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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88화 (887/1,000)

1788화. 누님

남주 밀실 내부.

여무쌍은 안으로 들자마자 성경 지도 앞에 선 우유도를 보았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여무쌍은 이내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나요?”

우유도는 여무쌍을 등진 채 한숨을 내쉬었다.

“곤림수에 대한 은희의 판단이 틀리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성경 출입구 검사가 이토록 삼엄하지 않았다면 직접 현장에 가 확인했을 텐데요.”

“도야가 간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그처럼 배치했을 때 설파파가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요괴 할멈을 너무 무시하는군요. 목표의 대략적인 위치를 들었고, 사전에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으니, 그녀가 만약 움직일 생각만 있다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

* * *

성경 입구.

한 사내가 피풍의를 뒤집어쓰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명령을 받은 빙설성지 인원은 적극적으로 그를 막아 검사를 했다.

곧이어 사내가 피풍의 아래 가린 얼굴을 살짝 들어 올렸다.

오상이었다.

문지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나 공손히 길을 비켜주었다.

오상은 성큼성큼 그릇을 뒤집어 놓은 듯한 파동 안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빛의 파동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오상은 그대로 날아올라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 * *

부근 산 정상, 운무에 반쯤 잠긴 거대한 나무 아래.

설파파는 이곳에서 오상이 떠난 방향을 직접 확인했고, 곧바로 백무애가 날아와 다급히 보고했다.

“맞습니다. 오상입니다.”

설파파는 오상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냉소 지었다.

“과연 황택사지 방향으로 향하는군. 넌 먼저 돌아가 있거라.”

설파파가 오상의 향방을 뒤쫓고, 백무애는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흘낏 보고는 빠르게 그곳을 떠나갔다.

하늘에서 설파파는 모든 법력을 동원해 가장 빠른 속도로 오상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한참 지나 전방에서 날아가는 인영을 발견하고, 바로 비행고도를 낮췄다. 설파파는 이제 주위 지형지물의 힘을 빌려 거의 지면에 붙다시피 몸을 숨기곤 하늘의 오상을 계속 뒤쫓았다.

* * *

황택사지.

도착한 오상은 공중에 서서 주위를 한번 관찰한 뒤, 한 산봉우리에 내려섰다. 이곳이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

이내 오상은 피풍의를 살짝 젖혔다. 바람에 휘날리는 장발과 함께 그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고,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눈빛도 번쩍였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잠시, 눈앞의 늪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한사람이 나타났다. 태양을 머금은 옷으로 인해 빛에 휘감긴, 눈부신 은희였다.

은희는 곧 늪지 옆 풀숲으로 날아가 치맛자락을 휘날렸다. 그녀는 산봉우리를 고요히 응시했고, 산봉우리 위의 오상도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시선만 오가던 끝에, 오상이 몸을 날려 풀숲에 내려섰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겨우 2장(丈)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둘은 다시 또 상대만 빤히 응시했다. 냉막한 얼굴에 떠오른 오상의 복잡한 심경마저 읽힐 지경이었다. 결국 은희가 먼저 침묵을 깼다.

“오상.”

음성은 참 은근하고 듣기 좋았다. 사람이 가진 품격도 변함이 없었다. 그로 인해 담담했던 오상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누님.”

“오랜만이야.”

오상의 미소도 참 보기 좋았다. 아주 멋있고, 근사했다.

“누님이 살아 있을 줄 몰랐습니다. 아주 기쁩니다.”

“그럴 리가, 저번에 불렀을 때 넌 오지 않았잖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살아있다면 어째서 지금껏 나타나지 않다가 지금에야 나타났겠습니까? 더군다나 그때는 다른 문제도 있어 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탓하지 마세요. 이번엔 마침 아무 일도 없어서, 이리 허실을 가리고자 오지 않았습니까? 정말일 줄은 몰랐군요.”

“나도 너한테 뭐라고 할 자격은 없지.”

“당시 누님이 죽었다는 이야기에, 나추와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흔적을 보고 누님이 나추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했지요. 누님의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미치지 않아 지금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너는 나를 이용했어. 하지만 나중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나추와 손을 잡았고, 그 후로 오랫동안 나를 지켜줬지. 넌 내게 빚진 것이 없어.”

오상은 손을 들어 왼쪽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이용한 것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누님은 아마 평생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한 사내가 제일로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야 하는 그 심정을요. 그 상처가 새겨진 이 심장은 단 한 번도 치유된 적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저를 아프게 하고 있지요. 제가 망치와 정을 들고 내려칠 때마다 파내는 것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누님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전에는 그런 헛소리는 하지 않았었는데.”

“헛소리가 아닙니다. 누님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또 감사를 표하고 싶은 것이고요. 누님이 보기에 전 누님을 이용한 것일 겁니다. 하지만 제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추가 절 찾아왔고, 전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만약 굴복하지 않았다면 전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테고, 누님도 말려들었을 겁니다.

제 눈에도 보였습니다. 나추는 정말로 누님을 좋아했습니다. 비록 제가 승복하지 못한다 해도, 누님이 나추와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누님에게 줄 수 있는 걸, 전 줄 수 없었습니다.

