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화. 잘 가라!
설파파는 목숨을 걸고 돌진했다. 위력은 훨씬 강해졌다. 곤림수가 전력으로 화룡을 만들어 저항해도, 멀리서부터 그녀의 위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둘의 경지 차가 엄청났다. 이건 곤림수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엔 오상이 있지 않은가. 그는 설파파가 약점을 없애는 걸 절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그렇게 꿈틀거리는 먹구름 사이에서 다시 거대한 손그림자가 나타나 설파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쾅!
호체현빙이 터져나갔다. 하지만 이건 설파파도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화룡을 빙판(氷板)으로 방어하며,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오상의 손을 벼락과 같이 공격했다.
쾅!!!
오상과 설파파가 정면충돌했다. 오상이 뒤로 물러난 순간, 무변마역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하마터면 붕괴할 뻔했다.
바로 그때, 설파파의 몸에서 푸른빛이 나오며 다시금 호체현빙이 만들어졌다. 현빙은 그대로 곤림수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오상이 양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마치 허공섭물처럼 갑자기 먹구름이 꿈틀거리며 검은 장막을 만들어내 설파파와 곤림수를 단절시켰다.
불길을 모두 뚫어낸 설파파는 주위를 둘러봤으나 보이는 건 어둠뿐, 곤림수를 찾을 수 없었다. 반면 곤림수는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던 설파파가 지금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다시 등 뒤에서 오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교활한 늙은이야. 더는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넌 암중에 불길을 이용해 습격해라. 내가 엄호하마. 요괴 할망구는 본신의 빙원(氷元)을 소모하고, 넌 불을 단련했으니 마침 천적이다. 공격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곤림수는 뒤를 돌았지만, 여전히 오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앞은 온통 꿈틀거리는 검은 안개뿐이었다. 결국 곤림수도 빈 허공으로 대답을 던졌다.
“좋다!”
“앞을 봐라.”
다시 이어진 오상의 목소리에, 곤림수가 앞을 바라보았다. 전방에 검은 안개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오상은 그에게 작은 동굴을 열어줬고, 그곳을 통해 여기저기 빠르게 움직이는 설파파를 볼 수 있었다.
이를 보고 곤림수는 대략, 이 무변마역에 대한 단서를 얻었다. 설파파는 얼핏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줄곧 한 영역만 맴돌고 있었다. 이게 바로 아무리 날아도 이곳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인 것 같았다. 끝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무변마역이 뒤덮은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빨리 손쓰지 않고 뭐 하느냐!”
오상의 재촉에, 곤림수는 즉시 법력을 일으켜 검결지를 쥐었다.
불길은 사방으로 날아다니던 설파파의 주위를 밝혔다. 그리고 곧 수많은 화검이 갑자기 사방팔방에서 그녀를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설파파의 몸도 푸르게 변했고, 다시 구형의 호체현빙이 나타났다. 현빙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검을 방어하고, 한순간 주위는 다시 폭음에 잠겼다.
한창 법력으로 버티던 설파파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곤림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은 안개 속에서 사방팔방으로 화검이 쏟아지고 있을 뿐이었다. 붕괴한 화검도 다시 하나로 뭉쳐 검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화검이 되어 쏘아져 나오길 반복했다.
“오상!”
설파파가 비통한 고함을 질렀다. 공격자조차 볼 수 없다니, 설파파는 결국 이 모든 게 오상의 작품이라는 걸 알았다. 오상이 그 사내를 일깨워 주고, 다시 협력을 시작한 게 분명했다. 오상은 오늘 그녀를 반드시 죽이려는 것 같았다. 그러니 어찌 비통하지 않을 수 있으랴.
애초에 화검을 조종하는 사내의 경지가 그녀와 너무 많은 차이가 나서, 이 화검의 습격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화검 지옥이 계속된다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시간을 오래 끈다면 본신의 빙원을 소모해 방어하는 설파파로선 아주 약해질 게 자명했다. 그렇다고 빙원을 소모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설파파는 태생적으로 불에 약했다. 일단 불에 화상을 입으면 영체에 대한 패해가 매우 컸다. 그녀는 당연히 앉아서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곧 호체현빙을 뒤집어쓴 채 검은 안개 속을 들쑤시고 다녔다. 곤림수의 위치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오상의 세계, 그의 도움이 있는 한, 설파파는 결코 곤림수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어디로 날아가든, 검은 안개 속에선 화검이 튀어나왔다. 공격은 계속되었고,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화검 지옥에서 계속 타격을 받으며, 끝내 설파파의 본체빙원도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도 자신과 싸우는 사람의 얼굴도,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세월에 주름진 설파파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 차올랐다. 오상 같은 사람에게 자비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이제야 후회가 들었다. 처음부터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천영의 신분이 폭로된 것도 오상이 그녀를 죽이기 위해 만든 함정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마침내 설파파는 더 버티지 못하고 호체현빙을 포기했다. 그녀는 홀연 푸른빛으로 변해 빽빽이 쏟아지는 화검 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피했다. 이에 곤림수의 화검도 더는 설파파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곤림수는 멍청하지 않았다. 검결지를 펼치자 그의 화검들이 붕괴하며 불바다가 됐고, 곧바로 설파파의 푸른빛을 포위해버렸다.
푸른빛은 불바다를 뚫고 검은 안개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검은 안개 사이로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더니 강렬한 기세로 푸른빛을 덮쳐갔다. 꼭 엄청난 운석이 떨어지는 듯, 강렬한 힘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푸른빛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 날아갔다. 오상은 이 갑작스러운 일격으로 인해 설파파의 여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더 두려울 것도 없는 그는 그대로 나타나 설파파의 뒤를 쫓았다.
“아직도 도망갈 수 있겠느냐!”
