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화. 무소불위
설파파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또 그녀의 몸 주변으로 구형의 호체강기처럼 생긴 현빙이 생겨나며 공격 중인 화염을 막았고, 설파파는 그 중앙에서 녹아내리는 현빙을 법력으로 보강하며 저항했다.
짝!
화룡을 밀어내던 곤림수는 갑자기 손뼉을 부딪쳤다. 한 손에 검결지를 만든 것이다. 거대한 화룡은 찰나의 순간 무수한 화검(火劍)으로 변했다.
곧이어 검결지를 휘두르자, 화검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고, 화검은 설파파를 보호하는 호체현빙(護體玄氷)을 향해 물 샐 틈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과연 설파파의 경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런 화검의 공세에도 그녀의 호체현빙은 조금도 깨져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현빙에 닿은 화검만 터져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곤림수의 두 눈에 전의가 불타올랐다. 그는 다시 양팔을 활짝 펼친 채 법력을 일으켰다. 붕괴한 화검은 다시 거대한 화룡으로 변해, 좌우로 큰 원을 그리며 곤림수에게 다시 돌아왔다. 화룡은 그를 한 바퀴 돌더니 다시 화검으로 변해 설파파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셀 수 없는 화검이 터져나가며 다시 화룡이 되어 돌아왔다가, 또다시 날카로운 검이 되어 쏘아져 나가길 반복했다. 조금의 틈도 없이 계속되는 이 행위는 정말로 깨질 때까지 두들기려는 의도로 보였다.
화검이 호체현빙에 부딪히며 터져나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정말 끝도 없는 천둥소리처럼 그 기세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오상은 그 모습을 냉정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처럼 화려한 전투방식을 본 건 처음이었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사람일까.
풀숲 위에서도 은희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겨났던 안개는 이미 모두 바람에 날아갔고, 다시금 꿈틀거리는 먹구름이 시야에 드리웠다.
안에선 계속 천둥, 벼락이 치듯 천지를 울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계속 붉고 푸른빛이 얽히는 게 보였다. 눈으로 보기엔 붉은빛의 기세가 푸른 빛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흑운을 포함한 다른 요호족 장로들도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늪지 위에 들려오는 격렬한 폭음에 깜짝 놀라 다들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안을 볼 순 없어서, 그저 폭음만 들리는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노 족장님, 곤림수와 요괴 할망구가 붙은 것입니까?”
깜짝 놀라 묻는 흑운의 목소리에, 은희가 좌우를 한번 둘러보았다.
“너희가 왜 여기 있느냐? 빨리 몸을 피해라!”
은희는 걱정이었다. 저런 실력자들이 싸우다 갑자기 이쪽을 습격한다면, 요호족 사람들은 도망치지도 못하고 쓸려나갈 터였다.
이윽고 흑운 등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곤 분분히 늪지로 돌아갔다.
한편, 냉정히 방관하던 오상은 서서히 눈을 치켜떴다. 설파파가 과연 천적을 만난 듯했다. 평소의 기세는커녕 진정한 실력은 전혀 발휘하지 못한 채 그저 방어에만 급급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설파파가 드디어 다시 반격을 시작했다.
지금까진 상대의 실력을 다 파악하지 못해 경솔할 수 없었다. 또 천적인 화성공법을 만나 심리적으로 기세가 약해졌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제 곤림수의 능력을 파악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설파파는 호체현빙에 숨어 그대로 곤림수에게 부딪혔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화검을 거슬러, 거대한 푸른 보석이 화염을 부수며 곤림수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곤림수는 깜짝 놀랐다. 이제야 자신과 설파파의 진정한 실력 차를 깨달았다. 그는 화검을 조정해 설파파에게 쏘아 보내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사실 곤림수에겐 설파파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있었다. ‘천화무극술’의 ‘화매둔영’이었다. 그 술법이면 설파파와 정면에서 싸운다 해도, 곤림수의 술법을 깨트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은희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우유도가 아주 곤란해질 수 있으니 절대 천화교의 술법을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 사실상 설파파와 오상 모두를 죽일 게 아니라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곤림수는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오상의 눈이 번득였다. 곤림수가 설파파와 맞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당연히 오상은 자신의 감옥에 갇힌 설파파가 곤림수를 죽이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곤림수가 사라지면 오상도 설파파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정말 오래도록 싸워왔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이 요괴 할멈을 처리할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오상은 절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갑자기 거대한 오상의 법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설파파가 곤림수에게 접근한 순간, 그녀의 비스듬한 곳에서 거대한 검은 장영이 나타났다.
“멸생!”
쾅!!!
고함과 함께 설파파가 내쳐지며, 천지가 갈라지는 굉음이 들렸다. 설파파의 호체현빙이 터져나간 것이다.
이내 오상의 신형이 거대한 장영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가고, 호체현빙이 터져나간 그 자리엔 빽빽한 화검이 설파파를 향해 쏘아져 왔다.
“오상!!!”
설파파의 입에서 비통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오상의 기습에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오상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같은 일을 반복했다. 기회만 있다면, 오상은 언제고 설파파를 기습하기 여념이 없었다.
사실 지금 오상은 가끔 기습하는 것 말고는 아예 다른 걸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무변마역이 붕괴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했기에, 전력으로 설파파와 대결을 펼칠 수 없었다.
그래도 감정은 감정이고, 당장 눈앞의 위험부터 처리해야 하는 법, 지금 설파파는 감정을 마음대로 발산할 여유도 없었다.
찰나의 순간, 설파파는 푸른 빛으로 화해선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화검을 피하며 꿈틀거리는 먹구름 속으로 파고들었다.