누님, 제가 누님과 나추가 밤낮으로 함께 있는 걸 무슨 심정으로 지켜봤는지 모르시지요. 어쩌면 제가 일찍부터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줄곧 누님을 이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요. 본디 세상의 많은 일이 진실과는 달리 알려지기 마련이지요.

전 단지 누님에게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누님을 잃어버린 후, 강한 권력에 굴복했던 그 치욕이 있었기에 전 모든 걸 걸고 전진할 수 있는 결심을 세웠습니다. 누님을 잃어버린 후, 전 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지요.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누님이 저를 도와주신 겁니다.”

“그래서. 헛소리 다 끝났어?”

은희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오상은 이내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려버렸다.

“살아 있으면 됐습니다. 누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당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어째서 지금까지 숨어 계셨다가 나타나신 겁니까?”

“당시 나는 하마터면 나추의 손에 죽을 뻔했어. 그때 중상을 입고, 최근에서야 회복할 수 있었고.”

오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누님을 향한 나추의 감정이 거짓일 리 없습니다. 그가 어째서 누님을 해친단 말입니까?”

은희가 담담히 말했다.

“내가 호족 족장이기 때문이지. 그걸 그가 알아버렸어.”

흠칫한 오상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또박또박 다시금 물었다.

“누님이 호족 족장이란 말입니까?”

은희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입술을 모았다.

“우우~”

가벼운 울음소리는 관통력이 있었고, 꼭 노래를 부르는 듯 맑디맑았다.

은희를 빤히 보던 오상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 주위 늪지가 넘실거리기 시작하더니 안에서 수많은 요호가 기어 나왔다. 얼핏 봐도 수천 마리는 돼 보였다.

다들 오상을 보며 꼬리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모습은 꼭 풀숲에 있는 두 사람을 중앙으로 포위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은희가 울음을 멈추자 요호들은 다시 늪지로 뛰어들었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모두 사라졌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광경에 오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은희를 보는 눈빛이 매우 굳은 듯했다.

“누님은 요호족인가요?”

은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와 나추가 좋아한 사람이 요호라고요?”

“너희들의 눈에 인간이 우리 요호족보다 더 고등한가?”

“누님이……. 호족이면 어찌 나추와의 사이에 딸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은희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곧 양 소매를 가볍게 떨쳐냈다. 몸에선 일순간 요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줄곧 요호족의 수법으로 억눌렀던 요기가 천천히 뿜어져 나온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는 억제하지 않은 것이었다.

오상은 더욱 심하게 굳은 채 한참동안 은희만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를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협력해보자고. 난 네가 줄곧 천하를 제패할 야심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널 도와줄게. 우리가 나머지 성존을 죽이는 거야. 단, 조건이 있어. 인간들과 수행자들 모두 호선경에서 나가는 거. 이 호선경은 사실 우리 요호족 영지니 당연히 우리에게 돌려줘야지. 과거 내가 인간계로 향했던 것도 협력 상대를 찾기 위해서였어.”

“날 어찌 도울 겁니까? 설마 여기저기 숨어있는 저 요호로요?”

“우리 요호족의 능력을 보여줄 거야.”

오상은 눈을 번득이다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천하를 제패하고 유일한 패왕이 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건가?”

“만약 이 호선경을 요호족에게 돌려준다면, 천하의 한 곳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데 그걸 어찌 천하 제패라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조건이지?”

“제 여인이 돼주십시오.”

은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곧 분노를 토해냈다.

“내가 요호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헛소리를 내뱉다니!”

“요호족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지요. 중요한 건 제가 잃어버린 것은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상의 패기는 꺾이지 않았다.

은희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다.

“오상, 나는 물건이 아니다! 나는 네 것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호선경은 요호족에게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호족의 왕은 반드시 제 여인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누가 천하 제패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오상, 넌 참으로 광오하구나.”

오상의 눈빛이 좀 냉담해졌다.

“광오? 원색이 어째서 나추의 딸을 붙잡았는지 알 것 같군요. 원색은 성경에 한 번 들리자마자 바로 돌아가 나추의 딸을 붙잡았습니다. 날 만나기 전 누님은 원색을 만났고요. 원색은 당연히 누님의 신분을 알았을 테고, 그 길로 누님의 딸을 붙잡았습니다……. 누님,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오상은 돌연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더니, 천둥 같은 호통을 쳤다.

“누구기에 숨어서 우릴 지켜보느냐!”

공중에 운무가 날아왔다. 아무것도 아닌 운무였다. 하지만 운무는 두 사람을 향해 날아오더니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운무는 바람에도 흩어지지 않았다. 혹시 은희가 함정을 파고 자신을 해치려는 것일까. 오상의 경계심이 드높아지고 있었다.

그 순간, 운무 속에서 늙은 올빼미 울음 같은 소리가 번져왔다.

“하하하! 오랜 연인과의 재회에서도 이 늙은이를 알아차리다니.”

곧이어 운무가 꿈틀거리더니 드디어 바람에 흩어져갔다. 그리고 허공에 뜬 설파파가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마두가 수상쩍은 모습으로 성경에 돌아온 까닭이 궁금해 뒤를 쫓았더니 이런 재미있는 광경을 다 봤군. 은희, 당신이 정말 살아 있었다고?”

오상은 빠르게 두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서야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이건 함정도 뭣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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