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화. 흑운의 방문
곧이어 사여래가 먼저 깨어났다. 그는 자신이 공중에 있고, 또 나추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그 이후, 나방비도 깨어났다. 그녀는 나추를 보고 인사를 한 뒤 옆의 날짐승에 타고 있는 사여래를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며 손을 흔들었다.
“사형!”
그리고 곧바로 뒤돌아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독무허에게 호통쳤다.
“이 손 놓아라!”
그 거침 없는 언행에 독무허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방비의 명령에 따라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남도림은 그 모습에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때, 나방비가 몸을 날려 그가 있는 날짐승에 올라타 크게 호통쳤다.
“저리 꺼져라!”
이번에는 독무허가 남몰래 웃었다. 남도림도 어쩔 수 없이 묵묵히 몸을 날려 독무허가 있는 날짐승으로 건너가는 신세가 됐다.
단둘만 남게 된 나방비는 사여래의 팔에 매달려 뭐라 뭐라 끝없이 주절댔다. 그 모습에, 독무허와 남도림은 울컥했다. 저 여인이 나추의 저 제자만 보면 눈이 뒤집힌다더니, 오늘 보니 과연 그 소문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
사여래는 한편으로 나방비를 대충 상대하며, 처음 보는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와 나추 곁에 머무는 자들이란 말인가.
암중에 자세히 관찰하던 사여래는 곧 두 사람이 아주 정교한 역용을 한 상태라는 것을 발견했다.
반면 나방비는 처음부터 두 사람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
* * *
일행은 성도에 도착했다. 날짐승은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추는 직접 일행을 이끌고 성경에 들어섰고, 감히 그들을 막고 조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처음 보는 두 사람이 성경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만 보았다.
수결산장에서 날짐승 2마리를 건네받은 일행은 다시 대나성지로 향했다.
하지만 수결산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추의 손짓에 두 낯선 사내가 움직였고, 사여래와 나방비는 다시 기절하게 되었다. 2마리 날짐승도 제압당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일행은 방향을 틀어, 사여래와 나방비를 데리고 허공 속으로 멀어져갔다.
* * *
황택사지.
나추는 아래에 있는 ‘작은 섬’에 내려섰다. 사여래와 나방비는 이미 그의 손에 들려 있었고, 독무허와 남도림은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였다.
나추가 내려선 곳은, 얼마 전 은희가 자신과 만나자며 지정한 장소였다. 나추도 전에 방문한 적 있는 곳이었다.
곧이어 두 사람을 내려놓은 나추가 갑자기 바람처럼 움직이더니, 늪지 위를 한 바퀴 날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갈 때와는 달리 그의 손에 이미 요호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나추는 이후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빨아들이곤, 돌 표면에 법력으로 글귀를 새겼다. 또 그는 그 돌을 그대로 요호의 입에 밀어 넣었다.
“알아듣는다는 걸 알고 있다. 너희 족장의 딸이 여기 있다. 그 서신을 너희 족장 은희에게 전해라.”
말을 마친 후 나추는 요호를 멀리 던졌다.
땅에 내려선 요호는 누가 봐도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었지만, 입에 물고 있는 돌멩이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늪지로 달려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
요호가 떠나고, 나추는 소매를 휘둘렀다. 이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이 천천히 깨어났다.
사여래와 나방비는 자신이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알고 의아한 얼굴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은 곧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황택사지?
그러다 사여래는 나추도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정말 화들짝 놀랐다.
“아버지, 지금 황택사지에 있는 건가요?”
나방비의 물음에, 나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호를 사냥하러 온 건가요?”
나추는 다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딸을 보는 눈빛이 좀 복잡해 보였다.
“아버지가 직접 요호를 사냥하러 왔다고요?”
나방비는 더 의아해했지만, 나추는 그저 다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결국 나방비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하고 양손을 들었다.
“아버지, 왜 제 법력이 금제가 되어있나요? 풀어주세요.”
“조용히 해라.”
나추가 담담히 말했다.
“금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요호를 사냥하나요?”
나방비가 불만을 표했다.
“네가 직접 움직일 필요 없으니, 저기 가 있거라.”
나방비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뒤돌아 사여래 옆으로 향했다.
“사형이 풀어주세요.”
애정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사여래는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나도 금제가 돼 있어.”
“이게 뭐 하는 짓일까요?”
사여래도 금제를 풀어줄 방법이 없었다. 나방비는 나추의 뒤에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나추에 대한 불평이었다. 사실 이것도 나방비라 가능한 것이지, 다른 이는 불만을 품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다만 나방비는 나름 대범한 사람으로 이 일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사여래와 같이 고분고분 한쪽에 서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지금 나방비는 기분이 더 좋은 듯했다.
이내 사여래가 나추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부님,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나추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사여래도 더는 뭐라 묻기 어려워 그대로 물러났다. 그는 나방비가 아니었다. 또 그렇게 대범하지도 않았다.
은연중에 위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에 자신은 아주 곤란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사여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설파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까지 우유도와 호족의 소통은 모두 그를 통해 이루어졌다.
사여래는 우유도가 함정을 파 설파파를 죽이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오상이 갑자기 자신을 납치한 것을 보고, 오상이 은희와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지금 나추가 오상의 손에서 자신을 다시 빼 온 것을 보면, 나추도 오상과 은희의 만남을 안다는 걸 의미했다.
