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화. 천하를 뒤엎고 질서를 재편하라
천도봉 표묘각.
오상, 설파파, 남도림, 나추, 독무허 다섯이 모여 있었다. 다들 서거나 앉고, 밖을 본다거나, 모두를 등졌다거나, 무표정 혹은, 굳은 표정이었다.
다들 숨기고 각국에 자리를 잡기로 했으나 큰일이 생기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분분히 얼굴을 드러낸 것이었다.
각지의 이목이 모두 쓸려나갔다. 더는 믿을만한 소식통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 무슨 자리를 잡겠는가. 뭐, 홀로 숨어 유랑이라도 즐기나?
표묘각은 이미 각 문파로부터 숙청자 명단과 행동 결과도 전달받았다. 자금동 세력권에서 숙청된 이목만 수백에 달했다. 각국의 크고 작은 세력, 해외, 속세 중요지점에 있는 인원까지 합하면 근 2만에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
명단은 처참했다. 일부 운이 좋아 용케 그물망을 빠져나간 이들을 제외하면, 온 천하에 분포된 표묘각 이목이 단 한방에 모조리 소멸한 것이었다.
심각한 손실이었다. 이들 이목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들어가는 자금만 해도 채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중요한 건 단순히 금전으로 평할 수 없는 손실이었다. 한 명, 한 명 모두가 엄선한 인물로 모든 시간과 힘을 다 쏟아부은 인물들이었다. 그저 단순히 아무 사람이나 데려다 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진작 들통나 다들 그를 피하고 방비하지 않겠는가. 그런 밀정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한마디로, 이는 구성이 수백 년간 끊임없이 경영하고 발전시켜온 업적이었다. 치명적이었다. 잃어버린 건 천하 각 세력에 대한 통제권이었다. 이제 구성은 천하 각 세력을 통제할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과 같았다. 특히 지금처럼 불손한 자들이 활개 치는 이런 시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원색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이지?”
독무허가 말했다.
그는 대원성지에서 벌어진 일이란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런 행동이 대체 그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 건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표묘각은 각 세력이 돌아가며 각주를 맡는 방식을 택했다. 어느 세력이 표묘각을 맡던 자신들의 기반이 되는 이익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설파파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색에게 연락이 끊겼지. 원래부터 아주 수상쩍었어. 인제 보니 원색은 2번째 여무쌍이 됐군. 분명 무슨 문제가 생겼어.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기반을 훼손하지 않았을 거야.”
시선은 단번에 나추에게 쏠렸다.
먼저, 남도림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추, 어디 한번 말해 봐. 대체 원색을 어찌한 것인가?”
나추는 싸늘한 눈으로 모두를 한번 훑어보았다.
“말했지만 내가 뭘 한 게 없다. 그놈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지.”
다들 반신반의했다. 확실히 원색을 어쩌지는 못했을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원색이 나추와 손속을 겨룬 후 실종되었다는 것이었다. 정보에 따르면, 원색은 나추를 뒤쫓아 간 그 직후로 소식이 끊겼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나추가 인정하지 않으면 나머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튼 현재로선 그 누구에게도 아무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추는 다들 자신만 노려보는 게 못마땅했는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지금 날 그리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지 마라. 너희는 지금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정녕 모르겠느냐?”
나추는 원색에게서 딸을 되찾은 후 나방비를 숨겨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들이 강제로 나방비를 추궁해 원색이 그녀를 납치한 이유를 캐물으려 할 수도 있었다. 이젠 변명거리도 넘치는 상황이었다.
이내 서로의 시선이 바쁘게 부딪혔다. 하긴, 원색은 자신의 기반을 훼손했고 일은 이미 벌어졌다. 원색을 추궁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었다. 확실히 지금 눈앞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남도림이 말했다.
“각 문파에서 취합한 정보를 보면 장손미 등의 여당을 붙잡기 위한 일이라고 알았다더군. 지금 상황에서는 반드시 흔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잡아야지. 그러니 이대로 그냥 그랬던 것이라고 하는 건 어떤가.”
오상이 싸늘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냥 그랬던 거로 하자고? 계속 속일 수 있을까? 이번 일을 계획한 자들의 의도는 너무 명확하지.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을 폭로할 거다.”
“그럼 어쩌잔 말인가? 되든 안 되든 시도는 해봐야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앉아만 있자는 말인가?”
그때, 흑석이 빠르게 들어와 오상에게 보고했다.
“성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밖에 떠도는 소문이, 그…….”
그는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모두의 눈치만 보았다.
“못 할 말이면 하지 말고, 해도 되는 말이면 거리낄 것 없다.”
흑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포권했다.
“알겠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육성 사이에 내분이 일었고 그 싸움에서 패한 원색이 분노한 나머지 표묘각을 책임지는 곽공에게 명령을 내렸다 합니다. 각 세력에 숨겨진 표묘각의 이목을 모두 폭로시켰답니다. 그로 인해 천하에 퍼진 표묘각 모든 이목이 죄다 쓸려나갔다고 합니다!”
남도림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즉시 각지에 성명을 발표해 헛소문이라고 여론을 바로잡아야 한다!”
흑석이 잠시 또 머뭇거리다 답했다.
“곽공이 적성성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그 소문이 사실임을 인정했습니다. 그 때문에 큰 소란이 있었습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천하의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될 것입니다.”
순간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오성은 어이가 없어졌다. 누군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얼굴엔 형형한 살기가 떠올랐다.
이내 독무허가 말했다.
“하나는 성나찰을 돕고, 하나는 표묘각을 부숴버렸군. 인제 보니 원색은 정말 여무쌍과 결탁한 것이 틀림없다.”