불길을 이용해 공격하던 곤림수는 순간 눈앞이 검어졌다. 무슨 까닭인지 갑자기 고함이 들려왔고, 그는 소리의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곤림수는 검은 안개를 뚫고 다른 공간에 들어섰다.
이번에는 잘못된 곳으로 가지 않았다. 오상이 더는 법력으로 무변마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아서 곤림수는 정확한 방향을 찾았다.
이내 곤림수는 오상이 양손으로 푸른빛을 억압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의 모습을 한 푸른빛이 오상의 손에 붙들려 고통에 발버둥 치고 있었다. 양손은 오상의 팔을 부여잡고, 오상의 양팔엔 빠르게 서리가 번지고 있었다. 아마도 오상의 양팔을 얼음으로 봉인하려는 듯 보였다.
그러다 오상이 법력을 끌어 올리자, 어깨까지 번졌던 서리가 다시 천천히 녹아내리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의 오상은 법력도, 경지도 설파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상은 완벽하게 설파파를 압도하고 있었다.
“수련을 통해 정령이 된 빙령(氷靈)은, 몸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다시 부활할 수 있다더군. 이번에도 어디 부활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오상은 그대로 입을 쩍 벌렸다. 그 입에선 짙고 검은 안개가 흉맹한 기세로 뿜어져 나와 설파파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말 끝도 없이 설파파의 체내로 밀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이를 본 곤림수는 대경실색했다. 오상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때, 설파파 또한 곤림수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곧 고통스러운 가운데에서도 그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꼬맹아, 도망쳐라. 오상이 너를 죽일 것이다. 너는 죽어선 안 된다. 너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네 경지가 조금만 더 높아진다면, 분명 오상의 적수가 될 것이니, 네가 나를 위해 복수할 그 날을 기다리마!”
설파파의 복수를 위해 오상을 죽인다고? 곤림수는 어이가 없었다. 저 요괴 할망구가 하는 말이 호의에 의한 말이라 할 수 있는가? 이건 어떻게든 오상의 살심을 불러일으켜 곤림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수작이었다.
짙은 안개를 뿜어내는 오상도 괴이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이 요괴 할망구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갈등을 일으켜 싸움을 유도하고 있었다.
드디어 입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안개가 멈추고, 오상은 아주 냉담한 얼굴로 음산하게 말했다.
“잘 가라, 할망구야!”
그리고 그가 양팔을 활짝 펼쳤다.
펑!
경천동지한 굉음이 들리고, 푸른빛 인형이 가루가 되어 터져나갔다. 동시에 그 안에선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폭발에 강풍이 휘몰아쳤고, 곤림수는 법력을 이용해 저항했다. 시야에는 사방으로 흩날리는 푸른 얼음 가루가 보였다. 꼭 눈이 내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바로 그 순간, 주위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수행자조차 오한이 들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곤림수가 은희에게 앞서 들은 당부가 있었다. 은희는 일단 모든 일이 끝나면 성공했든, 실패했든 무조건 즉시 그곳을 벗어나라고 했다.
오상은 너무 위험하고, 악랄한 자였다. 곤림수의 화성공법으로는 그를 억제할 수 없고, 경지도 한참 뒤떨어지니 오상에게 죽임을 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눈앞에 설파파가 죽어 나간 것을 확인한 곤림수는 즉시 자리를 뜨려 했지만, 아무리 날아도 이 무변마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귓가에 오상의 싸늘한 목소리가 퍼졌다.
“어딜 가려느냐?”
곤림수가 즉시 뒤돌아 경계했다. 그곳에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빤히 보는 피풍의 차림의 오상이 있었다. 곤림수는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토사구팽인가?”
오상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냉담하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얼굴을 보이면, 관용을 베풀어 너를 살려줄 수도 있다.”
“필요 없다. 은희 말에 따르면, 네 무변마역은 나를 붙잡지 못한다!”
곤림수는 두 주먹을 움켜쥔 채 팔을 굽혀 천천히 들어 올렸다.
“호오.”
오상은 담담히 호응했다. 겉으론 그저 어디 해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그의 두 눈은 빠르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사방의 검은 안개 속, 붉은빛이 번쩍였다. 그렇게 주위에 나타난 셀 수 없는 화검이 갑자기 오상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오상은 즉각 입은 피풍의를 휘둘렀다. 안에선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오상은 거대한 장영 안으로 몸을 숨겼다.
휙휙-
화검은 마치 나무토막에 박혀들 듯 장영에 반쯤 파고들었다. 그 속에서 저들끼리 뭉쳐있는 검은 안개를 태웠지만, 더 안으론 파고들지 못했다.
그때 곤림수가 양팔을 활짝 펼쳤다.
쾅!!!
순간 모든 화검이 동시에 폭발하며 거대한 불바다가 일었다. 불바다는 그대로 오상의 거대한 장영을 모두 삼켜버렸다.
이어 곤림수는 양팔을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리키고, 다시 땅을 쓸고, 앞으로 손을 밀어내고, 다시 양팔을 뒤로 잡아당기고, 마지막으론 양팔을 좌우로 강하게 밀어냈다.
찰나의 순간, 무변마역 내부의 검은 안개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장영 안에 숨어 있던 오상의 안색도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곧 양팔을 휘두르며 장영 안에서 튀어나왔다.
불바다는 즉각 몸집을 부풀려 그를 반겼다. 수많은 불씨가 동시에 터져나가며 만들어진 강렬한 불의 파도가 오상을 쓸어버릴 듯 달려들었다.
오상은 빠르게 피풍의로 몸을 감싸며 불의 파도를 정면으로 뚫고 나갔다. 그렇게 곤림수가 있던 위치에 도착했지만, 그의 모습을 찾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