그 전에 성경에 돌아왔을 때 향하는 방향은 분명 대나성지 쪽이었다. 그런데 기절했다가 일어나니 황택사지에 와 있었다. 이는 즉, 나추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우유도 쪽은 사여래가 이미 황택사지에 도착했다는 걸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럼 당연히 늦지 않게 간섭하거나 그를 구해줄 수도 없겠지.
황택사지에 나타난 원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은희 말고는 이유가 없었다. 사여래와 나방비를 여기로 데려온 것도 은희가 이유일 것이었다. 원색이 나방비를 붙잡아 하려던 일, 이제는 나추가 직접 시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방비를 이용해 은희를 협박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여래까지 데려왔다는 건, 더더욱 그의 처지가 위험하다는 걸 말해주었다. 너무 명확한 일이었지만, 사여래는 차마 이를 밝힐 수도 없었다. 일단 그에 대해 언급하게 되면 그의 의도가 들통날 수 있었다.
나방비에게 알려줄 수도 없었다. 알려줘봤자 나방비와 나추 사이에 말싸움만 일어날 테고, 나방비가 나추의 결정을 바꿀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이를 입 밖으로 꺼내봤자, 위기를 벗어나긴커녕 오히려 나추의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만 할 것이 뻔했다.
사여래는 이제 그저 제 추측이 틀리기만 빌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결과를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이 없을까?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과거 만약을 대비해, 우유도는 사여래에게 몸을 피하라고 했었다. 다만 오상이 이처럼 공들여 그를 붙잡으리라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나방비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즐거워했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치마를 붙잡고 수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이런저런 야생화를 꺾었다. 꽃들을 또 요리조리 엮던 그녀는 화려한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썼다.
나추는 가끔 그런 딸에게 시선을 던졌다. 딸을 보는 그 깊은 두 눈엔 매우 복잡한 감정이 어려있었다.
이내 나방비는 화관을 하나 더 만들어 사여래에게 건넸다.
“사형, 써보세요.”
사여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나추를 힐끗 보더니, 그쪽으로 눈짓하며 나추에게도 하나 만들어 주라고 신호를 보냈다.
나방비는 말을 아주 잘 들었다. 즉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화관을 하나 더 만들어 나추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아버지, 제가 씌워드릴게요.”
그러나 나추는 나방비의 손을 막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체통을 지키거라.”
위풍당당한 대나성존이 머리에 저런 화관을 쓰다니, 그는 위엄을 지키려 했지만, 사여래가 다시 나방비에게 눈짓을 했다. 그에 나방비는 단호하게 나추의 손을 잡고 화관을 넘기며 애교를 부렸다.
“딸이 주는 거잖아요. 제 마음이에요. 꼭 받아주세요.”
나방비가 화관을 강제로 손에 쥐여주었으나, 나추는 말이 없었다. 그는 즐거워하며 다시 뛰어가는 딸을 보다, 손에 쥐어진 화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딸이 직접 만들어 준 선물이었다. 나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뒤편의 사여래는 조용히 그런 나추를 관찰하고 있었다. 찰나라도 나방비의 행동이 부디 나추의 마음을 움직이길 바랄 뿐이었다.
* * *
돌멩이 서신이 도착했다. 그 요호는 서신을 바로 은희에게 전달하진 못했다. 은희가 이미 우유도의 뜻에 따라 어딘가로 숨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해 받은 돌멩이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고, 흑운은 고민에 잠겼다. 장로들을 불러 모아 의논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우유도는 요호족 안에 첩자가 있다고 했다. 노족장이 잠시 몸을 피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우유도는 최대한 빠르게 그 첩자를 밝혀낼 테니, 안전이 확인될 때까진 외부와 그 어떠한 연락도 일체 금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서신의 내용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흑운은 도저히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결국, 이를 악문 그는 지궁을 떠나 은희가 몸을 숨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늪지 깊은 곳에 있는 한 지하 동굴.
주변엔 야명주 몇 알이 박혀 있고, 은희는 안에서 조용히 정양 중이었다.
이윽고 흑운의 방문이 은희의 청정을 깨트렸다.
은희는 요호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우유도의 서신을 받았지만, 은희는 그의 말을 완전히 믿진 않았다. 요호족은 인간들과 달랐다. 요호족에 은원이 있을 순 있어도 첩자가 나올 순 없었다. 우유도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종족이 절대 자신을 팔아넘길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흑운은 두려웠다. 그는 우유도의 능력을 직접 확인한 사람이었다. 우유도가 한 말이니, 만약을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흑운이 은희를 어렵게 설득했고, 결국 지금처럼 잠시 몸을 피하게 되었다.
그래도 은희는 외부와 연락을 모두 끊지 않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찾을 수 없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설파파가 죽었다. 성경 쪽에서 복수를 감행할 때 자신이 나서서 종족을 보호하지 못할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되었다. 그로 인해 은희는 외부와 연락을 취할 통로 한줄기는 남겨두었다.
그게 바로 흑운과의 연락통로였다. 은희는 흑운이 첩자일 리 없다고 생각했고, 흑운도 당연히 자신에게 문제가 없으니 은희의 요구를 승낙했다.
하지만 우유도는 분명 은희에게 외부와 모든 연락을 끊으라고 했었다. 한마디로, 은희는 끝내 우유도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었다.