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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89화 (888/1,000)

1789화. 일전의 갈망

이내 은희가 허공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무변마역으로 저자를 붙잡아, 널 도와 저자를 죽여줄 테니.”

오상은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대답했다.

“무변마역은 설파파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설령 붙잡는다고 해도 설파파의 능력이라면 나는 마역을 통제해야 해서 최선을 다해 싸울 수 없습니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했다. 과거 그와 나추가 협력해 은희를 보호할 때, 이 무변마역에 의지해 다른 사람에게 대항했었다. 그리고 매번 설파파와 마주칠 때면 다소 곤란한 상황이 나오곤 했다.

그때, 은희가 입을 열었다.

“요호족이 어찌 널 돕느냐 물었었지. 요괴 할멈! 여긴 누구도 당신을 환영하지 않아!”

은희는 공중의 설파파를 향해 소리치고, 오상은 두 눈을 번득였다. 구미가 동한 것이다.

이윽고 설파파는 크게 웃었다.

“요괴? 방금 좀 멀어서 잘 못 봤지만 말이야. 누가 그 수많은 요호들을 불러냈을까? 오상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는 것 같은데. 은희, 네 몸의 요기는 어찌 된 일이지? 지금 보니 정말로 잘 찾아온 것 같군.”

자기도 요괴이면서 어찌 요괴 할멈이라 부르는 것이냐는 조롱이었다.

바로 그 순간, 오상이 몸을 날려 설파파가 있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째, 살인 멸구라도 하려는 건가?”

설파파는 괴성을 지르며 오상을 향해 지팡이를 벼락처럼 휘둘렀다.

양측이 부딪히는 그 찰나, 지팡이는 오상에게 적중하고, 오상은 검은 안개로 변했다. 폭발하듯 번진 흑무(黑霧)는 순식간에 설파파를 삼켜버렸다.

설파파는 그간 오상과 수없이 싸워왔다. 그 경험으로 즉각 상황을 깨달은 설파파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는 빛이 있는 곳까지 물러날 수 없었다. 아무리 빠르게 날아도, 끝없는 흑무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설파파도 결국 쓸데없는 짓은 멈추고, 지팡이를 든 채 주위 경계에 들어갔다.

검은 안개 속, 한줄기 혈광(血光)이 스며 나왔다. 설파파는 재빨리 뒤를 돌았다. 그 혈광에선 산처럼 거대한 오상의 몸이 보였다. 그는 자유로이 유영하는 흑무 사이로 그렇게 천신처럼 나타났다.

100장(丈)이 넘어가는 거대한 신형이었다. 오상은 장발을 휘날리며, 마치 석양을 등에 진 듯 붉은빛을 뒤집어쓴 채 합장을 하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내… 마… 역… 에… 들… 어… 와… 라!”

“내…… 마…… 역…… 에…… 들…… 어…… 와…… 라!”

주변에 크고 장대한 소리가 휘몰아쳤다. 정말 꼭 신마의 영역에 발을 잘못 들인 것처럼 압도적이기도 하고, 참 신비롭기도 했다.

그러나 설파파도 이 술법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두려울 것이 없던 그녀는 오히려 앙천대소하며 여유를 부렸다.

“오상, 이런 잡기술로 다른 사람을 겁줄 수는 있지만, 나는 아니다. 이 늙은이 앞에 재롱은 그만 피우는 게 낫지 않겠나? 아……! 알겠다, 네 오랜 연인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 주려는 것이더냐? 걱정하지 마라. 당장 죽이려는 건 아니다. 그냥 진지하게 한번 대화나 나눠 보려는 것이지. 갑자기 죽었다가 살아났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신마처럼 거대한 오상은 아무 반응도 없이 싸늘한 눈으로 설파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꼭 거만한 신이 벌레 같은 중생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곧이어 주위의 검은 안개가 꿈틀거리더니 정말 수많은 독사와 넝쿨처럼 뻗어 나왔다. 방향은 설파파 쪽, 그녀의 사지를 붙잡으려는 목적이었다.