곤림수는 즉시 검결지를 쥐고 화검을 쏘아 보내며 뒤를 쫓았다. 하지만 이미 설파파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오상이 만든 세계가 아니던가. 당연히 설파파가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이 세계에선 어디에 숨든 절대 오상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 법력으로 내 마역을 깨트리려고 한다. 막아라!”
곤림수가 돌연 뒤를 돌았다. 오상의 목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뒤를 돌아도 오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곤림수 또한 설파파가 다시 천지 사이의 수증기를 그러모아, 무변마역을 터트리려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곤림수는 두말하지 않고 다시 법력을 일으켜 설파파를 저지해 나갔다.
곤림수가 손을 쓴 순간, 설파파도 동시에 이를 느꼈다. 그녀는 허공에 뜬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도 없는 그 사내를 죽이지 못하면, 이 무변마역이란 무형의 감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이곳이 바로 오상의 세계라는 것이었다. 이 세계를 통제하는 건 오상이었다. 오상은 언제든 그 사내를 숨길 수 있으니, 오상의 도움이 있다면, 그녀는 아예 그 사내를 죽일 가능성조차 없었다.
점점 설파파의 마음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이 피어났다. 아주 오래도록 잊고 있던 감정이었다.
그때, 등 뒤로 불빛이 나타나 주위를 밝혔다. 설파파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았다. 화검은 그녀를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설파파는 즉시 꿈틀거리는 먹구름 사이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마역의 모든 걸 통제하고 있는 오상이 손을 휘두르자, 설파파는 다시 한번 곤림수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이곳에서의 오상은 손짓 하나로 무소불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였다.
곤림수가 다시 무수한 화검을 만들어 쏘아 보냈다. 설파파도 몸을 날려 도망치려 했지만, 오상이 바로 손을 모아 합장했다. 그 순간, 먹구름 속에서 무수한 촉수가 나타나 설파파를 붙잡고 늘어지며 그녀의 속도를 늦췄다. 또 한번 곤림수에게 기회가 생긴 것이다.
설파파는 먹구름 방해의 여파를 정통으로 받았다. 내내 그것들을 터뜨리며 움직이느라 매우 느려졌고, 그녀를 쫓는 곤림수도 떨쳐낼 수 없게 되었다.
웅웅-
수많은 화검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설파파는 다시 푸른빛으로 호체현빙을 만들어, 쏟아져 내리는 화검 비를 막아냈다. 또 동시에 오상의 기습을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곤림수의 화염은 현빙을 생각보다 더 많이 침식하고 있었다. 설파파의 현빙은 그녀의 본체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 이대로 간다면 끝내 파국을 맞을 게 분명했다. 설파파는 어쩔 수 없이 법력을 이용해 크게 소리쳤다.
“오상! 우리 대화를 해보자, 무슨 조건이든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오상은 설파파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사실 그에게 요괴 할망구가 죽는 것보다 더 유리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오상은 대답이 없었고, 곤림수는 미칠듯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또한 호체현빙은 크게 소모되고 있어 설파파는 계속 현빙에 힘을 밀어 넣어 줘야만 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설파파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오상, 이건 지금 누군가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다섯이 협력해 외부와 맞서야 하지 않겠나? 지금 나를 죽이면 우리 쪽 힘이 약해지는 것이다. 이는 배후의 인물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오상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무변마역은 그의 목숨을 지킬 가장 큰 밑천이었다. 과거 그가 원영기에 올랐을 때, 당시 팔성은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오상은 여러 번이나 이 무변마역으로 도망을 쳤다. 일단 무변마역에 숨어들었다가, 무변마역이 사라지면 오상은 이미 멀리 도망친 상태였다.
반면, 이 요괴 할망구는 그의 무변마역을 깨트릴 수 있기에, 오상에게는 그야말로 최대의 적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천영을 설락아에게 보내놓은 것이 겨우 우유도 때문일 리가 없지 않은가? 처음 천영을 포섭해 나중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을 때는 우유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때였다.
그러니 지금 와서 설파파를 놓아 준다면, 아마 앞으로 이 늙은이를 죽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이는 하늘이 준 기회였다. 오늘이야말로 비로소 다년간의 숙원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었다.
폭음 속, 침묵하는 오상을 보고 설파파는 곤림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친구, 오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지. 만약 나를 죽인다 해도, 저자는 절대 너를 살려두지 않을 거야. 나중에 내 도움이 없다면, 너도 여길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야!”
이간질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곤림수는 설파파의 말을 무시하고, 검결지를 해 다시 2마리 화룡을 만들었다. 화룡은 곤림수 앞에서 다시 무수한 검이 되어 설파파의 호체현빙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엔 장관이 연출되었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날카로운 무기였지만, 겉모습만은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설파파는 더 조급해졌다. 소리를 쳐도, 이간질을 해도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호체현빙을 소모하며 시간을 끄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다시금 호체현빙의 단단함을 믿고 곤림수에게 돌진했다.
이번에 설파파는 정말 목숨을 걸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누가 봐도 오상이 여기서 자신을 말려 죽이려는 게 분명해 보였다.
평소라면 이 무변마역은 절대 그녀를 가둘 수 없었다. 설령 무변마역을 깨트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오상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버틸 자신이 있었다. 오상은 무변마역을 위해 법력을 적지 않게 소모해야 해서 애초에 그리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빙설공법의 천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그녀의 빙설공법 위력은 크게 절감됐다. 오상과 연합까지 해 그녀를 공격하니 감당하기도 벅찰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