터 행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이 시각, 천하 각 대 문파에서도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표묘각의 이목을 목표로 움직이는 비밀스러운 행동이었다. 당연히 아무런 주의도 끌지 않고 어떠한 소란도 일지 않았다.
행동 규모가 매우 방대하다고 하나, 다들 입을 딱 다물고 행동하고 있었다. 자금동 제자 대다수도 본문 내부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고, 수행계에는 더더욱 그 어떠한 소문도 없었다.
* * *
남주부성 내부.
이곳에도 폐허를 수습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이었다.
한차례 풍파가 지나고, 상부가 그 일을 추궁하지도 않으니 아래 사람들도 조금씩 돈으로 지난 손실을 무마하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아픔이 돈으로 치유될 순 없겠으나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한 위로금도 앞으로의 생활에 보탬이 될 터였다.
상조종은 조심스럽게 천하 전장에 연락을 취해 혹시라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어쨌든 이는 나추와 원색이 저지른 참사가 아니던가.
하지만 천하 전장은 나추와 원색이 범인임을 부정했다. 상조종은 그렇게 한참 설교를 들은 후에야 깨달았다. 천하 전장엔 그만한 돈이 없었다. 그러니 성존이 인간계에서 이런 행패를 부렸다는 걸 부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조종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 * *
작은 지하 밀실.
관방의는 막 들어와 여무쌍과 대화를 나누는 우유도를 보았다. 관방의는 바로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이야기했다.
“도야, 자금동 장로 엄입이 밤낮없이 달려 찾아왔어. 지금은 유선종을 포함한 세 문파 장문인들과 밀회를 나누고 있어. 아마도 표묘각 이목 처리에 계획을 세우는 중인 것 같아.”
우유도가 유쾌하게 웃었다.
“엄입 그 늙은이, 정말 명줄 한번 질기군. 결국 살아서 성경을 벗어날 줄이야. 그러고 보니 그것도 다 우리가 도와준 거네.”
관방의도 낄낄거렸다.
“사람도 도야가 집어넣은 거잖아?”
반면, 여무쌍은 당부를 했다.
“표묘각 이목 처리는 너무 많은 사람이 연관된 일이에요. 아마 예상치 못하게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고기가 있을 거예요.”
그러나 우유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게 중요합니까? 정말 중요한 건 표묘각이 각 세력에 숨겨놓은 이목이 다 폭로됐다는 겁니다. 이미 다 쓸모없어졌습니다. 이게 뭘 의미할까요.”
우유도는 느리게 몸을 일으켜 천하의 지도 앞으로 다가갔다.
“구성, 장손미, 목연택의 세력은 와해 됐습니다. 제수씨와 원색의 세력은 그들에게서 벗어났지요. 심지어 우리가 이용할 수 있습니다. 표묘각도 눈과 귀를 잃었지요. 더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봤자 칼받이 정도랄까.
남은 오성의 실력은 다 늙은 호랑이와 다름없습니다. 구성 중 사성이 사라지고 표묘각이 망가졌습니다. 세력은 이미 크게 깎였습니다. 이제 앞으론 정말 오성 개인의 위력에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는 구성 때문에 오랫동안 신음했습니다. 이제 더는 오성 휘하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일이 끝나면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오성 개인이 될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대세는 철저히 뒤집혔습니다. 저들이 천하 사람들이 타는 모든 날짐승을 금지했지요. 우리 이번에 곽공의 손에서 날짐승을 좀 구해보지요. 날짐승을 타고 다니더라도 오성과 딱 마주치지만 않으면 그만입니다. 저들이 날 어쩌겠습니까?”
우유도는 다시 여유롭게 뒤돌아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그는 모처럼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실제로 이처럼 기분이 좋은 건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여무쌍과 관방의도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원색은 죽었고, 우유도는 그 기회를 붙잡았다. 상황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뒤집혀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관방의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오성이 이목을 숨길 때 설마 딱 표묘각만 시켰을까? 저들이 사적으로 표묘각이 모르는 이목을 운용하고 있진 않을까?”
답은 여무쌍이 대신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구성이 서로 견제했고, 서로를 해치려 온갖 궁리를 다 했어요. 인간계엔 그리 많은 정력과 인력을 투자하지 못하고 모두 표묘각에 처리를 맡겼지요.
인간계는 그들이 경쟁하던 곳이 아니었어요. 그들이 막 세력을 일으켰을 때는 그러했지요. 어쨌든 그들도 다 인간계에서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모든 구성은 그저 상대 진영에 본인 이목을 심을 생각만 했어요.”
관방의는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또 물었다.
“도야, 그러고 보니 공손포는 어쩌지?”
이번에도 여무쌍이 말했다.
“그는 명단에 없어요.”
관방의는 깜짝 놀랐다.
“명단에 없다니요? 설마 아직도 표묘각에 등록이 안 된 건가요?”
“제가 곽공에게 일단 이곳을 포함한 각국 일부 지역에 숨어있는 자들의 명단을 폭로하지 말고 여기로 보고하게 했어요. 아마도 그건 공손포를 위해서겠지요. 사실 다른 곳은 이곳을 숨기기 위한 것일 뿐이에요.”
여무쌍은 우유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관방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로 그녀의 질문이 이어졌다.
“도야, 설마 그를 살려주려는 거야?”
“과거 그는 오량산을 이끌고 나한테 의탁했어. 또 초려산장의 정보망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흘렸으니 큰 공을 세웠지. 내가 만약 그에게 초려산장 중추 정보를 관리하게 하지 않았다면, 표묘각 눈에 띄지도 않았을 거야. 그에게 선택권이 없는 일들도 있었지……. 그러니 마지막 기회를 줄 거야. 앞으로 어디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자고.”