설파파는 즉각 지팡이를 휘둘렀다. 이에 강대한 법력이 충격파를 뿌리며 주위에 가득했던 안개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안개는 무궁무진한 것처럼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설파파의 분노도 더해졌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니, 이제 설파파도 더는 봐줄 생각이 없었다.

설파파가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주위 법력이 가득 차며 지팡이도 푸른 빛으로 번쩍였다. 찰나의 순간, 주위가 변하기 시작했다. 무궁무진한 수증기가 그녀를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은희는 풀숲에서 허공에 거대한 먹구름이 꿈틀거리는 걸 지켜보았다. 그러다 주위 수증기가 갑자기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꿈틀거리는 먹구름을 향해 몰려들었다. 은희는 즉시 한쪽 발을 들어 풀숲을 내리찍었다.

쾅!

풀숲이 뒤흔들렸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물속에 빠진 것처럼 풀숲을 중심으로 파동이 번져 나갔다. 신호였다.

펑!!!

누군가 늪지를 뚫고 튀어나와 은희 옆에 내려섰다. 곤림수였다. 그러나 얼굴에 가지각색의 빛을 내는 것들을 바르고 있어, 그를 알아볼 순 없었다.

곤림수는 고개를 들어 하늘 위 꿈틀거리는 먹구름을 보았다. 은희는 그를 보며 조용하게 물었다.

“두렵더냐?”

곤림수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그 눈빛에 어느 정도 흥분이 어려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일전(一戰)을 향한 갈망이라고 해야 할까. 은희도 그의 감정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가라!”

휙-

곤림수가 곧장 하늘로 날아 허공에 꿈틀거리는 먹구름으로 뛰어들었다.

무변마역을 통제하고 있던 오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파파가 늘 하던 수법을 사용하려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의 무변마역은 일종의 진법과 같았다.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끝이 없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세상 속에 빠져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오상이 펼친 마역이 정말 일망무제한 곳인 건 아니었다. 그가 펼친 마역은 결국 일정 범위가 있었고, 설파파는 법력을 이용해 무수한 수증기를 끌어들여, 오상의 무변마역을 가득 채워 터트릴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무변마역을 깨트리는 건 가히 단순하고 폭력적이지만,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게 바로 오상이 줄곧 설파파를 죽이려 했던 이유였다.

이내 마역을 조정하던 오상의 두 눈이 번득였다. 누군가 마역 안으로 뛰어든 것을 감지했다. 얼굴이 화려한 사내였다.

마역에 들어온 곤림수도 신마와 같이 거대한 오상의 몸을 보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모습에 잠시 질겁했지만, 다행히 사전에 은희에게 이야기를 들어, 이 무변마역 안의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 그가 상대할 목표가 오상이 아니란 것도 분명히 알았다. 은희는 이미 곤림수가 알아야 할 것들을 자세히 알려주어서, 곤림수는 오상과 설파파에 대한 정보부터 오상의 술법인 무변마역에 대해서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곧 곤림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설파파를 찾았다. 그러나 설파파의 향방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설파파도 곤림수를 보지 못했다. 곤림수와 마찬가지로 눈에 들어오는 이는 오상밖에 없었다.

반면 무변무역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오상은 무변무역에 있는 모든 이를 정확히 살펴볼 수 있었다. 바람 한 줄기조차 그를 벗어날 수 있는 건 없었다.

곧이어 오상의 법상(法相)이 손을 휘둘렀다. 곤림수와 설파파는 거의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꿈틀거리는 먹구름 뒤에 나타난 상대를 본 것이다.

“농간을 부리는구나. 누구냐!”

설파파가 호통을 쳤다. 갑자기 원영기의 수행자가 나타났다. 분명 원래 알던 성존은 아닌 것 같았다. 설파파는 곤림수를 크게 경계했다. 또한 은연중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도 느껴졌다.

곤림수는 설파파가 법력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고 은희의 당부를 떠올렸다. 설파파는 지금 무변무역을 깨트리려 하고 있었다.

은희는 절대 설파파가 무변무역을 벗어나게 하면 안 된다고, 여러 번이나 강조했다. 또한 이 늪지는 끝없는 수역(水域)이라, 아마 여기서 설파파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곤림수는 대답 대신, 양손으로 수결(手決)을 맺었다.