오상의 손짓에, 흑석은 포권으로 예를 갖추고 물러갔다.
대전은 긴 침묵에 잠겼다. 이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오상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통제를 잃었다!”
모두가 이를 절감했다. 오성은 이제 천하 각지 세력을 통제할 수 없었다.
수많은 일은 순전히 표묘각의 힘만으로는 어려웠다. 천하의 힘을 모아야만 진정한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누군가 대놓고 오성에 대항하고 있었다. 정말 너 죽고 나 살자 하는 지경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이대로 각 문파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면, 천하 각 문파의 힘을 이용해 불손한 자를 추적하지 못하면……. 상상도 하기 싫은 결과가 도래할 것이다.
오성이 명령을 내려도 각 문파는 겉으론 따르는 척할 뿐, 혹여 뭔가 발견한다고 해도 각 세력 자체에서 보고를 생략할 수도 있었다.
과연 그 누가 또다시 표묘각에게 통제받고 싶을까. 간단한 이치였다. 그들은 그 누군가가 계속 오성과 싸워나가기를 바랄 테고, 양쪽 모두에게 원한을 사려는 행동도 하지 않을 터였다.
순간 갑자기 독무허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를 죽일 것이다. 어디 죽음이 두렵지 않은 놈이 얼마나 많은지 두고 보겠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현장에 있는 모두는 이 뜻을 알아차렸다.
설파파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만약 배후에 있는 이가 수작을 부리지 않으면 일벌백계로 효과가 있겠지. 하지만 분명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많은 문파에 문제가 생길 것이야. 그걸 다 어찌 죽이려고? 다 죽일 수는 있고? 아니면 천하의 온 문파를 모두 쓸어 버리기라도 할 생각인가?
정말 그런다면 아마 각 세력은 우리와 목숨 걸고 싸우려 하겠지. 그럼 우리 다섯이 몇이나 죽일 수 있지? 우리가 나타나면 저들은 모두 도망칠 텐데, 우리 아래 겨우 몇으로? 우리 사람이 저들만큼 많나?
일단 천하의 힘이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반항하게 되면, 사방이 적들의 이목이 될 테고 우리 사람들은 숨을 곳도 없어질 거야. 그때가 되면 누가 누굴 죽이게 될지 알 수는 있겠나? 잊지 말아. 배후에서 수작을 부리는 사람은 절대 이대로 끝내지 않을 거야!”
마지막 말은 당부였다.
이어, 나추가 담담히 말했다.
“천하의 일을 거칠게만 처리하는 건 좋은 방법이라 볼 수 없지. 다른 계책을 고민해보지!”
이번 일을 통해, 기본적으로 천하 각지 세력의 힘이 같이 움직였을 때의 힘을 깨닫게 됐다. 천하 사방에 분포된 사람만 2만에 가까웠다. 외부인이 처리하고 싶다고 처리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러나 천하 각 문파의 세력이 손을 쓰자, 그 이목들이 아주 깨끗하게 쓸려나갔다.
이번 일로 인해 밝혀진 사실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경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전에는 저 수행계 문파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건만, 이제는 그릇이 깨질까 봐 쥐새끼를 때려잡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갑자기 오상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불파불립(不破不立)이라는 말이 있지. 이젠 천하를 뒤엎고 질서를 다시 재편하는 것이 좋겠군!”
다들 또 오상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중 설파파가 웃으며 물어보았다.
“소마두, 혹시 무슨 고견이 있는 건가?”
오상은 모두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내가 제국에 있는 동안 삼국의 전투를 꽤 많이 접했지. 덕분에 진국 병력이 한창 절정이라는 것과 제국과 후진군은 결국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았어. 진국은 곧 서삼국을 집어삼킬 것이다. 만약 서삼국을 집어삼킨 진국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전하를 평정할 능력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지.”
“기운종을 통제하기만 하면!”
“기운종을 통제하기만 하면, 진국을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진국을 도와 천하를 집어삼키는 거군!”
“요괴 할망구의 말이 맞다. 천하 각 문파들에게 거칠게 나가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지.”
“그럼 이 전쟁을 확대하고, 진국이 모두를 쓸어 버리게 해야겠군.”
“어차피 천하 각 문파가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야. 일단 이렇게 배후에서 수작을 부리는 자가 천하 각 문파의 힘을 움직여 우리한테 대항하게 하려 한다고 치자. 그럼 우린 더 넓은 영역에서 손을 쓰는 것도 좋겠지.
확실히 지금 각 문파를 벼랑 끝으로 모는 건 좋지 않아. 아니지?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걸 넘어, 그들을 다독여야 한다. 일단 눈앞의 잘못은 그냥 넘어가지. 우리가 저들을 건들지만 않으면, 배후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저들을 충동질해도 누구도 나서서 우릴 공개적으로 적대하지 않을 거야.”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모두가 그의 말을 이해했다.
이쪽에서는 굳이 천하 각 세력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진국이 제국과 위국을 집어삼키는 방식으로 천하를 얻게 한다면, 진국이 천하를 집어삼키는 기세에 편승해 각 문파를 공격하며 관리할 수 있을 터였다.
그 후에 다시 그들을 이익으로 서로 묶고, 또 진국의 뒤에서 천하 일통과 발걸음을 같이 하게 한다면, 천하 문파들을 같이 정돈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이는 각 문파의 힘을 줄이는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불파불립, 천하를 뒤엎어 질서를 다시 세운다……. 소마두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군!”
설파파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흡족한 얼굴이었다.
나머지 사람들 역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