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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군-1796화 (895/1,000)

1796화. 치욕을 갚기 위하여

소천진은 저 개 같은 남녀가 같이 서 있는 꼴을 보니, 과거 창틈으로 방을 훔쳐보던 때가 떠올랐다. 이미 지울 수 없는 악몽이 된 시절이었다.

해여월은 순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이미 주제할 수 없을 정도로 흐느끼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에 여무화가 해여월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해여월은 어리석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똑똑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터였다.

이제는 전후 사정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들은 복수를 위해 왔다. 소천진의 호통에서 더 분명하게 깨달았다. 모자의 연은 이미 단절됐고, 소천진은 지금 소가를 위해 합당한 대가를 받아내려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해여월도 지금 소천진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여무화가 언급했고, 여무화조차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었다.

여무화는 감히 소천진을 건드릴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그건 만동천부가 모두 달려든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이름을 날린 후, 만동천부의 장문인조차 문제가 생길까 전전긍긍했었다. 한마디로, 여무화가 사욕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 잘못하면 만동천부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게 된 것이었다.

제경의 일을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오늘날 소천진이 가진 건, 효월각처럼 큰 세력마저 손해를 보고도 뭐라 하지 못하는 배경이었다. 귀의의 이름은 제경 사건 후로 더 유명해졌고, 더더욱 감히 그를 쉽게 건들지 못하게 되었다.

그 단 한 번으로 소천진의 이름이 천하를 뒤흔들었다. 물론 정말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이들은 귀의조차 안중에 두지 않았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해여월 쪽 사람들은 바로 그 대다수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아들의 이름이 천하를 뒤흔들고 있다는 이야기에, 해여월은 참 자랑스럽기도, 슬프기도 했다. 자랑스러운 건 당연히 아들이 대단해졌기 때문이고, 슬퍼지는 마음은 어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아들을 서럽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해여월의 품에 안긴 아이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녀는 더더욱 서럽게 울었다. 아이를 여무화에게 넘기고 소천진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여무화는 그녀의 팔을 놓아 주지 않았다. 여무화도 당연히 해여월이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애원한다 해도, 그녀를 위험한 곳으로 보낼 수 없었다.

해여월은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아들에게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어미가 잘못했구나. 진아야, 어미가 미안하다!”

무상의 주먹이 떨렸다.

“더러운 것, 그 입 닥쳐라! 내게 너 같은 어머니는 없다. 감히 내 어머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우리 소가 조상들을 욕보인 이 더러운 것. 하늘이 무심하지 않아 오늘 여기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늘이 소가를 버리지 않았구나! 하늘조차 너희를 두고 보지 못해, 내게 소가의 치욕을 갚게 하는구나!”

소천진이 하늘을 보며 비통한 고함을 내질렀다.

“아…….”

해여월이 얼굴을 감싸 쥐며, 억장이 무너지는 듯 비통한 신음을 내뱉었다. 친아들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한마디 한마디가 칼이 되어 해여월의 심장을 찌르고, 뼈를 갈랐다. 그야말로 죽는 것보다 괴로운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변명도 없었다.

여무화는 본인 아들에게 이런 장면을 보이고 싶지 않아, 법력을 써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쨌든 네 모친이다. 이 여인이 과거 너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아느냐? 네가 이 여인의 어떤 잘못을 보았든, 넌 그리 말할 자격이 없다!”

무상은 냉소를 지었다.

“참으로 어울리는 한 쌍이구나, 참으로 잘 어울려!”

여무화는 눈물로 엉망이 된 아내의 얼굴을 보고 더욱 고통스러워졌다.

“소천진! 네게 일말의 이성이 남아 있다면, 당시 네 부친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실로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자였다. 수많은 수행자의 도움을 받아 연명하고 있었을 뿐이야! 어느 여인이 그런 사내와 혼인할까. 이는 네 어미를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네 어미도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무상의 분노가 솟구쳤다.

“네놈은? 네놈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냐?”

여무화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내 해여월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진아야, 당시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너와 나, 우리 모자의 살길을 찾고 싶었을 뿐이야. 날 미워한다면, 그건 내 잘못이겠지. 원한이 있다면, 다 내게 풀어라. 과거 널 어렵게 키운 것을 봐서라도 저들은 놓아줘!”

해여월은 더는 자신을 어미라 칭하지 않았다. 심지어 소천진 앞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 여무화는 당장 해여월을 붙잡았다. 세상에 어느 어미가 아들에게 무릎을 꿇는단 말인가.

그 모습에 무상은 더 화가 치밀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과거 그를 어찌 대했던가, 지금 또 저들 부자를 구하기 위해 어찌하고 있는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날 키워준 정을 생각해, 네가 그리도 가지고 싶어 하는 금주를 계속 차지하도록 놔두지. 넌 죽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 그 더러운 남편과 저 후레자식은 죽어야겠다. 그래봤자 넌 또 어디 가서 또 다른 사내를 찾아 살겠지!”

그야말로 흉악하고, 악독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세상에 해여월과 몸을 섞은 사내는 여무화만이 아니었다.

무상은 금주를 떠난 후, 줄곧 금주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고 여러 소문을 들었다. 당시 해여월은 금주를 장악하고자 금주의 여러 관리와 몸을 섞었다. 이후 그들 모두가 여무화의 손에 죽음으로써 소문은 결국 사실이 되었다.

“안돼!”

갑자기 아들의 모습이 흐릿해지는 것을 보고 해여월이 참담한 비명을 지르며 양팔을 뻗었다. 그녀는 그렇게 여무화와 아들을 막아섰다.