웅-!

순식간에 곤림수의 몸에서 거대한 불길이 터져 나왔다. 거친 불길 속에 둘러싸인 그가 꼭 불의 신, 화신(火神)처럼 보였다.

그 후로 터져 나온 화광(火光)이 황혼의 빛을 만들어내며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던 수증기를 단번에 날려버렸다.

돌연 마역의 온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오상은 이를 보며 드디어 은희의 말을 이해했다. 요호족에게 설파파의 술법과 상극의 술법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오상은 지금 그가 누구인지, 은희가 어디에서 데려온 것인지 관찰 중이었다. 화성공법을 수련한 원영기 수행자일까? 설파파의 얼굴도 급변했다.

풀숲에서 관망하던 은희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 온도가 갑자기 상승하는 게 느껴졌다. 어딘가에서 화성원소(火性元素)가 빠르게 모여드는 듯했다.

허공에 있는 먹구름도 더는 볼 수 없었다. 온 세상이 일순간 안개로 뒤덮였고, 2가지 술법이 격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곤림수가 드디어 설파파와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은희는 좀 놀란 눈치였다. 곤림수의 경지가 설파파에게 미치지 못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건만, 양측의 술법이 막상막하였다.

원인은 지금 무변마역에 갇힌 설파파가 제일 잘 알았다. 그녀는 물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으나 오행공법 중 순수한 수성공법인 건 아니었다. 그에 비해 상대의 화성공법은 매우 순수했다. 설파파도 이를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이는 운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둔지를 사용할 수 있지만, 오행공법 중에 순수한 토성공법인 것은 아니었다.

설파파는 상대의 경지가 제게 미치지 못한다는 걸 분명히 느꼈다. 하지만 화성원소 통제 능력은 조금도 그녀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화성원소의 순수한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양측이 법력을 겨루는 목적은 명확했다. 이미 그 효과도 나타나고 있었다. 곤림수는 불로 설파파의 법술을 깨트려, 그녀가 물을 끌어모으는 것을 저지했다. 한마디로, 설파파를 계속 무변마역에 붙잡아 두려는 의도였다.

빙설속성(氷雪屬性)의 공법과 불이 만났다. 이는 단순한 상극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설파파의 제대로 된 천적이었다.

설파파는 점점 함정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를 두려움도 느껴졌다. 여유롭던 모습은 이제 철저히 사라졌다.

이내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무수히 많은 빙정이 허공에 뭉쳐 고드름을 만들어냈고, 고드름은 곧장 곤림수를 향해 직행했다.

곤림수는 이에 양팔을 내밀었다. 불길은 터져나가는 강처럼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고, 언뜻 보면 한 마리 화룡(火龍)이 용솟음치는 것만 같았다.

첫째로 충격을 받은 화룡 머리가 터져나갔다.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화염이 들이닥쳤고, 그렇게 계속해서 앞으로 밀고 나갔다.

화룡과 부딪힌 무수한 고드름들은 흐릿한 불길을 반사하며 밀고 들어오는 불길 사이를 꿰뚫었다. 이로 인해 고드름 속도가 느려진 건 말할 것도 없고, 결국 다 녹아 버리고 말았다.

곤림수에 가까울수록 불길은 더 뜨거웠다. 고드름은 일직선으로 곤림수의 코앞까지 다가갔지만, 결국 그에게 채 닿지도 못하고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반면, 곤림수가 만들어낸 화룡은 포효하며 설파파를 향해 날아들었다. 설파파는 지팡이로 방어에 나섰다.

그녀가 지팡이를 밀어내자, 푸른빛을 띤 거대한 현빙이 판자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화룡의 맹렬한 충돌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현빙마저 고온으로 인해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설파파는 지팡이를 다시 밀어냈다. 재차 지팡이의 푸른빛이 번쩍였고, 현빙도 또 한 번 두꺼워지며 화룡의 공격에 저항했다.

한창 화룡을 조종하던 곤림수는 다시 법력을 밀어 넣으며 양팔을 강하게 내밀었다. 화룡은 즉시 불타오르는 그 큰 입을 쩍 벌리더니, 설파파를 현빙째로 한입에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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