관방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무쌍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곽공에게 각국 일부 지역을 눈속임으로 그려준 건 맞지만, 곽공은 혹시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도 있었다. 과연 단 한 명의 배신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전엔 나방비를 구하려 모험했고, 하마터면 몰살당할 뻔한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건 전혀 반면교사가 되지 못한 채 또 똑같은 짓이 반복됐다.
여무쌍은 가끔 우유도의 마음이 너무 여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큰일을 할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
결국 여무쌍이 사람을 제대로 본 것이었다.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우유도는 어느 부분에서 원강과 똑 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여무쌍은 우유도 같은 사람을 따른다는 것에 점점 마음이 놓였다. 여태 같이 지낸 기간이 확신을 주고 있었다.
물론 원강과 대거리하고 있지만, 여무쌍이 보기엔 우유도는 결코 제 사람을 토사구팽할 심성이 못됐다. 그를 믿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여무쌍은 제것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나누며 우유도의 일을 기꺼이 돕기 시작했다.
* * *
연경, 대사공부 내택 정방.
부인과 긴 대화를 나눈 끝에, 고견성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담할 수 있겠소?”
부인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제가 장담하면 믿을 수 있으신가요?”
고견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일어나 복잡한 얼굴로 떠났다.
부인은 여전히 그곳에 앉아 침울한 얼굴로 고개 숙일 따름이었다.
이내 고견성은 마당에서 기다리던 집사 범전을 스치며 서재로 향했다.
범전은 고견성의 명령을 듣지 않고 손짓했다. 그러자 양쪽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고, 범전은 그들과 같이 정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 * *
서대 서탁에 앉아 있던 고견성은 겉보기엔 그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마음속엔 거친 풍랑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소요궁 사람이 비밀리에 그를 찾아와 부인이 표묘각 사람이라 전했다. 동시에 표묘각 명령에 따라 그녀를 처리하라는 뜻을 밝혔다.
사실 그는 우유도를 통해 진작부터 부인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줄곧 건들진 못했었지만, 이번엔 아예 그 신분이 폭로되어 처리할 명분을 얻었다.
하지만 후처라고 해도 오래도록 부부로 지내온 이에게 어찌 감정이 없겠는가. 그래서 그는 왜 자신을 배신했는지 알고 싶었다.
결국 부인은 진실을 토로했다. 처음부터 고견성의 부인이 된 그 자체가 표묘각의 안배였다. 또 확신할 수 없지만, 고견성의 원래 부인은 아마 표묘각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 전했다. 그 목적은 너무나 분명했다.
어쨌든 오랫동안 부부로 지낸 가족이었다. 고견성은 그녀를 살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방금 나눈 대화처럼, 고견성이 그녀의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그녀가 살아있는 한, 그 신분으로 인한 모든 걸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남은 방법이라곤 철저히 어디로 숨어드는 것뿐이었다.
표묘각은 죽음으로 증명을 요구했고, 고견성은 그렇게 대화를 마쳤다.
한참이 지나 범전이 들어와 조용히 보고했다.
“부인께서 목매어 자진하셨습니다.”
고견성은 두 눈을 감았다.
물러가라는 짧은 손짓에, 범전도 조용히 밖으로 떠났다.
* * *
천도봉 표묘각.
악광명이 곽공의 거처로 들어와 조용히 보고했다.
“선생님, 각 세력의 밀정들에게 들어오는 소식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미 표묘각 내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창가에 서 있던 곽공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떠나야겠구나. 더 머물다가는 정말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떠나고 우리 쪽 사람들에게 연락해 숨어들게 해라. 아직 성경 쪽에 소식을 보낼 시간은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악광명이 바로 움직였다.
그렇게 표묘각 각주와 그의 우사 악광명이 갑자기 사라졌다. 표묘각 내부 원색 사람들도 모두 분분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중엔 다른 세력의 밀정도 있었지만, 그들이 소식을 보내온 건, 이미 때늦은 뒤였다.
곧 대원성지도 곽공의 소식을 받았다. 원색이 실종됐고, 오성은 대원성지를 치려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렇게 대원성지는 한순간 텅텅 비어버렸다.
책임자가 없어졌다. 수많은 직위의 책임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표묘각 내부는 혼돈에 빠졌으나 다행히 내부에 아직 각 세력의 머리급 인물들이 있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표묘각에선 사람을 보내 각 세력 밀정들에게 왜 소식이 끊겼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그들은 아직도 밀정들의 향방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과연 여무쌍의 말대로였다. 얽힌 자가 너무 많다 보니, 결국은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물고기가 있었고, 누군가는 우연히 재난을 피해갔다. 혹은 사전에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고 미리 도망친 자도 있었다.
그렇게 도망친 자들의 전서를 전해 받은 표묘각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들은 끝내 냉정을 잃고, 즉시 각 문파를 찾아가 실종된 표묘각 인원의 행방을 물었다.
그 질문에 각 문파는 당연히 표묘각 각주 곽공의 명령을 보여주었다. 표묘각도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했다. 다시 각 문파에 즉각 소탕을 멈추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도망친 자들의 보고가 다시 표묘각에 닿고, 표묘각은 재차 시간을 들여 상황 파악 후, 각 문파 소식을 확인해 행동을 멈췄다.
하지만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당연히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후였다. 모든 일이 다 끝난 상황이었다. 그저 잡아 놓고 미처 죽이지 못한 몇 명만 살려냈을 뿐이었다.
결국 이랬다저랬다 하는 표묘각 태도에 관련 문파들의 인심만 흉흉해졌고, 내막을 아는 자들은 모른척하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