손을 쓰려던 무상은 그 모습에 더욱 분노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여무화는 곧장 팔을 휘둘러 해여월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다른 손에 안겨있던 아들을 부드럽게 한쪽으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무상의 공격을 상대했다.

순간, 무상은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누군가가 아이를 받아 여무화의 등 뒤로 이동했다.

펑!!!

“컥…….”

폭음이 울리고, 여무화는 창백해진 얼굴로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하마터면 그대로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무상 역시 뒤로 튕겨 나갔지만, 그는 땅에 안정적으로 착지하며 소리쳤다.

“누구냐!”

여무화도 뒤를 돌았다. 방금 등 뒤에서 넘쳐나는 법력이 자신을 돕는 걸 느꼈다. 덕분에 치명적인 일격을 막았다.

뒤에 선 이는 가면을 쓴 낯선 이였다. 여무화는 매우 놀랐지만, 일단 자신들을 도와주러 온 사람임은 분명해 보였다.

낯선 이는 아이를 여무화에게 넘겨줬고, 여무화도 빠르게 아이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비틀거리며 밀려났던 해여월은 강풍이 가라앉은 후에야 한 사람이 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곧이어 낯선 이가 앞으로 나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사내는 네 어미가 만동천부에서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다. 네가 저자를 죽인다면, 당당한 만동천부의 장로가 네 어미 때문에 죽게 되는 것이지. 그때가 되면 네 어미가 계속 금주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을 것 같더냐?

기어이 네 어미가 비참해지는 것을 보아야겠느냐? 여기까지만 허락하겠다. 이미 저 사내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충분히 분풀이했을 것이니, 네 어미가 과거 널 어렵게 보호한 걸 생각해서라도 여기까지만 해라.”

무상은 이미 낯선 이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충돌이었지만, 자신의 경지는 상대방 발끝에도 미치지 못함을 느꼈다.

무상은 본인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금단기에선 적수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 때문에 무상은 더더욱 놀랐다. 설마 원영기 수행자인가?

“당신은 누굽니까? 어째서 우리 집안일에 끼어드는 겁니까!”

낯선 이가 대답했다.

“나도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더는 지켜만 볼 수는 없어 나섰을 뿐이다. 어쨌든 네 모친이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정말 네 어미가 평생 괴로워하길 바라는 것이냐?

여무화의 말이 맞다. 과거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라. 과거 너조차 본인 입장을 알고, 은인자중하며 입을 다물었다. 여인의 몸으로 한 집안을 꾸려가기 쉬웠을까?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호시탐탐 노렸을까. 거기에 너까지 지켜야 했다. 대체 넌 모친이 어찌하길 바라는 것이냐?

설사 네 마음에 원한이 있다 한들, 네 모친이 아니었다면 넌 귀의를 만나지 못했을 테고, 귀의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의 너도 없었을 것이다.”

무상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억지입니다! 만약 사부님이 저를 데려가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이 아들을 낳고 저를 내버려 뒀겠습니까? 아마 전 죽어도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 소가는 맥이 끊겼을 것입니다!”

여무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실 그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과거 해여월이 정말 그의 아들을 낳았다면, 아마도 그는 소천진을 죽였을 터였다. 소천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내 무상은 해여월에게 삿대질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저 더러운 것은 설마 저 후레자식을 임신한 게 내게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단 말입니까? 아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저 여인은 저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해여월은 눈물을 쏟으며 참담한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너를 보내려 했어. 이미 계획도 세워 놓았다. 남주의 도야에게 부탁해 너를 남주로 보내려고 했어!”

도야라는 말에, 낯선 이가 해여월을 힐끔 바라보았다.

“사갈 같은 여인의 말을 어떻게 믿지?”

무상은 여전히 분노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낯선 이가 갑자기 호통을 쳤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더는 너와 쓸데없는 소리 하고 싶지 않다. 오늘 내가 나섰으니, 넌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 목숨조차 지키지 못할 것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넌 내 상대가 아니다. 너를 죽이는 것은 여반장이니,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그러다 해여월은 갑자기 허리를 숙이더니 무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진아야. 그냥 가주면 안 되겠니? 제발 부탁이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서 우리를 용서해다오!”

해여월은 이미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울고 있었다.

그녀가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무상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사립 안에서 해여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해여월은 더는 과거와 같이 젊지 않았다. 최소한 무상의 기억 속 모습과는 달랐다. 더는 날씬하지도 않았고, 눈가의 주름도 적지 않았다. 더는 과거의 그 화용월태(*花容月態: 꽃처럼 고운 미인)가 아니었다.

무상은 다시 낯선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자가 있는 한, 오늘 그는 원하는 걸 얻지 못할 터였다.

곧 무상은 사립을 벗어 얼굴을 보이려 했다. 해여월이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 이 추악한 얼굴을 평생 기억하길, 평생 고통에 시달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때, 무상을 빤히 보던 낯선 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벗지 마라. 흑리가 바로 여기서 20리 떨어진 마을에 있더군. 계속 떠나지 않고 헛짓거리를 한다면, 흑리와 무심의 머리를 따버려, 네놈에게 헛짓거리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무상의 손이 멈칫했다. 낯선 이는 사부의 향방까지 알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한 그는 이제 정말로 신비인이 두려워졌다. 이를 악물고 잠시 망설이던 무상은 그대로 뒤돌아 그곳에서 멀어져갔다.

“진아야!”

해여월은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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